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로왕의 ‘신의 거리’, 김해 핫플레이스 ‘봉황대길’로 변신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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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로왕의 ‘신의 거리’, 김해 핫플레이스 ‘봉황대길’로 변신 중
  • 취재기자 이동근
  • 승인 2019.10.23 1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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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도심 재생사업으로 카페들 들어서면서 젊음의 거리로 자리매김
주민들, “주차장 넓히고 예술가 초청해서 문화거리 만들 것”

서울시 용산구 이태원동에는 개성 있는 식당과 카페가 즐비해서 유명한 ‘경리단길’이 있다. 과거 육군중앙경리단이 이 길의 초입에 있어서 경리단길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경리단길이 유명세를 타자, 부산 전포동의 ‘전리단길’, 부산 해운대의 ‘해리단길’, 경주 황남동의 ‘황리단길’과 같이 O리단길이라는 이름이 전국에 유행처럼 번졌다. 경남 김해시 봉황동에는 ‘봉리단길’이라고 불리는 새로운 길이 조성돼 젊은이들의 인기를 끌고 있다. 봉황동에서 56년째 거주 중인 김성연(82) 씨는 “새파랗게 젊은애들이 요새 멀리서도 많이 온다. 부산서도 오고, 장유서도 오고”라며 싫지 않은 듯이 말했다.

봉리단길은 김해시 김해대로 2273번길부터 가락로 37번길까지로 파란색으로 표시된 740m의 거리를 가리킨다(사진: 네이버 지도).
봉리단길은 김해시 김해대로 2273번길부터 가락로 37번길까지로 파란색으로 표시된 740m의 거리를 가리킨다(사진: 네이버 지도).

봉리단길이란 이름은 어떻게 생겼을까? 봉황동 주변에는 봉황대(鳳凰臺)라는 작은 구릉이 있다. 봉리단길은 바로 이 봉황대에서 유래됐다. ‘카페 봉황1935’의 한 직원은 “봉리단길이라는 이름을 누가 처음 지어서 불렀는지는 정확히 모른다. 많은 사람들이 그냥 누가 먼저라고 할 것 없이 봉황대를 따서 봉리단길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봉황대 정상에 있는 황세바위의 모습. 조선 후기 김해부사 정현석이 구릉의 생김새를 두고 봉황이 날개를 편 모양과 같다고 하여 봉황대라는 이름을 붙여줬다(사진: 취재기자 이동근).
봉황대 정상에 있는 황세바위의 모습. 조선 후기 김해부사 정현석이 구릉의 생김새를 두고 봉황이 날개를 편 모양과 같다고 하여 봉황대라는 이름을 붙여줬다(사진: 취재기자 이동근).

봉리단길은 원래 ‘신의 거리’라고 불렸던 점집골목이었다. 봉황동에서 60년간 살아온 한 어르신은 “원래 여기 부근이 다 점집이고 주택이었다. 이 골목에서 점집이 점점 사라지고 지금은 한 열 집 정도가 남았다”고 말했다. 어르신은 젊은 사람들이 봉리단길을 많이 찾으면서 자연스레 점집을 찾아오는 손님들이 줄었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독특한 카페가 즐비한 봉리단길에는 아직도 점집골목의 전통이 이어져서 점집이 곳곳에 있다(사진: 취재기자 이동근).
독특한 카페가 즐비한 봉리단길에는 아직도 점집골목의 전통이 이어져서 점집이 곳곳에 있다(사진: 취재기자 이동근).

봉리단길에는 왜 점집이 많을까? 무속인 김영순(65, 경남 김해시) 씨는 봉황동에서 팔선녀라는 점집을 18년째 운영 중이다. 김 씨는 봉황동 주변에는 가락국의 초대 국왕인 김수로왕과 왕비의 무덤이 있기 때문에 봉황동의 터와 기가 좋다고 설명했다. 김 씨는 점집들이 몰릴 당시에 봉황동이 시골이었기 때문에 집세가 저렴했다는 이유도 한몫했다고 지적했다.

봉리단길에 처음 들어선 카페는 ‘봉황1935’다. 봉황1935 사장 허은(66, 경남 김해시) 씨에게 봉황동은 자신의 고향이었고, 봉황1935의 건물은 자신의 본가였다. 객지에서 생활하며 생업에 종사하던 허 씨는 봉황동으로 돌아와 2017년 5월에 봉황1935를 오픈했다. 그렇게 봉황1935는 봉리단길의 시발점이 됐다. 허 씨는 “낙후된 동네를 한번 살려보자는 취지로 카페를 열었다”고 전했다.

봉황1935의 건물은 1935년 일제강점기 때 일본식 지어졌고, 적산가옥으로 남아 있다가 이를 리모델링해 지금의 봉황1935가 만들어졌다(사진: 취재기자 이동근).
봉황1935의 건물은 1935년 일제강점기 때 일본식 지어졌고, 적산가옥으로 남아 있다가 이를 리모델링해 지금의 봉황1935가 만들어졌다(사진: 취재기자 이동근).

봉황1935가 생기고 다른 카페들도 생겨날 때쯤, 김해시는 도시재생센터를 만들어 원도심 재생사업을 시작했다. 낙후된 원도심을 살리려는 취지에서다. 상인들은 동네의 현안을 의논하고, 도시재생사업과 각종 문화행사를 도시재생센터와 연계해 진행하기 위해 ‘도시재생협의회’를 구성했다.

도시재생협의회는 봉리단길이라는 별명을 따서 정식도로명을 ‘봉황대길’로 변경하기로 결정했다. 봉리단길의 원래 이름은 장유로 가는 통로라는 뜻의 ‘장유가도’였다. 30여 년 전 장유로 가는 버스가 하나밖에 없었고, 그 버스가 지나갔던 길이 바로 지금의 봉리단길이었다. 봉황1935 사장이자 협의회 회장인 허 씨는 장유지역이 아닌데 장유가도라고 불리는 것도 이상하고, 다른 O리단길과 차별성을 두기 위해 봉황대길이라는 이름을 협의회에서 의논 끝에 결정하게 됐다고 말했다. 허 씨는 “봉리단길은 젊은 사람들의 애칭으로 널리 불리고 있으니, 앞으로는 봉황대길이라고 불러달라”고 밝혔다.

봉황 1935는 독특하고 다양한 분위기를 물씬 풍긴다. 회사원 김모(26, 경남 창원시) 씨는 “이 카페가 유명해서 왔다. 카페 분위기가 다른 카페들과는 확연히 다르다”고 말했다. 봉황 1935에는 일본식 다다미방과 고풍스러운 가구들, 다양한 소품들이 있다. 카페 내부에서는 일본과 중세유럽의 분위기를 동시에 느낄 수 있다. 이 카페만의 콘셉트는 무엇일까? 허 씨는 “콘셉트가 없는 것이 콘셉트”라며 “그냥 손님들이 와서 따뜻하고 편안한 느낌을 받아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봉황1935의 내부는 엔틱한 느낌의 여러 가구와 소품으로 가득하다(사진: 취재기자 이동근).
봉황1935의 내부는 엔틱한 느낌의 여러 가구와 소품으로 가득하다(사진: 취재기자 이동근).
일본식 다다미방은 독립 공간을 이루고 있으며 독특한 이국적 느낌을 준다(사진: 취재기자 이동근).
일본식 다다미방은 독립 공간을 이루고 있으며 독특한 이국적 느낌을 준다(사진: 취재기자 이동근).

봉황대길에는 현대식 한옥 느낌이 물씬 나는 카페도 있다. 많은 젊은이들이 이곳에서 소위 인생샷을 찍기 위해 쉴 새 없이 카메라 셔터를 누른다. 바로 지난 8월 1일에 오픈한 파미르커피다. 파미르커피 사장 박민규(27, 경남 김해시) 씨는 “깔끔한 한옥 외관이라 그런지 손님들이 사진을 찍어서 SNS에 많이 올리신다”고 말했다.

깔끔하면서도 현대식 한옥 느낌을 잘 살린 파미르 커피의 외부 모습. 예스럽고, 따뜻하며, 정겨운 느낌까지 준다(사진: 취재기자 이동근).
깔끔하면서도 현대식 한옥 느낌을 잘 살린 파미르 커피의 외부 모습. 예스럽고, 따뜻하며, 정겨운 느낌까지 준다(사진: 취재기자 이동근).

파미르 커피의 메뉴는 단출하다. 손님들은 다양하고 화려한 메뉴를 원하지만, 박 씨는 커피를 중요시하기 때문이다. 봉황대길을 자주 오는 한 직장인은 파미르커피를 “봉리단길에서 커피 맛이 제일 괜찮은 곳”이라고 말했다.

파미르커피의 말차라떼와 ‘가을의 홍차’, 수제케이크. 디저트는 ‘오늘의 디저트’라는 이름으로 매일 바뀐다. 차를 시키면 차의 의미가 담긴 종이가 함께 나온다(사진: 취재기자 이동근).
파미르커피의 말차라떼와 ‘가을의 홍차’, 수제케이크. 디저트는 ‘오늘의 디저트’라는 이름으로 매일 바뀐다. 차를 시키면 차의 의미가 담긴 종이가 함께 나온다(사진: 취재기자 이동근).
파미르커피의 내부는 깔끔하고 따뜻한 느낌이다(사진: 취재기자 이동근).
파미르커피의 내부는 깔끔하고 따뜻한 느낌이다(사진: 취재기자 이동근).

봉황대길은 뚜렷한 문제점을 가지고 있다. 바로 주차시설이 없는 것이다. 동네 자체가 오래돼 주차시설은커녕 골목부터가 차 두 대가 겨우 지나갈 정도로 좁다. 부산에 살고 있는 한 직장인은 “주차장이 없어서 봉황대길에 오기 불편하다”고 전했다. 박 씨와 함께 파미르커피를 운영 중인 배소유(27, 경남 김해시) 씨는 “봉황대길 근처에 있는 쓰지도 않는 폐교(옛 봉황초등학교)를 주차장으로 활용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봉황초등학교는 1970년에 설립됐다가 2006년에 전하동으로 이전했다. 김해교육지원청은 옛 봉황초등학교 건물을 철거하고 가야 유적 발굴작업을 진행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봉황대길은 주차장이 없어서 좁은 골목에 불법 주차된 차들이 대부분이다(사진: 취재기자 이동근).
봉황대길은 주차장이 없어서 좁은 골목에 불법 주차된 차들이 대부분이다(사진: 취재기자 이동근).

봉황대길은 젊은이들의 많은 관심을 받았지만, 막상 봉황대길에 와보고 실망한 사람도 있다. 직장인 이선영(25, 경남 김해시) 씨는 “봉리단길이라는 이름이 아깝다. 노후화된 주택과 좁은 골목길을 보고 실망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것이 봉황대길만의 매력이라는 사람도 있다. 대학생 임지현(23, 경남 김해시) 씨는 “가게들이 띄엄띄엄 있지만, 숨은 핫플레이스를 찾아가는 재미가 있다”고 말했다.

허은 협의회장은 “봉황대길에 카페만 너무 많아서 사람들이 배우고 느낄 공간이 없다. 나중에 공방이나 예술가들이 봉황대길에 들어오면 사람들의 구경거리와 배울 거리가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허 회장은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을 우려했다. 젠트리피케이션이란 낙후된 구도심이 개발되면서 임대료가 올라 원래 살던 주민이나 가게들이 쫓겨나는 현상이다. 허 회장은 “아직 많이 부족하지만, 봉황대길이 너무 급하게 변화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며 “우리는 젠트리피케이션을 사전에 예방해서 동네가 오래오래 유지되도록 노력하고 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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