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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투 운동 조롱한 홍준표의 ‘참을 수 없는 가벼움’에 피눈물 흘리는 무언의 성폭행 피해자들/ 논설주간 강성보
논설주간 강성보

서지현 검사의 용기있는 고백으로 촉발된 미투 운동이 파죽지세(破竹之勢)다. 대나무가 쪼개질 때와 같은 엄청난 기세로 한국 사회에 거친 소용돌이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고은, 이윤택, 조재현 등 정상급 문인, 연극인, 영화인들이 끝이 보이지 않는 불명예의 나락에 떨어졌다. 급기야 4년 뒤 차기 대권주자로 가장 유력시되던 안희정마저 정치적 사형선고를 받았다. 검찰 수사가 진행되고 또 재판 과정에서 그 나름의 변명이나 소명이 전개되겠지만 이미 정치적으로는 더 이상 회복될 수 없는 치명상을 입었다. 지난해 말 대통령 특별사면으로 피선거권을 회복, 서울시장 선거에 도전하려던 정봉주 전 의원도 출정식 당일날 11년 전 그로부터 성추행을 당했다는 현직 기자의 고발이 터지면서 내밀었던 도전장을 물리지 않을 수 없는 처지에 몰렸다.

그런데 참 묘한 일이다. 이번 미투 회오리의 ‘희생자’들이 모두 진보진영 사람들이라는 사실이다. 안희정, 정봉주 등 민주당 계열의 정치인은 말할 것도 없고 이윤택 등 문화인들 대부분이 과거 보수정권 블랙리스트에 오르내릴 정도로 진보적인 색채를 띠고 있는 사람들이다.

독일어로 ‘샤덴프로이데(Shadenfreude)’, “남의 불행은 나의 행복”이라 했던가. 보수진영 사람들은 지금 “고것 쌤통” 이르는 듯 벌어진 입을 다물 줄 모르고 있다. 심지어 자유한국당 홍준표 대표는 “민망한 사건들이 지금 좌파진영에서 벌어지고 있다”면서 “좀더 가열차게 (미투운동이 진행돼서) 좌파들이 더 걸려 들면 좋겠다”며 노골적인 기쁨을 드러냈다. 오는 6월 지방선거까지 미투 바람이 이어진다면 기대치 이상의 성과도 노려봄직하다는 계산일 것이다.

샤덴프로이데를 모티브로 한 카툰(사진: 구글 무료 이미지)

게다가 홍 대표는 7일 청와대 정당대표 오찬 모임에서 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에게 안희정 성폭력 파문을 언급하며 “정치판이 무섭다”, “임종석 실장이 기획했다는 얘기가 있던데”라며 미투 운동에 음모론을 덧씌웠다. 또 “미투(회오리 바람)에 임 실장이 무사해 다행”이라며 야유로 들릴 수도 있는 조크를 날렸다고 한다. 이에 임 실장은 “대표님도 무사하신데요”라며 역시 조크로 받아넘겼고 자유한국당 대변인은 “홍 대표가 임 실장과의 친근감에서 농담을 하신 것”이라고 적극 해명했다.

하지만 그 ‘농담’의 파장은 작지않다. 여성계에서는 “국민들에게 ‘저를 지켜달라’고 절규하는 성폭력 희생자들의 고통과 고뇌를 그렇게 희화화할 수 있느냐”는 반응이 튀어나왔다. “여자만세(여성과 자유한국당이 만드는 세상)라는 팻말을 내 건 전국 여성대회 행사에서 어떻게 그런 조롱섞인 발언을 할 수 있느냐”는 비판도 나왔다. “아무리 그래도 돼지발정제로 강간을 모의한 과거를 치기어린 젊은 시절의 무용담으로 자랑하고, 설거지는 하늘이 정한 여자의 할 일이라는 식의 마초같은 심성을 드러내는 사람이 할 말은 아닌 것 같다”는 비아냥도 들리고 있다. “미투를 농담의 소재로 삼고 음모론을 함부로 내뱉는 홍준표의 그 참을 수 없는 가벼움에 피눈물이 난다”는 댓글도 쏟아지고 있다.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가 2일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열린 확대당직자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사진: 더 팩트 문병희 기자, 더 팩트 제공).

미투 가해자가 좌파진영에서만 나온다는 이념 공세에 정색으로 맞서는 사람도 있다. 박진 다산인권센터 상임활동가는 7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왜 좌파진영에서만 벌어지냐고?'라는 제목의 글을 올려 미투를 이념으로 나누는 정치 공세에 일침을 가했다.

박 활동가는 “미투 운동이 이곳과 저곳의 문제가 아니다”라며 “한국 사회 여성의 9할이 겪는 일이고 피해자가 있다면 가해자의 범위도 그만큼 넓은 일이다”라고 주장한다. 그러면서 그는 “그럼에도 (소위 우파 진영에서 미투 폭로가 나오지 않는 이유는 말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강조한다. 즉 소위 진보진영, 좌파진영의 가해자들에 대해 말할 때, 그걸 지켜줄 사람이 내 곁에 있다는 믿음이 있는 반면, 그들 우파 속에는 용기를 낼, 감히 내 이야기를 들어줄 누구도 없다는 절망감 때문에 드러나지 않고 있을 뿐이라는 것이다.

박 활동가는 “6일 자유한국당 전국 여성대회 행사를 보고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날 여성대회 참석자들은 홍 대표의 발언에 함께 웃고 떠들고 환호하며 미투를 조롱했지만 연회석을 가득 메운 여성들 중 가슴을 쥐어짜며 고통을 느끼는 여성들이 분명 적지 않았을 것”이라는 것이다. 그는 이어 “자유한국당이 미투의 본질과 문제의 뿌리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고 꼬집고 “여성에 대한 성폭력은 (홍 대표와 같은) 지독한 가부장적 질서에 물든 마초같은 남자들 때문에 생긴 일”이라고 덧붙였다.

우스갯소리지만, 세상에 남자는 두가지 종류가 있다고 한다. 한 종류는 성추행을 해본 사람이고 다른 종류는 성추행을 하고 싶어하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어느 남자든 여자를 성욕의 대상으로 느낀다는 명제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는 얘기다. 물론 사회 규범이나 윤리의식에 의해, 또는 고도의 종교적 신념에 의해 이들 성욕은 통제되고 극히 일부 일탈자들 제외하고선 그 무분별한 욕망이 겉으로 표출되지는 않는다.

그런데 그 윤리나 규범의 틀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동인(動因)은 정치적 성향의 좌우에 전혀 상관없이 작동된다. 짐작컨대 진보진영의 사람은 일종의 윤리적 우위감에 들떠, 보수진영 사람은 자신이 가진 권력과 금력의 위세를 믿고 일탈행위의 유혹에 쉽게 빠진다. 특히 안희정 전 지사가 혐의를 받을 것으로 유력시되는 ‘위력에 의한 간음’의 경우 권력과 금력에 친화적이었던 보수 진영 사람들이 진보 진영보다 그 유혹에 빠질 확률이 높다는 진단이 자연스럽다. 미투 운동의 불씨가 여의도에 제대로 옮아 붙으면 진보정당보다 보수정당에서 훨씬 더 많은 화상자가 나올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한 것은 이 때문이다.

안희정의 일순간 몰락에 아쉬움을 표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대중 앞에선 페미니즘을 역설하고 뒤켠에선 부하 직원을 성폭행한 그의 이중성을 질타하는 목소리가 높은 볼륨으로 울려 퍼지고 있지만 일각에선 인간적인 동정의 목소리도 나온다. 얼마 전 한 종편의 패널은 오랫동안 부인과 별거해온 그의 사생활을 들어 수행비서와의 관계가 ‘위력’이나 ‘위계’에 의한 간음이 아닐 수도 있다는 조심스런 의견을 표하기도 했다. 그 패널은 여성이었다. 함께 한 남자 패널들이 마치 자신들은 성 문제에서 결백한 양 ‘게거품’을 물고 안희정을 난타하는 가운데 나온 목소리여서 더욱 주목을 끌었다.

더불어민주당 제19대 대통령선거 후보자 수도권·강원·제주 선출대회가 2017년 4월 3일 서울 고척동 고척스카이돔에서 열린 가운데 안희정 후보가 정견 발표를 하고 있다(사진: 더 팩트 제공).

또 그가 지향해온 정치적 지향점의 상실을 안타깝게 생각하는 칼럼도 주목을 끈다. 중앙일보 서경호 논설위원은 8일 '시시각각'에서 “안희정이 내건 통합과 실용의 가치는 시대정신”이라고 평가하고 “그 깃발은 누군가가 이어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안희정의 지지자들이 “윤리가 결여된 예술가의 작품은 가치가 없다”는 미투 지지자들의 일반론에 기대 “가해자의 정치철학은 우리에게 의미가 없다”고 지지철회를 선언한 데 대해 비판적인 의견을 나타냈다. “정치인이 지향하는 가치는 특정 개인의 전유물일 수 없다”는 논지다. 서 논설위원은 “지난 대선 기간 안희정이 높이 들었던 통합과 실용의 깃발을 이어받아 ‘열정과 균형 감각으로 단단한 널빤지를 강하게 그리고 서서히 뚫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매우 공감이 가는 대목이다.

남의 불행을 보고 기쁨을 느끼는 ‘샤덴프로이데’의 반대 개념으로 불교의 ‘무디타’가 있다. 타인의 행복을 보고 기쁨을 느끼며 타인의 불행에는 마찬가지의 아픔을 느끼는 것을 말한다. 온 사회가 미투의 소용돌이 속으로 빠져든 지금 대패로 살이 썰어지는 듯한 고통을 호소하는 성폭력 희생자들과 함께 아픔을 느낄수 있는 무디타, 공감능력을 가져야 할 것이다. 정치적 이해타산으로 회심의 미소를 짓는 ‘샤덴프로이데’는 언젠가 부메랑처럼 그들 자신에게 흉기로 덮칠 것이라는 점을 깨닫지 않으면 안된다.

논설주간 강성보  reporter1@civic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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