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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 혁명’ 부른 ‘미투 운동’의 횃불이 계속 되려면강동수의 자투리시사인문(36) ‘미투운동’ 40일에 되돌아보는 성과와 과제

1.

편집국장 강동수

지난 1월 29일 서지현 검사의 성추행 폭로로부터 시작된 ‘미투’ 운동이 40일 가까이 지났다. 그렇게 긴 시간은 아니지만 한국 사회는 일종의 ‘혁명’ 상황이라고 부를 수도 있을 만큼 엄청난 변화를 겪고 있다. 다수의 민중이 들고 일어나서 정치체제를 변혁시키는 일은 아니지만 수천 년 동안 고착화된 ‘가부장제 사회’ 변화의 중대한 변곡점이 되고 있다는 점에 비추면 ‘일상에서의 혁명’이라고 부른다 해서 그다지 과장이 아닐 것 같다.

‘미투’ 운동의 의미를 여러 층위로 분석할 수 있을 것이다. 우선은 그 동안 남성들에게 성폭력을 당하면서도 속수무책으로 당하거나 피해 사실을 숨겨온 여성들이 더는 참지 않게 됐다는 것. 성폭력은 인류사 속에서 깊이 뿌리박아 온 대표적인 폐습이다. 그것은 ‘모계사회’가 붕괴된 이후 수천, 수만 년 동안 이어져온 남성 중심 이데올로기의 산물이기도 했다. 여성을 남성의 부속적 존재, 소유물로 인식해 온 그 질긴 역사 말이다. 그 와중에서 성폭력 피해를 당한 여성들은 피해자임에도 불구하고 그 책임이 자신에게 돌려지지나 않을까 전전긍긍하며 피해 사실을 숨기기에 바빴다. 그런데, 이제 여성들이 “성폭력을 당한 것은 내 책임이 아니다” 하고 당당히 외치기에 이른 거다.

‘미투’ 운동은 은폐되고 왜곡된 성폭력의 본질적 성격을 규명하는 데도 큰 역할을 하고 있다. ‘사랑은 쟁취하는 것’이란 따위의 명분으로 성폭력이 정당화돼 온 게 사실이다. 그런 폭력적 언어 속에서 성폭력의 본질이 은폐돼 왔지만 본질적으로 성폭력은 ‘권력이 강요하는 폭력’이 아닌가. 권력관계는 가정에서도, 직장에서도, 일상적 사회 관계에서도 존재한다. 사회 전체의 가부장적 수직 계열화 속에서 성폭력이 기생하는 것. 그런데 그런 은폐된 성폭력의 본질이 ‘미투’ 운동을 통해서 일반 대중에게까지 명확하게 인식되기 시작했다.

무엇보다도, ‘미투’ 운동은 성(性) 불평등을 뿌리에서부터 해체하는 기폭제가 되고 있다. 성차별이 대표적인 권력관계의 폭력이라고 보면, ‘미투’는 궁극적으로는 사회 전반의 ‘양성평등 운동’으로 점화되지 않을 수 없는 셈이다. 지구상에 가장 오랫동안 남아 있게 될 차별이 ‘성 차별’이라고 지적하는 학자들도 있다. 계급 차별, 빈부 차별, 인종 차별 등은 역사 발전단계에 발 맞춰 상당 부분 해소됐거나 해소되고 있는 중이다. 그러나 ‘성 차별’은 남녀간의 사랑, 천부적으로 다른 성 역할이란 관념으로 포장되면서 그 본질이 은폐되고 있다는 것. ‘미투’는 그런 은폐된 본질을 명확하게 까발리고 있는 거다. 그렇게 보면 ‘미투’ 운동을 ‘일상에서의 혁명’이라고 불러도 과장은 아닌 셈이다.

어쨌거나 한국 사회에서의 ‘미투 운동’은 실로 폭발적이다. 파괴력도 엄청나다. 서지현 검사의 폭로로 시작된 한국의 ‘미투 운동’은 법조계에서 문화예술계로, 그리고 정치권으로 빠른 속도로 불이 붙어갔다. 연극계의 황제로 군림했던 이윤택, 문학의 대부였던 고은은 물론이고 탤런트 조민기가 가해자로 고발되더니 드디어 유력한 차기 대통령 후보로 꼽혔던 전 충남지사 안희정에 이르면서 그 폭발력은 메가톤급이 되고 말았다. ‘미투’는 현재진행형이다.

그러나, ‘미투 운동’이 지속되면서 이런저런 우려가 나오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조민기가 자살하면서 일부에선 미투 운동이 지나친 인격 파괴가 아니냐는 지적이 나왔다. 정치인 정봉주에 대한 성추행 고발은 그 본질이 휘발된 채 진실 공방으로 비화해 법정다툼으로 이어졌다. 가수 김흥국에 대한 성폭행 고발 역시 당사자의 부인으로 진위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익명의 ‘미투’ 고발이 자칫 부작용을 불러일으킬 소지가 크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자칫 애먼 사람 잡는 수단으로 악용될 수 있지 않느냐는 우려와 함께 ‘익명 고발’이 과연 ‘미투 운동’의 본래적 취지에 맞는 것이냐는 반문도 제기되고 있는 것. 그런가 하면 고뇌 끝에 용기 있게 자신을 드러내 고발한 여성에 대한 음해와 거짓 소문이 빠른 속도로 유포되면서 ‘2차 가해’ 우려도 커지고 있다. 미투 운동을 보도하는 미디어들에 대한 비판도 제기되고 있다.

‘미투 운동’이 계속 힘을 유지하기 위해선 그 작동 방식에 대한 재검토도 필요할 것 같다. 그런 점에서 ‘미투 운동’의 폭로 방식, 그리고 사후 대처 방식 등에 대한 재점검과 사회적 합의가 이제는 필요하다는 주장도 귀담아 들을 때가 왔다는 생각이다.

 

2.

‘미투 운동’에 대한 논의를 진전시키기 전에 우선 ‘여성운동’ 일반에 대해 간단하게 조명하고 넘어가는 것도 도움이 될 것 같다. 그래서 근대 여성운동사의 주요 대목을 잠깐 짚어보기로 한다.

여성운동은 기본적으로 19세기의 산물이다. 전근대적 공동체의 해체와 산업혁명의 도래로 봉건적 가족 관계가 해체되면서 가정에 얽매여 있던 여성의 사회적 위치에도 큰 변화가 나타났다. 다른 한편 프랑스 혁명이 내건 자유와 평등이라는 인간해방 사상은 여성에게 자신이 처한 차별과 남성 의존 상태를 인식시켰다. 이와 같은 사회적·사상적 변동을 배경으로 여성은 독립적인 삶의 방식을 모색하고 상황의 변혁을 요구하게 되는데 그같은 움직임이 조직화된 것이 여성운동이다. 어쨌거나 근대적 의미에서의 여성운동은 1830년대 시작됐다는 게 일반적인 견해다.

1837~1950년, 110여 년에 걸친 초기의 여성운동은 계약의 당사자가 될 권리, 혼인에서의 법적 보호를 받을 권리, 부모로서의 권리를 행사할 권리를 확보하기 위한 운동이 주류를 이루었었다고 요약할 수 있겠다. 이때만 해도 남성과 여성에 대한 인권은 그 개념부터 달랐다. 아내에 대한 폭력행사도 전혀 문제가 되지 않던 시대였다. 선각자적 여성들은 이 시기에 인간으로서의 기본권을 확보하기 위해 투쟁했다. 이혼의 권리, 자녀 양육권과 친권 확보를 위한 투쟁도 마찬가지. 여성의 투표권과 참정권 투쟁도 치열하게 일어났다.

영국에서는 기혼여성의 친권을 요구하는 움직임이 노턴 사건을 계기로 일어났다. 그리고 기혼 여성의 재산관리권이 1870년경 인정받았다. 여성참정권 요구도 이어졌다. 1897년 '여성참정권협회전국동맹'이 결성됐고 1903년 팽크허스트 모녀에 의해 ‘여성사회정치동맹’도 결성됐다. 그 결과로 1918년 국민대표법에 의해 30세 이상의 여성에게 선거권·피선거권이 인정됐고 1928년엔 전 여성에게 남성과 동등한 참정권이 부여됐던 것.

이 시기 영국의 여성운동에서 특기할 것은 ‘서프러제트(suffragette)운동’. 참정권을 뜻하는 서프러지(suffrage)에 여성을 뜻하는 접미사 ‘-ette’를 붙인 말로, 20세기 초 영국에서 일어난 여성 참정권 운동과 그 운동가들을 가리키는 용어다. 여성운동가 에멀린 팽크허스트(1858∼1928년)가 이끈 서프러제트 운동은 초기에는 집회와 선전활동, 낙선운동 등 평화롭고 합법적인 방식을 택했으나 1908년부터는 ‘말이 아닌 행동(Deed not Words)’을 구호로 내세우면서 돌이나 폭탄을 사용하는 등 전투적 투쟁 노선으로 바뀌었다.

에멀린 팽크허스트가 1913년 뉴욕시 집회에서 연설하고 있다(사진: 구글 무료 이미지).

에밀리 와일딩 데이비슨의 희생은 특히 유명하다. 우체통 방화 시도 등으로 수차례 수감되었던 그는 1913년 더비 경마대회가 열리는 경마장에서 여성 참정권을 요구하며 국왕 조지 5세의 말 앞으로 뛰어들었다가 말발굽에 채여 두개골 골절로 사망했다. 그의 장례식에는 수천 명이 넘는 여성들의 추모 행렬이 이어졌다.

프랑스에서는 1830년대 생시몽주의자나 푸리에주의자가 연애의 자유·가족의 해체에 의한 여성해방을 주장했고, 트리스탕은 '노동자동맹'을 결성해 남녀노동자의 해방을 부르짖었다. 1871년의 파리 코뮌에서 여성은 독자적인 조직을 만들어 활동했다. 미국에서도 이 시기 참정권 운동이 진행됐다. 1848년에는 세네카 폴즈 회의에서 여성참정권이 결의됐다.

1950년대 이후의 여성운동은 노동의 권리와 경제적 평등의 확보를 위한 투쟁으로 확대됐다. 이 시기 기혼 여성 노동자는 꾸준하게 증가했지만 여성의 임금은 남성 임금의 60% 수준에 지나지 않았다. 1952년 런던에선 남녀 동일임금을 요구하는 시위가 벌어져 여성들이 대거 거리로 몰려나왔다. 미국 작가 베티 프리던은 <여성의 비결>이라는 저서에서 여성은 가정 바깥의 세상을 남성의 전유물로 규정하지 말고 적극적으로 뛰어들어 개인적으로나 직업적으로 정체성을 찾아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1960년대와 1970년대 미국의 여성운동은 민권운동의 활성화에 크게 고무됐다. 특히 1956년 ‘로자 파크스 사건’은 미국 민권 운동의 이정표가 됐다. 그는 1955년 12월 1일 백인 좌석과 유색인 좌석으로 나뉘어 있는 버스에 올랐다. 로자는 유색인 좌석 맨 앞줄에 앉았지만 백인 좌석이 꽉 차면서 운전기사가 그녀에게 뒤로 옮기라고 요구했다. 하지만 그녀는 거부했다. 얼마 후 경찰이 그녀를 체포했다.

로자가 체포되자 버스 보이콧 운동이 자연발생적으로 일어났다. 흑인들의 승차 거부로 시내버스들이 텅텅 빈 채로 달렸다. 이 작은 사건은 미국 사회의 인권지형도 뿌리째 뒤흔들어놓은 사건으로 비화됐다. 흑백 인종차별 철폐 운동이 들불처럼 확산됐던 것. 이 와중에 여성 차별철폐 운동도 민권운동의 한 갈래로 확산돼 갔다.

주로 중산층이 주도했던 1960년 대 미국의 여성운동의 또 다른 특징은 성을 즐길 자유를 부르짖은 ‘성 혁명’의 성격도 띠고 있었다. 이 성 혁명은 피임약의 개발과 판매에 크게 힘입었다고.

여성의 권리와 이익을 추구하는 페미니즘 운동은 1970년대 초에 최고조에 달했다. 미국 언론인인 글로리아 스타이넘과 여러 여성 지도자들은 새로운 잡지 <미즈>를 창간하기도 했다.

미즈 잡지 2003년 여름호 표지(사진: 구글 무료 이미지)

이 시기 이후 지금에 이르기까지 여성 권익 신장의 중요한 사건을 나열하면 이런 것들이다. ▲1963년 최초의 여성 우주비행사 탄생 ▲1971년 여성을 성 상품화하는 미인대회 개최 항의시위 ▲1973년 미국 최고재판소의 임신중절 합법화 판결 ▲1992년 영국 최초의 여성 하원의장 베티 부스로이드 취임 ▲1998년 파키스탄의 베나지르 부토의 이슬람 국가 최초의 여성 총리 ▲2014년 여성교육 활동가 말랄라 유스프자이의 17세 최연소 노벨평화상 수상 ▲2015년 캐나다 내각 남녀동수 구성 ▲ 2016년 힐러리 클린턴 미국 대선 도전 등등.

이처럼 서구 여성운동은 험난한 과정을 겪으면서도 한발 한발 ‘차별 없는 사회’를 목표로 삼아 오늘에 이르고 있는 것.

말랄라 유스프자이(사진: 구글 무료 이미지)

3.

한국의 여성운동은 서구에 비해서 크게 늦기는 했으나 그 궤적은 다르지 않다. 한국 여성운동의 본격적 출발은 아무래도 1980년대 이후라고 하겠다. 1983년 6월 창립된 ‘여성평우회(女性平友會)’ 등이 1980년대 초반 여성운동을 주도했는데 25세 여성 조기정년제 철폐운동을 시작으로 1985년 ‘여성운동선언’을 발표했다. 여성노동자들은 치열한 생존권 투쟁과 함께 노동현장에서의 모성보호와 같은 젠더 과제 실현을 위한 운동도 함께 펼쳤다. 이는 노동운동과 여성주의가 결합됐다는 점에서 여성운동사에 새로운 의미를 지닌다. 1984년 민주화 시위 관련 여대생 추행사건과 1986년 부천서 성고문 사건을 계기로 10개 단체가 ‘여대생추행사건대책위원회’를 조직해 여생에 대한 성폭력 문제를 사회 쟁점화했다. 이를 오늘날 ‘미투’ 운동의 시발로 봐도 좋겠다.

1987년 6월 민주항쟁 이후 여성운동은 양적인 성장과 함께 내용적으로 분화되면서 발전했다. 1987년 2월 ‘한국여성단체연합’이 발족됐고, 같은 해 3월 1일엔 ‘한국여성노동자회’가, 9월에 ‘한국여성민우회’가 결성됐다. 1988년 <여성신문>의 창간도 여성주의 담론의 대중화 및 문화 생산에 중요한 역할을 떠맡았다.

1990년대의 여성운동은 성폭력 추방운동, 문화운동, 노동운동, 법·제도개선운동, 정치세력화, 성 주류화 전략 채택, 평화 및 통일 운동 등 2000년대 여성운동의 틀을 마련한 시기였다. 성폭력 추방운동이 중심이 되어 섹슈얼리티와 관련한 운동 영역을 급진적으로 확장시켰으며 동성애자 인권운동도 공개적으로 전개됐다. 1990년대 여성운동의 대중적인 이슈는 성폭력 문제였다. 성폭력 피해 여성들이 수치심을 딛고 당당하게 자신의 고통을 드러내고 이중적인 성규범 문제를 고발함으로써 피해자가 운동의 주체로 나서서 성폭력 문제를 공론화시켰다.

1990년대 성폭력 반대 운동의 특징은 ‘여성의 성(sexuality)에 대한 폭력’의 문제로 인식되기 시작했다는 것, 성폭력은 불평등한 권력관계에서 발생하는 구조화된 사회적 폭력이라는 것, 성폭력 문제는 개인적인 문제가 아니라 불평등한 남녀관계를 지속시키는 가부장제의 문제라는 점을 이론화한 것. 이같은 작업은 여성운동사에서 의미가 컸다.

2000년 이후 여성운동은 1990년대 후반의 여성운동의 주체와 영역이 확대와 함께 다양해진 운동의 과제와 내용에 따라 전개되고 있다. 특히 문화운동 영역이 더욱 더 다양해졌고, 상대적으로 소외되어 있던 여성장애인, 소수여성, 이주여성이 운동의 주체로 등장한 것을 특징으로 꼽을 수 있겠다.

사이버 공간을 중심으로 실업, 성폭력 등의 문제를 중심으로 영 페미니스트들은 여성주의 문화운동도 활발히 전개되고 있다. 이주여성의 인권운동도 활발히 일어나기 시작했다. 더불어 IMF 이후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과 세계화로 인해 더욱 열악해진 여성노동문제, 여성노동자들의 비정규직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노력도 일어나고 있다.

 

4.

근대 이후 서구와 한국의 여성운동 흐름을 요약해 살펴봤지만, 지금 폭발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미투 운동’도 이같은 여성운동 흐름의 연장선상에 놓여 있는 것은 당연하다. ‘성폭력 문제’가 한국사회를 뒤흔드는 논란의 핵심에 선 것 자체가 여성운동의 성장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일대 사건이라는 점 역시 말할 나위가 없겠다.

그렇다면, 이제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자.

앞에서 ‘미투 운동’이 가지는 본질적 의미에 대해 설명했지만 ‘미투 운동’이 그 모멘텀을 유지해 가면서 한국 사회 변화의 기관차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앞으로 어떻게 전개돼야 할까. 우리 모두가 생각해야 할 대목 몇 가지를 짚어 보기로 하자.

미투 운동에 대해 지금 일어나고 있는 가장 큰 논란의 하나는 ‘정치적 음모설.' 진보진영 활동가들 일부가 그런 우려를 제기하고 있다. 지금까지 나온 피고발자 중에 진보진영의 명망가가 대부분을 차지했기 때문에 그런 논란이 일어났을 터. 특정한 세력이 특정한 목적으로 진보진영에게 타격을 가하기 위해 미투 고발을 기획할 수도 있다는 게 그 요지다. 글쎄, 그런 우려를 완전히 무시하기는 어렵겠지만, 그렇다고 지금의 미투 운동이 정치적 기획의 산물이라고 함부로 몰아가선 곤란하다. 미투 운동의 폭로 대상자가 진보진영에 집중된 것은, 진보진영 명망가들이 저질러온 성폭력이 보수진영보다 더 심각해서라기보다는 문화예술계, 학계 등 각 영역에서 진보적 성향을 가진 인사의 활동 영역이 보수에 비해 훨씬 넓은 것이 큰 이유일 터다. 페미니즘 의식이 투철한 여성들이 진보진영에 훨씬 넓게 포진해 있어 자신이 주로 접촉하는 남성들을 고발한 것도 그 원인 중 하나이겠다.

언론의 책임성 문제도 또 다른 논란거리이다. JTBC가 서지현 검사, 그리고 안희정 전 충남지사에게 성폭력을 당한 여성을 인터뷰하면서 ‘미투 운동’이 폭발적으로 점화된 건 다들 아는 일. 언론의 적극적인 보도가 ‘미투’ 확산에 큰 역할을 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부작용이 나타나고 있다는 지적도 점차 일어나고 있다. ‘미투 운동’을 여성 인권이란 시각에서 바라보던 초기의 보도 태도에서 이탈해 일종의 특종 경쟁으로 변질되고 있지 않느냐는 것. 피해자를 자처하는 여성의 주장을 검증 없이 보도하는 바람에 또 다른 피해자를 낳을 우려가 크다는 지적도 나온다.

최근 <프레시안>이 보도한 ‘정봉주 성추행’이 사건 자체의 진위 논란이 불거지면서 특정 정치인과 언론사의 대리전쟁의 양상을 띠게 된 것이 그 하나의 예다. 며칠 전 MBN이 보도했던 ‘가수 김흥국 성폭행’ 고발 역시 당사자인 김흥국이 강력하게 반발하면서  ‘진위 논란’으로 번지고 있다. 자칫하면 이런 갈등이 미투 운동의 위축을 가져올 수도 있다는 점에서 언론사들의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 피해자의 일방적인 주장을 받아쓰는데 급급할 게 아니라 언론사 스스로 충분한 취재와 검증을 거쳐 ‘팩트’로 확정짓는 노력이 선행돼야 한다는 것. 자칫 언론사가 ‘무고’나 오해에 의한 피해자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하겠다.

‘미투 운동’이 해결해야 할 또 다른 과제는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의 방지다. 안희정 전 지사를 고발했던 공보비서 김 모 씨가 자신에게 가해진 온갖 종류의 음해에 고통 받고 있다며 이의 자제를 호소한 것이 대표적 사례다. 피해자의 처신에도 문제가 있지 않았느냐는 비난에서부터 정치적 의도를 가지고 폭로한 게 아니냐는 억측에 이르기까지 피해자를 극심한 고통에 빠트리는 이런 2차 피해를 막을 대책이 마련될 필요가 있다. 네티즌을 비롯한 국민 일반들도 자신들의 언행이 자칫 피해 여성을 막다른 골목에 몰아넣는다는 점을 인식해야 하겠지만, 피해자들을 보호할 법적·제도적 장치 마련도 시급해 보인다.

덧붙여 첨언하자면, ‘미투 운동’ 자체는 장려돼야 하겠지만, '익명 고발'의 적절성 여부도 지금쯤은 검토될 필요가 있다는 게 내 개인적인 생각이다. 여성들이 ‘2차 피해’를 두려워 해 자신의 피해 사실을 숨겨 오는 동안 성폭력이 갈수록 만연하고, 가해자들이 반성 없이 성폭력을 습관적으로 저지를 뿐만 아니라 오히려 뻔뻔한 모습을 보여 온 게 사실이다. 앞에서 말한 대로 피해자와 가해자의 역전 현상은 ‘성폭력’이 권력관계에서 발생다는 사실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그렇게 보면 ‘미투 운동’은 피해 여성들의 절규인 셈이다. “나는 피해자이면서도 오히려 내 잘못인 것처럼 전전긍긍하며 숨겨왔다. 가해자들을 제대로 처벌하기에는 법과 제도의 장벽도 높다. 그러는 사이 가해자가 오히려 더 큰소리치는 세상이 돼 버렸다. 그래서 마지막 수단으로 내 자신을 내놓고 가해자를 고발하는 거다”라는 처절한 외침인 것. 그렇기에 ‘미투 운동’이 자칫 ‘명예훼손’ 등 현행법에 저촉될 우려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국민들의 지지와 응원을 받고 있는 것일 터.

그렇게 보면, 미투 운동의 기본 취지가 ‘익명 고발’이라고 할 수는 없지 않나 싶다. 익명 고발은 ‘me’가 빠진 고발이고, ‘me’가 빠진 ‘me too’ 운동은 형용 모순이 아닌가 싶기도 한 거다. 글쎄, 한 인간이 평생 쌓아올린 사회적 평판을 일시에 무너뜨리고 밑바닥으로 추락시키는 실명 고발을 하면서도 자신은 익명으로 숨는 것은 형평성, 비례성의 원칙에서 부당하지 않느냐는 지적도 일면 타당하지 않을까. 미투 고발을 하는 사람의 상황이 각각 다르고,  피해자가 느끼는 2차 위험의 두려움도 다른 만큼 일률적으로 ‘실명 고발’을 강제할 수는 없는 일이다. 그렇다 해도 실명으로 가해자를 고발하는 사람은 자신의 신원을 밝히는 게 기본 원칙이 아닐까. 자칫, 고발 사실이 허위로 밝혀지면 고발된 사람이 큰 피해를 입기에 하는 소리다. '익명'이 무분별한 고발 홍수를 일으킬 빌미가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어쨌거나 ‘미투 운동’은 한국 사회의 ‘양성평등 운동’에 혁명적 변화를 불러일으키고 있는 일대 사건인 것만은 분명하다. 우리 모두 피해자의 아픔을 깊이 배려하고 그들의 용기에 힘을 보태야 할 일이다. 그게 한국사회를 야만성에서 벗어나게 해 문명사회로 이끄는 길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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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평등 2018-03-17 19:04:17

    물론 성폭력 범죄를 일으킨 사람들은 당연히 죄에 따른 벌을 받는 것이 옳다. 하지만 그 사람의 죄의 여부를 심판하는데 있어 판결이 나오기도 전에 누군가가 실명을 거론한다면 이는 일종의 마녀사냥과 다를바 없다고 생각한다. 과거 아무런 죄 없이 끌려가 고문받고 감옥에 들어간 수많은 사람들이 있지 않은가. 그 당시와는 다르지만 지금의 'me too'운동 또한 많은 문제가 있어보인다. 성폭력의 피해자 뿐만아니라 간혹 발생할 무고한 희생자를 생각해주었으면 좋겠다.   삭제

    • 평등 2018-03-17 18:58:41

      대한민국 헌법은 기본적으로 무죄추정의 원칙을 기본으로 한다. 그러나 'me too' 운동은 가해자로 지목되는 순간부터 그 사람은 가해자가 되버린다. 사실상 무죄로 입증되더라도 한번 성폭력 가해자였다는 지목을 받았다는 사실만으로 그 사람은 사회에서 재기 불가능한 상태가 되고만다. 'me too'를 통해 현대사회에 잘못된 지금의 상황을 바꿔나가야 되는 것은 맞는 말이다. 하지만 기본적인 헌법의 무죄추정의 원리와 단 한사람이라도 억울한 판정을 받지 않도록 하는 것이 사법부의 재판에 가장 중요한 것이다.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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