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도심에 숨은 시골, 안창 호랭이 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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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도심에 숨은 시골, 안창 호랭이 마을
  • 취재기자 원영준
  • 승인 2019.10.16 1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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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화도 색이 변하고, 오리고기 맛보러 오던 사람들 발길도 끊기고...
주민들은 재개발보다 주거 환경 개선되길 원해
안창마을 입구에서 조금 올라가다보면 커다란 호랑이 사진이 이 마을 별칭이 호랭이 마을임을 알려준다(사진: 취재기자 원영준).
안창마을 입구에서 조금 올라가다보면 커다란 호랑이 사진이 이 마을 별칭이 된 호랭이 마을임을 알려준다(사진: 취재기자 원영준).

부산에도 호랑이가 살았다면 믿을 사람이 몇이나 될까. 그러나 아주 오랜 옛날 부산에도 호랑이가 출몰했고, 그래서 마을 이름에 호랑이가 붙은 마을이 있다. 부산 동구의 범일동(凡一洞)과 범천동(凡川洞)이 바로 그곳이며, 두 지명에 들어간 ‘범’은 호랑이를 한자로 표기한 것이다. 특히 범일동은 일제 강점기 때 일본이 범천1리와 범천2리를 통합하면서 범일동이라 부르기 시작했다. 범일동에는 범내 또는 호계천이라 불리는 냇가의 발원지가 있으며, 부산의 마지막 달동네인 ‘안창마을’이 있다.

안창마을은 산골짜기 안의 작은 분지 마을이라는 뜻의 ‘안골마을’이라 불리기도 했다. 또 안창마을은 ‘도심 속의 시골’이라 불리기도 한다. 서면과 부산역 사이에 있어서 두 곳에서 차로 10여 분이면 갈 수 있다. 안창마을의 판자촌 모습은 주위의 아파트와 번화가의 빌딩과 묘한 대조를 이룬다.

능선 따라 파란 지붕이 줄지어 있는 부산 범일동 안쪽 도시 속의 시골, 안창마을 전경(사진: 취재기자 원영준).
능선 따라 파란 지붕이 줄지어 있는 부산 범일동 안쪽 도시 속의 시골, 안창마을 전경(사진: 취재기자 원영준).

마을 주민 송숙희(86) 씨는 “처음 마을이 생긴 것은 6·25 전쟁 때 몰려든 피난민들 때문”이라며 “그 후 산업화로 인해 도시로 사람들이 많이 몰려 들면서 이곳 마을 주민들이 많이 늘었다”고 말했다. 또 송 씨는 “옛날 조선방직 앞(지금의 조방앞)에 공장들이 많아 사람들이 안창마을과 범일동에 살았는데, 나중에 공장들이 문을 닫자 사람들도 대부분 빠져 나갔다. 마을에 전기와 수도가 들어온 것도 80년대 후반이다. 지금은 정화조 공사가 한창”이라고 덧붙였다.

안창마을 곳곳에서는 정화조 공사가 한창 진행 중이다(사진: 취재기자 원영준).
안창마을 곳곳에서는 정화조 공사가 한창 진행 중이다(사진: 취재기자 원영준).

많은 사람들이 안창마을을 오리고기가 유명한 곳으로 기억하고 있다. 마을 특성상 산골짜기 산비탈에 마을이 있어서 농사 짓기에는 지리조건이 좋지 않기 때문에 생계가 어려운 마을 사람들이 하나둘 오리고기 장사를 시작한 게 그들의 주된 생계수단이 됐다. 마을 주민 김덕조(82) 씨는 “어디서 오리고기를 받아와서는 자신들 건물에서 구워 팔았다”고 했다. 하지만 지금은 예전만큼 손님들이 많이 오지는 않는다고 한다. 김 씨는 “오리고기 집이 한두 개 생겨서 입소문이 났고, 마을에 오리고기집이 가장 많을 때는 36개까지 있었다. 요즘 가게가 줄기도 했고 손님들도 옛날보다 많이 줄었다”고 말했다. 김 씨는 관광객들도 많이 줄었고 아직 남아있는 가게들을 찾는 사람들은 주로 등산객이나 단체 손님들이라고 전했다.

하지만 안창마을이 계속 낙후된 상태로 방치된 것은 아니다. 안창마을 주민들은 외부인의 유입을 늘리기 위해 주민들의 자발적인 아이디어로 마을이름을 ‘호랭이마을’로 바꾸고 벽화를 그려 조금이나마 마을을 바꾸려고 노력했다. 마을 주민들에 의하면, 이곳의 벽화들은 정부로부터 지원금을 받아 2007년 6월부터 안창마을 공공미술 프로젝트를 통해 그려진 것이라 한다. 하지만 지금은 벽화들이 낡고 페인트가 벗겨져 관리가 전혀 되지 않고 방치된 느낌을 준다. 인근 동의대학교 학생들의 자원봉사로 많은 벽화가 가끔은 보수, 관리되고 있지만, 군데군데 아직도 관리가 필요한 벽화들이 오가는 사람들의 마음을 안타깝게 한다. 그리고 비탈진 길을 걸어 마을 위로 계속 올라가면, 사람들은 부산 도심지 중심에 아직도 이런 시골스런 곳이 있다는 사실에 놀란다.

본래 모습을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훼손된 벽화의 글자 일부. 관리가 필요해 보인다(사진: 취재기자 원영준).
본래 모습을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훼손된 벽화의 글자 일부. 관리가 필요해 보인다(사진: 취재기자 원영준).
안창마을은 왼쪽 사진처럼 골목과 골목이 많다. 그런데 오른쪽 사진처럼 골목 중간에 뜻밖의 신호등이 있다. 이 신호등은 길이 좁은 탓에 마을 위에서 급하게 내려오는 차를 멈추게 하여 사고를 예방하기 위한 것이다(사진: 취재기자 원영준).
안창마을은 왼쪽 사진처럼 골목이 많다. 그런데 오른쪽 사진처럼 골목 중간에 뜻밖의 신호등이 있다. 이 신호등은 길이 좁은 탓에 마을 위에서 급하게 내려오는 차를 멈추게 하여 사고를 예방하기 위한 것이다(사진: 취재기자 원영준).

마을 주민들에 의하면, 2011년 ‘행복마을 만들기’ 사업이 진행됐고, ‘오색빛깔 천연공방’을 만들어 다양한 예술 사업이 진행됐지만, 마을 주민 대부분이 노인이어서 사업이 활성화되지 못했다고 한다. 안창마을 예술상상마을 사업도 진행됐는데, 감천문화마을 같이 성공적이지 못했다. 그 이유는 마을 주민들이 보여주기 식의 개발보다는 주민들의 생활환경을 바꿔달라며 사업을 반대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마을 주민 이규식(80) 씨는 “재개발이 된다는 말이 있었는데 주민들이 안한다고 반대했다. 마을을 외지 다른 사람들 와서 살라고 바꾸는 것보다 지금 주민들이 사는 집부터 바꿔주는 것이 좋다고 마을 사람들은 생각하고 있다. 그 이후로 다시 재개발한다는 말없이 시간이 많이 지났으니, 재개발은 안할 것 같다”고 덧붙였다. 또 다른 주민 조광일(77) 씨는 “재개발돼서 외부인이 들어오면 정신없고 시끄러울 것이 뻔하다. 그리고 여기 사람들이 다 할머니, 할아버진데 재개발되면 이 사람들이 어디 가서 살겠냐”고 말했다.

안창마을의 행복마을만들기 시업으로 조성된 오색빛깔공방. 지금은 이곳에 사람들의 발길이 끊긴 듯하다(사진: 취재기자 원영준).
안창마을의 행복마을만들기 사업으로 조성된 오색빛깔공방. 지금은 이곳에 사람들의 발길이 끊긴 듯하다(사진: 취재기자 원영준).

마을 주민들의 바람대로 안창마을은 정부의 도시재생사업의 일환인 ‘새뜰사업’에 선정됐다. 안창마을은 2016년 한차례 새뜰사업 대상에 선정된 적이 있어 몇몇 집은 이미 수리가 된 상태다. 이번에 다시 추진되는 새뜰사업은 주민의 기본적인 생활수준 보장을 위해 주거환경을 개선하는 정부 도시재생사업이며, 주로 주거환경이 아주 열악한 곳이 그 대상이다. 부산 동구청은 2016년에 안창마을이 새뜰사업에 선정됐을 때 기초생활수급자에게는 수리비 100%를, 그렇지 않은 주민들에게는 수리비 50%를 지원했다. 그러나 일부 주민은 이 50% 비용마저 부담스러워하면서 사업을 포기했고, 이번에 당시 제외된 주민들을 위해 새뜰사업을 재신청했다고 동구청 관계자는 밝혔다.

안창마을 바로 뒤편에는 동의대학교 건물이 있다. 현대와 옛날의 대조가 묘하게 보인다(사진: 취재기자 원영준).
안창마을 바로 뒤편에는 동의대학교 건물이 있다. 현대와 옛날의 대조가 묘한 느낌을 준다(사진: 취재기자 원영준).

금방이라도 부서질 것만 같은 지붕들이 아무렇게나 늘어선 안창마을은 호랑이가 출몰했다는 전설을 지니고 퇴색돼 가고 있다. 판자촌 곳곳의 벽화들만이 덕지덕지 붙은 안창마을은 그렇게 세월을 견디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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