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투 운동의 그림자, 폭로 말과 글 사실관계 파악 전까지 과도한 비난 자제해야 / 김태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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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투 운동의 그림자, 폭로 말과 글 사실관계 파악 전까지 과도한 비난 자제해야 / 김태연
  • 부산시 해운대구 김태연
  • 승인 2018.03.25 15: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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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에서 내린 사람은 둘 뿐이었다. 외진 정류장에는 사람 한 명 지나가지 않았고, 가로등마저 고장 나 주의가 유독 깜깜했다. 그 자리에 그대로 얼어붙은 김지영 씨에게 남학생이 다가오면서 낮게 읊조렸다. ‘너 항상 내 앞자리에 앉잖아. 프린트도 존나 웃으면서 주잖아. 맨날 갈게요, 그러면서 존나 흘리다가 왜 치한 취급하냐?’ 몰랐다. 뒷자리에 누가 앉는지, 프린트 전달할 때 자신이 어떤 표정을 짓는지, 통로를 막고 선 사람에게 뭐라고 비켜 달라고 하는지.”

단편소설 <82년생 김지영>에 나오는 내용이다. 소설이라 과장된 이야기가 아니라 얘기를 나누다 보면 이런 경험을 가진 여자들이 심심찮게 주변에 있다. 이렇듯 자신이 당한 행동들을 그러려니 넘어가거나 성폭행, 성희롱을 당해도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한 채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서지현 검사가 밝힌 안태근 전 검사 성추행 사건을 시작으로 한국에서는 미투 운동이 연예계, 정치계, 교육계 사회 전반으로 번지고 있다. 현직 검사가 자신의 피해를 카메라에 대고 직접 말하는 순간, 지금까지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했던 성폭행 피해자들이 용기를 내고 하나 둘 씩 나오고 있다.

하지만 미투 운동의 그림자도 있다. 누군가 자신의 실명과 얼굴을 걸고 피해 사실을 고백하면, 모든 SNS, 기사에 지목된 가해자를 향한 비판의 댓글이 달린다. 이를 바탕으로 사실관계가 파악되지 않은 기사들이 나오고, 지목된 가해자를 향한 비판이 거세진다. 마녀사냥 식 신상 털기가 시작되고, 가해자로 지목된 사람뿐만 아니라 그의 가족들까지 무차별적인 비판을 듣는다. 이런 상황 때문에, 무죄 추정원칙에 따라 무고한 피해자를 보호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청와대 홈페이지에 국민청원 게시판에 올려진 ‘무고죄의 형량을 늘려주세요’ 청원 글은 14일 현재 3만 3000명 가까이 서명했다. 물론 성폭력 피해자들의 진실을 밝히고 그들의 용기를 존중해주는 것은 중요하다. 하지만 사회 전반에 일어나는 성범죄 사건에 비교하면 많지 않은 사례지만, 무고로 인해 고통받는 피해자들도 엄연히 존재하는 것이 사실이고, 이들을 보호하는 것도 중요한 문제이다.

폭로된 말이나 글은 사실 여부와 상관 없이 인터넷, SNS, 언론 등을 통해서 무섭게 펴져 나간다(사진: 구글 무료 이미지).

경찰청 통계에 따르면, 2016년 무고죄 발생 건수는 모두 3614건으로 이중 성범죄 무고죄가 차지하는 비율은 전체 무고죄의 40%가량인 것으로 집계됐다. 배우 곽도원 씨는 지난 24일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라온 글에서 과거 극단 시절 성희롱을 했던 가해자로 지목되어 수일간 SNS, 커뮤니티에서 많은 비판을 받았다. 하지만 곽 씨는 작성자가 피해를 보았다는 시기에 이미 극단을 나와 영화 <황해> 촬영 중이었다는 사실이 증명되어 논란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SNS에 올라간 폭로 글이 사실관계를 제대로 파악하지 않은 채 즉시 기사화되고 이에 맞춰 마녀사냥 식 여론몰이가 시작되는 것이다. 성폭행 가해자라는 것이 사람들의 머릿속에 각인되고 사실관계를 거쳐 무혐의라는 결론이 나도 별 주목을 받지 못한다. 이렇게 무고한 피해자는 성폭행 가해자라는 낙인이 찍히는 것이다. 이런 일을 방지하기 위해 정확한 사실관계가 파악되기 전까지는 과도한 비난을 자제하고 마녀사냥 식 여론몰이를 삼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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