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문석 칼럼] 예고된 오거돈의 폭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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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문석 칼럼] 예고된 오거돈의 폭망
  • 논설주간 송문석
  • 승인 2020.05.05 0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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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흔둘 나이에 부끄러운 짓 한 부산시장의 성추행
그를 뽑아주고 지지한 부산과 부산시민도 욕 보여
‘어공’들에게 전권 위임한 탓이라는 분석도 많아
오거돈 전 부산시장(사진: 더 팩트 제공).
오거돈 전 부산시장(사진: 더 팩트 제공).

부하 여직원을 성추행해 사퇴한 전 부산시장 오거돈은 역사의 명부에 더러운 이름으로 기록될 게 확실하다. 범죄는 그가 저질렀지만 그를 시장으로 선택한 부산과 부산시민도 두고두고 입길에 오르내릴 운명이 되고 말았다. 시장으로 뽑아준 시민들의 머리에 그는 영광의 월계관을 씌워주는 대신 오욕의 구정물을 뒤집어씌웠다.

시장 집무실에서 저지른 부하 여직원 성추행 사건은 추잡스럽고 추레하고 너절했다. 일흔둘 나이를 헛먹었다고 할 수밖에는 달리 표현할 방법이 없다. 언론을 통해 드러난 성추행 과정을 보면 그는 교활하고 음탕한 늙은이의 본능대로 움직였다. 제2의 도시 부산의 명예나 350만 부산시민들의 자긍심 따위는 안중에도 없었다.

오거돈은 왜 그랬을까. 근본적으로는 동물적 욕망을 억제하지 못한 그 자신에게 있을 것이다. 누구나 살아가면서 동물적 욕망과 본능적 충동감이 치솟지만 모두가 그것을 행동으로 옮기는 건 아니다. 이성과 도덕, 윤리와 상식 등에 비춰 그래서는 안된다고 생각하고 꾹 내리누르는 게 정상적이고 보통 사람들이 하는 행동이다.

그런데 오거돈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컴퓨터를 가르쳐 달라는 핑계로 여직원을 집무실로 불러들여 못된 짓을 저질렀다. 오래전부터 피해 여성을 점찍어두고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았을 게 틀림없다. 범행 시간도 낮 11시 40분 가까운 시점이다. 시청 공무원들이 하나둘 점심 식사를 위해 자리를 뜰 때다. 비서실 직원들 역시 시장이 집무실에 있으니 모두 자리를 비우지는 못하고 절반씩 교대로 점심식사를 위해 나갈 시점이다. 사각 시간대를 노렸다고 봐야 한다. 계획적인 범행이었다. 더구나 부산시청 전 직원들이 코로나19로 비상근무 중이고 총선거로 정신이 없을 상황이었다.

총선이야 공무원 선거 중립의무가 있으니 그렇다 치더라도 코로나19는 단 한순간도 빈틈을 보여서는 안 될 국가적 비상사태였다. 그런데 그는 엄중한 비상사태는 내팽개쳐 두고 동물적 본능을 채우는 데만 골몰했다.

엉뚱한 짓을 벌일 만큼 그에겐 시장 자리가 한가로웠던 걸까. 온 신경을 부산시정에 쏟아붓지 않아도 될 만큼 시간적, 정신적 여유가 있었던 걸까.

22개월 전 오거돈이 부산시장에 당선된 이후 ‘적폐청산’이 화두였다. 지방권력이 보수정당에서 진보정당으로 교체됐으니 지방행정에서도 묵을 때를 벗겨내야 한다는 거였다.

지방자치제 실시 이후 문정수-안상영-허남식-서병수로 이어지는 민선 부산시장은 정당 이름만 민주자유당-신한국당-한나라당-새누리당-자유한국당으로 바뀌었을 뿐 1995년 이래 보수정당이 장악해왔다. 더불어민주당 공천으로 부산시장에 당선돼 지방권력을 교체한 오거돈 입장에서 고기를 구운 불판을 갈아야 할 정치적 명분은 충분했다. 공직사회와 지역경제계, 정치권력 등이 한통속이 돼 누이 좋고 매부 좋다는 식으로 북 치고 장구 치며 끼리끼리 단물을 삼킨 세월을 누구보다 오랫동안 지켜보고 알고 있는 사람이 오거돈이었으니 과거 청산은 필요했다. 어쩌면 선거를 통한 권력교체의 이유가 거기에 있기도 하다.

하지만 이상했다. 행정관료로 잔뼈가 굵고 부산시정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오거돈이었지만 직접 팔을 걷어붙이고 나서지 않았다. 시청 공무원 거의 전부가 그의 부하이고 후배이니 그가 직접 진두지휘하는 게 당연했다. 예상은 빗나갔다. 이른바 ‘측근’ ‘복심’으로 불리는 외인부대들이 설치기 시작했다. 정무직으로 보임된 이른바 ‘어공(어쩌다 공무원)’들이 직업공무원들인 ‘늘공’들을 족치고 있다는 소문이 밤이면 시청 주변에서 새 나왔다. 첫 인사부터 아무개가 주무르고 있다는 소문이 관가에 파다했다. 비선조직에서 낙점한 인사안을 오거돈은 고개만 끄덕거린다는 말도 나돌았다.

정책에서도 파열음은 터져 나왔다. ‘적폐청산’은 ‘적폐’에 방점이 찍힌 것이 아니라 ‘청산’에 찍혀 있었다. 옥과 돌을 구분해 좋은 정책들은 과거 정권이 입안하고 추진했더라도 대승적으로 승계하는 것이 아니라 그야말로 옥과 돌을 함께 태워버리는 옥석구분(玉石俱焚) 방식을 택했다. 전 시장이었던 서병수 시대 정책들은 모조리 전면 재검토하거나 중단됐다. 그동안 예산이 얼마나 들어갔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과거 정권이 했던 것은 보기도 싫고 맘에 들지 않으니 일단 안 보이는 곳으로 치워버리겠다는 오기와 오만이 똘똘 뭉친 점령군 심리가 깔려 있다고밖에는 볼 수 없었다.

그러나 결과는 엉뚱하게 흘러갔다. 전면 재검토하겠다며 공사를 중단시켰던 부산오페라하우스는 재추진되고 있고, 서병수 때도 말이 말았던 버스중앙차로제(BRT) 사업 역시 중단지시로 올스톱 됐다가 원안대로 공사가 진행되고 있다. 동해선 원동역사, 부전천 복원공사 역시 뒤집혔다가 원래대로 돌아왔다.

된서리를 맞은 것들도 있다. 서부산청사 건립사업, 동록엑스포 개최지 문제 등은 수정됐고, 사직야구장 돔구장, 원도심 4개구 통합, 유스테이는 없던 일이 됐다.

동남권 신공항 조성사업은 오리무중으로 빠져든 대표적인 정책이다. 오거돈은 2년 전 선거과정에서 서병수의 김해신공항에 맞서 동남권 신공항 재추진이라는 선명한 공약을 들고 나와 시민들의 표를 얻었다. 정책이란 게 현상유지를 하겠다는 것보다 뭔가 새로운 것을 하겠다고 들고 나오면 구미가 당기는 게 당연하다. 가덕도에 신공항을 세우겠다는 걸 반대하는 시민은 없을 것이다. 그런데 지난 2년 동안 동남권 신공항은 되는 건지 안 되는 건지 모를 정도로 지지부진한 상태로 있다. 이번 총선에서는 이상하게도 여당인 더불어민주당 조차 동남권 신공항 건설 이야기를 아예 입도 뻥긋하지 않았다.

이러니 시정이 표류하고 도대체 오거돈 체제에서 무엇을 하는지 모르겠다는 말이 나오는 건 당연했다. 오거돈이 뭘 하려고 부산시장을 하려 했는지 알 수 없다는 말들도 나왔다.

오거돈 체제의 인사가 뒤틀리고 정책이 표류하면서 곁길로 빠지고 방향을 잃고 헤매는 데는 ‘어공’들에게 전권을 위임하고 시정을 맡긴데 있다는 분석이 많다. 항간에는 시장이 도대체 누구냐는 말까지 나왔다. 낮에는 오거돈이 시장이고 밤에는 아무개가 시장이라더라는 믿지 못할 수근거림도 들렸다. ‘부산시청 국실장들이 부시장이나 시장 결재를 받기 전에 ‘왕수석’이라는 사람의 결재를 받지 않았다가 된통 당했다’든가 ‘부시장이나 시장의 결재를 ’왕수석‘이 뒤집었다더라’는 믿기 힘든 말도 들렸다. 언젠가부터는 오거돈은 허수아비에 불과하다는 말도 들렸다.

오거돈의 여직원 성추행은 기본적으로 낮은 성인지 감수성에 기인한다. 그가 취임 초기 회식 자리에서 여성을 양옆에 앉히고 건배를 즐기는 모습에 모두가 경악했다. 그리고 지난해 10월에도 ‘미투(Me Too) 의혹’이 제기됐고, 유튜브채널 ‘가로세로연구소’의 ‘직원 성추행’ 폭로도 있었다. 이런저런 성추행 사건도 저질렀다는 소문도 들린다. 공개되지 않은 성추행이 얼마나 있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러나 그가 성추행으로 폭망하고 망신을 한 것은 겉으로 드러난 결과일 뿐이다. 지난 22개월의 비정상적이고 뒤틀린 조직운영과 행태가 쌓이고 쌓여 터진 것이라는 게 나의 생각이다. 지방정권을 장악했으니 나의 명령 한마디면 복종할 것이라는 점령군 심리와 귀찮고 힘들고 어려운 일은 ‘어공’들에게 맡겨놓고 홀가분하게 뒷방에 나 앉은 ‘상왕노릇’이 오늘의 폭망한 오거돈을 만들었다고 본다.

오거돈 성추행 사건이 터지고 나서 당사자는 열흘이 넘도록 종적을 감췄다. 그가 데리고 들어온 ‘어공’ 정무직들도 일제히 몸을 숨기고 잠적했다. 그토록 기세등등하던 이들이 정책의 일관성을 위해 최소한 업무 인수인계라도 해줘야 할 텐데 나 몰라라 하고 내뺐다. 하나같이 무책임의 극치를 보여준다. 부산의 수치이고 부산시민의 수치이다. 부끄럽고 또 부끄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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