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씨 문중 정성으로 키운 맹종죽숲... 영화 ‘대호’ 촬영지 기장 아홉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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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씨 문중 정성으로 키운 맹종죽숲... 영화 ‘대호’ 촬영지 기장 아홉산
  • 취재기자 강은혜
  • 승인 2019.10.28 1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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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방객, ‘나무가 행복한 숲’이란 모토처럼 품위 있고 고귀한 숲의 자태 매료
귀한 대나무에 철 없는 낙서와 쓰레기 투기는 ‘흠집’

삼국유사에는 신라 48대 경문왕 시절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는 소리가 대나무 숲에서 들렸고, 그 소리를 듣기 싫어한 경문왕이 대나무숲을 모조리 베어 버렸다는 설화가 실려 있다. 당장이라도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동화 속 복두장(幞頭匠, 왕의 감투를 제작하던 기술자)이의 외침 소리가 울려 퍼질 것 같은 착각이 드는 대나무숲이 부산 기장에 있다. 고요한 적막만이 감도는 숲속에는 새가 지저귀는 소리만이 간간이 들리고, 코끝에는 특유의 푸릇한 냄새만이 알알이 박히는 곳, 그곳은 부산 기장군 철마면 아홉산 자락에 위치한 ‘아홉산숲’이다.

아홉산숲은 부산 기장군 철마면 아홉산 자락에 위치해 있다(사진: 네이버 지도).
아홉산숲은 부산 기장군 철마면 아홉산 자락에 위치해 있다(사진: 네이버 지도).

남평 문씨 일가에서 400년 가까이 가꾸고 지켜온 아홉산숲은 1971년 개발제한구역(그린벨트)으로 지정됐고, 뒤이어 상수원보호구역으로도 지정됐다. 때문에 일반인들의 출입이 불가능해졌고, 수많은 생물들이 아홉산숲에 깃들 수 있었다. 반계숙 관리실장은 “현재 숲에 우거진 대나무숲과 금강소나무 보호수 군락이 위치하고 있으며, 산토끼, 고라니, 꿩, 딱따구리, 족제비, 오소리, 반딧불이, 온갖 이끼류, 버섯들이 함께 이웃하며 살아가고 있는 것이 그 증거”라고 설명했다.

아홉산숲에 가기 위해서는 부산역에서 지하철을 타고 동래역에서 하차해야 한다. 이후 반여농산물시장역 2번 출구로 나와 약 10m 이동하면 ‘반여농산물시장역’ 버스정류장이 보인다. 그곳에서 184번 버스를 타고 ‘웅천’ 정류장에서 내려, 안내 표지판을 따라 걸으면 아홉산숲에 도착하게 된다. 차로는 네비게이션에 ‘아홉산숲’이라고 입력하면 된다.

안내책자에 담겨있는 아홉산숲 내부 지도. 지도만 봐도 다양한 나무들과 볼거리가 넘쳐난다(사진: 아홉산숲 제공).
안내책자에 담겨있는 아홉산숲 내부 지도. 지도만 봐도 다양한 나무들과 볼거리가 넘쳐난다(사진: 아홉산숲 제공).

아홉산숲 입구에 도착하면 매표소가 가장 먼저 반긴다. 입장료는 나이에 상관없이 1인당 5000원이며, 유치원생을 대상으로 한 체험 프로그램을 즐기기 위해서는 5000원을 추가로 지불해야 한다. 입장료를 지불하고 나면 계피액을 섞은 천연 모기기피제와 부채를 무료로 대여할 수 있다. 숲이라 모기가 많을 것으로 예상한 관계자의 배려가 엿보인다.

아홉산숲 매표소. 계피액이 섞인 천연 모기기피제와 부채를 무료로 대여해주고 있다(사진: 취재기자 강은혜).
아홉산숲 매표소. 계피액이 섞인 천연 모기기피제와 부채를 무료로 대여해주고 있다(사진: 취재기자 강은혜).

입구의 초입에는 자칫 지나치기 쉬운 숲 시작의 반대 방향에 ‘관미헌(觀癓軒)’이라는 이름의 아름다운 한옥이 있다. 관미헌은 산주(山主)인 일가의 종택(종가가 대대로 사용하는 집)으로 한자로 ‘고사리조차 귀하게 본다’는 뜻을 가진 60여 년 된 한옥이다. 못을 전혀 쓰지 않고 순전히 뒷산의 나무로만 지은 이곳은 지금도 실제 주인이 생활하고 있는 공간이다. 관미헌 앞, ‘구갑죽 마당’에는 우리나라에서 매우 희귀한, 대나무 줄기 마디에 거북등 같은 무늬가 있는 구갑죽과 100년이 넘은 배롱나무를 볼 수 있다. 대학생 임승미(21, 경남 거제시) 씨는 “자연 속에 지어진 옛스러운 한옥이 신비롭고 아름다웠다. 심신산골에 온 듯한 느낌이 든다”고 덧붙였다.

산주인 일가의 종택 관미헌과, 오른쪽 사진이 줄기 마디에 거북등 무늬가 있는 대나무 일종인 구갑죽(사진: 취재기자 강은혜).
산주인 일가의 종택 관미헌과, 오른쪽 사진이 줄기 마디에 거북등 무늬가 있는 대나무 일종인 구갑죽(사진: 취재기자 강은혜).

관미헌 관람 이후, 숲에 발을 들이게 되면 불과 10분이 채 지나지 않은 시점에서 아이들을 위한 숲속 놀이터가 관광객들을 반긴다. 그곳에서는 작은 사이즈의 해먹과 줄타기를 즐길 수 있는 줄 등으로 웃음꽃이 가득 피어있는 아이들의 얼굴을 마주할 수 있다. 또한 놀이터 옆을 포함한 아홉산숲 곳곳에는 자연을 활용한 예쁜 쉼터가 마련돼 있는데, 이들이 즐거운 휴식과 다양한 볼거리를 제공한다. 관광객 최명섭(57) 씨는 “길이 험하지 않아 아이들이 뛰어놀기에 안전할 것 같다. 나중에 우리 애들 데리고 다시 오고 싶다”며 웃었다.

자연을 활용한 숲속 놀이터와 쉼터의 모습. 아이들이 놀이터에서 신나게 놀고 있다(사진: 취재기자 강은혜).
자연을 활용한 숲속 놀이터와 쉼터의 모습. 아이들이 놀이터에서 신나게 놀고 있다(사진: 취재기자 강은혜).

숲속 놀이터를 지나, 주변의 경치에 넋을 잃은 채 길을 따라 걷다 보면 이내 400년을 훌쩍 넘긴 금강소나무들로 가득 찬 숲에 도달하게 된다. 모두 기장군청에서 지정한 보호수이며, 일제강점기 당시 태평양 전쟁을 치르느라 수탈이 극에 달하던 시기에도 주인 일가가 놋그릇을 빼앗기는 대신 지켜낸 소중한 나무들이다. 그 결과, 전국 대부분 지역의 소나무들과 달리 이곳의 금강송들에서는 송진 채취를 당한 상흔을 찾아볼 수가 없다고 한다. 울산에 사는 관광객 최경욱(59) 씨는 “대나무나 금강소나무처럼 보기 드문 나무들이 많이 있어서 신기하다. 산주인이 (나무를) 지켜줘서 감사하다”고 말했다.

금강소나무를 보며 나아가다 보면, 어느새 금강소나무들이 대나무로 바뀌어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그 사실을 알아챈 순간, 그 자리가 ‘굿터 맹종숲(대나무숲)’이라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맹종은 대나무의 한 품종으로 삼국시대 맹종(孟宗)이란 효심이 지극한 청년이 병상의 노모에게 겨울철에 구하기 힘든 죽순을 먹게 해서 병을 낫게 했다는 전설을 가지고 있다. 전언에 따르면, 이 숲은 약 200여 년 전 가장 먼저 조성된 곳으로, 마을 사람들은 가운데 동그랗게 대나무가 자라지 않는 부분에 아홉산 산신령의 영험이 있다고 믿었다고 한다. 때문에 궂은일이 있을 때 치성을 드리거나 굿, 또는 소위 ‘마을모임’이라고 불리는 동회를 갖는 광장으로 삼았다고. 오랜 세월 마을의 굿터 역할을 한 이곳은 영화 <군도>, <협녀>, <대호>, <옥중화> 등의 촬영지로도 유명하다.

과거 마을 사람들의 믿음 때문일까. 마을을 수호하는 서낭신을 모셔 놓은 신당을 뜻하는 ‘서낭당’은 본래 있었던 것이라고 착각할 만큼 굿터맹종숲과 매우 잘 어울린다. 그 성낭당은 영화 <대호> 촬영 때 지어진 것으로, 안에는 저마다 정성껏 쌓은 돌탑과 그것을 쌓아올린 사람들의 염원으로 가득 차 있다. 대학생 임승미(21) 씨도 이곳에서 소원을 빌었다. 임 씨는 “서낭당을 알려주는 표지판이 없어서 처음엔 무엇인지도 모르고 지나칠 뻔했다. 그런 점에서 조금 아쉬웠다. 그래도 이런 곳에 와서 소원을 비니까 좋았다”고 말했다.

영화 '대호' 촬영 때 지어진 서낭당. 서낭당 안에는 사람들이 쌓아놓은 돌탑과 돈, 염원들로 가득 차 있다(사진: 취재기자 강은혜).
영화 '대호' 촬영 때 지어진 서낭당. 서낭당 안에는 사람들이 쌓아놓은 돌탑과 돈, 염원들로 가득 차 있다(사진: 취재기자 강은혜).

굿터 맹종숲을 넘어, 소나무와 참나무 군락마저 지나치게 되면 비로소 아홉산숲의 하이라이트라고 할 수 있는 ‘평지대밭(맹종죽숲Ⅱ)’이 모습을 드러낸다. 약 1만 평에 이르는 이 맹종죽숲은 해방을 전후한 시기부터 60~70년대에 이르기까지 동래지역의 식당 잔반을 얻어오고, 부산 시내를 지나는 분뇨차를 이곳에 이끌어 비료 삼아 뿌려주며 관리했다고. 현재 전국에서 맹종 단일 종으로는 가장 넓은 숲이며 봄철에 생산되는 죽순의 굵기도 최고로 알려져 있다. 2016년 SBS에서 방영된 <달의 연인 보보경심 려>가 촬영된 장소이기도 하다. 윤용숙(64, 부산시 금곡동) 씨는 “가까운 부산에서 튼튼하게 자란 대나무를 보게 돼서 좋았다”며 평지대밭에 대해 “Good!”이라며 엄지를 치켜들었다.

아홉산숲의 하이라이트라고 할 수 있는 평지대밭(맹종죽숲Ⅱ). 길 옆에 대나무들이 울창하게 자라나있다(사진: 취재기자 강은혜).
아홉산숲의 하이라이트라고 할 수 있는 평지대밭(맹종죽숲Ⅱ). 길 옆에 대나무들이 울창하게 자라나있다(사진: 취재기자 강은혜).

아홉산숲의 대나무는 긴 세월을 반영하듯, 끝을 보기 위해서는 허리를 한껏 젖혀야 할 만큼 키가 크고, 두 손으로도 모두 잡히지 않을 만큼 두꺼우며, 물리적인 충격에 한치의 흔들림도 용납하지 않을 만큼 단단하다. 이러한 대나무들이 빼곡하게 우거진 길을 거닐다 보면 그동안 시간에 쫓겨 빠르게 달려야만 했던 일상과 그 과정에서 생겨난 고민들을 자연스럽게 잊고 오로지 숲의 경치에만 집중하고 있는 자신을 마주하게 될지도 모른다. 마치 성급한 시간마저 가던 길을 멈추고 쉬었다 가기라도 하는 것처럼. 박은영(30, 부산시 금곡동) 씨도 “편안하다는 느낌이 든다”고 말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홉산숲의 대나무는 매우 크고 두껍다. 그리고 단단하다(사진: 취재기자 강은혜).
아홉산숲의 대나무는 매우 크고 두껍다. 그리고 단단하다(사진: 취재기자 강은혜).

하지만 아름다운 아홉산숲의 이면에는 제멋대로 행동하는 관광객들이 존재한다. 이 때문에 숲을 지나다 보면 대나무에 뾰족한 무언가로 흠집 내어 새겨놓은 듯한 낙서들을 꽤나 쉽게 찾을 수 있다. 관리실장에 따르면, 낙서가 많은 대나무들은 잘라낸다고 한다. 그래서 숲 곳곳에 ‘낙서 금지’ 표지판을 걸어놓는데, 그마저도 소용이 없다고. 반계숙 관리실장은 “나무도 살아있는데 칼로 이름을 새겨진 모습을 보면 너무 마음이 아프다”며 “나무에 낙서하지 말아달라”고 연신 당부했다.

숲을 지나다 보면 대나무에 새겨진 낙서들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사진: 취재기자 강은혜).
숲을 지나다 보면 대나무에 새겨진 낙서들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사진: 취재기자 강은혜).

반면, 주민이 아홉산숲을 바라보는 시선은 관광객의 시선과는 큰 차이가 있다. 아홉산숲 앞에서 장사하고 있는 신복자(76) 씨는 아홉산숲이 유명해지면서 좋은 점도 있고 나쁜 점도 있다고 설명했다. 신 씨는 “숲이 많이 알려지면서 집값이 상승한 점은 좋지만, 사람과 차가 많이 다니면서 소음공해와 쓰레기 문제가 심각하다”고 밝혔다.

또 다른 주민은 아홉산숲 때문에 너무 힘들다며 불만을 토로했다. “여기는 농사짓고 사는 마을인데 차랑 사람들이 너무 많이 다녀서 농기계를 사용할 수가 없다”며 “쓰레기 문제도 그렇고, 불편한 게 너무 많아서 군청에도 항의했는데 변한 게 없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아홉산숲의 모토는 ‘나무가 행복한 숲’을 만드는 것이라고 한다. 반계숙 관리실장은 “(문백섭 대표는) 후손들에게 장기적으로 물려주기 위해 있는 그대로의 자연을 보존할 예정이다. 그래서 휴지통도 설치하지 않는 등 편의시설을 최대한 제한하고 있으며, 꾸미고 만드는 행위도 하지 않는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나무가 행복한 숲’을 만들기 위해서는 관광객의 협조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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