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투(나도 당했다)에 이어, ‘무고한데 그도 당했다(힘투, HimToo)’ 등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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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투(나도 당했다)에 이어, ‘무고한데 그도 당했다(힘투, HimToo)’ 등장
  • 취재기자 최유진
  • 승인 2019.05.12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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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투, 거짓 미투 가해자로 희생된 남자 지칭... 한국에도 다수 발생

2017년 10월, 미국의 한 여학생은 같은 학교 한 남학생이 자신을 성폭행했다고 소문을 냈다. 그 여학생의 친구 4명도 그게 사실이라고 증언하며 남학생을 성폭행범으로 몰아갔고, 결국 그 남학생은 학교를 그만뒀다. 하지만 2018년 9월, 피해자라는 여학생이 그것은 사실이 아니라고 실토했다. 그 여학생은 그 남학생이 마음에 안 들어서 학교에서 쫓아내려고 성폭행이라는 거짓말을 지어낸 것이라고 했다. 남학생 측은 여학생과 학교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냈다. 이런 억울한 미국의 남자 고등학생 사건은 ‘힘투(#HimToo) 해시태그(’그도 미투 가해자로 당했다. 그러나 그는 무고하다‘는 의미)’를 달고 소셜 미디어에 집중적으로 올라왔다.

#힘투(HimToo)는 여성들의 거짓 미투로 피해를 본 남성들을 보호하자는 운동이다(사진: 취재기자 최유진).
#힘투(HimToo)는 여성들의 거짓 미투로 피해를 본 남성들을 보호하자는 운동이다(사진: 취재기자 최유진).

힘투(#HimToo)는 여성들의 성폭행이나 성추행 사례를 고발하는 미투(#MeToo)에 빗대, 성폭행 무고로 피해본 남성들을 보호하자는 운동이다. 거짓 미투로 억울하게 피해를 당하는 남성이 늘면서 미투에 대항하는 의미로 등장했다. 원래 힘투는 브렛 캐버노 미 대법관 인준 과정에서, 캐버노 대법관 후보자가 고교시절 성추행했다는 혐의에 시달렸으나 무사히 대법관에 임명되자, ‘그는 무고하다’는 의미에서 힘투 해시태크가 번졌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도 거짓 미투로 피해를 본 남성들의 사례가 많이 있다. 대표적으로 박진성 시인이 있다. 2016년 한 여성이 트위터에 자신이 박진성 시인에게 성폭행당했다고 올린 글이 문제가 됐다. 한 일간신문이 사실 확인도 없이 박진성 시인의 얼굴공개, 실명공개로 기사를 내보냈다. 그로 인해 잘나가던 박진성 시인은 하루아침에 성추행범이 됐고 사회에서 매장당했다. 하지만 시인의 성폭행은 사실이 아니었고, 가해자가 관심을 끌기 위해 장난으로 허위폭로한 것이었다. 이후 가해자는 카톡으로 죄송하다는 말을 한 것이 사과의 전부였고, 법원으로부터 기소유예 처분을 받았다. 해당 일간지는 정정보도문을 게재하고 박 시인에게 2990만 원을 지급했다.

또 유명 조각가이자 부산의 한 사립대 교수인 손모 교수는 자신의 아파트에서 투신이라는 극단적 선택을 했다. 그는 2016년 학내에 붙은 대자보 때문에 성추행범으로 몰려 괴로워했다. 경찰이 사건을 수사해보니, 해당 교수의 성추행은 사실이 아니었다. 대자보를 쓴 학생은 다른 교수의 성추행 사실을 소문만 듣고 손 교수가 저지른 것으로 대자보를 허위로 작성한 것이었다. 실제로 성추행을 한 교수는 손 교수가 아니고 다른 교수로 밝혀졌다. 미투로 고발된 대상은 후에 무죄판결을 받더라도 이미 신상정보가 다 공개됐기 때문에 정상적인 생활이 불가능하다. 손 교수처럼 한 번 훼손된 명예는 회복되지 못하고 본인에게 극심한 정신적 고통을 준다. 대학생 이은진(22, 부산시 진구) 씨는 “성추행 사건은 피해자인 여성에게 유리할 수밖에 없는 것 같다. 그러나 그것이 거짓이라면 가해자로 지목된 남성은 돌이킬 수 없는 막대한 피해를 받으니까 더 문제가 된다”고 말했다.

2017년 대전의 한 곰탕집에서도 미투로 몰린 남자 손님이 있었다. 일명 대전곰탕집 성추행 사건이다. 한 남성이 곰탕집에서 식당 밖으로 나가면서 옆에 있던 한 여성의 엉덩이를 움켜쥐었다는 혐의를 받았다. 피해자는 성적 수치심을 느꼈다며 가해자로 지목한 남성을 고소했고, 피의자가 된 해당 남성은 억울함을 호소했다. 남성 부인은 청와대 국민청원을 올렸다. 남편이 미투에 희생됐다며 일종의 힘투운동을 벌인 것이다. 반응은 뜨거웠고, 청와대 국민청원은 33만 명 이상의 동의를 이끌어 냈다. 이 사건은 남성과 여성의 젠더 갈등으로 확대되기도 했다. 그러나 곰탕집 성추행 사건은 1.333초에 해당하는 장면의 CCTV 확인을 거쳐 1심 재판부에 의해 징역 6개월의 실형으로 일단락됐다.

곰탕집 성추행 사건은 남자가 잘못한 것으로 1심 판결이 났지만, 분노한 당사자들은 ‘당신의 가족과 당신의 삶을 지키기 위하여(당당위)’라는 인터넷 카페까지 만들어 시위를 했다. 성추행을 확신할 수 없는 상황에서 실형 선고를 하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증거 없이 처벌 받는 사회를 만들고 무죄추정의 원칙을 무시하는 행위라고 사법부에 분격했다.

2015년 양예원 사건도 힘투와 관련해서 주목할 만한 사건이다. 양예원은 돈이 필요해서 알바로 불법 누드 사진을 몇 차례 찍었고 몇 년 후 인터넷에서 유포된 자신의 사진을 발견했다. 양예원은 그 촬영이 스튜디오 실장이 강압적으로 진행한 촬영이었고 사진도 실장 마음대로 유포했다며 해당 실장을 미투로 몰아 고소했다. 그러나 스튜디오 실장은 자신이 사진을 유포하지 않았다고 결백을 주장했고, 피해자와 네티즌들의 근거 없는 소문에 견디지 못한 실장은 결국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당당위’는 곰탕집 성추행 사건 뿐 아니라 양예원 사건 등 피해자 진술만으로 유죄가 나오는 수많은 사건에 분노하여 힘투운동 모임을 만들고 공동 대응하고 있다. 대학생 김나영 씨는 “여자들이 미투라는 시대상황을 타서 이득을 챙기려고 무고한 남자를 가해자로 지목하는 것 같은데, 이런 일을 당하는 남자들이 불쌍하다. 이런 사건들 때문에 남혐, 여혐이 더 심해지고 젠더갈등이 심화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한편, 힘투운동을 지지했다가 비난을 받은 사례도 있었다. 미국의 한 여성이 자신의 트위터 계정에 자신의 아들 사진과 힘투운동을 지지하는 게시물을 올렸다. 그녀는 자신의 아들이 왜 아직 여자 친구가 없는지 의아하다며 자신의 훌륭한 아들이 여자 친구가 없는 것이 미투운동으로 죄 없는 남성들을 성폭력 무고로 몰고 가는 사회 분위기 때문이라는 의미의 게시물을 올렸다. 이에 네티즌들이 분노하면서 비난 글과 조롱 글을 줄지어 올렸다. 그리고 아들이 직접 해명하고 나서야 논란이 일단락됐다.

미국의 한 여성이 트위터에 미투운동 때문에 자신의 훌륭한 아들이 여자와 데이트하지 못한다는 글을 올려 비난을 받았다(사진: 트위터 캡처).
미국의 한 여성이 트위터에 미투운동 때문에 자신의 훌륭한 아들이 여자와 데이트하지 못한다는 글을 올려 비난을 받았다(사진: 트위터 캡처).

순수한 미투는 지지받아야 하지만 무고한 남성을 미투하는 것은 문제라며 힘투를 지지하는 의견이 많다. 대학생 유종화(24, 부산시 남구) 씨는 “여성들이 개인적인 감정이 나쁘다고 남성들에게 누명을 씌우는 것은 해당 남성들에게 너무 억울한 일이다. 진실이 밝혀지면 그 사람 이미지에도 타격이 심할 텐데 왜 그렇게까지 하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미투운동은 우리 사회의 일상생활 속에서 긍정적 변화를 이끌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직장인 이모 씨는 “회식자리에서 여성 직원들이 따라주는 술을 안받으려하는 분위기가 있다. 치근덕거리는 남자 선배가 여자 후배 직원에게 잔심부름을 시키면 다른 여자선배들이 왜 그런 걸 시키냐고 하면서 막아주기도 한다”고 말했다. 또 대학생 김강산(26, 부산시 해운대구) 씨는 “확실히 교수와 학생도 서로 조심하는 것 같다. 교수님들이 강의하다가 말을 정정하겠다고 하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많은 여대생들도 취재 과정에서 “전에는 ‘예쁘다’ ‘옷 멋지다’ 등 칭찬으로 말하던 성희롱성 발언이 많이 줄었다. 남자 교수님들이나 남자 선배들이 조심하는 것을 많이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사람들은 잘못된 미투운동으로 힘투운동이 생긴 세태를 안타까워하기도 한다. 김지호(22, 경남 양산시) 씨는 “여성들이 사회적으로 배려를 많이 받는 편인데 미투가 이런 사회 분위기를 악용하는 사례가 되면 안 된다”고 말했다. 또 전인혜(22, 부산시 해운대구) 씨는 “미투운동이 긍정적인 부분도 있지만, 힘투운동이 나타난 것처럼 우리 사회에 남녀 갈등을 조장하는 방향으로 진행되면 안 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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