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0월의 한국 여행 이야기다. 이번 한국 방문 일정은 3년 만에 다시 찾아가는 조국에서 내 삶의 초점인 가족과 친구를 찾아보는 즐겁고도 중요한 여행이었다. 처음으로 우리 가족 이 모두 참가하는 모임을 나는 원했다. 넷째인 원식이, 일곱째인 원철이, 그리고 막내 영자가 주선하여, 2013년 10월 9일, 강원도 깊은 산골 문막에 있는 참나무 골(Oak Valley Golf and Resorts)에 우리 가족 40여 명이 모였다.

이곳은 한국전쟁 말기에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던 깊은 산골자기에 54홀의 골프장과 스키장을 만들어 놓은 리조트로, 서양식 콘도 시설은 마치 알프스 산속에 있는 스위스에 온 것 같은 황홀한 느낌을 주었다.

참나무를 많이 심어 10월 초 이제 단풍이 들기 시작하니 온 계곡이 더욱 아름다웠다. 우리 가족은 도착하자마자 콘도에 입주하여 가지고 온 온갖 맛있는 반찬과 소주로 밤 늦게까지 그동안 듣지 못한 온갖 이야기를 끝없이 나누며 모처럼 즐거운 시간을 가졌다.

우리 8남매는 모두 살아 있는데, 둘째 동생의 아들 철호 어머니가 저 세상에 가신 지는 벌써 10년이 넘는다. 조카 철호는 딸 셋에 아들 하나, 그리고 조카 하연이는 아들만 둘을 두고 있으니, 우리 형제 중에 둘째네가 손자녀가 제일 많아서 손자녀 보는 재미가 쏠쏠할 텐데, 너무 일찍 가신 것을 모두 아쉬워했다.

다음날 아침, 우리 가족은 일찍 일어나서 모두 근처 산으로 등산을 하고, 점심에는 미리 예약 해놓은 식당으로 갔다. 그 곳은 옹기를 굽는 가마 속에서 약밥을 속에 넣고 구운 오리고기 집으로, 우리 전 가족은 언제 다시 이런 모임을 가질지 기약할 수 없는 점을 잘 알기에 의미 있는 가족 모임 송별파티를 했다. 돌아가면서 한마디씩 연설하는 순서가 나에게 돌아 왔다. 좌장인 나는 이제 80세가 가까우니 진짜 인생의 뜻이 무엇인지를 이야기해 달라는 젊은 자손들의 요청으로 몇 마디했다.

나는 젊은 수도승 효민 스님에게서 들은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최근 뉴욕에서 관람한 뮤지컬 <피핀(Pippin)>은 진정한 인생의 의미를 찾아가는 여정을 보여준다. 왕자의 신분으로 태어난 피핀은 삶에서 위대하고 특별한 무언가를 성취하고 싶어 한다. 그래서 전쟁에 나가 전쟁 영웅이 되기도 하고, 가난하고 굶주린 자들을 위해 혁명을 일으켜 왕위에 오르기도 한다. 하지만 종국에는 이 모든 것이 다 허망하다는 것을 느끼고, 자신이 진정 원했던 것은 항상 곁을 지켜주었던 여자 친구와 함께 소소한 시간을 보내는 것임을 깨닫는다. 오랫동안 애 타게 찾아 헤매던 것을 막상 찾고 보니 다름 아닌 항상 자기 옆에 존재했던 것이었다.

사실 구도자들이 추구하는 깨달음도 피핀의 깨달음과 다르지 않다. 처음엔 깨달음이 뭔가 특별한 경험이나 대단한 능력을 가지게 되는 것이라고 착각하지만, 수행을 하면 할수록 평상심이 곧 도(道)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리고 깨달음은 뭔가 없었던 것을 새로 얻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항상 가지고 있는 본성을 재발견하는 것이다.

그래서 깨닫는 순간, 많은 성인들은 ‘눈앞에 항상 두고도 못 봤다니’ 하며 껄껄 웃는다. 많은 사람들에게 행복이란 현재 삶과는 다른 뭔가 새롭고 특별한 것을 성취하는 것으로 여기는 수가 많다. 그래서 지금이 늘 불만족 스럽고, 더 좋은 것, 더 새로운 것, 더 나아 보이는 것을 찾고 싶어서 마음이 바쁘다. 그런데 우리가 사랑하는 가족과 함께 여행을 해보면 알겠지만 정말로 소중한 것은 그리 멀리 있지않다."

젊은 사람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덕담이지만, 나는 이제 내가 사는 남은 인생의 초점을 잡았다고 가족들에 말하면서, 좀 늦기는 했지만 가족과 친구를 챙기는 것이 나의 남은 생애의 목표라는 것을 가족들에게 분명히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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