[시빅뉴스의 일요 터치]'인천 장발장 사건'에 대한 여러 개의 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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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빅뉴스의 일요 터치]'인천 장발장 사건'에 대한 여러 개의 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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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9.12.21 2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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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장발장 부자 사건'의 현장이 찍힌 CCTV 화면(사진: MBC뉴스데스크 화면 캡처).
'인천 장발장 부자 사건'의 현장이 찍힌 CCTV 화면(사진: MBC뉴스데스크 화면 캡처).

1.

“34세 아버지와 12세 아들이 마트에서 물건을 훔치다 적발됐다. 그들이 훔친 것은 우유 2팩과 사과 6개, 그리고 몇 개의 마실 것, 현금으로 환산하면 1만원 내외의 먹을 것들이었다.

경찰이 출동했고 아버지는 벌벌 떨고 땀을 흘리며 ‘배가 고파서’ 이런 일을 저질렀다며 잘못을 빌었다. 경찰이 사정을 물으니 이들은 벌써 두 끼를 굶었고, 아빠는 기초생활수급자였으며 당뇨와 갑상선 질환이 심해져 6개월째 일을 그만둔 상태였다고 했다. 이들은 임대 아파트에 거주하고 있었으며, 집에는 홀어머니와 7세의 어린 아들이 있었다.
진짜 ‘사건’은 이제부터 일어난다. 먼저, 마트 주인은 처벌을 원하기는커녕 앞으로 이들에게 쌀과 생필품을 공급하겠다고 했다. 경찰은 이들을 훈방 조치하기로 했다. 아버지에게는 행정복지센터에 연락해 일자리를 찾아주기로 했으며, 아들에게는 무료급식카드를 발급하기로 했다. 경찰은 ‘요즘 세상에 밥 굶는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라고 울먹이며 이들에게 따뜻한 국밥을 사줬다.
바로 그때 회색 옷차림의 어떤 사람이 들어와 아무 말 없이 부자에게 흰 봉투를 내놓고 나갔다. 아들이 황급히 쫓아나갔으나 이 사람은 손사래를 치며 사라졌다. 그 봉투에는 현금 20만원이 들어 있었다. 그 사람은 마트에서 우연히 이 장면을 목격하고 현금을 인출한 후 경찰과 이들이 있던 식당을 다시 찾아와 그것을 건네고 간 것이었다. 경찰은 이 사람에게 감사장을 수여하기 위해 수소문을 했으나 끝내 찾지 못했다.“

한 시인이 지난 17일 일간신문에 쓴 칼럼의 일부다. 여기에 등장한 사건은 ‘인천 장발장 부자’란 말을 낳으며 감동을 자아냈다.  지난 10일에 일어난 일이다. 이 문제는 그 정도로 끝났으면 좋았을 것 같다.

2.

일이 이상하게 전개됐다.

경찰이 '오버'하기 시작했다. 인천중부경찰서는 ‘현금 20만원’의 주인공(박춘식, 66)을 기어이 찾아내 경찰서장 명의의 감사장을 전달하고 사진을 찍었다.
국밥을 제공한 인천중부경찰서 영종지구대 이재익(51) 경위에게는 민갑룡 경찰청장 표창이, 함께 출동했던 김두환(34) 순경에게는 이상로 인천경찰청장의 표창이 각각 주어졌다.

급기야 대통령까지 나섰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16일 수석‧보좌관회의에서 “우리 사회가 희망 있는 따뜻한 사회라는 것을 보여줬다”면서 “(선행을 베푼)모두에게 감사드린다”고 했다. 이어 “정부와 지자체가 복지제도를 통해 도울 길이 있는지 적극적으로 살펴주기 바란다”고 당부했다.

이런 상황에 대해서 의문을 제기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해당 시민은 격투 끝에 노상강도를 잡은 것도 아니고, 불우이웃이라지만 엄연히 현행범에게 돈을 쥐어줬을 뿐인데 경찰서장이 감사장을 주는 게 의아하다고 한다. 해당 경찰관들은 희대의 흉악범을 잡은 것도 아니고 현행범에게 국밥을 사주거나 사건 현장에 따라갔을 뿐인데 경찰청장이 표창을 하는 것도 어색하다고 한다.

여러 가지 문제제기들을 정리정돈 해 보면 이러하다.

-도둑질이 왜 미담으로 둔갑하느냐. 이런 유의 범죄는 다 용인하겠다는 뜻이냐

-마트에 CCTV가 설치돼 있다는 건 상식인데, 시장 구석도 아니고 마트에서 버젓이 도둑질을 했다는 건 이해가 안 된다

-어린 아들에게 가방을 매게하고 도둑질에 가담시킨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이틀도 아니고 고작 두 끼를 굶었을 뿐인데 배가 고파 도둑질을 했다는 건 이해가 안 된다

-기초수급자한테는 1인당 무려 월 10kg의 쌀이 지원되고, 필요하면 새 쌀로 바꿔주기도 하는데 밥을 굶었다니

-도둑질을 하고도 더 큰 도움과 배려를 받는다는 건 불공평한 일이다

-기사는 '우유 두 팩과 사과 6개'라고 얼버무리는데, 화면을 보면 소주병 3개와 캔음료들이 보인다. 배가 고팠다면 라면이나 빵을 훔쳤어야 하는 게 아닌가. 게다가 소주라니

-기초수급자라서 정부의 지원을 받고 있는데 한 개인에게 더 무슨 제도적 지원을 하라는 것인가. 사정이 더 안 좋은 기초수급자들도 수두룩할 것이다

-당뇨와 갑상선은 심각한 병이 아니다

-온정이 살아있는 게 아니라 감정적, 즉흥적, 감각적 판단이 지배하고 있다

-대통령이 “깊은 책임감을 느낀다. 사회적 안전망을 촘촘히 짜는 계기로 삼겠다. 반성한다”라고 했으면 더 좋았을 것이다

3.

이런 문제제기나 부정적인 시선을 두고 냉혹하다며 타박할 일만은 아닐 것이다. 이런 유의 미담은 자칫 국가의 무능력과 치부를 가리거나 진실을 호도하는 구실을 할 때도 있기 때문이다.

‘어금니 아빠’의 사례에서 보았듯이 ‘불편한 진실’이란 건 늘 있어왔으므로 객관적, 이성적 태도를 취하는 건 오히려 권장할만한 일일 듯.

독자여러분의 생각은 어떠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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