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윤환의 책과 사람]⑭소설 주인공 이름을 회사 이름으로-롯데그룹 창업주 신격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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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환의 책과 사람]⑭소설 주인공 이름을 회사 이름으로-롯데그룹 창업주 신격호
  • 김윤환
  • 승인 2019.12.07 2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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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광도서 대표 김윤환
영광도서 대표 김윤환

발상이 참으로 경이롭다. 감명 깊게 읽은 소설의 주인공 이름을 회사 이름으로 지었다. 한국 경제의 든든한 기둥 중 하나인 롯데그룹, 회사 이름의 유래를 알면 놀랍고 입이 벙긋해진다. 

천하를 얻은 영웅의 이름도 아닌, 지략과 술수에 뛰어난 인물도 아닌, 우울한 청년이 우울하게 짝사랑한 여인의 이름을 회사 이름에 갖다 붙였다. 섬세한 감성과 내공이 아니면 선택할 수 없는 용기다.

신격호(롯데그룹 총괄회장)는 학창시절 작가를 꿈꿨다. 소설을 많이 읽었다. 그 중 괴테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에 큰 감명을 받았다. 베르테르가 짝사랑한 여주인공 샤로테 부프(Charlotte Buff)의 애칭 ‘로테’의 일본식 발음을 따라 ‘롯데(Lotte)’를 회사 이름으로 지었다. 누구나 사랑할 수밖에 없고 그럴 자격이 충분한 제품을 만들고 싶다는 바람이 담긴 회사명이다. 그는 ‘롯데라는 이름이 떠올랐을 때 충격과 희열을 느꼈다’고 회고할 정도로 사명에 애착을 보였다. ‘롯데를 선택한 것은 내 일생 최대의 수확이자 걸작의 아이디어라는 생각에 변함없다’고 했다.

신격호 롯데 총괄회장(사진: 더팩트 제공).
신격호 롯데 총괄회장(사진: 더팩트 제공).

신격호 총괄회장은, 1922년 10월 4일 경상남도 울산군 상남면 둔기리에서 10남매의 맏이로 태어났다. 만 7세가 되기 전 삼동공립보통학교에 입학했다. 동급생보다 어린 탓에 체격이 작은 학생이었다.

신 총괄회장의 학창시절 기록을 살펴보면 공부를 잘하는 편은 아니었다. 기록을 보면 ‘수업 시간에 옆을 본다. 태만하지는 않지만 싫증을 잘 내는 성질이 아닌가 생각된다’고 평가했다. 학업성적도 10점 만점을 기준으로 5~7점에 불과했다. 이는 57명 가운데 40등 정도의 하위권 성적이다. 또 등하교 거리가 멀었던 탓인지 매년 30일쯤 결석했던 기록도 있다.

친척의 경제적 지원으로 울산농업보습학교(현 언양중학교)에도 진학했지만 이곳에서도 성적은 부진했다. 다만, ‘덩치는 크지 않지만 행동거지는 무겁고 또래답지 않게 말수가 적다. 바둑을 취미로 둔 소년’이라는 담임교사의 평이 남아 있다. 졸업 후 1년간의 연수과정까지 마치고 조혼 풍습에 따라 열여덟의 나이에 노순화 씨와 결혼을 했다.

가정도 꾸리고 평범한 사회생활을 시작했지만 고향에 살아보니 가난의 끝이 보이지 않았다. 일본으로 가서 공부해 성공해야겠다고 결심했다. 한번 마음먹은 일은 해내고 마는 성격답게 친척들에게 당시 면서기 두 달 치 월급이던 83엔을 빌려 가족 몰래 1941년 현해탄을 건넜다.

일본에 가서 우유배달, 신문배달, 공장 파트타임, 잡일까지 닥치는 대로 일했다. 고학생 신분으로 학비를 벌기 위해 동분서주했다.

그의 꿈은 작가였다. 틈만 나면 헌책방으로 달려가 독서를 했다. 작가가 되기 어려우면 신문기자가 되고 싶다는 꿈도 꿨다. 하지만 문학으로는 밥을 먹고 살 수 없다는 현실을 깨달았다. 그래서 와세다고등공업학교(현 와세다대) 야간부 화학과에 입학했다.

신격호의 동경 유학시절 하숙집 주인은 전쟁미망인이었다. 그녀는 1944년 요절하면서 당시 14세이던 딸 하츠코를 유학생 신격호에게 부탁했다. 이때 막 와세다를 졸업한 신격호는 사업을 시작했다.

그의 전공을 살려 비누와 크림을 생산하며 성공을 거두기 시작했다. 결정적인 도약은 일본에 진주한 미군들이 씹고 있던 껌이었다. 처음 일본에서 시작한 사업이 껌이었다. 이때는 배고픔이 먼저였다. 전쟁 직후라 주전부리에 불과했던 ‘껌 사업’에 대해 회의적인 시선들이 많았다. 하지만 주변의 예상과는 달리 일본 내에서 ‘풍선껌’이 선풍적인 인기를 끌며 성공했다. 

사업은 단순한 공식에 대입해서 진행하는 것이 아니다. 창의력, 상상력, 도전정신이 필요하다. 문학의 힘이 그것이다. 영원한 문학청년 신격호의 사업 아이디어는 문학에서 나온 것으로 보인다.

1966년부터 사업을 대한민국으로 확장했다. 홀수 달에는 한국에서, 짝수 달에는 일본에 머물며 그룹을 경영해 ‘대한해협의 경영자’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었다.

사업도 예술이다. 문학적 창의력, 상상력이 필요하다. 번뜩이는 아이디어는 거기서 나온다. 신 총괄회장은 독특하고 과감한 광고로도 주목을 받았다. 그 중 ‘미스롯데 선발대회’는 획기적인 아이디어로 손꼽힌다. 컬러텔레비전 전성시대를 미리 내다봤다. 브라운관을 통해 아름다운 미인들을 뽑는 대회를 열었다. 미인이 주는 아름다운 이미지를 보면 롯데와 상품이 연상되어 좋은 홍보효과를 가져올 것이라며 미인 마케팅을 도입했다.

예상은 적중했다. 껌을 만드는 제과회사가 미인대회를 연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화제가 됐다. 여기에 화려한 외모를 뽐내는 수상자들이 최고급 외제차를 타고 거리행진을 하는 모습은 사람들의 시선을 끌기에 충분했다. 롯데는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홍보효과를 누렸다.

그는 가난을 벗으려고 문학도의 꿈을 접고 홀로 현해탄을 건너가 신격호라는 이름과 시게미쓰 다케오라는 두 개의 이름으로 살았다.

지금은 여러 가지 문제로 불우한 말년을 보내고 있다. 그의 이름과 명성이 바래고 희미해지지만 젊은 베르테르의 애간장을 녹인 샤로테의 혼은 지금도 생생하게 살아 있다. 괴테의 고국 독일도 아닌 한국에서. 롯데그룹의 총자산은 108조여 원, 계열사는 94곳에 이른다.

소설 주인공 이름을 회사명으로 짓는 기업이 또 나올 수 있을까?

신격호 어록

♣ 큰일을 하려면 작은 일도 알아야 한다. 껌은 23개 계열사에서 생산되는 제품 1만 5000종 중 하나일 뿐이다. 나는 1만 5000 가지 제품의 특성과 생산자, 소비자 가격을 알고 있다.

♣ 롯데와 거래하면 적어도 손해는 보지 않아야 한다. 잘 모르는 사업을 확장 위주로 경영하면 결국 국민에게 피해를 주게 된다. 고객이건 협력업체건 롯데와 거래하면 적어도 손해는 보지 않아야 한다.

♣ 기업인이 자기선전을 많이 하면 곤란할 때가 있다. 회사가 잘 될 때는 괜찮은데 잘못되면 인간적으로 어렵게 되고 회사도 부담이 된다.

♣ 한국 기업인은 과감하긴 한데 무모하게 보일 때도 있다. 회사의 성공이나 실패를 모두 자신의 책임으로 돌리면 신중해지고 보수적이 된다. 그러다보니 빚을 많이 쓰지 않게 됐다.

♣ 나는 운이란 걸 믿지 않는다. 벽돌을 쌓아올리듯 신용과 의리로 하나하나 이뤄나갈 뿐이다.

♣ 언제까지 외국 관광객에게 고궁만 보여 줄 순 없다. 세계적인 명성을 가진 건축물이 있어야 관광객들의 관심을 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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