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동토(凍土) 미국에서 온 편지... " '전례 없는' 집콕 시대에 '킨들'로 책 읽으며 올 한 해 잘 견뎌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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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동토(凍土) 미국에서 온 편지... " '전례 없는' 집콕 시대에 '킨들'로 책 읽으며 올 한 해 잘 견뎌왔다"
  • 재미교포 정지연
  • 승인 2020.12.25 13:4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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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학교 문 닫고 대부분 직장은 아직도 재택근무 중...텅 빈 쇼핑몰 주차장 보니 거대 미국 경제도 휘청거리는 듯
집안 꽉 찰 정도로 책 쌓아 놓고 읽고 또 읽고...'킨들' 구입해 전자책 읽으니 한결 편리
특히 회고록 읽으며 앞으로 어떻게 살 것인지 '인생 탐구' 중

2020년은 코로나 사태가 온 세계를 휩쓸면서 긴장과 불안감으로 시작된 것 같다. 한국에서는 2월 대학 졸업식이 취소되고 3월엔 모든 학교의 입학식이 취소됐다는 뉴스가 났다. 곧이어 미국에도 3월에 코로나 바이러스가 더 퍼지는 것을 줄이기 위해 학교가 문을 닫았고, 정부기관이나 사기업체 직원들은 집에서 일하게 됐으며,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재택근무하고 있다고 한다. 음식점, 미장원, 이발소, 공공 도서관 등도 임시로 문을 닫았다. 이런 상태가 내가 살고 있는 버지니아 주에서 두 달 이상 계속 됐다. 우리가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생필품과 식료품을 파는 상점(grocery store)들은 다행히 영업을 계속했다. 장을 보러 가던 어느날 오후에 큰 쇼핑몰 주차장이 텅 비어 있는 걸 보면서, 이 큰 나라 경제가 걱정되기도 했다.

나는 16여 년이 넘도록 나의 하루 시간표에 따라서 생활해 왔다. 오전엔 꼭 헬스클럽(gym)에 가서 음악에 맞추어 여러 사람들과 함께 운동을 했는데, 갑자기 집안에만 꼭 묶인 신세가 됐다. 오전엔 주로 책을 읽고, 오후엔 집안일을 하고, 혼자서 유튜브 영상을 보면서 운동을 하거나(이게 의외로 쉬운 일이 아니었다), 장 보러 외출하는 일 등으로 하루하루를 보낸 세월이 이젠 9개월이 됐다.

그동안 레슨을 받으면서 열심히 연습해오던 피아노는 뒤로 제쳐두고, 읽던 책을 빨리 끝내고 싶은 마음에서 책 읽는 일에 더 많은 시간을 보내기 시작했고 2, 3권을 항상 미리 구입해서 끊이지 않고 책을 읽고 또 읽었다. 평소에 읽은 책을 쌓아놓고 혼자서 흐뭇해하며 지냈지만, 코로나로 집에 머무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읽은 책도 이젠 너무 많아져서, 정말 종이책만 고집하던 나였지만, 나중엔 '킨들(Kindle, e-book 리더기)'로 다운받아서 읽기 시작했다. 킨들은 글자를 크게 설정할 수 있어서 돋보기를 쓰지 않고도 읽을 수 있으므로 종이책으로 집안 공간을 더 차지하지 않아서 편리했다.

코로나로 주로 집에 머물면서 앞으로 어떤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 탐구하고 싶어서 특히 다른 사람의 회고록을 열심히 읽었다(사진: 정지연 씨 제공).
코로나로 주로 집에 머물면서 앞으로 어떤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 탐구하고 싶어서 특히 다른 사람의 회고록을 열심히 읽었다(사진: 정지연 씨 제공).

몇 년 전부터는 앞으로 나의 삶을 어떻게 살아야 보람 있고, 또 어떻게 준비하며 살아야 할 것인가에 대한 관심이 많아져서 주로 자서전적인 회고록(memoir)을 주로 읽었다. 그 외에도 올해는 여러 가지 책을 섞어가며 예전에 좋아했던, 살인사건을 풀어나가는 미스터리 소설이라든가, 역사적 인물에 대한 책들도 여러 권 읽었다.

스페인 발전을 위해 많은 업적을 남긴 15세기 스페인 이사벨라 여왕에 대한 책 <Isabella, the Warrior Queen>, 서두부터 독자의 의문을 증폭시키는 미스터리 소설 <The Magpie Murders(한국판 제목 ‘맥파이 살인사건’)>, 뉴욕의 하시디즘 공동체(Hasidic Jewish Community)에서 살아가던 소녀가 자유를 찾아 베를린으로 간다는 넷플릭스의 짧은 시리즈(한국판 제목 <그리고 베를린에서>)를 보고 그 뒷얘기가 궁금해서 읽은 <Unorthodox>, 옛날 우리나라 농촌을 배경으로 한 듯한 내용으로 스웨덴의 작가가 3대 여인의 인생역정을 그린 소설 <Hanna's Daughters(한국판 제목 ‘한나의 딸들’>" 등은 가장 재미 있게 읽은 책들이었다. <The Unwinding of the Miracle>이라는 회고록은 글쓴이가 암으로 투병하면서 쓴 책인데, 얼마 전 암으로 세상을 떠난 친구가 생각나 너무 가슴이 아파서 그냥 읽기를 중단하기도 했다. 책을 읽을 땐 완전히 그 속에 심취되어 재미있게 읽다가도, 이젠 나이 탓인지 다 읽고 나면 그 책을 읽을 때의 감정만 기억에 남아있고, 자세한 내용은 그냥 지나가는 세월과 함께 흘려보내고 있다.

올해는 미국에서 ‘전례가 없다’는 뜻의 단어인 ‘unprecedented’란 말을 유난히 많이 들었다. 11월에 있었던 대통령 선거도 ‘unprecedented’했고, 코로나 백신을 이렇게 빨리 개발해서 나온 것도 ’unprecedented’한 일이었다고 한다.

서울에 있는 언니가 보내준 어느 작가가 쓴 글에서 “올해는 우리가 어떻게 ‘살아왔다’기보다는 어떻게 ‘잘 견뎌왔다’”는 표현이 너무 맘에 들었다. 그렇다. 나도 책을 열심히 읽으며 올 한 해를 잘 견뎌 왔던 것 같다. 우리 모두 힘을 냈으면 좋겠다. 그러면 이런 코로나 바이러스가 만든 ‘unprecedented’한 어려운 일들도 다 같이 이겨낼 수 있을 것 같다. 심호흡을 하면서, 올 한 해를 또 떠나보내야 할 때가 다가오고 있다.

*편집자주: 위 글은 독자투고입니다. 글의 내용 일부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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