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우의 경성만필(慶星漫筆)]2-우리 모두 이사 한번 가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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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우의 경성만필(慶星漫筆)]2-우리 모두 이사 한번 가봅시다
  • 칼럼니스트 이현우
  • 승인 2019.12.18 0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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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우 칼럼니스트

"송계아는 남북조시대의 송나라 사람이다. 그가 군수직에서 물러나 새로 집을 사서 이사 간 곳은 여승진의 바로 옆집이었다. 어느 날 여승진이 송계아를 찾아와서 얼마에 샀느냐고 물었다. 송계아가 무척 흡족한 표정으로 ‘천백만 냥 주었다’고 답하자, 여승진이 깜짝 놀라 ‘백만 냥이면 족할 것을 너무 비싸게 산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자 송계아는 여승진에게 ‘집값은 백만 냥 주었고 이웃 값으로 천만 냥을 더 지급한 겁니다’라고 화답했다. 이 말에 감동한 여승진은 송계아를 극진히 대접했다."

당나라 때 이연수가 지은 역사책 <남사(南史)>의 여승진전(呂僧珍傳)에 나오는 고사 ‘백만매택 천만매린((百萬買宅 千萬買鄰)’이다.

여승진은 청렴결백하고 공명정대하며 공과 사가 분명한 청백리로 칭송이 자자한 사람이었다. 그런 그를 흠모한 나머지, 이웃이 되기 위해 송계아는 시세의 열 배가 넘는 집값을 지불한 것이다. 퇴직 후 전관예우를 받기 위해 유관 기관을 기웃거리는 우리나라 고위 공직자들이 들으면, ‘전설의 고향’에나 나올 법한 이야기로 들리겠지만 옛사람들은 그렇게 살지 않았다.

굳이 고사를 인용하지 않더라도, 옛사람들에게 ‘좋은 집은 좋은 이웃이 사는 곳’이었다. 그러니 그들은 가진 것이 없어도 정으로 맺어지고, 뜻이 통하고, 향기로운 가치관을 공유한 벗을 만나면 충분히 행복할 수가 있었던 것이다.

오늘날 우리들의 세태에서 좋은 집이란 ‘사람’이 아니라 ‘값’을 기준으로 한다. 고대광실 닫힌 공간에 몸과 마음 묶어놓고 영혼을 자학하면서도 위세를 부린다. 너나없이 ‘강‧부‧자’가 되고 싶어 안달하는 요즈음, 만약 송계아가 환생한다면 퇴직금을 사람 찾는 광고비로 다 날릴지 모른다.

“거기 누구 사람 같은 사람 없수? 우리 모두 그리로 이사 한 번 가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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