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창희 변리사의 특별한 특허 이야기] 코로나19 백신•치료제 개발은 결국 '특허'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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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창희 변리사의 특별한 특허 이야기] 코로나19 백신•치료제 개발은 결국 '특허' 전쟁
  • 박창희
  • 승인 2020.05.23 14:5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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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 제약회사는 코로나 백신과 치료제 개발 전쟁 중
코로나19 치료제는 '제2의약용도' 특허를 누가 먼저 받느냐의 싸움
가장 효과 있는 치료제 개발보다 효과는 적당해도 가장 빠르게 개발하는 게 급선무
박창희 변리사는 서울대 화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에서 이학석사와 이학박사를 취득했으며, 현재 특허법인 플러스 대표 변리사, 카이트엔젤클럽 부회장, 질병관리본부 국가병원체 자원은행 심의위원 등을 맡고 있습니다. 화학 바이오 분야 전문 변리사로서, 반도체, 배터리, 디스플레이 등 전자재료와 신약분야 등에 대한 특허 출원, 특허전략수립, 기술사업화 컨설팅 등의 업무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박창희 변리사는 독자들이 어렵다고 생각하는 테크놀로지 관련 특허 이야기를 우리 생활 주변 소재와 연결하여 쉽게 전달해 드릴 예정입니다.
박창희 변리사
박창희 변리사

코로나19가 전 세계에서 맹위를 떨치자, 빨리 이 사태가 끝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백신과 치료제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크다. 그러다 보니, 의료 분야나 신약 관련 분야 전공자가 아니라도 최근에는 누구나 바이러스 치료제로 ‘렘데시비르’, ‘클로로퀸’ 등이 유력하다는 치료제 후보의 이름까지도 알게 됐다.

우리 일반인이 특정 질병의 이런 치료제 이름을 알았던 사례는 과거에는 별로 없는 듯하다. 렘데시비르는 코로나19와 유사한 바이러스인 에볼라 치료제로 개발된 것이고, 클로로퀸은 모기라는 원충(원인이 되는 곤충)이 옮기는 감염병으로 바이러스 전염병과는 거리가 좀 있는 말라리아 질환에 사용되는 치료제다.

렘데시비르는 미국의 유명한 신약개발 제약사인 ‘길리어드 사(社)’의 제품으로 에볼라 치료제로 임상이 진행되다가 코로나19 치료제가 될 가능성이 있어서 전 세계에서 임상이 진행되고 있는 코로나19 치료제 후보다. 길리어드 사는 과거 신종플루 치료제로 사용되다 최근에는 독감 치료제로 처방되고 있는 ‘타미플로’를 개발한 글로벌 제약사다.

렘데시비르는 길리어드 사에 의하여 전 세계 주요 국가 특허청에 출원되어 특허등록된 상태다. 한국특허를 기준으로 보면, 렘데시비르 관련 '특허 청구 범위'(특허권 보호를 받는 범위를 적어 놓은 항목으로 1항, 2항과 같이 번호를 붙여 나열됨) '청구항 1항'은 화합물 자체의 특허, 즉 ‘물질특허'이고, '청구항 2항'은 그 물질특허 화합물을 기반으로 만든 에볼라 바이러스 감염 및 마르부르크 바이러스 감염 치료를 위한 제약 조성물(곧 치료제)로 보호받고 있다.

즉, 이 특허의 청구항 1항은 렘데르시비르 화합물을 타인이 어떤 용도로든 생산, 사용, 양도를 못하게 제한하는 물질특허 권리이고, 청구항 2항은 타인이 에볼라 바이러스 치료제 용도로 렘데르시비르를 생산, 사용, 양도할 수 없는 의약용도 특허권이라고 한다. 

길리어드 사의 렘데시비르 화합물의 화학구조(사진: 자체 제작)
길리어드 사의 렘데시비르 화합물의 화학구조(사진: 자체 제작)

길리어드 사 특허 청구항 2항을 기준으로 보면, 렘데시비르가 에볼라 바이러스 감염의 치료용도에 한한 권리이니, 에볼라 바이러스와 다른 바이러스인 코로나19 바이러스의 치료제로서 렘데시비르가 이 청구항 2항으로 특허를 보호받을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을 가질 수 있다. 그러나 길리어드 사는 이미 청구항 1항에서 질병의 치료용도와 무관하게 렘데시비르 화합물 자체를 물질특허로 보호받고 있으니, 그런 의문은 별로 의미가 없다. 즉, 렘데시비르가 코로나19에 효과가 있다면, 길리어드 사의 청구항 1항 물질특허 권리로 치료제로서도 특허권이 보호받을 수 있다는 의미다.

이런 이유로 신약개발을 위해서, 신약을 개발하는 기업은 물질특허를 우선으로 받으려고 노력한다. 왜냐하면, 신약개발 회사는 자신이 개발하는 신약이 물질특허 없이 의약용도 특허로만 특허권을 보호받았다면, 그 신약이 특허 보호 대상인 치료 대상 질병 이외의 다른 질병에 효과가 있어서 출시돼도 기존 의약용도 특허권으로 보호를 받지 못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제약회사가 이미 발매하고 있는 의약에 대해 기존 용도와 다른 새로운 의약용도를 발견하여 시판에 이르게 된다면, 그 제약사 입장에서는 적은 투자만으로도 어마어마한 이익을 얻게 된다. 이렇듯 이미 알려져 있는 물질을 다른 질병의 의약 용도로 특허를 받고자 하는 발명을 특허분야에서는 ‘제2의약용도발명’이라고 하며, 의약 연구 분야에서는 ‘적응증 확장 연구’, 또는 ‘약물 재창출(drug repositioning) 연구’라고 부른다.

신약 재창출로 시장에 이름을 떨친 약물 사례는 화이자에 의해 협심증 치료제로 개발됐다가 우연히 발견된 부작용을 통하여 글로벌 블록버스터가 된 남성 발기부전 치료제인 ‘비아그라’가 대표적이다. 화이자는 이미 비아그라 성분인 실데나필이라는 화합물의 물질특허와 협심증 치료제의 용도로 의약용도 특허를 모두 갖고 있었다. 화이자는 실데나필의 협심증 용도 임상 과정에서 부작용으로 남성의 발기부전에도 비아그라가 효과가 있음을 알게됐다. 화이자는 즉시 비아그라의 새로운 의약용도, 즉 남성의 발기부전 치료제라는 ‘제2의약용도 발명'으로 전 세계에 새로 특허출원을 했다.

그런데 의약용도 발명 시 요구하는 엄격한 특허명세서 작성 요건 또는 용도에 대한 진보성 결여를 이유로 대부분 국가에서 비아그라가 특허 취득에 실패했거나 특허 취득 후 무효가 되고 말았다. 결국, 발기부전 치료제로 제2의약용도 특허를 확보하지 못한 화이자는 실데나필 화합물 자체로 보호받을 수 있는 물질특허가 만료된 2012년까지만 비아그라를 독점적으로 판매할 수 있었고, 그 이후에는 많은 제약사들이 동일 성분의 발기부전 치료약을 발매할 수 있게 됐다.

특허권은 출원일로부터 20년 동안 보호받게 되고, 새로운 용도, 즉 제2의약용도발명으로 다시 특허권을 받게 되면, 그 새로운 용도의 출원일로부터 다시 20년 동안 보호를 받게 되니, 그 특허권을 가진 회사의 가치는 어마어마하게 올라가게 된다.

파이자 사의 실데나필(비아그라) 화합물의 화학구조(사진: 자체제작)
화이자 사의 실데나필(비아그라) 화합물의 화학구조(사진: 자체제작)

코로나19 치료제를 아무런 기반(물질) 없이 개발하여 임상승인을 받고, 시판하기까진 너무 오랜 시간이 걸리고, 비용도 어마어마하게 많이 들어가게 된다. 그래서 시간도 절약하고 투자를 적게 할 수 있다는 이유로, 전 세계 많은 제약회사와 신약개발 연구기관들은 코로나19 치료제 개발을 위해 자신들이 시판 또는 개발하고 있는 여러 약물을 시험관 수준에서부터 임상실험까지 테스트하고 있는데, 이들 모두 역시 약물 재창출 연구인 것이다.

현재의 코로나19 상황이 너무 급박하기 때문에, 지금은 누가 제일 좋은 효과가 나타나는 약을 찾아내는가가 아니라, 누가 더 빨리 적절한 치료제를 찾아내는가가 승리의 관건인 상황임을 부정할 수 없다. 이들 약물 재창출 연구에 의하여 찾아낸 약물이 코로나19 치료제로 어느 정도 효과만 입증되면, 각국은 이 약물을 코로나19 치료제로 사용할 수 있도록 긴급 사용 승인을 할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승인된 그 약물이 제2의약용도 특허로 보호받을 수 있다면, 해당 기업으로선 금상첨화일 것이다. 우리 제약기업들도 이 전쟁에 뛰어들어 있는데, 우리 기업이 코로나19 치료제로의 약물 재창출 연구에 성공하고, 코로나19 치료제의 제2의약용도 특허를 획득했으면 하는 희망이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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