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해의 떠오르는 핫플레이스 ‘봉리단길’을 걷다...과거와 현재 공존하는 옛 가야 골목길에 젊은이들 몰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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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해의 떠오르는 핫플레이스 ‘봉리단길’을 걷다...과거와 현재 공존하는 옛 가야 골목길에 젊은이들 몰려
  • 취재기자 김나희
  • 승인 2021.11.04 0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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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김해 회현동 일대, 뉴트로 관광지로 대변신
낙후된 원도심 골목에 특색 있는 식당 카페들 성업
대가야의 숨결이 곳곳에 스며든 유적지도 존재해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봉리단길’이 그렇다. 나태주 시인의 시 ‘풀꽃’의 한 구절은 옛 골목 곳곳에 새 가게를 품어 과거와 현재를 융합하는 봉리단길의 매력을 표현하기에 안성맞춤이다.

경남 김해시 회현동 일대 봉리단길 입구에 서 있는 봉황대길 입간판이 봉리단길의 시작을 알리고 있다(사진: 취재기자 김나희).
경남 김해시 회현동 일대 봉리단길 입구에 서 있는 봉황대길 입간판이 봉리단길의 시작을 알리고 있다(사진: 취재기자 김나희).

기존 건물이 그대로인 골목 사이에 새 가게가 들어서며 독특한 분위기를 풍기는 곳. 경남 김해시 회현동과 봉황동 일대 별칭 ‘봉리단길’. 정식 지명은 ‘봉황대길’이다. 낙후된 골목에 특색 있는 가게들이 문을 열고 사람들의 발길이 잦아지면서 봉황대길은 김해를 대표하는 관광지 봉리단길로 발전하기 시작했다. 김혜연(21, 경남 김해시) 씨는 “앞으로 더 발전해갈 봉리단길의 모습이 기대된다”고 말했다.

봉리단길의 정체성은 ‘뉴트로(New-tro)’라는 한 단어로 설명할 수 있다. 뉴트로는 새로움(New)과 복고(Retro)를 합친 신조어. 옛것을 새롭게 재창조하여 현대에 맞게 즐기는 것을 뜻한다.

봉리단길은 옛날 골목의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새로운 가게들을 받아들인다. 심지어 어떤 가게는 본래 있던 건물을 허물지 않고 그대로 보존하면서 외관과 내부를 꾸몄다. 그래서 봉리단길을 처음 방문한 사람은 보통 ‘~단길’하면 떠올리는 북적이고 번화한 느낌과 달리 고즈넉하고 단출한 골목이라는 인상을 받는다.

차별화된 봉리단길만의 뉴트로 감성을 발견하고 빠져들게 되는 것은 순식간이다.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골목을 걷다 보면, 곳곳에 자리 잡은 이색적인 가게들이 금방 눈길을 사로잡는다. ‘자세히’, ‘오래’ 볼수록 사랑스러운 봉리단길의 매력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김재은(21, 경남 김해시) 씨에게 봉리단길은 신기한 장소다. 봉리단길을 따라 쭉 걷다 보면 빛바랜 간판 사이사이 젊은 세대가 열광하는 카페, 식당, 소품샵이 늘어선 모습을 볼 수 있다. 김 씨는 “평범한 가정집과 세월의 흔적이 느껴지는 건물이 새로 생긴 카페나 식당들과 공존하는 풍경이 신선하고 좋게 다가왔다”며 “다니기 불편할 수도 있는 좁은 골목길마저 싫지 않게 느껴졌다”고 말했다.

무속인들에겐 ‘신의 거리’였던 봉리단길 골목 곳곳엔 지금도 점집들 성업

봉리단길은 본래 골목마다 점집이 늘어선 ‘신의 거리’였다. 봉리단길 일대는 과거 바닷가였기에 있는 물기운, 가야의 장군들이 드나들었기에 있는 장군 기운과 함께 금관가야를 세운 임금 김수로왕이 살았던 자리였던 것이 합쳐져 기가 매우 센 곳이라고 무속인들은 믿는다. 그래서 그 기운을 따라 무속인들이 이곳으로 많이 모이게 된 것이다. 무속인 ‘제주보살’ 이정순 씨는 “그 기운이 주변을 떠나지 못하게 한다”며 “조금 멀리 떨어져 있게 돼도 곧 다시 돌아오게 된다”고 말했다.

무속인 이정순 씨가 자신의 봉리단길 점집 안에 앉아 있다(사진: 취재기자 김나희).
무속인 이정순 씨가 자신의 봉리단길 점집 안에 앉아 있다(사진: 취재기자 김나희).

이 씨는 약 20년 동안 봉리단길에 터를 잡고 살아왔다. 욕심 없이 사람들을 돕기 위한 마음으로 이 일을 시작한 이 씨는 사람 사이 인연을 잘 붙여 준다. 이 씨는 “젊은 사람들이 저녁 늦게 골목을 걸으며 지나가다가 이곳에 들어오기도 한다. 옛날에는 젊은 사람들이 이런 곳까지 잘 안 왔다”면서 “봉리단길이 발전하면서 사람들이 많이 다니게 되어서인지 요즘은 젊은 사람들도 자주 온다”고 말했다.

봉리단길에서 자리를 지키고 있는 점집들은 이 씨처럼 몇십 년 동안 이곳에서의 삶을 이어온 곳이 대부분이다. 이들은 주로 집주인에게 세를 들어 사는데, 최근 발전하는 봉리단길을 따라 새로 장사를 하려는 집주인들에게 자리를 내줘 예기치 않은 이사를 하게 되기도 한다. 이 씨는 “우리는 이곳의 기운 때문에 떠날 수가 없다. 그러나 이제는 우리가 있고 싶어도 우리한테 세를 주지 않는 형편”이라며 “그래도 인연 따라, 운명 따라 각자 자리를 지키며 살아가고 있다”고 말했다.

회현동 되살리겠다는 포부 품은 사람들 하나둘 모여 만들어낸 봉리단길

낡은 집과 건물 때문에 낙후된 지역이라는 인식이 강했던 봉리단길이 현재의 모습처럼 새롭게 변하기 시작한 것은 봉리단길의 중심에 문화공동체 ‘재미난 사람들 협동조합’이 만든 복합문화공간 ‘회현종합상사’와 특색 있는 카페 ‘봉황1935’가 들어섰을 때부터다.

봉리단길 중앙에 있는 회현종합상사 건물에서 여러 가게가 문을 열고 영업하고 있다(사진: 취재기자 김나희).
봉리단길 중앙에 있는 회현종합상사 건물에서 여러 가게가 문을 열고 영업하고 있다(사진: 취재기자 김나희).

‘재미난 사람들’은 문화 카페를 운영하던 1기 ‘부뚜막 고양이’, 약 3년 동안 100회가 훌쩍 넘게 공연한 2기 ‘재미난 살롱’ 이후에 생겨난 3기 협동조합이다. 재미난 사람들은 아무것도 없던 봉리단길에 회현종합상사를 만든 사람들이다. 재미난 사람들 김서운 대표는 “2기 재미난 살롱 시절 벽화 공사를 하러 봉황대길에 왔다가 골목이 아기자기하고 재미있어서 이곳에서 활동을 이어가고 싶었다”며 당시를 회상했다.

당시 부동산조차 추천하지 않던 동네에서 재미난 사람들이 살아남기 위해 기지를 발휘한 결과물이 바로 회현종합상사다. 김 씨는 “혼자보다는 여럿이 낫겠다는 생각으로 다 함께 가게를 차렸다”며 “다양한 가게가 한 건물에 옹기종기 모여 있으면 방문한 사람들이 즐길 수 있는 하나의 코스는 마련할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고 설명했다.

회현종합상사는 가게 운영과 더불어 문화예술 활동을 꾸준히 진행하며 봉리단길을 다방면으로 즐길 거리가 가득한, 지속적인 공간으로 만들고 있다. 식당 내부나 회현종합상사 마당에서 예술 공연을 하기도 하고, 얼마 전에는 ‘할매영화제’도 진행했다. 지금은 여성을 향한 위로를 주제로 UCC 공모전을 열었다. 김 씨는 “문화예술적 요소가 풍부해져서 놀러 온 사람들이 오래 머물고 재미있게 즐기다 가는 곳이 되길 바라고, 그러기 위해 노력 중”이라고 말했다.

봉황1935는 적산가옥을 개조한 카페로, 적산가옥의 원형을 하나하나 살려가며 대공사를 진행해 인테리어를 완성했다. 상량식을 하면서 지붕에 쓰여 있던 건축 연도 1935년을 발견했던 것이 카페의 이름이 됐다. 봉황1935 허은 사장은 “이렇게 오래된 건물은 어디 가서 쉽게 볼 수 없을뿐더러 매우 귀한 것”이라며 “그만큼 옛 느낌을 살리고 싶었다”고 말했다.

카페 ‘봉황1935’에서 사람들이 커피를 마시며 여유를 즐기고 있다(사진: 취재기자 김나희).
카페 ‘봉황1935’에서 사람들이 커피를 마시며 여유를 즐기고 있다(사진: 취재기자 김나희).

‘봉황1935’는 낙후된 고향을 살리고 싶다는 허 씨의 열망을 천천히 실현해 가고 있다. 카페를 차린 그 작은 한 걸음이 김해시 도시재생사업과의 협업, ‘봉황대협동조합’ 형성이라는 나비효과를 불러왔고, 허 씨는 현재 봉황대협동조합의 이사장직을 맡아 활동에 앞장서고 있다.

봉황대협동조합은 주민들, 외지에서 이주한 젊은이들, 예술가들이 한데 모여 봉리단길을 살리기 위한 활동을 추진하는 곳이다. 버스킹, 리마인드 웨딩, 연극 등 문화예술행사를 정기적으로 진행하며 봉리단길을 오래 지속될 수 있는 거리, 추억과 정서 그리고 배움이 있는 거리, 걷고 싶은 거리로 만들기 위해 노력 중이다. 허 씨는 “주말마다 먼 곳에서도 찾아와 주는 방문객이 매우 감사하다”며 “앞으로도 계속 봉리단길을 기억하고 찾아 줬으면 한다”고 마음을 표현했다.

김해시가 2016년부터 2020년까지 진행한 김해 원도심 도시재생사업은 봉리단길의 새 출발을 도왔다. 도시 재생이란 기계적 대량생산 위주의 산업에서 최근 신산업으로 변화되는 산업구조 및 신도시 위주의 도시 확장으로 인해 상대적으로 낙후된 기존 도시에 새로운 기능을 도입하고 창출함으로써 쇠퇴한 도시를 새롭게 경제적·사회적·물리적으로 부흥시키는 것을 의미한다. 이를 통해 새로운 중심 기능을 도입, 지역 경제 체계 구축, 청년 인재 육성 등 다양한 사업을 진행했다. 김해시는 2018년부터 2021년까지 회현동 봉리단길 조성 사업을 진행하기도 했다. 간판 정비, 입면 정비, 가로시설 정비를 중심으로 봉리단길을 한층 더 정돈했다.

봉리단길은 옛 가야인의 숨결이 살아있는 유적과 유물의 보고

봉리단길 일대가 본래 가야의 원도심이었던 만큼 봉리단길 한쪽에는 옛 가야인의 숨결을 그대로 담은 봉황동 유적이 자리를 지킨다. 유적에서 발굴된 유물을 참고해 복원된 고상가옥, 망루, 기마무사상과 패총 전시관을 통해 가야의 생활과 문화를 엿볼 수 있다.

봉황대길 일대는 땅을 파기만 하면 유적이 나온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유물 발굴이 활발하다. 그래서 유물 발굴 문제로 집이 철거돼 정을 붙이고 살아온 동네를 떠나야 하는 아픔을 겪은 주민들이 많고, 새 건물을 짓기에도 제약이 많다. 봉리단길이 이처럼 옛 모습을 간직하며 발전하게 된 것도 결국은 지켜야 할 옛사람들의 흔적 때문인 셈이다.

봉리단길에 활기를 불어넣는 다양한 가게와 열정적인 사람들

봉리단길 골목 입구에 아기자기한 벽화가 그려져 있다(사진: 취재기자 김나희).
봉리단길 골목 입구에 아기자기한 벽화가 그려져 있다(사진: 취재기자 김나희).

과거의 다양한 모습을 간직한 채 새롭게 변하고 있는 봉리단길. 부산김해경전철을 타고 봉황역에 내려서 3번 출구로 나와 바로 보이는 골목길을 따라 걸어 들어가면 나타나는 곳이 바로 봉리단길이다.

봉리단길에 들어서면 다양한 가게가 오밀조밀 모여 있는 모습과 곳곳에 흩어져 각자의 자리를 지키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사람들은 각자의 취향과 감성에 따라 골목 곳곳을 누빈다.

‘하라식당’은 회현종합상사의 일부에서 봉리단길의 시작을 함께한 대표적인 음식점이다. 지하 1층으로 이어지는 계단을 걸어 내려가면 빈티지하고 앤틱한 인테리어가 포근하게 내부를 감싸고 있다. 하라식당 윤상필 사장은 “들어오는 손님들이 가정집처럼 따뜻한 느낌을 받을 수 있게 꾸몄다”고 말했다.

하라식당이 유명세를 탄 데에는 특색있는 운영 방식이 한몫했다. 개업부터 일정 간격으로 메뉴가 바뀌는 특이한 운영 방식을 고수하고 있다. 더불어 저녁에 술과 안주 메뉴를 판매하기도 하고, 요리의 종류도 늘려 가며 접근성을 높이기 위한 노력도 아끼지 않는다. 윤 씨는 “봉리단길은 다양한 컨텐츠를 즐기고 또 만들 수 있는 요소가 많은 동네”라며 “많이 방문해 주시길 바란다”고 소망했다.

‘개나리주택’은 손님들이 할머니 댁에 온 것 같다고 입을 모아 말하는 곳이다. 일반 2층 주택의 외관을 그대로 살린 이곳은 달려 있던 문을 그대로 사용하면서 내부에 테이블과 의자만 놓았다고 할 만큼 사람이 살던 때를 그대로 살렸다.

개나리주택 서병준 사장은 약 3년 전 대부분이 카페뿐이던 이곳에 음식점을 차려 보자는 다짐으로 문을 열었다. 일본식 카레를 한국인의 입맛에 맞게 개나리주택만의 스타일로 재개발한 요리를 팔며 신메뉴 개발도 꾸준히 하고 있다. 서 씨는 “봉리단길에서 제일 맛있는 밥집이라고 자부한다. 아쉬운 것은 골목 깊숙한 곳에 숨어 있어서 못 보고 지나치는 분들이 많다. 이곳을 알아주시고 찾아 주셨으면 한다”고 바람을 밝혔다.

‘식스먼스베를리너’는 건물 2층에 있는 소품샵으로, 가정집이었던 곳을 그대로 살려 인테리어한 것이 특징이다. 친구네 집을 방문하듯 주택 건물 계단을 차례차례 올라가다가 보이는 노란빛 현관문을 열면 아기자기한 내부가 손님을 반긴다. 식스먼스베를리너 김혜경 사장은 “큰 창문 등 가정집에서 느껴지는 분위기가 괜찮아 보여서 소규모의 공사를 통해 기존에 있던 것들을 훼손하지 않고 거기에 맞춰서 인테리어를 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식스먼스베를리너에는 다른 곳에서는 볼 수 없는 디자인이 가득하다. 직접 디자인한 상품 위주로 소품샵을 운영 중이기 때문이다. 김 씨는 “지방에서도 자기만의 색을 가진 디자인 활동을 충분히 할 수 있다”며 “사람들이 우리 가게에서 다양한 그림을 보고 느끼며, 디자인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 다 함께 즐길 수 있는 곳이 됐으면 한다”고 소망했다.

‘봉리단끝집’은 폭립 바비큐 등 양식 위주의 음식과 다양한 수입 맥주를 함께 판매하는 음식점으로, 캠핑 느낌이 물씬 풍기는 마당이 특징이다. 봉리단끝집 이영총 사장은 “맛있는 음식을 드시면서 절로 웃음이 지어지는 분위기를 만들려 노력하고 있다”며 “누구든지 편안하게 방문해 주셨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봉황예술극장’은 2021년 5월 29일 ‘봉황 어게인’ 공연을 통해 첫발을 뗐다. JJ창작예술협동조합이 도맡아 운영하는 이곳에서는 코로나19로 인한 운영의 어려움 속에서도 지역 주민을 위한 다양한 공연이 펼쳐지고 있다.

JJ창작예술협동조합은 2017년부터 일대 야외에서 공연하며 활동해 왔다. 창작극 ‘철의 나라에서 만난 여의와 황새’, ‘봉황대 연정’, ‘미치고 뽕짝 뛰네’ 등 주변 주민들의 이야기를 담은 연극을 만들어 사람들과 교감했다. JJ창작예술협동조합 곽지수 대표는 “이런 옛 어린 시절의 정서를 가진 동네가 드물다. 그리고 이곳에 사는 사람들은 문화예술과는 거리가 먼, 어쩌면 소외된 사람들이다. 그분들과 무언가를 하면 좋겠다고 생각해 이곳에서 활동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봉리단길의 봉황예술극장 안에서 조그만 극장을 배경으로 곽지수 씨가 웃고 있다(사진: 취재기자 김나희).
봉리단길의 봉황예술극장 안에서 조그만 극장을 배경으로 곽지수 씨가 웃고 있다(사진: 취재기자 김나희).

주민들은 JJ창작예술협동조합의 활동을 통해 배우로서 직접 연극에 참여하는 새로운 경험을 얻고, 공연을 즐기며 행복해하고, 때로는 위로를 받았다. 그 마음이 모여 봉황예술극장이 지어지게 된 것이다. 곽 씨는 “이처럼 동네 사람들의 의지로 만들어진 극장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주민들의 마음에 힘입어 봉황예술극장은 사람들이 동네 마트 가듯이 편안하게 드나들 수 있도록 만들기 위해 1년 프로그램을 계획하고 있다. 곽 씨는 “코로나19로 인해 입장 인원에 제한이 있다”며 “방문하시는 분들께서 헛걸음하지 않도록 인스타그램에 일정을 안내해 드리고 있으니 미리 일정을 확인하고 방문하시면 좋다”고 덧붙였다.

통행, 주차, 쓰레기는 골칫거리...레트로 감성이란 정체성은 포기할 수 없는 명제

봉리단길의 가장 큰 골칫덩이로 통행과 주차 문제가 있다. 이곳을 찾는 사람이 점점 늘면서 좁은 골목길이 전부인 봉리단길은 포화 상태가 됐다. 김도엽(20, 경남 김해시) 씨는 “길을 걷는데 차가 계속 와서 지나갈 때까지 길 한쪽에 붙어 한참을 기다려야 했다”며 “사람이 편하게 다닐 곳이 없을 만큼 길이 좁아서 위험하다”고 토로했다. 이영미(48, 경남 김해시) 씨는 “차를 가지고 올 때면 주차 걱정부터 하게 된다”며 “차가 있는 것이 오히려 불편한 곳”이라고 말했다.

좁은 골목길을 많은 자동차가 혼잡하게 지나가고 있다(사진: 취재기자 김나희).
좁은 골목길을 많은 자동차가 혼잡하게 지나가고 있다(사진: 취재기자 김나희).

김해시는 2019년 봉리단길 안전한 보행환경 개선사업을 진행했으나 주민들의 일방통행 변경 반대로 무산됐고, 공영 주차장 건설 사업도 예산 문제로 진행에 난항을 겪고 있는 상태다.

담배와 쓰레기 문제도 심각하다. 골목 아무 데서나 담배를 피우고 버린 담배꽁초가 쌓여 있고, 곳곳에 버려진 테이크아웃 잔이 굴러다닌다. 김서운 대표는 “이곳에 원래 살던 분들께서 피해를 많이 보고 있다”며 “제발 담배꽁초나 쓰레기를 그만 버려 달라”고 호소했다.

과거와 현재의 공존과 융합을 어떻게 실현해 나가느냐가 지금의 봉리단길이 안은 중요한 과제다. 낙후된 골목을 살리겠다는 사람들의 노력이 모여 지금의 봉리단길이 만들어진 것처럼, 봉리단길만의 레트로 감성이 자리를 잡고 지켜지기 위해선 봉리단길을 구성하는 한 사람 한 사람과 봉리단길에 방문하는 한 사람 한 사람의 노력이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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