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 유학생 22만 명 시대...한국어 몰라 이방인 못 벗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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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인 유학생 22만 명 시대...한국어 몰라 이방인 못 벗어나
  • 취재기자 김해림
  • 승인 2019.10.15 1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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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업은 한국 친구 노트 빌려 유학생활 근근이 생존
한국 친구 사귀려다 숙어, 은어 몰라 뒷걸음질 일쑤

지난 5월, 대학교 캠퍼스 안을 지나가던 예멘 출신 외국인 유학생 압둘라(26) 씨는 교내 게시판에 부착된 포스터를 보고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무언가 학생들에게 전달하는 메시지가 적혀 있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게시판에는 일상생활에서 한국어 사용이 크게 부족함이 없는 압둘라 씨가 이해하기에는 어려운 용어들로 적혀있었기 때문이다. 압둘라 씨는 “학교 포스터에 적힌 한글을 30%밖에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교내 동아리 체육대회 행사 안내문을 본 우즈베키스탄 유학생 후스닛딘 씨는 “게시판에 적힌 ‘우천 시 취소’라는 말을 처음 봐서 이해를 못 한 적이 있다. 한국 친구들에게 물어서 겨우 뜻을 알게됐다. 포스터나 게시판 글은 유독 읽기 힘들다”고 말했다.

많은 외국인 유학생들이 한글 포스터에 적힌 어려운 용어, 수업이나 동아리 활동 내에서 쓰이는 한국 말을 이해하지 못해서 고통을 받는다(사진: pixabay 무료 이미지).
많은 외국인 유학생들이 한글 포스터에 적힌 어려운 용어, 수업이나 동아리 활동 내에서 쓰이는 한국 말을 이해하지 못해서 고통을 받는다(사진: pixabay 무료 이미지).

교육통계서비스(KESS)에 따르면, 2019년 국내 대학의 학사 학위 과정, 비학위 과정을 밟고 있는 외국인 유학생 전체 숫자가 22만 명을 넘어섰다. 인도네시아, 중국, 말레이시아, 베트남, 몽골 등 다양한 국가에서 한국으로 공부하러 오고 있기 때문이다.

서울은 물론이고 이제 부산의 대학교에서도 외국인 학생을 쉽게 볼 수 있다. 대학알리미 통계에 따르면, 올해를 기준으로 고려대와 연세대는 4000명 이상의 외국인 유학생이 입학했다. 부산 지역 대학교의 경우, 부산대학교에 입학한 외국인 유학생 수는 1080명, 부경대 외국인 유학생 수는 1213명, 경성대는 1562명이다. 부산의 한 대학교 국제교류 관계자는 “외국인 학생들이 K-pop의 영향으로 한국에 관심을 가져서 오기도 하지만, 요즘은 등록금 동결에 따른 대학 예산 부족으로 외국인 학생을 유치하는 원인도 있다”고 대답했다.

많은 외국인 유학생들이 어느 정도 한국어를 배우고 오지만 완벽한 한국어 능력을 갖추지 못한 채로 한국 대학교에 입학한다. 외국인 유학생들도 교내 동아리 회원 모집, 각종 취업 교실 안내, 학교 축제 관련 포스터에 관심이 많다. 그러나 유독 구어체, 한국식 줄임말, 숙어가 많아서 해독에 어려움이 많다. 그로 인해 외국인 유학생들은 강의실 밖을 벗어나면 한국 학생들과 어울릴 기회를 거의 갖지 못하고 소외되고 있다.

중국 출신 조혜(25) 씨는 한국에서 교환학생 신분으로 한 학기를 보냈다. 조혜 씨는 기숙사 안 게시판에는 한글, 중국어, 영어로 적힌 게시물이 있어서 기숙사 점호와 교내 식당 공지에 대한 정보를 얻는 데는 부족함이 없었다. 그런데 그녀는 동아리 활동을 해보고 싶었지만 시도조차 해 볼 수 없었다. 조혜 씨는 “동아리 활동으로 쉽게 한국 학생들과 어울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한국인들이 쓰는 용어는 너무 복잡해서 언제 동아리 모집이 있는지도 모르고 게시판을 지나치게 됐다”고 말했다.

조혜 씨는 수업을 들을 때 같은 반 한국인 학생 친구에게 필기 노트를 빌려 시험공부를 했다. 한국어를 많이 배워서 한국에 교환학생으로 오기는 했지만 대학교 강의를 듣기에는 자신의 한국어가 부족했기 때문이다. 조혜 씨는 “강의 중 알아들을 수 없는 전공 용어가 나오면 알아 듣기 어려워서 한국인 친구 노트를 꼭 빌려서 봐야 했다”고 말했다. 조혜 씨는 빌린 노트에 나온 한글 단어의 한자를 찾아보고 그뜻을 이해하는 방식으로 공부했다. 그녀는 “‘외교’라는 단어는 ‘外交’라는 한자어를 찾아서 이해하는 식으로 공부하려니 힘이 몇 배로 더 들었다”고 전했다.

또 다른 중국 유학생인 심린(23) 씨는 전공 수업을 듣다가 헷갈리는 단어가 많아 공생하고 있다. 심린 씨는 “주의(注意)와 주의(主義)처럼 같은 글자지만 다른 뜻을 가진 한국 단어는 한자로 찾아서 뜻을 풀었다”며 “거의 대부분 전공 용어를 한자로 찾아보면서 공부했다”고 말했다.

부산 경성대학교 총학생회는 올해 공약으로 ‘외국인 학생들을 위한 영어 포스터(안내 표지판) 제작’을 내세웠다. 경성대 부총학생회장은 “외국인 학생을 위한 복지 공약으로 각종 학생회 안내 게시물을 영어로 제작하려고 했으나, 예산 부족으로 실행되지 못했다”고 대답했다.

하지만 외국인 유학생들이 한국에서 공부하러 왔다면 더 나은 한국어 실력을 갖추고 들어오는 게 맞지 않느냐는 의견도 만만치 않다. 부산에서 대학교를 다니고 있는 박혜빈(23) 씨는 “우리나라 학생이 미국 유학 갈 때 토플 시험 점수로 완벽한 언어 능력을 갖추어야 입학이 허용되는 것처럼, 이제는 외국 학생이 우리나라에 유학 올 때는 고득점의 한국어 능력 시험 성적을 요구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어 소통에 문제를 느끼는 외국 유학생들은 자연스럽게 한국 학생들과의 교류를 꺼리는 현상이 나타나기도 한다. 우즈베키스탄의 후스닛딘 씨는 한국인 학생들이 주로 말하는 유행어와 줄임말을 이해하지 못해 한국 친구를 사귀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후스닛딘 씨는 “한국에 오기 전에는 한국 친구를 사귀어서 재밌게 얘기하는 꿈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어울리기 위해 다가가도 줄임말 같은 모르는 한국말을 쓰기 때문에 이해를 못 해서 친해지기 어려웠다”며 “엄근진(엄격, 근엄, 진지의 합성어), 학사(학과 사무실), 단톡방(단체 카톡방) 같은 말이 연이어 나오면 거의 대화가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경성대 총학생회는 외국인 학생들과 한국인 학생들의 화합과 소통을 위해 축제 때 플리마켓 외국인 학생 부스를 설치하고 외국 음식을 한국 학생들에게 제공하는 행사를 실시해서 좋은 반응을 얻었다.

계명대는 올해를 ‘외국인 교수와 유학생의 학기’로 지정했다. 현재 계명대는 2133명의 외국인 유학생과, 교환교수나 전임교수를 포함한 1294명의 외국인 교수가 있다. 계명대는 이들 외국인들을 위해 한글 꾸미기 대회, 한국어 퀴즈 대회, 자국 음식 만들기 체험 등 다양한 행사를 수시로 마련하고 있다. 계명대 국제교류 담당자는 “외국인 학생과 교수가 한국인 학생과 교수들과 함께 동질감을 느끼고 소통하기 위해 다양한 행사를 주최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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