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광우 칼럼]악마의 편집과 기레기-나경원 임이자 설훈 송현정 노무현 그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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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우 칼럼]악마의 편집과 기레기-나경원 임이자 설훈 송현정 노무현 그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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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9.05.20 1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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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발행인 이광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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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의 편집

언젠가, MBC 앵커 출신인 더불어민주당 신경민 국회의원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언론이 악마의 편집을 하고 있다.”

여기에서의 ‘언론’은 ‘서울지역 언론’에 국한된 것일 테지만, 어쨌든, ‘악마의 편집’이란 말도 이제는 ‘기레기’와 ‘내로남불’만큼이나 보편화한 단어 같습니다.

저잣거리에는 ‘악마의 편집’에 관한 농담이 넘쳐나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이런 것들이 있습니다.

예수가 “너희들 중에 죄 없는 자, 저 여인에게 돌을 던지라”고 하자, 언론은 “예수, 연약한 여인 향해 돌 던지라 사주”라는 제목을 뽑습니다. 예수가 바리새인 위선자들을 향해 “독사의 자식들아!”라고 하자, 언론은 “예수, 저질 막말 파문” 운운합니다.

부처가 “천상천하유아독존(天上天下唯我獨尊)”이라고 하자, 칼럼은 “부처의 오만과 독선, 국민이 끝장내야”라고 선동합니다.

소크라테스가 “악법도 법이다”라고 하자, 사설은 “소크라테스의 악법 옹호, 개탄스럽달밖에”라고 공격합니다.

이순신 장군이 “나의 죽음을 아무에게도 알리지 말라”고 하자, 언론은 이순신 장군이 부하에게 거짓말을 사주했으며, 이에 따라 도덕성 논란이 크게 일 듯하다고 적습니다.

물론 웃자고(혹은 비웃자고) 하는 말일 테지만, 위화감(조화되지 아니하는 어설픈 느낌)이 전혀 들지 않는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못난 임이자···

대한민국 내 갈등의 진원지 구실을 하는 정치와 언론에서는 특히 ‘악마의 편집’이 횡행하고 있습니다. 사례를 살펴보겠습니다.

하나. 자유한국당 나경원 원내대표는 지난 4월 국회 교섭단체 대표 연설 도중 “더 이상 대한민국 대통령이 김정은의 수석 대변인이라는 낯 뜨거운 이야기를 듣지 않도록 해 달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더불어민주당의 일부 국회의원들은 대통령을 비하했다며 거칠게 항의했습니다.

상당수의 언론은 사안을 호도하면서 발언 내용을 부정적으로 확대재생산했습니다. 나 대표의 발언은 블룸버그 통신의 기사를 인용한 객관적인 것이었는데도, 이들은 나 대표가 마치 주관적으로 그 말을 한 것처럼 몰아갔습니다.

그런데, 이른바 ‘민주공화국’에서 면책특권을 가진 국민의 대표가 설사 대통령을 향해 주관적 표현을 썼다 한들 그게 무슨 대수이겠습니까.

둘. 자유한국당 임이자 국회의원이 있습니다. 국회 신속처리 법안(패스트트랙) 지정 문제를 둘러싼 여야 간 갈등의 와중에 임 의원을 대상으로 한 성추행 문제가 불거졌습니다. 같은 당의 이익채 의원은 임 의원을 공개적으로 옹호했습니다. 발언의 요지는 다음과 같습니다.

“저도 키가 좀 작다. 키 큰 사람은 몰라도 키 작은 사람은 항상 나름의 트라우마, 열등감이 있다. 나도 어렵게 지내왔지만 임 의원도 굉장히 어려운 환경에서 결혼도 포기하면서 오늘 이곳까지 온, 어떻게 보면 올드미스다. 문희상 국회의장은 경복고와 서울대를 나오고 승승장구했으니 못난 임이자 의원 같은 사람은 그렇게 모멸감을 주고, 조롱하고 수치심을 극대화하고 성추행해도 된다는 말이냐.”

이를 두고 상당수의 언론은 ‘키 작은 사람’ ‘못난 임이자’ ‘올드미스’ 이런 단어를 부각시키면서 사안을 희화화했습니다. 이 의원이 사실상 임 의원을 폄하했다며 ‘(임 의원의) 의문의 1패’란 제목을 단 매체도 있었습니다.

사실, 저도 편집된 화면만 보고는 우스워 죽는 줄 알았는데, ‘유튜브’를 통해 이 의원의 발언 전체를 확인하면서는 보도에 대한 반감이 일었습니다. ‘악마의 편집’으로 사안을 희롱하고 특정인들을 조롱한 것이었습니다.

임 의원은, 이 의원이 자신을 너무나 잘 알기 때문에 안 된 마음에 그런 것이라 이해한다, 고 했습니다. 당사자들에게는 슬프고 아픈 얘기일 수 있는 장면이었습니다. 그래서, 참 오지랖 넓고 나쁜 언론이란 생각을 했습니다.

셋. 더불어민주당 설훈 최고위원도 같은 사안으로 잠시 구설수에 휘말렸습니다. 일부 기자들에게 “처음에는 임 의원이 남자인 줄 알았다”고 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자 자유한국당 쪽에서는 사과와 의원직 사퇴를 요구하기까지 했는데, 이 역시 전후의 맥락을 따져보면 한국당이 잘못 짚은 것이었습니다.

넷. 지난 9일 방영된 문재인 대통령과 KBS 송현정 기자의 1대 1 대담에 대한 반응은 시쳇말로 ‘악마의 편집의 끝판왕’이었습니다.

송 기자는 정치 분야 질문 때 “자유한국당에서는 대통령이 야당의 의견을 듣지 않고 하기 때문에 독재자라고 이야기 한다. 독재자란 말을 들었을 때 어떤 느낌이었나”라고 물었습니다.

송 기자의 질문은 객관적인 내용을 전달한 데 불과했습니다만, 상당수 언론과 특정 정파에서는 ‘독재자’란 단어를 침소봉대하면서 송 기자를 비난했습니다.

그런데, 설사 기자가 국민을 대신하는 입장에 서서 주관적으로 물었다 한들 그게 무어 대수이겠습니까. 송 기자에 대해서는 오히려 물어야 할 것들을 제대로 묻지 않았다는 지적이 나오는 게 타당했을 것 같은데, 어쨌든, 이쯤 되면 막가자는 것이었습니다.

다섯. 아마도 노무현 전 대통령은 이런 식의 저열한 반응을 가장 심하게 겪은 대통령일 것입니다.

16년 전 이맘때인 5월 21일이었습니다. 노 전 대통령이 “대통령 못해 먹겠다”고 했다는 보도가 나왔습니다.

당시에는 노 전 대통령의 용미(用美)적 언행에 대한 지지 세력의 반발과 우군으로 여겼던 노동계의 대정부 투쟁이 가열되고 있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노 전 대통령은 5.18 관계자들을 만났고, “(우군들까지 자신의 처지를 이해해 주지 않으니) 대통령직을 못해 먹겠다는 생각에 위기감이 든다”고 말했습니다. 제가 보기에는, 흔한 토로에 불과했습니다.

그런데, 상당수 언론은 이 말의 맥락과 분위기를 짓뭉개면서 대통령이 저급하고 무책임하게 ‘못해 먹겠다’고 한다며 비난했습니다.

뼈를 때리는 언론의 현실

듣자니, 미국 백악관 공보실 근무 경력이 있는 위기관리 전문가 에릭 데젠홀(<유리턱>의 저자)은 “뉴스 매체는 결코 타락할 수 없는 공명정대한 존재가 아니라 진실과 아무런 상관없이 누군가에게 상처를 입히려는 강한 욕구를 지닌 영리 기업일 뿐이다”라고 단언했습니다.

대한민국 국민들은 이미 이런 사실을 충분히 눈치 채고 있는 것 같습니다. 때로는 정파적 입장에 심하게 좌우된다는 사실도.

아닌 게 아니라, 지상파(급) 방송의 메인뉴스 시청률이 2~3%대에서 헤매고 있고, 신문의 열독률은 처참한 수준이며, 언론 소비자들의 대다수가 유튜브로 넘어갔다는 얘기는 정설입니다.

이런 현실을 언론종사자들이 스스로 만들어 냈다고 생각하니, 요즘 간혹 듣는 말로 뼈가 아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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