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문석 칼럼] 언론중재법 개정안은 한국 민주주의를 죽이는 독초될 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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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문석 칼럼] 언론중재법 개정안은 한국 민주주의를 죽이는 독초될 수도
  • 편집국장 송문석
  • 승인 2021.09.06 1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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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적인물 범위를 확대시켜 언론의 자유를 넓히고 시민적 알권리를 높이는 게 대세
개정안은 고의 또는 중대과실로 인한 허위 조작보도 여부 자의적 판단 소지가 커
언론 표현의 자유에 대한 제약은 기자들을 자기검열하게 만들어 보도 위축시킬 수도
사회적 약자 등 소수의견 보다는 기득권자들의 발표문만 앵무새처럼 옮겨적게 될 우려
결과적으로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는 후퇴하고 사회적 다양성과 공론장은 무력화 돼

더불어민주당이 추진하는 언론중재법 개정안이 국회에서 일단 숨고르기에 들어갔지만 국내 언론단체는 물론 국제 언론관련 단체들의 거센 비판은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허위 또는 조작 보도에 대한 최대 5배 징벌적 배상’ ‘정정 보도 크기 지정’ ‘기사열람 차단 청구권’ 등 언론자유 침해 소지가 큰 조항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이들 단체들은 언론의 자유를 심각하게 해치고 끝내는 한국의 민주주의까지도 훼손하는 악법이 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언론중재법 개정안 폐기를 요구하고 나선 한국신문협회,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한국기자협회, 한국여기자협회, 한국인터넷신문협회, 관훈클럽, 대한언론인회 등 언론 7단체는 명실공히 국내 언론 관련 단체 거의 전부라 해도 무방하다. 한국신문협회는 국내 대표적인 전국 일간신문 50개사와 2개 통신사가 회원사로 있고,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는 전국 70여개 신문사, 방송사, 통신사, 언론관련기관의 최고 보도, 제작, 논평책임자들이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단체다. 또 한국기자협회와 한국여기자협회는 전국의 현직 기자들 대부분이 회원이고, 관훈클럽은 중견 언론인과 퇴직 언론인, 언론학자들이 회원으로 있는 대표적인 언론단체다.

세계의 신문
신문 가판대에 진열된 신문들. 더불어민주당이 추진 중인 언론중재법 개정안에 대해 국내외 언론관련 기관들이 성명과 서한을 통해 반대의사를 밝히고 있다(사진: pixabay 무료이미지).

언론중재법 개정안에 규탄성명을 보낸 국제 언론관련 단체들도 전 세계 언론계를 대표하는 기관들이다. 국제기자연맹(IFJ)은 약 140개국 60만여 명의 기자들이 소속돼 있는 단체이며, 국제언론인협회(IPI)는 ‘언론인들의 유엔’이라는 별칭으로 불리며 89개국의 언론사 간부급 언론인이 소속돼 있다. 세계신문협회(WAN-IFRA)는 뉴욕타임스(NYT) 등을 포함한 1만7000여 개의 신문·통신사가 회원이다. 서울외신기자클럽(SFCC)은 1956년 9명의 외신기자들에 의해 창설돼 아시아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가진 외신기자클럽 중 하나다. 현재 전 세계 100여개 언론사에 소속된 외신기자를 포함해 500여 명의 회원이 활동 중이다. 이들이 매일 서울에서 발신하는 신문 기사와 방송 뉴스는 대한민국에 대한 이미지와 평가에 막대한 영향을 미친다.

국내 언론관련 단체들의 언론중재법 개정안에 대한 의견은 팔이 안으로 굽는다는 오해를 피하기 위해서라도 일단 접어두자. 외국 언론 관련 단체들의 성명과 서한 등만 살펴봐도 이 법을 바라보는 세계의 시선이 어떤지 충분히 드러난다. 세계 10위의 경제대국에다 민주주의 국가라는 나라가 마치 중남미나 아프리카의 군부독재 국가에서 언론을 통제하기 위해 악법을 만들고 있다는 듯이 바라보는 시선이 느껴져 낯이 뜨거울 지경이다. 이 법이 강행될 경우 한국의 민주주의가 훼손될 것이라는 세계 언론기관들의 걱정 섞인 지적까지 듣고 있으면 할 말을 잃는다.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법안의 폐지를 요구한다.”(IFJ)

“비판적 보도를 위협하는 이 법안을 철회해야 한다.”(IPI)

“비판 언론을 침묵시키고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전통을 훼손할 우려가 있다.”(WAN-IFRA)

“언론의 자유를 심각하게 위축시킬 수 있는 내용을 담은 언론중재법 개정안을 국회에서 강행 처리하려는 움직임에 깊은 우려를 표한다.”(SFCC)

“한국 국회의 과반수를 차지한 더불어민주당이 언론의 허위·조작 보도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는 언론중재법 개정안을 표결에 부칠 예정이지만, 허위·조작 보도에 대한 정의가 불분명하다.”(국경없는기자회, RSF)

송영길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국제 언론단체들의 비판에 대해 “그건 뭣도 모르니까, 자기들이 우리 사정을 어떻게 아느냐”며 폄하했지만 이들 단체가 그렇게 뭣도 모를 만큼 허술하고 만만하지는 않다. 당장 세드릭 알비아니 국경없는기자회 동아시아국장은 채널A와의 인터뷰에서 송 대표의 발언에 대해 “완전히 부적절(totally irrelevant)하다”고 반박했다. 그는 “우리는 전 세계 모든 곳에 기자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있고,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물론 다른 나라들처럼 한국의 언론 자유 상황에 대해서 알고 있다”면서 “우리는 매년 세계 모든 나라의 언론 자유 상황을 세계 언론 자유 지수를 통해 평가하고 있기도 하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국경없는기자회는 매년 전세계 국가의 언론자유도평가를 발표하고 있으며, 한국의 언론자유지수를 42위라고 발표했다.

댄 큐비스케 미국기자협회(SPJ·Society of Professional Journalists) 국제 커뮤니티 공동의장도 언론중재법 개정안을 추진하는 한국에 대해 “극도의 실망감을 느꼈다”고 채널A에 밝혔다. 그는 “내가 알기로는 민주주의 국가에서 이런 일을 하는 건 처음”이라면서 “이런 종류의 법은 기자들에게 자기 검열을 하게 만든다”고 우려했다. 미국기자협회(SPJ)는 미국에서 가장 오래된 언론인 단체로 1909년에 설립됐다.

검열
더불어민주당이 추진중인 언론중재법 개정안은 기자들로 하여금 자기검열을 하게 만들어 취재활동을 위축시키고 결과적으로 시민들의 알권리를 막을 것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사진: pixabay 무료이미지).

물론 가짜뉴스로 인한 폐해와 피해는 심각하다. 허위 조작 보도로 인한 악영향도 막대하다. 그러나 가짜뉴스의 생산지는 제대로 된 언론기관 보다는 주로 1인 미디어나 유튜브다. 여기에서 매일 가짜뉴스를 무지막지하게 쏟아내고 있다는 건 모두가 안다. 믿거나 말거나 확인되지 않은 말을 내뱉고 선정적인 표현으로 구독자수 올리기에만 혈안이다. 기자 교육을 제대로 받은 적도 없으니 언론 윤리나 저널리즘 원칙을 배운적도 없고 알 리도 만무하다. 게다가 기사가 제대로 취재된 건지 어떤지 검증하는 데스킹 과정이 없으니 아무런 스크린이 되지 않은 채 혼자서 북치고 장구친 뒤 그대로 수용자들에게 전달된다. 그런데도 이들 매체는 법에서 제외됐다.

상당수 기사는 상황이 100% 완결된 상태에서 작성되지 않는다. 예를 들어 대도시 인근 야산에서 산불이 났다고 하자. 기자들은 거센 바람을 타고 번지는 산불을 보고 기사를 급하게 보낼 것이다. ‘산불이 바람을 타고 인근 주택가로 번질 가능성이 높다’ ‘인근 주택가에서 대피가 제 때 이뤄지지 않을 경우 큰 인명피해도 우려된다’ 등등. 초저녁에 발생한 산불은 밤새 야산을 태우고 다음날 정오께에야 진화됐다. 그런데 다행히 바람 방향이 바뀌어 주택가로 불이 번지지는 않았다. 결과적인 오보다. 누군가 뉴스를 듣고 불이 집으로 덮칠까 봐 세간살이를 급하게 들어내는 과정에서 장롱과 가전제품 등 귀중품이 파손됐다고 하자. 이 사람은 불이 덮칠 수 있다는 언론의 오보로 피해를 입었다며 언론사에 책임을 물어도 될까.

사례가 너무 극단적이라고 반론을 제기할 수도 있다. 그러나 거의 대부분의 기사는 사건이나 사고 초기부터 취재가 이뤄지고 보도된다. 크고 중대한 사건일수록 더욱 그렇다. 상황은 계속 변하고 그럴수록 기사는 ‘그때는 맞지만 지금은 틀린’ 기사가 될 개연성도 높아진다. 오보를 피하는 길은 연극무대의 커튼이 내려간 뒤 보도하면 될 것이다. 화재가 났다면 불이 어디로 번지든간에 불구경하듯 지켜만보다가 소방관들이 완전히 불을 끈 뒤 소방당국의 종합발표를 듣고 써야 할 것이다. 이른바 받아쓰기, 관급기사에 충실하는 게 오보를 피하는 안전빵일 것이다. 시위 폭동 내란 전쟁 등의 기사도 마찬가지다. 괜히 시민들의 알권리 운운하며 중계하듯이 보도해봤자 소송당하기 딱 좋다. 그런데 긴급하게 상황을 전파하지 않아 시민들에게 피해가 갔다면 그때는 왜 언론이 곧바로 보도해주지 않았느냐고 탓할 것인가. 언론이 빨리 보도를 해주었더라면 불을 피할 수도 있었을 것이고, 흉기를 들고 날뛰는 살인마를 피할 수도 있었을 것이라며 늑장보도를 한 언론을 욕할 것인가.

제대로 된 언론사의 기자라면, 그리고 데스크라면 오보는 기자의 수치이고 언론사의 수치로 여긴다. 낙종과 마찬가지로 오보는 기자가 결코 하고 싶지 않은 경험이다. 오보는 기자에겐 두고두고 불명예스러운 딱지가 돼 남는다. 그건 해당 기자도 알고, 소속 언론사도 알고 타 언론사 기자들도 다 아는 사실이고, 틈만 나면 기자들 사이에서 술안주로 씹히게 된다. 그래서 단 한 줄의 기사라도 정확하게 쓰기 위해 확인하고 또 확인한다. 물론 그 과정에서 취재원의 거짓말에 휘둘리거나 기자의 편견과 데스크의 태만으로 오보가 발생하고 관련된 보도 당사자가 피해를 입기도 한다. 그럴 경우 현재도 명예훼손소송 손해배상소송은 물론 정정보도 청구 등 다양한 법적 제재가 이뤄지고 있다. 지금도 기자들은 기사를 쓸 때마다 소송의 두려움에 소극적이 되고, 댓글부대의 무지막지한 인신공격에 주눅들어 적극적인 보도를 회피하고 있다. 언제부터인가 권력을 향한 공격적이고 집요한 기사는 신문지면에서 사라져 버렸다. 신문은 종이 호랑이로 전락한지 오래다. 살아있는 권력이 언론의 매서운 눈초리에서 벗어나 오늘날처럼 안전한 성채 안에서 기득권을 만끽하던 때가 있었던가.

미국이 도널드 트럼프와 같은 희대의 대통령 시대를 거쳤어도 민주주의와 인권을 지킬 수 있는 것은 권리장전(The Bill of Rights)이라 불리는 수정헌법, 그중에서도 표현, 집회, 결사, 종교의 자유를 명시한 수정헌법 제1조와 이를 적극적으로 해석한 연방대법원 대법관들의 덕택이다.

제1조(1791) 연방의회는 국교를 정하거나 신앙의 자유를 금지하는 법률을 제정할 수 없으며 언론 출판의 자유를 제한하거나 국민이 평화적으로 집회할 권리와 불만의 구제를 정부에 청원할 권리를 제한하는 법률을 제정할 수 없다’

보수주의자들에 의해 잡초나 매춘에 비유될 정도로 황색 저널리즘을 추구한 ‘새터데이 프레스’에 대해 연방대법원의 휴즈 대법원장은 “일부 무책임하고 부도덕한 언론인들에 의해 언론의 자유가 남용된다고 해서 관료들의 부정부패를 감시하는 언론이 사전 억제를 받아서는 안된다는 원칙의 중요성이 감소되는 것은 아니다”고 밝히고, 연방대법원은 ‘새터데이 프레스’를 정간시킨 미네소타주의 공중도덕보호법을 위헌이라고 판결했다. 휴즈 대법원장은 수정헌법의 초안자인 제임스 매디슨의 말도 인용했다. “언론 자유의 이치는 일부 썩은 가지들을 마구 잘라 없애는 것보다는 나무 전체가 잘 자랄 수 있도록 보호하여 좋은 열매를 맺도록 하는 것이 현명하다.” (Near v. Minnesota, 1931. 장호순 저 ‘미국헌법과 인권의 역사’ 참고)

영화 ‘더 포스트(2017)’에서 실감나게 그려졌던 워싱턴포스트의 이른바 ‘펜타곤 페이퍼’ 보도 역시 마찬가지다. 뉴욕타임스가 1971년 6월 13일 1면에 ‘베트남전 기록: 국방성, 30년간 점증된 미국의 개입을 조사’ 제목으로 실은 톱기사는 미국이 베트남전쟁 정책을 어떻게 결정하고 수행했는지를 총 6면에 걸쳐 소개했다. 미국 국방성이 역사학자 정치학자 외교전문가 등에 의뢰해 극비리에 작성한 1급 기밀문서가 유출돼 보도된 것이다. 미국 정부는 뉴욕타임스 기사가 간첩법을 위반하고 국가 방위 이익에 중대한 해를 입히고 있다며 보도 중지를 요청했으나 신문은 이를 거절하고 보도를 이어갔다. 연방정부는 보도중지 가처분신청을 제기했고, 뉴욕 연방지방법원은 이를 받아들였다. 미국 역사상 최초로 신문기사가 정부에 의해 보도 금지당하는 사례다.

뉴욕타임스에 특종을 놓쳐 언론업계 표현대로라면 ‘크게 한방 물을 먹은’ 워싱턴포스트 편집국은 초상집 분위기였다. 영화 ‘더 포스트’에 나오는 것처럼 편집국장 벤자민 브레들리는 ‘펜타곤 페이퍼’를 구해오라며 기자들을 닦달하고 천신만고 끝에 자료를 입수한다. 이를 눈치챈 정부는 법적 대응을 운운하며 보도하지 말 것을 요구한다. 그러나 브레들리 국장을 위시한 기자들의 보도 요구와 사주인 캐서린 그레이엄의 결단으로 워싱턴포스트는 보도를 강행한다. 결국 뉴욕타임스와 마찬가지로 워싱턴포스트 역시 법정에 서게 된다.

‘국가 안보가 우선인가, 국민의 알권리가 먼저인가’. 연방대법원은 6대 3으로 두 신문사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블랙 대법관은 언론의 역할은 국민을 위한 것이지 정치가를 위한 것이 아니라며 오직 자유롭고 규제받지 않은 언론만이 효과적으로 권력을 감시할 수 있다고 밝혔다. 그는 국가안보라는 애매모호한 말로 수정헌법 1조를 침해해서는 안된다면서 민주주의를 희생시키면서 군사와 외교비밀을 지키는 것은 미국의 안보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역설했다. ‘위대한 반대자’ 더글러스 대법관도 민주정부에서 비밀은 근본적으로 반민주적인 개념으로 관료주의적 실수를 끊임없이 만들어낼 뿐이라고 밝혔다. (United States v. New York Times, 1971. 앞의 장호순 책 참고)

언론중재법 개정안이 다수당인 여당의 밀어붙이기로 국회를 통과한다면 그것은 문재인 정부의 수치로 역사에 영원히 기록될 것이다. 국내외 언론과 유엔 등 국제사회로부터도 야만적인 행태라는 비난이 쏟아질 게 뻔하다. 이미 유엔인권최고대표사무소(OHCHR)의 이레네 칸 유엔 의사표현의 자유 특별보고관은 정보와 언론 표현의 자유라는 권리가 심각하게 제한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칸 보고관은 한국 정부가 ‘시민적 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ICCPR)’에 가입돼 있는 만큼 의사 표현의 자유를 존중 보호할 의무가 있다면서 “내가 입수한 정보에 따르면 당국의 의도는 ‘언론에 대한 대중의 신뢰 구축’에 있지만 그러나 수정없이 채택되면 새 법은 정반대의 결과를 초래할 수 있음을 심각하게 우려한다”고 경고했다.

민주당은 원점에서 언론의 자유 신장과 피해자의 구제책을 검토해야 마땅하다. 국내외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여당 내 강성분자들의 목소리에 짓눌려 강행한다면 두고두고 후회할 자책골이 될 가능성이 높다.

문재인 대통령이 야당 정치인이던 2014년 서울외신기자클럽 토론에서 이렇게 말했다는 사실을 언론은 기록하고 있다. “언론의 잘못된 보도나 마음에 들지 않는 논조조차도 그것이 토론되는 과정에서 옳은 방향으로 흘러가게끔 하는 것이 옳은 방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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