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길동전>은 국문학 사상 최초의 한글소설이다. <홍길동전> 하면 허균, 허균하면 <홍길동전>을 떠올린다. 허균의 호 가운데 하나가 교산(蛟山)이다. 교산에서 교(蛟)는 용이 되지 못한 이무기를 말한다. 교산은 그가 태어난 강릉의 사천진해수욕장 앞에 있는 야트막한 산이다.
산의 형상이 꾸불꾸불해서 붙여진 명칭이다. 허균은 <홍길동전>과 같은 이상세계를 꿈꾸었지만 끝내 용이 되지 못한 이무기로 끝나고 말았다.
광해군10년(1618) 8월 24일, 창덕궁 인정전 앞에서 살벌한 국문이 열렸다. 허균의 역모사건과 관련된 국문이었다. 허균의 죄상으로 거론된 내용은 다음과 같다. 무오년(광해군10년, 1618년) 무렵에 여진족의 침범이 있자 중국에서 군사를 동원했다. 그러자 조선이 여진의 본고장인 건주(建州)에서 가까워 혹시 있을지도 모를 여진의 침략으로 인심이 흉흉하고 두려워하는데 허균은 긴급히 알리는 변방의 보고서를 거짓으로 만들고 또 익명서를 만들어, ‘아무 곳에 역적이 있어 아무 날에는 꼭 일어날 것이다’라고 했다.
또한 허균은 밤마다 사람을 시켜 남산에 올라가서 부르짖기를, “서쪽의 적은 벌써 압록강을 건넜으며, 유구국(琉球國) 사람은 바다 섬 속에 와서 매복하였으니, 성 안의 사람은 피해야 죽음을 면하게 될 것이다”고 했다는 것이다. 이밖에도 노래를 지어, ‘성은 들판보다 못하고, 들판은 강을 건너니만 못하다’. 또 소나무 사이에 등불을 달아놓고 부르짖기를, “살고자 하는 사람은 나가 피하라”고 하니, 인심이 놀라고 두려워하여 도심 안의 인가(人家)가 열 집 가운데 여덟아홉 집은 텅 비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밖에도 김윤황을 사주해서 격문을 화살에 매어 경운궁 가운데 던지게 한 것, 남대문에 격문을 붙였다는 것 등이다.
허균을 둘러싼 이같은 의혹에 대해서, <광해군 일기>에는 이것이 당시 대북 정권의 핵심이었던 이이첨과 한찬남이 허균 등을 제거하기 위해 모의한 것이라고 기록했다. 광해군 10년 8월 24일, 인정전 앞에서의 국문에서 허균은 자신의 죄를 인정하지 않았다. 하지만 국문을 끝으로 허균은 생을 마감했다.
허균이라고 하면 급진적인 혁명가의 이미지가 가장 먼저 떠오른다. 서자로 태어났지만 지혜와 용기로 활빈당을 이끌고 부정부패와 맞서 싸우면서 자신만의 왕국을 세운 홍길동의 이미지가 허균과 겹쳐진다. 허균은 혁명가, 개혁가로서의 면모를 지녔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허균은 독서광이었다. 벼슬을 버리고 강릉으로 돌아가서 만 권 서책 중의 좀벌레나 되어 남은 생애를 마치고자 한다고 말할 정도로 책에 대한 애정이 깊었다. 좋은 책이 있으면 구해서 읽었다. 또 책을 혼자서만 보지 않고 동료 선비들이 활용할 수 있도록 도서관 같은 것을 만들기도 했다.
조선의 사대부들이 성리학에 매몰돼 있을 당시 허균은 급변하는 중국 명나라 문단과 철학계의 동향을 주시하면서 새 책이 나오면 바로 구해 읽음으로써 사유의 지평을 넓히는 자료로 삼았다.
허균에게 독서는 살아가는 방책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사회의 모순을 읽어내고 새로운 사유를 만드는 생각의 창고였다. 허균은 독서로 얻은 사유를 실천하는 독서인이었다. 독서는 자연스레 글쓰기로 이어졌다. <홍길동전>에서 보듯이 허균의 글쓰기 주요 특징은 인간의 정(情)을 중시했다. 인간의 심성 수양을 중시했던 당시 성리학적 분위기 속에서 허균은 인간 본연의 정서를 중시하는 문학론을 폈다. 그는 ‘성리학의 나라’ 조선에서 ‘이단’으로 지목될 위험을 감수하고 불교와 도교 사상에 관심을 보였다. 특히 민중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이는 민중의 삶에 애정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방대한 독서로 형성된 허균의 사상과 지식세계는 임진왜란 이후 조선 지식인 지형도 형성에 영향을 미쳤다. 허균은 역모로 처형 당했지만 그의 문집은 조선 후기 지식인들에게 널리 읽혔다. 허균의 공부는 엄청난 양의 지식을 축적하고 분류해서 백과사전식 학문 체계를 만드는 역할을 했다. 이런 점에서 허균을 17세기 새로운 교양인의 탄생을 알리는 첫 인물로 지목할 수 있다.
허균은 명예와 이익을 향한 욕망을 벗고 은거하고픈 마음이 일생 내내 교차했다고 한다. ‘압록강을 건너며’, ‘진상강에서’, ‘수레 위에서’ 등의 시에서 ‘어디로 돌아갈까’ 하는 고민이 가득하다.
‘이대로 떠나 산방 주인 되면 어떨까/ 내 책 일만 권을 차례대로 꽂아놓고’(‘설날’ 중에서) ‘어떡하면 만년에 내 마음 지킬까/ 옛사람의 책 읽고 또 읽으리라.’(‘읽고 또 읽으리라’ 중에서) 라는 소망을 가졌던 허균은, 2년 후 역모죄를 쓰고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사람은 가도 책은 남는다. 몸은 소멸되어도 영혼의 자식인 책은 길이 남아 후세 사람들에게 등불이 된다. 천지에 널려있는 등불(책)을 내 것으로 만들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