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행비서 성폭행 혐의' 안희정 1심 무죄...'시대착오 판결' 여성들 분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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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행비서 성폭행 혐의' 안희정 1심 무죄...'시대착오 판결' 여성들 분노
  • 취재기자 신예진
  • 승인 2018.08.14 2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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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판부 "피해자 거절 의사 불분명해 위력 행사에 의문"...김지은 "안희정 범죄 끝까지 입증할 터" / 신예진 기자

수행 비서 김지은 씨에 대한 성폭력 혐의로 기소된 안희정 전 충남지사가 1심 재판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이같은 결과가 나오자, 김 씨를 도왔던 '안희정 성폭력 사건 공동대책위원회'는 물론 다수 여성들이 판결을 두고 “인정할 수 없는 결과”라며 분통을 터트리고 있다.

14일 복수의 언론에 따르면, 이날 오전 10시 30분 서울서부지법 형사합의11부(부장판사 조병구)는 “피고인이 위력을 행사하여 피해자의 자유 의사를 제압한 후 간음 및 추행 행위를 저질렀다고 볼만한 증거가 부족하다”며 안 전 지사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이날 재판의 핵심 쟁점은 김지은 씨와 안 전 지사의 성관계 과정에서 ‘업무상 위력’이 존재했는지 여부였다. 안 전 지사는 업무상 위력에 의한 간음 4차례, 업무상 위력에 의한 추행 1차례, 강제추행 5차례를 저지른 혐의 등으로 기소됐다. 검찰은 안 전 지사에게 업무상 위력에 의한 간음죄를 적용해 징역 4년을 구형하고 성폭력 치료강의 수강이수 명령과 신상공개를 명령해 달라고 요청했다. 그러나 안 전 지사 측은 “사회·도덕적 책임은 피하지 않겠지만 위력 행사는 없었다”고 맞섰다.

재판부는 안 전 지사의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안 지사와 김 씨의 첫 성관계가 이뤄졌던 지난 2017년 7월 30일 러시아 호텔 상황을 주목했다. 이날 안 전 지사는 맥주를 들고 있는 김 씨를 포옹했다. 그리고 "외롭다", "안아달라" 등의 발언을 했다. 재판부는 “이 행위를 위력을 행사한 것으로 평가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재판부는 안 전 지사의 문제 행동에 따른 김 씨의 대처도 문제 삼았다. 재판부는 “김 씨가 간음에 이르기 전 심리적으로 얼어붙은 상황일 정도로 매우 당황해 바닥을 쳐다보며 중얼거리는 방식으로 거절 의사를 표현했다고 한다"며 "하지만 안 전 지사의 요구에 따라 안 전 지사를 살짝 안는 행위로 나아가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재판부는 또 “피해자는 마지막 성관계(2월 25일) 당시 ‘미투 운동’을 상세하게 인지했고 피고인과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며 “그렇다면 (피해를 입었을 당시) 최소한 오피스텔을 나가려는 등 저항을 했었어야 하지만 그러한 행위는 없었다”고 밝혔다.

비서를 성폭행한 혐의로 기소된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가 14일 오전 서울 마포구 서울서부지방법원에서 열린 1심 선고에서 무죄를 선고받고 법정을 나서고 있다(사진: 더 팩트 이덕인 기자, 더 팩트 제공).

재판부의 이같은 판결에 대해 '안희정 성폭력사건 공동대책위원회'는 14일 오전 서울 마포구 서울서부지법 앞에서 이번 선고에 대한 기자회견을 열고 재판부의 판결을 비난했다. 공대위측은 "재판부는 피해자의 진술과 피고인의 유죄를 증명하는 증거들을 너무도 쉽게 배척해버렸다"며 "즉시 항고에 새로운 판단을 기다리겠다. 피해자의 용기에 사법부가 응답할 차례"라고 주장했다. 

네티즌을 포함한 여성들도 분노를 표했다. 성폭력이 일어났을 때 피해자가 격하게 반응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것이다. 동시에 김 씨의 용기로 촉발된 미투 운동이 자칫 동력을 잃을까 걱정했다. 현재 트위터에는 "우리는  김지은을 지지합니다", "가해자는 감옥으로, 피해자는 일상으로" 등의 해시태그와 함께 김 씨를 지지하는 글이 빗발치고 있다.

네티즌 A 씨는 “안희정 사건 판결 때문에 위계에 의한 성범죄는 무죄라는 좋은 선례를 남긴 것 같다”며 “앞으로는 더 많은 피해 여성들이 입을 닫게 되겠지”라고 비꼬았다. 그는 이어 "흔히 남자들은 가정을 위해 자존심을 버린다고 한다"며 “현실은 여자들도 먹고 살기 위해 상사의 성추행 등을 참는 일이 비일비재하다"고 지적했다.

네티즌 B 씨는 “김지은 씨는 직장도 잃고 안희정 변호인들에게 2차 가해를 당하면서 법정에 나섰다”며 “안희정 무죄 판결은 이 나라에서 돈 없고 빽 없는 여자는 그냥 기득권 남성에게 얌전히 당하고 있으라는 이 사회의 암묵적인 협박으로 들린다”고 분통을 터트렸다.

국내 여성단체들도 이번 결과를 두고 한목소리로 비판했다. 한국여성단체연합은 이날 성명을 내고 “유력 대권후보이자 도지사라는 막강한 권력을 가진 자가 그의 수행비서에게 행사한 것이 ‘위력’이 아니면 무엇이란 말인가”라며 “이러한 판결은 한국 사회에 사법 정의라는 것이 존재하긴 하는지 의심케 한다”고 외쳤다.

최근 수만 명 규모 여성 집회를 개최하고 있는 ‘불법촬영 편파수사 규탄 시위’ 카페 회원들은 5차 시위 논의를 시작했다. ‘착한 시위’를 추구했던 회원들은 “5차 시위는 더 과격해야 한다”며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다. 현재 5차 시위 날짜와 장소는 정해지지 않았다.

물론 성폭행이 아니라 ‘불륜’이라는 주장도 있다. 안 전 지사와 김 씨가 여러 번 관계를 맺었고, 문제 발생 이후에도 김 씨가 직장을 꾸준히 다녔기 때문. 이같은 주장을 제기한 네티즌들은 ‘미투’ 폭로를 비난하며 김 씨를 무고죄로 고소해야 한다는 의견도 냈다.

한 네티즌은 “둘 사이에 벌어진 일이라 증거도 불충분하고, 사실 여부와 상관없이 법적으로는 무죄를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결론이었다고 본다”며 “다만 아내를 두고 불륜을 저질렀으니 도덕적으로 지탄받아 마땅하다”고 말했다. 그는 “내가 사는 지역을 저 사람에게 맡기고 싶진 않으니 정치 생명도 끝났다고 봐야겠지”라고 덧붙였다.

한편, 김 씨 측은 이날 재판 결과에 대해 격앙된 반응을 보였다. 이후 김지은 씨는 이날 입장문을 내고 “부당한 결과에 주저앉지 않을 것”이라며 긴 싸움을 예고했다.

김 씨는 “재판정에서 피해자다움과 정조를 말씀하실 때 결과는 이미 예견됐을지도 모르겠다”며 “침묵과 거짓으로 진실을 짓밟으려던 사람들과 피고인의 반성 없는 태도에 지독히 아프고 괴로웠다”고 말했다.

김 씨는 이어 “굳건히 살고 살아서 안희정의 범죄 행위를 법적으로 증명할 것”이라며 “권력자의 권력형 성폭력이 법에 의해 정당하게 심판받을 수 있도록 끝까지 싸울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 씨는 “범죄자는 감옥으로, 피해자는 일상으로 돌아가는 초석이 되도록 다시 힘을 낼 것”이라며 “끝까지 함께 해달라. 간절히 부탁드린다”고 호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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