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투운동 그후...여성의 성상품화 여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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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투운동 그후...여성의 성상품화 여전하다
  • 취재기자 최유진
  • 승인 2019.05.08 18: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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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인대회, 걸그룹 뮤비, 광고 등에서 여성의 성적 저급화 지속
전문가, “성이 노동과 상품이 돼서는 곤란”

2018년 한 해 동안, 국내에서는 미투(#MeToo)운동이 활발했다. 많은 피해 여성들이 과거 성폭력 피해 사실을 밝히고 다수의 가해자를 드러내면서 처벌을 받게 했다. 그 후 미투운동은 어떻게 변했을까? 미투운동은 여성 피해자가 가해 남성을 지적하는 것을 넘어서 성차별 문화, 성상품화 문화를 바꾸고, 아름답게 보이려는 여성상에서 벗어나자는 ‘탈코르셋’ 운동 등으로 확대되고 있다. 일종의 범 양성평등운동으로 발전하고 있는 것이다.

예를 들면, 최근 모터쇼에서 야한 옷차림의 레이싱걸이 사라지고 드레스를 입은 여자모델과 정장을 입은 남자모델로 바뀌는 변화가 일어났다. 이는 레이싱 모델의 성상품화적인 요소를 줄이자는 움직임이었다.

부산 벡스코에서 열린 ‘2018년 부산모터쇼’에는 점잖은 옷차림의 레이싱 모델이 등장해서 화제가 됐다. 레이싱 모델들은 노출 없는 복장으로 바뀌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사진: 취재기자 최유진).
부산 벡스코에서 열린 ‘2018년 부산모터쇼’에는 점잖은 옷차림의 레이싱 모델이 등장해서 화제가 됐다. 레이싱 모델들은 노출 없는 복장으로 바뀌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사진: 취재기자 최유진).

하지만 양성평등운동에 반하는 여성의 성상품화 현상은 여전하다.

그 중 매매춘은 성관계를 목적으로 돈을 주고받는 성상품화의 전형적인 사례다. 성매매 특별법으로 인해 대한민국에서 매매춘은 여전히 불법이다. 하지만 아직도 전국 곳곳에 집창촌이 존재하고 성매매 업소들은 단속을 피해 도심, 주택가로 파고들어 새로운 형태의 매춘업소들이 전국에 수백 곳이 있다. 대학생 공민식(23, 부산 남구) 씨는 “성을 돈을 주고 사거나 팔아서는 안 된다”며 “매매춘은 성상품화의 일종으로 옳지 않다”고 말했다.

경성대학교에서 ‘성과 철학’을 강의하는 이석희 교수는 “현대사회에서 여성은 자기결정권을 가지고 자신의 권리를 행사한다. 하지만 여성의 권리와 자유가 성상품화와 연결되면 문제가 된다. 대한민국에서 성상품화의 하나인 매매춘은 불법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성상품화란 성(性)이 시장에서 하나의 상품으로 취급당하는 현상을 일컫는다. 그런데 성상품화는 매매춘과 같이 직접적으로 성이 매매의 대상이 되는 것만을 일컫는 게 아니다. 광고·영화·비디오와 같은 영상 매체에서 소비자들의 성적인 자극을 유발함으로써 판매를 촉진시키는 수단으로 성을 이용하는 것도 포함된다. 여성들의 벗은 모습 등을 광고로 사용하거나 TV프로그램에서 성적으로 자극적인 모습이나 언어로써 여성을 이용하는 것도 여기에 포함된다.

우리나라에서 1957년에 처음 시작된 미스코리아 대회는 한때 지덕체를 겸비한 건강한 미인을 선발한다고 해서 대중적 인기가 높았다. 하지만 2002년부터 지상파 방송이 중계를 중단했다. 미스코리아 대회가 미적 기준을 획일화하고 성상품화를 조장한다는 여성계의 반발이 커졌기 때문이다. 미스코리아의 상징 중 하나였던 파란 수영복 심사 역시 2013년이 마지막이었다. 이후 래쉬가드 수영복 등으로 바뀌었다.

하지만 최근에도 미스코리아 대회가 열린 직후부터 다음날까지 포털의 실시간 검색어에는 ‘미스코리아’와 입상자들의 이름이 상위권에 계속 오르내렸다. 또 관련 기사와 각종 SNS에서는 입상자들의 외모에 대한 품평이 계속됐다. 여전히 미인대회의 성상품화 현상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김나영(22, 경남 김해시) 씨는 “미인대회에서 여성의 얼굴, 몸매를 강조하는 것 자체가 여성을 성상품화하는 데 한몫 하는 행사라고 생각한다”며 “미스코리아 입상자를 우월하다고 우러러보는 대중의 시선이 우리가 외모지상주의에서 더 못 벗어나게 만드는 것 같다”고 말했다.

남성 왁스 ‘스웨거’ 광고에서 모델 전효성이 섹시댄스를 추고 있다(사진: 스웨거 광고 캡처).
남성 왁스 ‘스웨거’ 광고에서 모델 전효성이 섹시댄스를 추고 있다(사진: 스웨거 광고 캡처).

상품 광고에서도 성상품화는 여전하다. 남성, 여성의 성적인 어필을 통해 광고를 진행하는 것이다. ‘스웨거’라는 남성 왁스 제품의 광고에서는 여자 아이돌이 노출된 옷을 입고 섹시한 춤을 춘다. 제품의 성능은 광고 어디에도 나타나지 않는다. 광고 문구 또한 성적으로 상상할 수 있는 중의적 표현을 쓴다. 대부분의 남자들은 이 광고를 보고 “사랑스럽다”며 긍정적 반응을, 여자들은 “여성의 성을 상품화했다”며 부정적 반응을 보였다.

서울의 현대오일뱅크 신구로주유소 신축공사장 현수막에 적힌 문구가 성상품화 논란이 됐다고 ‘더팩트’가 보도했다(사진: 더팩트 기사 캡처).
서울의 현대오일뱅크 신구로주유소 신축공사장 현수막에 적힌 문구가 성상품화 논란이 됐다고 ‘더팩트’가 보도했다(사진: 더팩트 기사 캡처).

또 현대 오일 뱅크 서울의 신구로 주유소 신축공사장의 외벽에 위치한 광고물에는 여성의 성상품화를 노골적으로 부추기는 현수막이 걸렸다. 제복을 입은 여성 6명의 사진 옆에 “친절한 여성 소장 주유소”라는 문구가 등장해 성상품화를 연상케 한다며 온라인에서 논란이 일었다. ‘더팩트’가 본격적으로 취재에 들어가자, 다음날 해당 주유소는 현수막을 교체했다.

게임 광고에서도 성상품화가 극성이다. 중국산 모바일 게임 <왕이 되는 자>는 여러 SNS를 중심으로 광고를 진행 중이다. 광고에서는 여성 캐릭터가 오늘 어떤 속옷을 입었는지 맞춰보라고 하는 장면, 목에 나이 팻말을 걸고 있는 여러 후궁들 중에서 선택하라는 장면, 여성을 고문하는 장면, 남성 캐릭터들이 기생집을 들락거리는 장면 등이 나온다. 실제 게임에서는 이런 내용이 나오지 않는다. <왕이 되는 자>는 청나라 시대를 바탕으로 세력을 늘려 성장하는 RPG게임이다. 게임과 전혀 관계없이 성상품화를 악용하는 자극적인 내용을 광고로 내보내고 있는 것이다.

방송, 가요 등 대중문화계에서도 여성의 성을 상품으로 취급하는 문제가 끊임없이 발생하고 있다. 특히 가요계가 ‘아이돌’과 ‘걸그룹’ 중심으로 돌아가면서 여성의 성상품화는 더욱 노골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걸그룹 ‘여자친구’의 소속사에서 공식 굿즈 중 대형 쿠션이 논란을 낳았다. ‘다키마쿠라’라는 일본의 오타쿠 상품을 연상시킨다는 주장이 많았다. 다키마쿠라는 대형 베게에 만화의 캐릭터가 그려진 것으로 대개 우리나라 죽부인처럼 안고 자는 용도로 쓰인다. 그래서 이 굿즈에 대한 성상품화 논란이 일어났던 것. 이에, 소속사에선 생산과 판매를 중단한다고 밝혔다.

또, 서바이벌 프로그램 <프로듀스 101>은 시즌 1부터 참가자들에게 교복을 착용하게 해 어린 소녀들을 성상품화하는 것이 아니냐는 ‘로리타’ 논란에 휩싸였다. 대학생 공민식 씨는 “청소년들이 접하기 쉬운 가요계에서 로리타 논란이 이는 것은 문제가 많다”며 “돈을 벌려는 욕심에 아이돌 가수들의 소속사가 선을 넘었다”고 말했다.

일본의 걸그룹 ‘허니팝콘’은 AV배우(포르노 배우) 3명으로 구성됐다. 현역 AV배우 출신 걸그룹의 데뷔 소식을 들은 대중들은 허니팝콘이 한국에서 활동하게 되면 성상품화, 성에 대한 불건전한 인식이 확산될 소지가 있다며 반대 입장을 내세웠다. 그러나 2018년 7월 서울 제일라이트홀에서 진행된 허니팝콘의 한국 팬들과의 팬미팅에서는 허니팝콘 멤버들이 일반 참가자 3명에게 직접 손으로 몸에 오일을 발라주는 이벤트도 있었다. 일반 걸그룹의 팬미팅에서는 볼 수 없었던 성적인 이벤트였다.

무엇보다 심각한 문제는 성상품화된 여러 대중음악 동영상이나 광고 콘텐츠를 접하는 청소년들에게 미칠 사회적인 악영향이다. SNS가 발달하고 인터넷으로 안 되는 게 없는 요즘 청소년들은 선정적인 콘텐츠를 쉽게 접할 수 있다. 고3 학생인 전채은(19, 부산 해운대구) 양은 “SNS를 보면 의도치 않게 선정적인 광고물이 많이 보인다. 광고의 여성들은 항상 뛰어난 몸매와 얼굴을 가지고 있다. 그런 것 때문에 몇몇 사람은 그런 몸매가 여성의 표준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최근 정준영 단톡방 사건으로 국민들이 분노했다. 정준영, 최종훈 등이 참여한 단톡방에서는 여성을 성폭행하고 몰카를 찍는 등 범죄행위를 서슴지 않았다. 그들은 여성을 상품으로 희화화하고 희롱하는 등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했다. 대학생 김나영 씨는 “이번 정준영 사건은 여성을 상품으로 보는 전형적인 성상품화 사건이다. 잘못된 성인식으로 일어나는 이런 일들이 생각보다 흔한 일이라는 것이 더 충격적이다. 유명인들의 이런 사건 보도가 만연해 남녀 간의 갈등이 더 심화되는 계기가 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성적인 표현은 실제 사람들에게 전달하려는 내용과는 상관이 없다. 오로지 관심을 받기 위해 성적인 이미지를 사용한다. 성상품화는 여성을 성적 대상으로만 여기는 잘못된 생각을 심어줄 수 있다. 또 외모나 성적 매력이 사람(주로 여성)의 가치를 매기는 기준이 된다. 그 기준에 맞지 않는 사람은 가치가 떨어지는 것처럼 만들기도 한다.

경성대 이석희 교수는 “성적으로 선정적인 것이 다른 이의 기본권을 침해하지 않는다면 표현의 자유의 범주에 속한다. 하지만 성상품화는 수요와 공급의 관계가 들어가는 일종의 노동 및 상품 등의 거래에 속하기 때문에 결코 바람직할 수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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