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 몸무게, 학벌까지... 소개팅 앱, “나는 몇 등급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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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 몸무게, 학벌까지... 소개팅 앱, “나는 몇 등급입니까?”
  • 취재기자 조재민
  • 승인 2019.12.31 12:3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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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글 스토어, 소개팅 앱만 약 300개 육박
전문가, 왜곡된 외모지상주의 및 학벌주의 우려
소개팅 앱, 문제점 인식하고 개선 노력해야

대학생 윤 모(23, 부산 해운대구) 씨는 연말이 되자 주변에서 소개팅 제의가 들어왔다. 하지만 윤 씨는 모두 거절했다. 주선자가 지인이라는 점이 마음에 걸렸기 때문이다. 윤 씨는 “주선자가 소개해준 상대방이 마음에 안 들었을 경우 거절하기가 어렵다”며 “소개팅 앱을 다운받으면 그럴 걱정 없이 이성을 소개받을 수 있다는 광고를 믿고 다운받았다”고 했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맞춰 스마트폰이 보편화됨과 동시에 일상에서 필요한 앱도 우후죽순 생겨났다. 커뮤니티, 영화, 독서 등 다양한 키워드의 어플이 빠르게 확산됐다. 그중에서도 단연 눈에 띄는 키워드는 ‘연애’다. 최근 들어 상대방을 직접 만나야만 가능했던 오프라인 소개팅과는 다르게 간단한 자기소개와 사진 몇 장으로 소개팅을 할 수 있는 ‘소개팅 앱’이 많아지고 있다.

구글 플레이 스토어 속 250개가 넘는 다양한 소개팅 앱(사진: 구글 플레이 스토어 캡쳐).
구글 플레이 스토어 속 250개가 넘는 다양한 소개팅 앱(사진: 구글 플레이 스토어 캡쳐).

소개팅 앱은 자신의 사진과 프로필만 있으면 손쉽게 가입이 가능하다. 앱 하나로 상대방의 학력, 직업, 나이 등 신상 정보를 파악할 수 있다. 또한 주선자가 없기 때문에 거절에 대한 부담감이 적다. 구글 플레이 스토어에 ‘소개팅’을 검색하면 약 250개가 넘는 어플을 찾아볼 수 있다. 국내 비게임 앱 매출 50위 중 25개가 소개팅 앱일 정도로 대중들의 인기를 끌고 있다.

각 소개팅 앱은 사진을 보고 등급을 매기는 ‘사진 등급 평가’부터 GPS를 통해 자신의 주변에 위치한 이성을 소개하는 ‘이웃 친구 구하기’ 등 다양한 기능으로 운영하고 있다. 다양한 소개팅 앱 중에서도 ‘아만다(아무나 만나지 않는다)’는 100만 명 이상의 회원을 보유할 정도로 인기 있는 앱이다.

아만다는 3점을 넘지 못하면 불합격한다. 재도전 할 경우 다른 사진을 업로드 해야 한다(사진: 아만다 앱 화면 캡쳐).
아만다는 3점을 넘지 못하면 불합격한다. 재도전 할 경우 다른 사진을 업로드 해야 한다(사진: 아만다 앱 화면 캡쳐).

아만다는 회원가입 방식이 다른 소개팅 앱에 비해 독특하다. 자신의 사진 3장과 신상정보(키, 나이, 학력)를 입력하면 이용자들이 외모 점수를 평가한다. 5점 만점 중 3점 이상이 되지 않으면 이용이 거부된다. 대학생 김재현(24, 부산 금정구) 씨는 “평소 사진을 잘 찍는 편이 아니라 어쩔 수 없이 셀카를 찍어 올렸지만 반응이 좋지 않았다”며 “직접 만나보지도 않고 사진으로 사람을 평가하는 게 과연 옳은 것인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평소 아만다를 이용하는 직장인 조성한(31, 부산 해운대구) 씨는 “3점 이상의 점수를 받기가 쉽지않다”며 “앱 이용의 문턱이 높은 편이라 그런지 외모가 뛰어난 이용자가 많은 것 같다”고 말했다. 최근 아만다에 가입한 대학생 한 모(21, 부산 부산진구) 씨는 결국 앱을 삭제했다. 외모 평가에서 점수가 미달돼 가입이 거부됐기 때문이다. 한 씨는 “평소 ‘외모도 스펙’이라는 말은 나와 관계없을 줄 알았다”며 “대학도 재수 끝에 입학을 했는데 소개팅 앱은 3수를 해도 안됐다”고 했다.

틴더는 상대방과 매치가 되지 않으면 메시지를 보낼 수 없다(사진: 구글 플레이 스토어 캡쳐).
틴더는 상대방과 매치가 되지 않으면 메시지를 보낼 수 없다(사진: 구글 플레이 스토어 캡쳐).

GPS를 통해 자신의 위치와 가까운 이성을 소개해주는 소개팅 앱 ‘틴더’는 상대방의 사진과 프로필을 보고 서로 마음에 들 경우 메시지를 주고받을 수 있다. 둘 중 한 사람만 ‘좋아요’를 누를 경우 매치가 되지 않아 상대에게 메시지를 보낼 수 없다. 서로 호의를 가지고 있다는 전제하에 대화를 이어 나갈 수 있기 때문에 아만다 보다 이용이 수월하다.

친구의 추천으로 틴더를 내려받은 대학생 이 모(20, 부산 수영구) 씨는 최근 당황스러운 메시지를 받았다. 매치된 상대방에게서 다짜고짜 성병이 걸린 적 있냐는 질문을 받았기 때문이다. 이 씨는 “틴더는 다른 소개팅 앱처럼 이름, 나이, 사진 등을 공개하지 않아도 된다”며 “익명성을 이용해 FWB(Friends With Benefit, 서로 필요에 의해 성관계를 맺는 친구)나 ONS(One Night Stand, 하룻밤 상대)를 찾는 사람이 많은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실제로 만나면 하지 못할 얘기들을 쉽게 하는 경우가 많다”며 불편을 호소했다.

틴더를 애용하는 직장인 권 모(33, 부산 사상구) 씨 또한 무례한 이용자 때문에 불편을 겪고 있다. “일회성 만남을 하지 않는다고 프로필에 써놔도 대화가 성적인 내용으로 흘러가는 경우가 많다”며 “소개팅 앱을 이용해 진정한 친구를 찾기란 하늘의 별 따기”라고 말했다.

이들이 성적인 대화로 불편을 겪는 이유에는 각 소개팅 앱의 문제도 있다. 아만다의 경우 프로필을 작성할 때 남성은 ‘마른’ ‘슬림 탄탄’ ‘근육질’ 등 총 6가지 종류의 체형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여성의 경우 ‘볼륨 있는’ ‘글래머’ ‘슬림한’ 등 자신의 체형을 선택할 수 있도록 한다. 권 씨는 “친구를 사귈 때 체형과 같은 성적 매력을 어필하는 것이 과연 필요한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남성과 여성의 가입 조건이 다른 골드 스푼의 소개 페이지(사진: 앱스토어 캡쳐).
남성과 여성의 가입 조건이 다른 골드 스푼의 소개 페이지(사진: 앱스토어 캡쳐).

가입 조건이 까다롭기로 유명한 소개팅 앱도 있다. 소개팅 앱 ‘골드 스푼’은 ‘자격을 갖춘 남녀의 소개팅’을 슬로건으로 내걸고 있다. 남성의 경우 외제차를 보유하거나 전문직(의료인, 법조인, 5급 공무원)에 종사해야만 가입을 할 수 있다. 그뿐만 아니라 연 소득 7000만 원 이상, 강남 3구에 거주 중 하나의 자격을 갖춰야 한다.

반면 여성의 경우 남성의 까다로운 가입 조건과는 달리 ‘외모’가 자격 조건이다. 프로필 사진을 올려 아만다와 마찬가지로 3점 이상의 점수를 받으면 가입이 가능하다. 골드스푼 관계자는 “20,30대 남녀에게 이성을 선택하는 기준을 조사한 결과 여성은 남성의 경제력을, 남성은 여성의 외모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다”며 “사용자들의 의견을 반영해 가입 기준을 선정한다”고 말했다. 동명대학교 김정남 교수(상담심리학과)는 “상대방의 등급을 평가하는 과정에서 이용자는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게 될 수 있다”며 “소개팅 앱의 발달로 자본주의, 외모지상주의가 일어난다면 건강한 인간관계를 맺기 힘들어 진다”고 했다.

소개팅 앱을 이용한 범죄도 잇따라 증가하고 있다. 지난 9월 소개팅 앱에서 자신을 치과의사라고 속이고 여성을 유인해 2200여만 원을 편취한 30대 남성이 집행유예 선고를 받았다. 또한 지난해 11월 서울 관악구에서 이 모(남) 씨가 소개팅 앱으로 알게 된 최 씨를 성폭행 하려다 최 씨가 저항하자 흉기로 찌른 사건도 있다.

그럼에도 소개팅 앱이 큰 인기를 끄는 것은 쉽고 빠르게 만날 수 있는 사회적 공간의 부재 때문이다. 지인의 지인, 친구의 친구 등 우리 사회는 모두 관계로 얽혀있다. 진정 ‘남’을 찾기란 쉽지 않다. 그물망처럼 얽힌 관계에서 사람들은 ‘남’을 찾기 위해 소개팅 어플을 자연스럽게 찾게 된다.

쉽고 빠르게 인간관계를 맺고, 나와 맞지 않는다면 부담 없이 관계를 끊어낼 수 있는 것이 바로 소개팅 앱의 가장 큰 매력이다. 외모와 스펙에 취중 하는 서비스 및 허술한 개인 정보 보호 시스템을 개선하기 위해 각 소개팅 앱 제작사의 노력이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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