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글에 담기지 못한 그들의 노력을 엿보았다... 드라마 연출부로 살아남는 이수민 씨의 분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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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글에 담기지 못한 그들의 노력을 엿보았다... 드라마 연출부로 살아남는 이수민 씨의 분투기
  • 취재기자 김신희
  • 승인 2022.11.16 1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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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현장에서 뛴지 벌써 2년 차인 이수민 씨의 연출부 이야기
제작부에서 연출부로, 꿈을 찾아가는 수민 씨의 여정은 계속 중
프리 단계와 현장에서 겪는 의견충돌, 인간관계는 극복 쉽지않아
드라마 엔딩 크레딧 ‘이수민 FD’ 한 줄이 앞으로 나갈 원동력
모니터를 보며 현장 상황을 체크 중인 조연출 이수민(사진 왼쪽) 씨의 모습(사진: 독자 이수민 씨 제공).
모니터를 보며 현장 상황을 체크 중인 이수민FD(사진 왼쪽) 씨(사진: 독자 이수민 씨 제공).

“슛 들어가겠습니다! 모두 정숙해 주세요!”

시끄럽고 산만하던 촬영장은 한순간에 정적을 이루고, “큐!”와 함께 배우들의 대사 소리로 공백이 채워졌다. 카메라 롤이 돌아가기 전, 2년 차 FD가 '땡고함'을 지르는 건 이제 예삿일도 아니다. 드라마라는 세계에 발을 들인지 벌써 2년이 되어가는 이수민(24) 씨는 오늘도 연출부로서 촬영 현장에서 고군분투 중이다.

이수민 씨는 학사 졸업장을 받기도 전에 조기 취업으로 본인의 꿈을 향해 몸을 내던졌다. 꿈을 위해 학교에서 배울 수 있는 것, 학생의 신분으로 깨우칠 수 있는 것은 다 경험하고 나섰기에 두려울 것이 없는 패기로 사회의 문을 열어제쳤다. 수민 씨는 “지금껏 갈고 닦은 실력, 그리고 흘려 왔던 땀과 눈물들이 오롯이 드라마에 드러났으면 좋겠다”며 직업에 대한 애정을 표했다.

이수민 씨가 근무하는 제작사 내 연출부 작업실에 붙어있는 촬영 스케줄표(사진: 독자 이수민 씨 제공).
이수민 씨가 근무하는 제작사 내 연출부 작업실에 붙어있는 촬영 스케줄표(사진: 독자 이수민 씨 제공).

# 연출부와 함께하며

드라마를 볼 때 시청자 입장에선 배우, 줄거리에 집중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제작 현장에서는 연출부를 중심으로 돌아간다. 수민 씨는 “드라마가 촬영에 들어가기 전까지 전반적인 모든 준비를 하는데, 예를 들어 그날 어떤 장면을 찍을지 공지하고 어떤 것들이 필요한지 회의하고 직접 준비한다”고 연출부가 어떤 일을 하는지 설명했다.

연출부는 현장 업무와 촬영 전 준비업무를 동시에 하고 있다. 촬영이 들어가기 전 준비 단계를 '프리 단계'라고 부른다. 프리 단계는 대본을 읽고 피드백 및 수정하는 일을 한다. 간혹 이미 대본이 다 완성된 작품도 있겠지만, 대부분의 드라마는 방영하면서도 대본이 수정되는 상황이 많기에 완료라는 말은 없다. 수민 씨는 ‘프리 단계’의 업무의 묘미는 배우 캐스팅 및 오디션 진행이라고 했다. 그녀는 “아직 ‘짬밥’이 안 차 오디션 면접을 보는 건 아니지만, 해당 장면을 발췌하고 오디션 대기 배우들을 안내하는 역할이 꽤 재미있다”고 말했다.

수민 씨는 제작부에 있을 때 ‘KBS-연모’, 연출부에서는 ‘OCN-우월한 하루’, ‘SBS-오늘의 웹툰’을 작업하고 현재는 방영 전인 ‘구미호뎐 1938’을 연출하고 있다. 이 일을 하며 즐거움을 느끼는 것 중 하나는 TV에서만 보던 배우들과 연락하며 스케줄을 전달하는 일이다. 그녀는 “물론 매니저들이 스케줄을 전달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필요에 따라 배우들에게 직접 연락하는 일이 생기기도 한다”고 전했다. 불과 2년 전만 해도 미디어에서 보고 지나칠 수 있는 사람들이었는데 이제는 단체 톡방도 있다니 신기할 따름이다.

# 드라마와 함께 하기까지 걸린 시간

어릴 적부터 드라마 광이라고 불린 수민 씨, 방영한 것 중 모르는 드라마가 없을 정도로 드라마에 대한 관심도가 높았다. 좋아하는 드라마는 몇 번이고 정주행하며 깊게 고찰하는 시간을 가졌다. 또 미디어 커뮤니케이션학과에 재학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AI융합미디어컬쳐’를 부전공으로 삼아 수많은 영상제에 출전하는 노력의 과정을 거쳤다. 그녀는 좋아하는 것을 직업으로 삼겠다고 마음을 먹자마자 제작사에 지원서를 넣었다. 하지만 그 과정이 순탄치만은 않았다.

수민 씨는 드라마를 만드는 과정에서 도움이 되고 싶어 제작부에 지원했지만, 본인이 생각했던 일과는 거리가 있었다. 그녀는 “한 작품을 끝내고 보니 연출부에서 일하고 싶은 꿈이 더욱 명확해져 거침없이 퇴사하며 다시 취업하기 위해 부단히 애썼다”며 당시의 상황을 전했다. 덧붙여 “현재는 지금의 회사로 들어와 연출부에서 활동을 잘하고 있어, 당시의 포기에 대한 용기가 없었다면 후회만 가득한 삶을 살고 있을 것”이라고 그녀는 자신의 선택이 옳았음을 다시 한번 확신한다.

조연출로서 카메라 앵글과 모니터를 확인하는 이수민(사진 왼쪽) 씨의 모습(사진: 독자 이수민 씨 제공).
연출부로서 카메라 앵글과 모니터를 확인하는 이수민(사진 왼쪽) 씨(사진: 독자 이수민 씨 제공).

# 보이지 않는 곳에서의 분투

카메라가 비치지 않는 곳에서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의 땀방울과 고단함이 참 고맙다. 우리는 그 촬영 현장에서 밤낮으로 추우나 더우나 일하는 제작진들의 고생을 알고 있다.

육체적으로 지치는 것이 이 직무의 가장 큰 단점과 스트레스라고 생각했지만, 수민 씨의 생각은 달랐다. 육체적으로 피곤한 건 현장에서 느끼는 바가 다들 같아서 신경 쓰지 않는다. “어딜 가나 사람들이 문제죠. 현장 일 뭐 하루 이틀 하나요.” 그녀는 너스레를 떨었다.

누군가에게 즐거움을 선사하려고 하는 일이지만, 수민 씨는 인간관계에 있어 지쳐가고 있었다. 한 작품을 일궈내기 위해 많은 이들의 의견과 이해가 필요하다. 그러나 가치관, 성격이 안 맞는 연출부 내부를 보면 극한의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했다. 그녀는 “서로 안맞는데 앞으로의 진전이 있을까 고민하며 머리를 싸매다 잠자리에 든 적이 너무 많다”며 고충을 토로했다. 그러나 그녀는 “(하지만) 드라마 끝나는 순간 행복회로 돌리듯 관계에 대한 불만은 싹 잊히고, 내가 팀에 해가 되지는 않았나 반성하는 순간이 온다”고 웃으며 말했다.

한 번 힘든 일을 말하다 보니 그녀에게 닥친 고충들이 봇물 터지듯 튀어나왔다. 수민 씨는 “생각해보니 힘든 일이 한둘이 아니네요”라며 얼굴이 빨개지며 말을 쏟아냈다. 드라마 현장에서 휴일은 눈 씻고 찾을래도 찾아볼 수 없다. 보통 드라마가 시작되면 반년이라는 시간을 할애하게 되는데, 6개월 내내 휴일은 없다. 수민 씨는 “제 성격 때문일 수도 있지만 어쩌다 휴차가 주어진다고 하더라도 편하게 놀 수는 없다”고 했다.

편하게 놀 수 없다니, 왜일까? 그녀는 “촬영이 진행될 때 필요한 인원은 100명이 훌쩍 넘는데, 이 인원들의 시간과 특히 배우들 스케줄에 맞추다 보면 언제 갑자기 스탠바이가 될지 모르다 보니 휴일에도 조급한 마음은 거둘 수 없다”고 답했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나아가기

현장에서의 힘든 마음을 상쇄시키는 것이 있다. 드라마의 한 회차가 끝날 때 스크롤에 나오는 ‘이수민’ 이름 석자는 힘들었던 모든 것을 보상받는 기분이다. 화면 가득 얼굴이 나오는 것도, 목소리 한 컷이 들어가는 것도 아닌데 ‘연출부 이수민’이라는 짧은 텍스트 하나가 주는 힘이 있다. “저는 그거 보려고 열심히 일해요. 이름이 지나가는 그 1~2초의 순간이 앞으로 나가는 원동력이 돼요”라고 수민 씨가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뿌듯하다는 말로는 충분치 않아 보였다.

일반적으로 제작진들의 역할은 배우를 빛나게끔 돕는 낮은 자들의 일이라고 생각한다. 이 직무에 대한 회의감이 드는지에 관해 물었지만 수민 씨는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녀는 “현장에서는 배우분들도 우리 스태프들에게 항상 “고생이 많으십니다”, “덕분에 촬영 잘합니다” 등 칭찬과 격려도 많이 해주시고, 스태프끼리도 서로 의지하고 치켜 세워주며 촬영을 진행한다”고 답했다.

이수민 씨와 함께 한 ‘오늘의 웹툰’ 대본, 그녀의 노고가 들어간 것을 볼 수 있다(사진: 독자 이수민 씨 제공).
이수민 씨와 함께 한 ‘오늘의 웹툰’ 대본, 그녀의 노고가 들어간 것을 볼 수 있다(사진: 독자 이수민 씨 제공).

# 앞으로의 ‘연출부 이수민'은?

한 회차의 드라마 대본이 너덜너덜해질 정도로 손자국이 남고, 형광펜으로 그어진 지문과 수많은 필기는 수민 씨의 고생을 한 눈에 담기에 충분했다.

수민 씨의 열정 가득한 모습과 끝없는 노력은 정해둔 목표로 가는 길을 환하게 비추는 것 같았다. 그녀의 최종 목표는 힘겨운 순간에도 포기하지 않고 결국에는 드라마 첫 타이틀에 ‘연출 이수민’이 박히는 것이다. 또한, “요즘 하는 드라마 중에 어떤 게 재밌어?”라고 질문이 나오면 흔하게 나오는 배우들 이름이 아니라 “이수민 PD가 연출하는 드라마 재밌어!”라고 답이 나오는 미래를 꿈꾼다고 했다.

안방에서 즐기는 브라운관이 아니더라도 미디어 산업이 발달하며 웹드라마, OTT 드라마 등 드라마 시장의 규모가 점점 커지고 있다. 국내 방송사업자 콘텐츠 수출 현황 분석에 따르면 , 2020년 기준 방송 프로그램 중 국내 드라마 수출 규모는 2억 7465만 달러로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했다. 수요도가 높은 만큼 이 직무를 희망하는 이가 많을 것이다. 이에 수민 씨는 “함부로 덤빌 곳은 못 되니, 저처럼 이 일이 아니면 죽고 못 산다 하는 이들이 왔으면 한다”고 전했다.

수민 씨의 꿈은 누구도 쓰러뜨리지 못할 거대한 바위와 같이 단단했다. 그녀가 목표하는 바가 이뤄질 것이라는 미래도 언뜻 보이는 듯했다.

마지막으로 수민 씨는 한 번 더 연출부를 애정하는 마음을 담아 포부를 전했다. “정말 힘들고 어려워도 드라마 연출하는 일에 대해 후회를 가진 적은 한 번도 없고, 다시 돌아간다 해도 드라마 현장에 남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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