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창희 칼럼] 툰베리의 '지구 구하기'와 한국의 '좁쌀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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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창희 칼럼] 툰베리의 '지구 구하기'와 한국의 '좁쌀정치'
  • 논설주간 박창희
  • 승인 2021.07.18 2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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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웨덴 출신 18세 환경운동가의 다큐 영화 묵직한 감동
글로벌 이슈에 둔감한 한국의 '우물안 정치'와 대비
"세계 지도자들, 우리의 미래 훔쳐" 툰베리 일갈 '쟁쟁'

덥다. 장마가 오나 했더니 어느샌가 갔다고 한다. 지난해 최장 장마가 올핸 최단 장마로 변한 듯하다. 기상청은 곧 역대급 무더위가 올 거라고 예보한다. 백신이 나왔건만 코로나 바이러스는 요술을 부리듯 변이를 만들어낸다. 코로나 염천(炎天)을 앞두고 이래저래 걱정이다.

확산되는 열돔현상

지구가 확실히 뜨거워졌다. 남극 빙하가 줄줄 녹고 있다. 세계기상기구가 지난해 2월 측정한 남극 온도는 섭씨 18.3도로 역대 최고치다. 5년 만에 무려 0.8도 올랐다. 미국 서부는 6월 한달간 낮 최고기온이 40~50도에 달했다. 전례없는 폭염이다.

지구촌 곳곳에 '열돔(heat dome)’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열돔은 지표면의 뜨거운 공기가 돔이나 뚜껑의 형태로 지면을 감싸는 현상을 말한다. 찜통더위의 원인이다. 그럼에도 정부도, 여야 정치권도, 차기 대권을 노리는 후보자들도 '그런가보다' 한다. 기후 위기가 우리 일상을 바꾸고 있는데도 위기로 받아들이지 않는 듯하다. 

열불 나는 세상, 에어컨을 켠다. 에어컨을 켜면 실내는 시원하지만, 바깥은 더 더위진다. 에어컨 실외기들이 모여있는 건물 외벽은 열돔의 발원지다. 에어컨은 직접적으로 탄소배출을 하지 않지만, 발전기를 돌려 전기를 생산해야 하므로 결국 탄소배출에 일조한다. 더워서 켜는 에어컨이 지구를 더 덥게 만드는 역설. 지구온난화의 악순환 고리를 어떻게 끊어야 할까.

툰베리가 던진 메시지

7월초 아놀드 슈워제네거 전 미국 캘리포니아 주지사가 주최한 기후 행사가 오스트리아 빈에서 열렸다. 이곳에 스웨덴의 환경운동가 그레타 툰베리가 화상으로 나타났다. 앳된 목소리가 부르짖는다.

“세계의 정치·경제 지도자들이 기후 위기를 사업 기회로만 활용하고 있어요. 기후 행동을 하는 게 아니라, 역할극을 하는 것처럼 행동하고 있습니다. 정치 놀이, 말장난, 우리의 미래를 가지고 노는 것입니다.”

다큐멘터리 영화 '그레타 툰베리'(사진: 영화 홍보포스터 캡처).
다큐멘터리 영화 '그레타 툰베리'(사진: 영화
홍보포스터 캡처).

올해 18세의 환경운동가가 세계 지도자들의 겉 다르고 속 다른 행동을 신랄하게 꾸짖고 있다. 툰베리의 메시지는 강한 울림과 공감을 얻고 있다.

툰베리를 다시 알게 된 것은 다큐멘터리 영화 ‘그레타 툰베리’(나탄 그로스만 연출, 2020)를 보고나서다. 영화는 기후변화에 대한 대응이 전혀 이뤄지지 않고 있는 현실에 의문을 품고 1인 결석 시위를 시작한 툰베리가 태양열 요트로 대서양을 건너 미국 뉴욕에서 열린 유엔 기후행동 정상회의에 참석하기까지의 1년간 여정을 따라간다. 자폐성 장애의 일종인 아스퍼거 증후군이 있는 툰베리는 지구의 미래를 지키기 위해 학교가 아닌 길거리로 나섰다. '기후를 위한 학교 파업'이라는 팻말을 든 툰베리에게 어른들은 “그래도 학교는 가야지”라며 눈총을 보내지만, 그의 옆에는 또래 청소년들이 한두 명씩 모여든다. 이들은 한목소리로 외친다. “뭘 원하는가? 기후 정의”, “언제 원하는가? 지금 당장!”

금요일 시위가 전 세계로 퍼져나가는 동안 툰베리는 유엔 기후변화협약 당사국 총회, 유럽 의회, 그린피스 시위 등에 참석해 연설하고,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과 프란치스코 교황 등을 만나 기후 위기에 대한 의견을 나눈다. 툰베리의 행동과 발언이 주요 언론에 널리 소개되지만, 세상은 좀처럼 바뀌지 않는다.

툰베리를 향한 비난도 뒤따른다. ‘정신 나간 아스퍼거 환자’, ‘감정 과잉에 불안정하고 우울한 소녀’라며 툰베리를 헐뜯는 글들이 인터넷에 올라오고,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등은 공개적으로 툰베리를 깎아내린다.

영화는 툰베리가 짊어진 책임감의 무게를 들여다보며 이를 나눠 들어야 할 사람이 누구인지 깨닫게 한다. 어린 청소년에게 '환경 십자가'를 지게 해놓고 어른들은 뭐 하느냐는 것. 영화는 가정에서의 환경교육과 작은 실천, 학교 교육의 올바른 방향성, 아이들의 미래에 대한 화두도 던진다. 어느 것 하나 소홀히 할 수 없는 과제들이다.

영화가 끝나자 객석에 감동의 물결이 일렁거렸다. 지구를 구하려는 10대 소녀의 외침과 절규가 눈시울을 뜨겁게 하고 가슴을 먹먹하게 했다.

툰베리의 ‘동화같은’ 외침은 잔잔한 날갯짓이 되어 세상을 변화시키는 촉매가 되고 있다. 얼마전 유럽연합(EU)은 2026년부터 철강, 알루미늄, 시멘트, 비료, 전기 5개 품목에 대해 탄소국경세(탄소세)를 물리기로 했다. 미국도 동참할 태세다. 앞으로 수출하려면 탄소를 줄여야 하고, 한국도 영향을 받게 된다.

대선 주자들, 글로벌 이슈에 눈떠야

한국의 상황 대처는 한마디로 헐렁하다. 뭔가 세계에 자랑하고 싶은 때는 G7을 내세우면서도, 기후변화나 난민수용, 국제원조 등 글로벌 이슈에 대해선 G7에서 떨어져 있고 싶어한다. 정부에서 ‘2050 탄소중립’을 선언하긴 했지만, 국민적 공감대와 실천의지가 약해 보인다. 툰베리가 한국에 온다면 “말만 앞세울 게 아니라 즉각 실천하라”고 일갈할 것 같다.

국가적으로 G7 혹은 G10을 논의하면서도, 한국 정치판은 여전히 우물안에서 좁쌀정치를 하는 것 같다. 대권을 잡겠다는 여야 대선 후보자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틀에 갇힌, 판에 박힌 국내용 좁쌀 담론들이 대부분이다. 시야를 넓혀 글로벌 이슈를 주도하고, 화해와 대통합, 새로운 비전을 제시하는 통큰 지도자는 보이지 않는다.

먹을거리 갖고 장난치면 안된다고 공분하면서도 기계식 생산과정과 환경파괴, 노동착취 문제엔 둔감하다. 청년실업 문제나 학령인구 감소에 따른 교육 위기, 수도권 집중, 균형발전에 대한 논의들도 표피적이고 일회적이다. 기후위기에 관한 인식과 대응도 떨어진다.   

한국의 좁쌀정치는 오늘도 포퓰리즘, 아전인수, 내로남불, 뒷다리잡기, 냉전적 사고 및 이념 대립 등에 매달려 세상 변한 줄 모른다. 이를 이슈로 확대 재생산하며 상업적 이익에 골몰하는 언론도 한통속이란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세계 지도자, 당신들이 우리의 미래를 훔치고 있어요.” 18세 환경운동가 툰베리의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귓전에서 떠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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