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족 간 성폭력 '가족이라는 이유로 입막음'...피해자 발목 잡는 공소시효도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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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족 간 성폭력 '가족이라는 이유로 입막음'...피해자 발목 잡는 공소시효도 문제
  • 취재기자 조윤화
  • 승인 2018.04.04 0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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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까운 관계일수록 피해자에게 더 큰 후유증...공소시효 폐지 청원 등장 / 조윤화 기자
친족 성폭행 범죄에 공소시효를 폐지해 달라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사진: 구글 무료 이미지).

미투 운동이 지속되면서 그동안 주변의 따가운 눈길 때문에 숨죽이던 친족 성폭행 피해자들이 피해 사실을 털어놓기 시작했다. 또 친족 성폭행 범죄에 공소시효를 폐지해 달라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대검찰청 통계에 따르면, 친족 성폭력 범죄는 2014년 631건, 2015년 688건, 2016년 730건으로 해마다 늘고 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친족 성범죄의 특성상 범죄 건수는 통계보다 훨씬 더 많을 것으로 보고 있다. 친족 성범죄의 경우 신고율이 10% 안팎에 불과한데다, 가족의 정을 앞세워 범죄 사실을 덮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한국성폭력상담소가 발표한 '2016 한국성폭력상담소 상담통계'에 따르면, 친족 성폭행 피해자 중 피해 사실을 경찰에 신고하거나 법적 대응을 한 사례는 고작 4.3%에 그쳤다. 친족에게 성범죄를 당한 100명의 피해자 중 96명은 경찰에 신고조차 못하는 셈이다.

성폭력 범죄는 피해자의 신고율이 한 자리 수를 벗어난 적이 없을 정도로 암수율(暗數率, 드러나지 않는 범죄 비율)이 높다. 미투 운동이 본격 시작된 이후에야 용기를 낸 피해자들의 고백이 줄을 잇기 시작했고, 많은 사람들도 그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친족 성폭행 피해자들은 피해 사실을 고백함과 동시에 과거에 범행을 저질렀던 가해자가 지금이라도 합당한 처벌을 받기를 바란다고 입을 모은다. 하지만 현실은 그들의 기대를 저버리기 일쑤다. 피해를 당한 뒤 오랜 시간이 흘러서야 이를 폭로하는 경우가 많아 공소시효가 지난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코끼리 가면>을 쓴 노유다 작가는 파이낸셜과의 인터뷰에서 ”두 명의 친오빠를 상대로 고소를 준비하다가 공소시효가 지나 처벌이 불가능하다는 변호사의 답변을 듣고 허탈했다“고 말했다. 이 책은 노유다 작가의 자전적 경험이 담겨 있다. 

현재 장애인과 13세 미만 아동에 대한 성폭력 범죄는 공소시효가 없다. 국회가 2011년 당시, 아동, 장애인 성폭력 범죄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 ‘성폭력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개정안’(일명 도가니법)을 통과시키면서부터다.

반면 친족 성폭행 범죄는 가중 처벌을 할 수 있을 뿐, 공소시효를 배제하는 규정은 없다. 헌법재판소는 2015년경 친족간 성폭행에 대해 가중 처벌하는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5조의 헌법소원 사건'에서 재판관 전원 일치로 합헌 결정을 내렸다. 그로 인해 친족 성폭행 범죄는 다른 성범죄에 비해 가중 처벌을 받을 수 있게 됐다. 하지만 친족 성범죄도 여전히 공소시효는 유효하기 때문에 처벌이 어려운 경우가 많다.

친족 성폭행에 공소시효를 폐지해달라는 청원은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20여 건이 올라와 있다(사진: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 캡처).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친족 성폭력도 미투하고 싶어요'라는 제목의 청원이 등장했다. 해당 청원은 친족 성폭행 범죄에 공소시효 폐지를 요구하는 내용이 주를 이루고 있다. 

익명의 청원인 A 씨는 ”가족의 은밀한 특수성으로 보아 피해자는 피해를 당했는데도 자신의 정체를 낱낱이 드러내기 어렵다“며 ”이를 악용한 친족 가해자는 버젓이 가족 안에 군림하면서 여전히 피해자를 농락하며 보란 듯 지낸다“고 말했다. 

A 씨는 ”그런 극악무도 한 자(친족 성폭행 가해자)들에게 공소시효 만료로 반성 없는 용서를 하게 하는 것인지 알 수 없다“며 친족 성폭행 피해자들이 용기를 가지고 고발할 수 있도록 공소시효를 폐지해줄 것을 정부에 요청했다. A 씨의 청원을 비롯해 친족 성폭행에 공소시효를 폐지해달라는 청원은 국민청원 게시판에 20여 건이 올라와 있다.

이와 관련해, 성폭력 범죄는 친밀하거나 신뢰하는 관계일수록 피해자에게 더 큰 후유증을 남긴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추지현 한국형사정책연구원 전문연구원과 권인숙 한국여성정책연구원장이 발표한 '가해자와의 관계가 피해자의 성폭력 후유증에 미치는 영향’이란 논문은 성폭력 피해 여성 235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가 담겨 있다.

이 논문에 따르면, 아버지나 오빠 등 친족으로부터 성폭력을 경험한 피해자들은 ‘성폭력을 당한 것은 인생 망친 것이다’, ‘성폭력 피해자는 연애나 결혼을 하지 못할 것이다’와 같은 통념을 더욱 많이 경험한 것으로 나타났다.

문제는 친족간 성범죄는 피해자가 피해 사실을 털어놓으려고 해도 가족 간의 정을 내세워 덮어버리는 사례가 많다는 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이 때문에 자녀가 어릴 때부터 무슨 일이든 부모와 상의하도록 철저하게 교육하는 일이 중요하다는 지적도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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