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광우 칼럼]‘대학총장’이란 무엇인가-수시 · 정시모집을 맞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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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우 칼럼]‘대학총장’이란 무엇인가-수시 · 정시모집을 맞으면서
  • 대표/발행인 이광우
  • 승인 2019.09.16 1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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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발행인 이광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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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들이 수시모집 때문에 바쁩니다. 원서접수는 마감됐고, 충원율이 현안으로 남아 있습니다. ‘수시모집의 계절’을 맞아 이런 저런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대학총장 리스크

‘CEO 리스크’를 아십니까?

CEO(Chief Executive Officer)는 기업경영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최고경영자나 창업주, 최대주주 같은 사람을 말합니다. CEO 리스크는, 이들에 대한 나쁜 평판으로 인해 해당 기업이 직간접적으로 타격을 받는 것을 말합니다.

요즘에는 대학총장도 CEO라 불립니다. 그래서 대학도 ‘총장 리스크’ 혹은 ‘CEO 리스크’를 안고 있다고들 합니다. 우선, 정부에서는 공사립을 막론하고 총장 문제를 들어 재정적 불이익 등을 줄 수 있습니다. 한동안 ‘조국 사태’의 중심에 섰던 동양대의 최해성 총장님이 “두렵다”고 말한 건 그런 이유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총장의 존재도 학생 모집에 영향을 미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저는 연락을 하고 지내는 전, 현직 대학총장님들이 부산, 경남지역에 열댓 분 정도 있습니다. 설립자나 그 가족인 ‘오너’ 총장님도 있고, 임명직 총장님도 있고, 선출직 총장님도 있습니다. ‘직업이 총장’인 분도 있습니다.

학식과 인품과 성향이 다 같은 건 아닙니다. 구성원들의 아쉬움 속에 부득이 물러난 분도 있고, 불미스러운 일로 퇴장한 분도 있습니다. 현직 중에는 구성원들로부터 사랑을 받는 분도 있고, 뭐 저런 이가 대학총장을 하나 싶은 경우도 있습니다.

총장이 '대학의 경쟁력'일 수 있을까

이 대목에서, 제가 잘 아는 한 대학의 역대 총장님들을 기억해 보겠습니다. (지금부터는 ‘다시 쓰기’가 있습니다. 예전에 썼던 칼럼의 내용이 일부 다시 등장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이 대학에서는 프란치스코 교황이 몸담고 있는 예수회 소속 신부님들이 오랫동안 총장을 맡았습니다. 이분들은 예수회 미국 위스콘신관구 소속이었습니다.
 
1~2대 총장 존 P. 데일리 신부님은 양말과 러닝셔츠를 기워서 입은 청빈한 수도자였습니다. 그는 정부에서 반독재 시위를 주동한 학생의 퇴학을 종용하자 이에 반발해 사표를 냈습니다. 이사회에서는 사표를 반려했습니다.

신부님은 훗날 “민중을 대변하는 학생들을 보호하고 싶었지만 학생과 정부 사이에서 정답을 찾기란 어려운 일이었다. 총장은 항상 둘 사이에 샌드위치처럼 끼인 처지였다”고 회고했습니다. 어두운 시절이었습니다.
 
신부님은 소아마비 장애인 여학생의 입학을 허가했습니다. 대부분의 대학들이 장애인들의 원서접수조차 거부하던 시절이었습니다. 이 여학생이 이 대학 영문과 71학번으로서, 수필가와 번역가로 유명한 고 장영희 교수님입니다. 장영희 교수님은 두 다리를 전혀 쓰지 못하는 중증장애인이었습니다.
 
3~4대 총장 델마 스킬링스태드 신부님은 교육철학이 경청할 만 했습니다. 그는 늘 “우수한 학생만 입학시키겠다는 자세보다 우수한 졸업생을 배출하겠다는 교육적 관점을 중시해야 된다”고 강조했습니다. 학생들에게는 “나보다 더 나은 생활을 갖지 못한 이들을 돕는 일에 많은 시간과 정열을 바쳐야 한다. 또한 만일 단 한 명이라도 그가 나를 만나기 전보다 훌륭한 인간이 되도록 도움을 줄 수 있다면, 나의 인생은 성공을 거둔 것이라 생각하라”고 당부했습니다.
 
6대 총장 서인석 신부님은 탁월한 성서학자였습니다. 그는 <성서의 가난한 사람들 >(분도출판사, 1979)이란 책을 쓰기도 했습니다. 이 책은 ‘우리 시대 민중의 고난과 사회 불의에 대해서, 신앙의 원천인 성서가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를 말해 주는 책’이란 평을 들었는데, 80년대에 기독교 사회운동에 관심을 보였던 청년들에게는 필독서였다고 합니다.
 
총장은 아니었지만, 키가 매우 컸던 한 신부교수님의 일화도 있습니다. 오래전만 해도 등교 시간이 되면 대학 언덕에 안개가 짙게 깔렸습니다. 헙스터란 이름의 이 신부교수님은 그때마다 길 위에서 랜턴을 들고 서 있었습니다. 학생들이 넘어질까 봐 ‘인간등대’ 역할을 자청했던 것입니다. 한 졸업생은 “그 분들은 학생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할 준비가 되어 있었던 것 같다”고 회고했습니다.

이분들은 말과 삶의 방식이 일치했습니다. 학식과 청빈과 규율을 강조하는 예수회 소속 신부님들이라서 그런 측면도 있었을 것입니다. 다들 전공 분야의 실력이 출중했고, 검소했으며, 깐깐했고, 소탈했습니다.

총장 임기가 끝난 뒤에는 대학원이 아니라 학부 강의를 맡은 분들도 있습니다. 이분들은 ‘총장은 보직일 뿐이며, 나는 교수이기 때문에 학부 강의를 하는 게 당연하다’고 했다 합니다.

고려대에는 김준엽 총장님(작고)이 있었습니다. 고대생들은 ‘총장이 술꾼이라, 학생도 술꾼’ 어쩌고 하는 노래를 불렀습니다. 총장에 대한 애정이 묻어났습니다.

무력 항일투쟁, 반독재 투쟁, 국무총리직 거절 같은 이야기들은 많이 알려져 있으므로 자세한 이야기는 생략하겠습니다만 이것 하나만은 굳이 적어두고자 합니다.

대학 행정실이 김준엽 총장 취임식을 준비하느라 바빴습니다. 한 노인이 찾아왔습니다. 직원이 시큰둥하게 대하면서 “총장님 취임식 때문에 바쁘다”고 하자, 이 노인은 “그러시군요. 그 김준엽이 접니다”라고 했다는 것입니다.

전두환 정권에 의해 강제 퇴진했을 때는 학생들이 한 달가량 사상 초유의 ‘총장 사퇴 반대’ 데모를 이어갔습니다.

총장도 대학의 경쟁력이다

80년대 중후반부터였던가요? 대학총장의 사회적 위상이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학식이나 인품과는 무관하게 후원금 유치와 현안 해결에 도움이 될 만 한 이들이 총장 자리에 앉는 경우가 잦아졌습니다. 아예 기업인과 관료들이 총장으로 영입되는 사례들도 있었습니다. 앞에서 말한 두 대학도 이런 흐름에 편승한 적이 있습니다.

‘총장 직선제’가 도입되자 돈으로 표를 사서 총장이 된 이들도 더러 있습니다. 국립대를 포함한 유명 대학에서도 그런 일들이 있었습니다.

그런저런 과정을 지나오는 동안 ‘대학총장=학식과 인품’이란 등식은 사실상 무너져 버렸습니다. ‘천민자본주의’의 논리가 대학도 지배하고 있는 것입니다.

듣자 하니, 국내 대학들이 ‘벚꽃 피는 순서’를 넘어 한꺼번에 쓰러질 것이란 말들을 합니다. 학생 수가 정원보다 적은 ‘정원 역전현상’ 때문입니다. 이때문에 서울의 상위권 대학들을 제외하고는 학생 모집에 명운을 걸다시피 하고 있습니다.

이럴 때, 총장은 과연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신입생들한테서 총장에 대한 사회적 평판과 그로 인한 비전 때문에 지원했다는 답이 나온다면 썩 나쁜 일은 아닐 것이란 생각이 듭니다. 저는 그런 총장님들을 이미 몇 분 알고 있는 실정입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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