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원호 박사의 그리운 대한민국]강화도 문수산성에서 구한말 신헌의 애절한 사랑 얘기와 허약한 조선을 생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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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원호 박사의 그리운 대한민국]강화도 문수산성에서 구한말 신헌의 애절한 사랑 얘기와 허약한 조선을 생각하다
  • 장원호
  • 승인 2020.07.25 16:0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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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호근 교수의 소설 '강화도'를 읽고
강화도를 찾아 맛있는 광어회를 즐기다
문수산성에서 강화도 조약 체결한 신헌의 사랑 얘기, 가슴 아픈 구한말 조선을 생각하다

2017년 4월, 넷째동생 원식이 내외 주선으로 강화도 일대를 돌아봤다. 주말에는 갈 엄두도 못 낼 만큼 북적이는 강화도였지만, 화요일 아침에는 비교적 한산한 편이었다. 잘 가꾸어진 고속도로로 대명항에 도착한 것은 정오쯤이었다. 대명항의 명물은 수산시장이다.

강화도 대명항 수산시장(사진: 장원호 박사 제공).
강화도 대명항 수산시장(사진: 장원호 박사 제공).

시장 상인들은 모두 배를 가진 선주들이다. 그들이 파는 생선은 모두 자연산이라고 한다. 우리는 자연산 광어가 귀하다고 하여 광어와 '삼식이'라고 하는 생선을 시장에서 사서 동생이 아는 식당으로 갔다. 우선 광어회가 자연산이라서 단연 별미였고 광어뼈와 삼식이를 합쳐 끓인 매운탕은 매우 훌륭했다.

강화도 식당 앞에 선 필자 부부(사진: 장원호 박사 제공)
강화도 식당 앞에 선 필자 부부(사진: 장원호 박사 제공)

푸짐한 점심을 먹고, 바로 옆에 있는 김포 함상공원을 돌아본 다음, 우리 일행은 문수산성으로 걸어서 올라갔다. 대명 항에서 북쪽으로 문수산성으로 가는 산책로는 길면서 긴장되는 길이다. 바닷가 건너편이 북한이기 때문이다. 높은 철책으로 격리된 길을 걸어서 유적이 남아있는 포대를 둘러보았다. 포대 흔적은 그대로 남아있으며, 상대가 되지 않는 조선 대포로 프랑스함대와 격전을 벌린 곳이라는 역사적 기록이 있다고 한다. 우리 포는 프랑스 전함에 미치지도 못했고, 프랑스 함포는 막강한 화력으로 조선 해군을 제압했다고 한다. 문수산성은 우리의 아픈 역사를 말해주는 곳이다.

문수산성과 대포(사진: 장원호 박사 제공)
문수산성과 대포(사진: 장원호 박사 제공)

다시 차를 타고 강화 초지대교를 건너가니, 이제 강화군이다. 이 대교가 육지와 강화도를 연결하면서 강화군은 엄밀히 말해서 섬이 아니다. 강화도 일대를 돌아다니면서 강화도가 겪은 19 세기 후반의 역사를 다시 기억해 봤다.

운명이 기구하여, 나는 400년도 안되는 미국 역사는 톡톡히 공부했지만, 19세기 한국 역사를 제대로 공부하지 못했다. 대한민국 첫 공화국 수립과 동시에 한국 정부는 일본을 크게 미워하여 초등학교 교과서에 일본 역사를 대부분 빼 버렸으니, 수도 없이 우리나라를 침략한 19세기 일본과의 관계를 나는 제대로 공부하지 못했다.

강화도 염하강변(사진: 장원호 박사 제공).
강화도 염하강변(사진: 장원호 박사 제공).

요즘들어 틈틈히 조국의 역사 책을 챙기다가 신헌의 <심행일기>와 송호근 교수의 장편소설 <강화도>를 읽으면서, 나는 19세기 후반부터 벌어진 한국의 봉건과 근대가 겹치는 시대의 무서운 역사의 사실을 배웠다.

조선이 점점 허약해지는 반면, 일본은 명치유신 이후 근대 개화에 앞서 가면서 힘을 키워 한반도를 수도 없이 쳐들어 왔다. 충청북도 진천에서 태어난 신헌은 <심행일기>를 남겼는데, 이 책은 일본이 명치유신으로 서양 문물을 받아 드린 지 10년 후에 조선을 검은 연기를 품어대는 화륜선으로 침공하여 조선을 위협하고, 강제로 '강화도 수호조규'를 체결한 1876년 2월 1일부터 2월 28일까지 한 달간 과정을 소상히 적은 기록이다. 강화도를 지키던 수장 신헌은 증기엔진을 달고 검은 연기를 품으며 달리는 화륜 전함이 무엇인지도 몰랐다.

<심행일기>는 겨우겨우 읽을 정도로 어려운 책이었지만, 박식한 사회학자 송호근 교수의 <강화도> 장편소설은 훌륭한 역사책이며 문학 소설이다. 이 좋은 책을 단숨에 읽으면서 한국 역사의 어려운 시절을 다시 보게 됐고, 또 그 어려웠던 우리 역사를 간직하고 있는 강화도를 가 보고 싶었다.

이 책에는 신헌의 사랑 이야기가 간단히 들어있다. 신헌은 자기 스승의 손녀 혜련을 오랫동안 사모했지만, 사랑한다는 말 한마디 못해 보고 혜련의 출가 소식을 듣는다. 그런 신헌의 마음은 19세기 조선 왕조를 지배하던 '남녀 7세 부동석'이란 유교사상을 모르고는 이해할 수 없다. 30년을 보지도 못 하고 서로 사모하다가 신헌이 혜련의 묘지를 찾아가 사랑의 증표로 준 천주교 십자가를 묻어주는 대목에서는 눈물 없이 넘기기 어려웠다. 이 사랑 이야기가 사실인지 알 필요도 없다. 이것은 19세기 조선의 아름다운 사랑을 너무도 잘 그린 한 폭의 그림 같았다.

소설 <강화도>는 조선 왕조의 천주교 박해 역사를 틈틈이 엮어 놓았다. 타 종교나 문화를 강력히 배척하던 조선의 문화가 잘 묘사돼 있었다. 그러던 우리 민족이 지금은 개신교와 천주교라는 기독교가 세계적으로 잘 번창한 나라가 됐다고 하니,  지금의 현실이 묘하게 나에게 다가왔다.

사색당쟁으로 일관해 온 조선 말기에는 파쟁이 더욱 심했고, 국가를 위하여 나라를 지키려는 애국자는 거의 없었다. 유학을 공부한 수장 신헌이 느꼈다던 일본 팽창의 길목 위에서 힘없이 넘어간 우리 민족은 지금도 갑론을박 자기들의 이익과 주장만을 위하여 싸움질하고 있다. 우리 민족의 장래를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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