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윤환의 책과 사람]22/미국 전역에 3천 개의 도서관을 지었다-앤드루 카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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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환의 책과 사람]22/미국 전역에 3천 개의 도서관을 지었다-앤드루 카네기
  • 영광도서 대표 김윤환
  • 승인 2020.01.25 2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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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환 영광도서 대표
김윤환 영광도서 대표

부자의 대명사 철강왕 카네기, 재산의 복음화를 실천한 사업가 카네기. 그는 3000개가 넘는 도서관을 건립하는 데 돈을 기부했다.

남을 아무 조건 없이 돕고 베푸는 것을 불교에서는 무주상보시라 한다. 돈과 음식을 주는 것보다 책과 도서관을 주는 것이 최고의 보시가 아닐까 한다. 그의 도움으로 미국의 청소년들은 쾌적한 도서관에서 지식과 지혜의 영양을 섭취하고 있다.

막강한 미국의 힘, 그 힘의 뿌리는 도서관이다. 한국의 재벌들도 막대한 기부를 하고 있지만 도서관을 건립했다는 소식은 듣지 못했다. 조금만 시야를 넓혀 재벌그룹이 도서관 건립에 참여하길 기대한다. 기업의 이름을 붙이든 창업자의 이름을 붙이든 그건 상관없다. 좋은 책이 있는 좋은 도서관이면 된다. 성경에,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는 것은 낙타가 바늘구멍으로 들어가는 것만큼 어렵다고 했다. 어렵다고 했지 불가능하다고는 하지 않았다. 카네기 같은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앤드류 카네기(사진: Pixabay 무료 이미지).
앤드류 카네기(사진: Pixabay 무료 이미지).

앤드류 카네기는 1835년 스코틀랜드의 던펌린에서 태어났다. 직조공이었던 그의 아버지는 수동식 직조기를 이용하는 작은 가내 공장을 운영했다. 1847년 증기식 직조기가 도입되면서 하루아침에 생계가 어려워지고 말았다. 급격히 가세가 기울자 카네기는 일찌감치 세상 물정에 눈을 떴다.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돈을 벌어 가난을 벗어나야겠다고 결심했다.

1848년 카네기 일가는 고향을 떠나 이민선에 몸을 실었다. 미국에 도착해서 친척이 사는 펜실베이니아 주 피츠버그 인근에 정착했다. 당시 13세였던 앤드류는 주급 1달러 20센트를 받고 면직물 공장에서 일했다. 다른 공장으로 자리를 옮긴 뒤에는 운 좋게 공장 주인의 눈에 들어 사무 보조를 담당했다. 학력이라곤 던펌린 시절 초등학교를 다닌 것이 전부였다. 카네기는 남다른 근면과 성실을 발휘하여 상사의 호감을 샀으며, 간혹 찾아오는 행운의 기회를 놓치지 않고 최대한 이용했다.

전신국에 전보 배달원으로 취직하자마자 어깨 너머로 전신 업무를 익혀두었다가, 담당자가 자리를 비운 사이에 능숙하게 업무를 대신해 상사에게 인정받고 정식 전신기사가 되었다.

그는 유년시절부터 독서광이었다. 그가 전보배달을 할 무렵, 제임스 앤더슨 대령이 400권이나 되는 책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야근이 없는 날을 손꼽아 기다리며 책을 빌려다 읽었다.

1853년 카네기는 전신국의 단골손님인 펜실베이니아 철도회사의 피츠버그 지부장 토머스 스콧에게 스카우트되었다. 스콧은 철도 업무뿐만 아니라 투자에 관해서도 조언해 주었다. 카네기에게 더 큰 기회의 문을 열어준 은인이다.

1856년에는 철도 침대차 사업에 투자해 처음으로 거금을 벌었다. 1859년에 카네기는 스콧의 뒤를 이어 펜실베이니아 철도회사의 피츠버그 지부장으로 승진했다. 1861년에 남북전쟁이 발발하자 카네기는 전쟁부에서 일하던 스콧을 따라 워싱턴으로 향했다. 자기 분야의 경험을 살려 철도와 전신 복구 업무를 담당했다. 그즈음 카네기는 미국 석유산업 초기 산유지로 유명한 타이터스빌의 석유회사에 거금을 투자해서 막대한 이득을 얻었다. 이는 훗날 그가 본격적인 사업을 시작하는 밑천이 되었다.

카네기는 한창 사업 확장에 분주했던 1868년, 나이 33세에 은퇴 계획을 세웠다. 35세에 은퇴하고 생활비 연 5만 달러를 제외한 나머지 수입은 모두 자선사업에 쓰겠다는 계획이었다. 실제로 그의 은퇴는 계획보다 30년이 늦은 1901년에야 이루어졌지만, 지연된 햇수에 걸맞게 자선사업에 쓸 돈은 크게 늘어나 있었다. 당시의 4억 8000만 달러는 현재 가치로 대략 100억 달러가 넘는다. 이후 카네기는 여러 분야의 자선사업을 관장할 기구를 조직했다. 1902년에 카네기협회, 1905년에 카네기 교육진흥재단, 1910년에 카네기 국제평화재단, 1911년에 카네기재단을 설립했다.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한 1914년 카네기는 유명한 <철강왕 카네기 자서전>을 완성했다. 5년 뒤인 1919년 8월 11일에 매사추세츠 주 세도브룩의 자택에서 사망했다. 그가 말년에 보유했던 4억 8000만 달러의 재산 가운데 약 4분의 3에 해당하는 3억 5000만 달러는 이미 사회에 환원한 후였다. 그의 유해는 뉴욕 주 태리타운의 슬리피 할로 묘지로 옮겨져 매장되었다. 이곳은 그가 좋아했던 미국 작가 워싱턴 어빙의 무덤이 있는 곳이기도 하다. 묘비에는 생전에 그가 좋아하던 문구가 적혀 있었다.

‘자기 자신보다 더 우수한 사람을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지 알았던 사람이 여기 누워 있다.’

고전이 된 <철강왕 카네기 자서전>. 카네기가 유년시절부터 자신의 인생을 회상하며 쓴 글을 모은 책이다. 카네기가 부를 쌓고 세계적인 명성을 얻기까지의 과정을 생생하게 들려주며, 자신의 삶과 사상에 대해 보여 주고 있다. 그가 자선사업가로서 거듭나게 된 배경, 노동자였던 과거를 회상하며 노사문제에 대해 진지하게 임했던 그의 태도와 부의 축적 과정뿐만 아니라 한 인간의 진솔한 면을 살펴볼 수 있다.

부와 명예를 얻고자 야망을 가진 청춘들은 <철강왕 카네기 자서전>을 읽어보시기를 권한다. 카네기만큼 성취할 수 없을지라도 만족한 삶에 다가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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