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방불교의 시조 김해 장유사, 인도 왕자 ‘장유’가 세운 설화 속 사찰
상태바
남방불교의 시조 김해 장유사, 인도 왕자 ‘장유’가 세운 설화 속 사찰
  • 취재기자 안우주
  • 승인 2019.10.24 16:0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사찰 설립연도는 고구려 북방불교 전래보다 앞서...아직 학계 입증은 안돼
노무현 대통령이 고시공부하던 곳으로 유명세
내방객들, “작지만 아늑하고 포근한 사찰”

경남 김해시 대청동. 장유폭포가 시작되는 곳에서 차를 타고 대청계곡을 따라가다 보면, 오래된 비석 두 개가 나란히 세워져있다. 장유사(長遊寺)의 시작을 알리는 표시다. 포장된 도로를 따라 가파른 오르막을 올라간다. 길을 올라가다보면 등산복을 입고 열심히 걷는 사람들이 보인다. 구불구불한 커브 길을 몇 번 지나면 햇빛에 반사돼 금빛으로 빛나는 거대한 불상이 나타난다. 이건 장유사에 도착했다는 표시다. 차에 내려 절의 입구로 천천히 걸어간다.

사찰 전경이 한 눈에 들어오는 장유사 모습(사진: 취재기자 안우주).
사찰 전경이 한 눈에 들어오는 장유사 모습(사진: 취재기자 안우주).

장유사에는 사천왕문, 청동지장보살대불, 대웅전, 삼성각, 요사채, 장유화상 사리탑이 있다. 이중 장유화상 사리탑을 제외하고 다른 건물은 최근에 지었다. 한국전쟁으로 장유사도 크게 파손됐는데, 1980년대 화엄스님이 중창불사를 시작해 지금의 장유사 모습을 갖추게 됐다.

처음은 절의 입구 사천왕문이다. 사천왕문은 1998년에 중수됐다. 건물은 두 개의 층으로 이루어져있다. 1층은 사천왕문이고, 문 안에는 불법을 수호하는 사천왕이 봉안돼있다. 2층은 종루로 사용한다. 일반인은 2층에 올라갈 수 없다.

장유사 사천왕문 전면(왼쪽)과 후면(오른쪽)(사진: 취재기자 안우주).
장유사 사천왕문 전면(왼쪽)과 후면(오른쪽)(사진: 취재기자 안우주).

청동지장보살대불은 사천왕문 정문 방향 오른쪽에 있다. 마치 불상이 장유의 경치를 감상하는 느낌을 준다. 2011년에 봉안됐다.

장유사 사천왕문 전면(왼쪽)과 후면(오른쪽)(사진: 취재기자 안우주).
장유사 사천왕문 전면(왼쪽)과 후면(오른쪽)(사진: 취재기자 안우주).

대웅전은 장유사 맨 앞에 위치한 가장 긴 건물이다. 1994년에 중창했으며 대웅전이 되기 전에 인법당이 있었다. 석가모니불을 주존으로 한 삼존불이 안에 있다. 지붕 위의 용마루가 특징이다. 사찰을 자주 간다는 주부 채모(53, 부산 진구) 씨는 장유사에 대해 “사찰 전체 느낌이 온화하고 특히 대웅전 용마루가 인상적”이라고 말했다.

장유사 대웅전과 멋을 더해주는 대웅전 용마루의 멋진 모습(사진: 취재기자 안우주).
장유사 대웅전과 멋을 더해주는 대웅전 용마루의 멋진 모습(사진: 취재기자 안우주).

삼성각은 대웅전 오른쪽 언덕에 있다. 1994년에 지었고 장유사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있다. 내부에는 산신탱화, 독성탱화, 칠성탱화, 장유화상의 진영이 있다.

불모산 품에 안긴 장유사 삼성각(사진: 취재기자 안우주).
불모산 품에 안긴 장유사 삼성각(사진: 취재기자 안우주).

삼성각에서 내려와 오른쪽을 보면 요사채 두 채가 있다. 요사채는 승려들이 거주하는 집을 부르는 총칭이다. 하나는 행선실로 신도들을 맞이하는 공간이고, 다른 하나는 원주실로 사찰의 관리사무소 역할을 한다.

■ 일제 강점기의 흔적이 남아있는 장유화상 사리탑

장유화상 사리탑은 대웅전 뒤쪽 언덕에 있다. 사리탑은 1983년에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31호로 등록됐다. 안내판 내용에 따르면, 사리탑은 가락국 수로왕의 처남 장유화상의 사리를 보관하고 있는 석조물이다. 또 가락국 제8대 질지왕 때 장유암 재건 당시 세워졌다고 전한다. 임진왜란 때 왜구들이 탑을 도굴해 부장품을 훔쳐갔으며 그 뒤 파손된 탑을 복원했다. 지금은 석물만 남아있다.

장유화상 사리탑이 난간에 둘러싸여있다(사진: 취재기자 안우주).
장유화상 사리탑이 난간에 둘러싸여있다(사진: 취재기자 안우주).

사리탑은 팔각원당형이며 방형(네모모양)의 지대석 위에 연화대석을 놓고 그 위에 탑신을 얹었다. 비교적 양호한 상태이나 상륜 일부는 결실된 것을 보수했다. 제작 수법으로 보아 고려 말이나 조선 초의 작품으로 보인다.

사리탑 주변에는 난간이 있다. 난간이 설치된 이유를 묻자, 장유사 주지 해공스님은 “일제시대인 1915년과 1935년에 장유사와 사리탑을 복원했다. 석축의 형태와 난간을 설치한 것은 일제시대 형태다. 전통적 복원을 하자고 예산을 올렸다”고 답했다.

사리탑 왼쪽에는 비석이 세워져있다. 비석의 명칭은 가락국사 장유화상 기적비로 1915년 선포담 스님이 장유사와 사리탑을 보수한 후 세웠다고 한다. 비석은 장유화상이 불모산에 사찰을 개창한 뜻을 기리고 있다.

가락국사 장유화상 기적비(왼쪽)와 장유화상 진영(오른쪽)의 모습(사진: 취재기자 안우주).
가락국사 장유화상 기적비(왼쪽)와 장유화상 진영(오른쪽)의 모습(사진: 취재기자 안우주).

■ 가야에 남방불교 전래한 아유타국 왕자...장유화상

사천왕문을 지나 대웅전에 도달하기 전에 ‘장유사 연혁’이라고 표기되어 있는 안내판이 있다. 내용 중 강조된 부분은 이렇다. 우리나라 최초 남방 불교전래설을 입증하는 사찰로 AD 48년 인도 아유타국의 태자인 장유(長遊)화상이 가락국 김수로왕의 왕후가 된 누이 허황옥과 이곳으로 와서 최초로 창건했다고 한다.

공식적인 우리나라 최초 불교 공인 연도는 372년으로 고구려 제17대 소수림왕 때다. 만약 장유사 안내판에 적힌 내용이 입증된다면 불교 전래는 약 300년 당겨진다. 하지만 장유사와 관련된 몇몇 인터넷 자료를 찾아봐도 안내판 내용을 입증하는 역사학계의 주장이나 의견은 찾아볼 수 없다.

남방불교란 남인도, 스리랑카, 미얀마, 타이, 인도네시아 등지에 전파된 불교로 중국에 전파된 북방불교와 대립하는 단어다. 남방불교는 개인의 해탈을 강조하고 북방불교는 중생 구제를 강조한다. 남방불교는 소승불교 또는 상좌부불교라고 불리며 북방불교는 대승불교라고 불린다.

설화에서 장유화상은 허황옥의 오빠로 야유타국에서 가야로 넘어와 불교를 최초로 전래한 사람으로 전한다. 하지만 가야사 초반 내용이 담긴 삼국유사 가락국기에서 장유화상의 기록은 없다. 장유화상의 기록은 1708년 명월사에 세워진 명월사 사적비에 처음 등장하고 은하사 취운루 중수기와 같은 조선 후기 기록에 있다. 또 1915년에 세운 장유화상 기적비에도 기록돼있다.

기록이 조선 후기에 등장하고 관련된 유물이나 자료가 부족하기 때문에 역사학계에선 사실이 아닌 설화나 전설로 여기고 있다. 장유사 주지 해공스님은 이에 대해 “지금 우리나라는 실존주의 역사학을 채택했다. 가야 문화는 2000년 전 역사이기 때문에 근거나 유물이 남아있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다른 각도로 봐야한다. 구전이나 설화도 잘 살펴서 역사에 편입시켜야한다”고 말했다.

장유화상의 장유(長遊)라는 명칭의 유래는 다양하다. 먼저 장유화상이 원래 왕족의 친척이었으나 세상의 부귀를 모두 버리고 이곳에 들어와 오랫동안 수행해 밖에 나가지 않았다는 장유불반(長遊不返)에서 유래됐다는 설이 있다. 또 멀 ‘장(長)’자와 올 ‘유(遊)’자로 구성돼 있어서 멀리서 오신 분이라는 뜻에서 유래했다는 설도 있다.

■ 불모산 용지봉의 아름다운 전망대 장유사

장유사는 최근에 만들어 사찰의 형태를 지니고 있지만 실제로 가보면 크기도 작고 절 건물도 몇 채 없다. 다시 말해 볼거리가 없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도 사찰의 매력을 찾아내는 사람들이 있다. 장유사에 처음 온 이지현(52, 경남 김해시) 씨는 장유사에 대해 “포근하다. 산에 둘러싸여서 따뜻하고 아늑하다. 한 번 더 오고 싶은 장소”라고 말했다. 또 중학생 배모(14, 경남 김해시) 군은 장유사에 대해 "상쾌하다"고 말했다.

탁 트인 경치에 김해 율하동이 선명하게 보인다(사진: 취재기자 안우주).
탁 트인 경치에 김해 율하동이 선명하게 보인다(사진: 취재기자 안우주).

장유사는 경남 김해시 대청동 불모산 용지봉 중턱에 있다. 차량 없이 올라오기가 쉽지 않다. 가족과 함께 장유사에 온 김용남(78, 경남 김해시) 씨는 한 달에 두 번은 장유사에 방문한다. 어떻게 이렇게 자주 오냐는 질문에 “마음에서 절에 오고 싶다고 한다. 그래서 한 달에 두 번 정도 방문한다. 집에서 가까워서 자주 오는 편”이라고 말했다.

불모산의 불모(佛母)라는 뜻은 불교에서 세 가지 의미가 있다. 첫 번째는 부처의 생모인 마야 왕비, 두 번째는 불상을 만드는 사람, 세 번째는 불교가 처음 시작된 곳이다. 불교에서 모(母)는 생명의 태동, 근원, 시초를 말한다. 불모산 인근 사찰은 장유화상과 관련이 깊다.

장유사는 산에 있는 사찰이다. 그래서 어려운 길을 뚫고 올라온 사람들에게 멋진 경관을 선물한다. 사천왕문을 지나 절 바깥쪽을 바라보면 율하동이 한눈에 보인다. 장광윤(52, 경남 김해시) 씨는 “장유사에 처음 왔지만 앞에 시야도 확 뚫리고 막힘없이 마음도 확 트이는 것 같고 그런 느낌이 좋다”고 말했다. 장유사 관계자의 말에 따르면, 날씨가 좋을 때는 부산 해운대까지 보인다며 부산 방향을 가리켰다.

멋진 경관을 보고 나면 밑을 보자. 난간대에 기와가 하나씩 기대어있다. 기와에는 꽃, 스님 등 예쁜 그림이 그려져 있거나 시가 적혀있다. 장유사 관계자에 따르면, 솜씨 좋은 신도들의 작품이라고 한다.

다양한 불교 그림들이 기와에 그려져 있다(사진: 취재기자 안우주).
다양한 불교 그림들이 기와에 그려져 있다(사진: 취재기자 안우주).

고 노무현 전 대통령도 장유사에서 사법고시공부를 했다고 한다. 장유사는 70년대 초와 80년대 중후반에 고시시험을 준비하는 사람들에게 개방된 적이 있었다. 이때는 사시준비생들이 고시원이라는 개념이 없어서 대부분 절에서 시험 준비를 했다고 한다.

문재인 정부의 국정과제로 가야사 연구복원사업이 진행 중이다. 전설이나 설화로 여겨져 2000년 동안 묻힌 가야 역사가 재조명 될 기회를 얻었다. 해공스님은 “시절이념이란 말이 있다. 때가 됐을 때 해야 한다. 때는 우리를 기다리지 않는다. 분위기가 잡혔을 때 애를 써야 한다. 가야불교 역사도 10년 안에 틀을 잡지 못하면 이런 기회는 다시 안 올 것”이라고 말했다.


관련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