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윤환의 책과 사람]23-문제아였던 아이를 천재로 이끈 독서-알베르트 아인슈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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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환의 책과 사람]23-문제아였던 아이를 천재로 이끈 독서-알베르트 아인슈타인
  • 영광도서 대표 김윤환
  • 승인 2020.01.26 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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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환 영광도서 대표
김윤환 영광도서 대표

천재는 선천적으로 태어나는 것인가, 후천적 노력으로 천재가 되는 것인가? 천재의 대명사 아인슈타인을 떠올리면 그런 생각이 든다. 그의 이력을 살펴보면 판단이 설 것이다. 학교생활만을 보면 평범한 우리도 힘이 난다. 그도 별 것 아니었다.

‘이 아이는 나쁜 기억력, 불성실한 태도 등을 볼 때, 앞으로 어떤 일을 해도 성공할 수 없을 것으로 판단됨.’

담임교사가 적은 아인슈타인의 학교생활기록부 내용이다. 최대한 완곡하게 표현했지만 악담이다. 아인슈타인은 교사의 평가처럼 학교생활에 적응하지 못해 고등학교를 자퇴했다. 그 때문에 독일의 대학 대신 입학이 쉬운 스위스에 있는 대학에 진학했다. 대학생활도 그저 그랬다. 박사학위는 중도에 포기했다.

청소년기를 찌질하게 보낸 아인슈타인이지만, 지금은 천재, 위인으로 평가 받고 있다. 그는 ‘상대성 이론’을 창안했고, 그것으로 인류의 세계관에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인류가 불변의 진리라 여겼던 우주는 관찰자의 관점에 따라 ‘상대적’으로 달라진다는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아인슈타인이 이러한 업적을 쌓을 수 있었던 것은 인문고전 독서가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는 17세 때 사람들 앞에서, ‘나는 평생 술 대신 인문학에 취하겠다’고 선포했다. 이처럼 독서를 통해 남들이 깨닫지 못한 우주의 원리를 이해할 수 있었기 때문에, ‘성공할 수 없을 것’이라던 그가 오늘날 천재 물리학자로 추앙 받고 있다.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사진: Pxhere 무료 이미지).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사진: Pxhere 무료 이미지).

아인슈타인은 독일의 유대인 집안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조그마한 전기화학제품 공장을 운영했고, 어머니는 음악적 소양이 풍부한 교양인이었다. 아인슈타인은 세 살이 되도록 말을 하지 못했다.

초등학교 때는 저능아로 불렸고, 중학생 때는 산만한 수업 태도로 문제아 취급을 당했다.

그러나 그의 어머니는 절망하지 않았다. 그녀는 아들에게 “너는 너만의 특별한 능력이 있단다”라는 말로 격려했다. 고전문학 낭독을 즐기는 아버지도 책을 읽어 주며 어린 아들을 위해 애를 썼다. 그러면서 아인슈타인의 부모는 아들을 위해 막스 탈무드라는 의대생을 집으로 불러 아들의 멘토 역할을 부탁했다.

밝은 성격을 지닌 막스 탈무드가 일주일에 한 번씩 어린 아인슈타인을 만나면서 둘은 금세 친해졌다. 그러면서 막스 탈무드는 아인슈타인이 지닌 잠재력을 발견했다. 모든 면에서 부진해 보였지만 아인슈타인이 책읽기를 좋아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특별한 면이 없는 아인슈타인이었지만, 인문고전 독서에 큰 관심을 보였다. 이러한 면을 알게 된 막스 탈무드는 13세의 아인슈타인에게 유클리드의 <기하학>을 읽게 했다. 그리고는 기하학에 대해 함께 토론을 했다. 14세 때에는 칸트의 <순수이성비판>을 읽게 하고 칸트 철학에 대해서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중학생 나이에 고전을 읽고 새로운 세계에 눈을 뜬 아인슈타인은 자신의 내면에서 변화를 깨닫기 시작했다. 새로운 세계를 경험한 아인슈타인은 독서로 자신의 인생을 바꾸기로 마음먹었다. 아인슈타인은 10대 시절을 서양철학 고전을 독파하며 보냈다. 대학생이 되어서도 전공보다는 철학 고전 강의를 즐겨 들었다. 그 때문인지 부진한 학점과 겨우 통과된 졸업 논문 등으로 대학 조교 자리도 얻지 못했다. 친구 아버지가 알선해 준 직장에 겨우 들어갔다.

그런데 거기서 직장 상사로부터 우연히 아리스토텔레스 <논리학>에 근거한 사고 훈련을 받게 되었다.

이에 자극이 된 아인슈타인은 퇴근한 뒤에는 자신이 직접 고전 독서 모임을 주선했다. 독서 모임을 〈올림피아 아카데미〉로 이름 짓고 회원들과 독서와 토론에 열중했다. 이 모임에서는 플라톤의 <대화편>, 데이비드 흄의 <인간본성론., 존 스튜어트 밀의 <논리학 체계>, 앙리 푸앵카레의 <과학과 가설> 같은 책들을 읽고 토론했다. 책의 중요한 부분에 이르면 한 문장이나 한 주제를 가지고 며칠씩 토론했다.

먹고살기 위해 여러 일자리를 전전했지만, 그러는 과정에서도 책읽기를 게을리 하지 않았다. 그러한 독서 이력이 바탕이 되어, 그의 나이 25세 때, ‘특수상대성 이론’에 관한 논문을 발표하여 노벨 물리학상을 받았다. 그때 아인슈타인의 직업은 교수가 아니라 특허사무소의 말단 직원이었다.

오랜 세월 인문고전으로 독서능력을 기른 아인슈타인은 나이가 들자 자신만의 독특한 독서 방법으로 책을 읽었다. 훗날 자신의 독서법에 대해서 그는, ‘책의 뼈대를 확실하게 파악하고 가죽은 벗겨 버렸다’라고 표현했다. 그는 여러 권의 책을 읽고 필요한 부분을 취하는 독서 방법을 택했다. 지극히 평범한 삶을 살았던 아인슈타인이 오로지 머릿속에서 사고실험으로만 우주의 진리에 다가갈 수 있었던 데에는, 어린 시절부터 그의 재능을 북돋아 주었던 독서가 있었다.

될 성 부른 나무는 떡잎부터 안다고? 이 속담은 수정되어야 한다. 꼴찌에게 박수를! 한심해 보이는 아이에게 격려와 책을 던져 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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