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로는 “2차 가해 말자"면서, 실제는 이 정도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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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로는 “2차 가해 말자"면서, 실제는 이 정도까지...
  • 취재기자 조재민
  • 승인 2020.07.15 1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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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직 여검사, “여자가 추행이라면 추행...” 피해자 조롱?
여당 의원, "미투 처리 모범…2차 가해 막으려 죽음" 주장
여당 여성 의원·여가부, 침묵 지키다 4·5일 만에 ‘뒷북 입장’

한국사회가 기본적 인권 영역이어야 할 성범죄 피해를 둘러싸고 심각한 진영논리에 침몰하고 있다. 말로는 “2차 가해하지 말자”고 떠들면서도, 실제론 상상도 못할 논리와 억지로, 심각한 2차 가해를 남발하고 있다.

특히, 2차 가해는 성별을 가리지 않고 나타나고 있다. 여성을 대상으로 한 성범죄에 공분을 느끼고, 성범죄 피해자와 연대해야 할 여성조차, 보다 심한 2차 가해를 가하거나, 그 피해에 공감하지 않고 있다.

성범죄 2차 가해는 피해자를 명백히 모욕하고 배척하는 행위다. 피해자가 민감하지 못했다며 피해자를 탓하고, 정신적 충격에 시달리게 하는 행위인 것이다. 그 인권에의 폐해가 엄청난 만큼, 한국사회 역시 ‘2차 가해’를 엄히 제재하고 있다.

진혜원 대구지검 부부장검사가 지난 13일 피해 여성을 조롱하는 듯한 글과 함께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사진. 고(故) 박원순 서울시장과 팔짱을 끼고 있다(사진: 진혜원 검사 페이스북 캡처).
진혜원 대구지검 부부장검사가 지난 13일 피해 여성을 조롱하는 듯한 글과 함께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사진. 고(故) 박원순 서울시장과 팔짱을 끼고 있다(사진: 진혜원 검사 페이스북 캡처).

한편 진혜원 대구지검 부부장검사(44)가 고(故) 박원순 서울시장의 비서로 근무하며 성추행을 당했다고 경찰에 고소한 여성 피해자를 조롱하는 취지의 글을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려 논란을 빚고 있다. 이에 따라 한국여성변호사회(여성변회)가 대검찰청에 징계를 요청했다.

진 검사는 지난 13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권력형 성범죄 자수합니다’라는 제목의 글을 올렸다. 진 검사는 박 시장과 팔짱을 끼고 찍은 사진에 대해 “냅다 달려가서 덥석 팔짱을 끼는 방법으로 추행했다. 페미니스트인 제가 추행했다고 말했으니 추행이다”라고 적었다. 스스로 문답을 주고받으며 “팔짱 끼는 것도 추행이에요?” “여자가 추행이라고 주장하면 추행이라니까!”라고 했다.

진혜원 검사가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글(사진: 페이스북 캡처).
진혜원 검사가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글(사진: 페이스북 캡처).

여성변회는 15일 오전 대검에 진 검사의 징계를 요청하는 진정서를 발송했다. 여성변회 관계자는 “진 검사가 페이스북에 올린 글들이 검사징계법상 품위를 손상하는 발언이고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라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대검은 우선 진정서 내용을 검토한 뒤 감찰 여부를 결정할 예정이다. 만일 진 검사에 대한 감찰이 결정되면, 대검 감찰부가 직접 맡거나 대구지검의 감찰 담당 검사가 맡는다. 검사징계법은 “직무 관련 여부에 상관없이 검사로서의 체면이나 위신을 손상하는 행위를 했을 때 그 검사를 징계한다”고 규정한다.

이에 대해 일부 인사들도 진 검사의 글을 두고 “명백한 2차 가해”라며, 추미애 법무부 장관에게 해당 검사를 감찰하라고 요구했다.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더 이상의 폭언을 막기 위해 고소나 고발이 필요할 것 같다”고 주장했다. 유창선 시사평론가도 “지휘권 행사를 좋아하는 추 장관은 성추행 피해 여성을 조롱한 진혜원 검사를 감찰하라는 지휘권을 행사할 것을 촉구한다”고 썼다.

더불어민주당 윤준병 의원이 고(故) 박원순 전 서울시장을 옹호하는 듯한 글을 올렸다가 논란이 되자 이를 해명했다(사진: 윤준병 페이스북 캡처).
더불어민주당 윤준병 의원이 고(故) 박원순 전 서울시장을 옹호하는 듯한 글을 올렸다가 논란이 되자 이를 해명했다(사진: 윤준병 페이스북 캡처).

또 더불어민주당 윤준병 의원은 지난 13일 박원순 서울시장의 극단적 선택과 관련, "고인은 죽음으로 당신이 그리던 미투 처리 전범을 몸소 실천했다. 고인의 명예가 더는 훼손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주장했다.

윤 의원은 이날 고소인 측의 피해 사실 기자회견 내용에 대해 ‘가짜 미투’가 아니냐는 의문도 제기했다. 그는 "행정부시장으로 근무하면서 피해자를 보아왔다“면서, "침실, 속옷 등 언어의 상징조작에 의한 오해 가능성에 대처하는 것은 남아있는 사람들의 몫"이라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논란이 일자, 결국 윤 의원은 지난 14일 자신의 자신의 페이스북에서 “일부 언론에서 가짜 미투 의혹을 제기했다고 보도했는데, 전혀 그런 의도가 없었다”고 밝혔다. 그는 “(박 전 시장이) 고인이 되기 전에 피해자에게 미안하다는 말씀을 전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며 “피해자에게 더 이상의 2차 피해가 없기를 바랄 뿐”이라고 말했다.

진보 성향의 역사학자 전우용의 부적절 발언이 여론의 뭇매를 맞고 있다(사진: 전우용 트위터 캡처).
진보 성향의 역사학자 전우용의 부적절 발언이 여론의 뭇매를 맞고 있다(사진: 전우용 트위터 캡처).

한편 진보 성향 역사학자 전우용 씨는 박원순 서울시장의 죽음을 두고, “나머지 모든 여성이 그만한 ‘남자 사람 친구’를 다시 만날 수 있을지 모르겠다”는 글을 올려 논란을 빚고 있다. 그는 “박원순을 빼고 한국 현대 여성사를 쓸 수는 없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 글에는 수많은 댓글이 달렸다. “계속 더 고인을 욕되게 하지 말라”, “얼마나 오만하면 이런 글을 쓸 수 있나”, “진보는 나아가는 거다. 어디를 향해 나아가고 무엇을 대변합니까” 등 비난 댓글이 쏟아졌다.

원더걸스 출신 가수 핫펠트(예은)는 전 씨 글에 “나머지 여성 중의 한 사람으로서 그건 친구가 아니다”라며 “그런 친구 둘 생각 없고 그런 상사는 고발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번 2차 가해 논란을 둘러싼 정부(여성가족부)의 대처와 여당 여성 국회의원들의 대응 역시 논란거리다.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가 쏟아질 동안 상부 기관의 눈치만 보고 있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다.

여성가족부(장관 이정옥)는 14일 박원순 전 서울시장 사건과 관련해 “피해자보호원칙 등에 따라 필요한 대책을 마련해 나가겠다”고 뒤늦은 입장을 밝혔다. 다만 박 시장에 대해서는 일절 언급하지 않았다.

이에 여성가족부는 여성을 대변하고 성범죄 근절에 힘써야 하는 부서임에도 정작 이번 사건에 대해서는 침묵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더불어민주당 여성 의원들 역시 14일, “당사자의 인권 보호는 물론 재발 방지를 위해 서울시 차원의 진상조사가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성명서에서 "피해 호소 여성에게 깊은 위로의 마음을 전하며, 재발 방지를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민주당 여성 의원들 또한 사건 발생 닷새 동안 침묵으로 일관해 '이중 잣대' 비판을 받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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