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작 폭로, 사이비, 군주론…그리고 안철수의 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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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작 폭로, 사이비, 군주론…그리고 안철수의 진실
  • 편집국장 강동수
  • 승인 2017.07.02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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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동수의 자투리 시사인문① 페이크 뉴스 / 편집국장 강동수
편집국장 강동수

필자 강동수는 1961년 경남 마산에서 출생 서울대학교 독어교육과를 졸업했다. 1994년 세계일보 신춘문예에소설이 당선돼 등단한 후 소설집 <몽유시인을 위한 변명> <금발의 제니> 장편소설 <제국익문사 > <검은 땅에 빛나는> 산문집 <가납사니의 따따부따>등을 펴냈다. 요산 김정한문학상, 오영수문학상, 교산 허균문학상 등을 받았다. 국제신문 논설실장을 거쳐 현재 경성대 커뮤니케이션 학부 산학교수 겸 시빅뉴스 편집국장으로 일하고 있다.

 

1.

국민의당 발 ‘가짜 의혹’ 폭로 사건이 정치권을 강타하고 있다. 다들 아는 대로 지난 대통령 선거 당시 국민의당이 문재인 대통령 아들의 취업 특혜에 대한 빼도 박도 못할 증거라며 내놓은 모바일 메신저 대화록과 음성 녹음 파일이 한 여성 당원에 의해 조작됐다는 것. 문 대통령 아들인 문준용 씨의 미국 파슨스대학 동창이라는 사람이 준용 씨에게서 들었다며 “아빠(문 후보)가 얘기를 해서 어디(고용정보원)에 이력서만 내면 된다’는 이야기를 (준용 씨로부터)들었다”는 내용이다. 문 대통령이 아들의 취업 청탁을 직접 했다는 건데, 이 파일을 근거로 국민의당이 문 후보를 벌떼처럼 공격한 건 다들 기억하는 대로다. 그들은 문준용 씨가 직접 모습을 드러내 해명해야 한다며 “숨는 놈이 범인”이라고까지 극언했던 터다.

그런데, 그게 안철수 전 대선 후보와 막역한 관계에 있는 당 소속 여성 당원이 만든 조작 파일이라는 게 뒤늦게 들통 난 거다. 박주선 비상대책위원장이 직접 조작을 실토하고 대국민 사과를 한 것까진 그나마 상황 판단을 제대로 한 것이지만, 당의 윗선이 개입됐느냐, 여성 평당원 혼자 벌인 소행이냐를 두고 여야 간에 치열한 공방이 벌어지고 있다. 물론 칼끝은 안철수 씨를 향하고 있다. 안 전 후보는 아직 쓰다, 달다 말없이 침묵을 지키고 있다. 검찰이 수사에 나섰으니 조만간 실체적 진실이 밝혀질 것으로 보이지만 국민들은 안 씨의 침묵이 의아하고 답답하다.

글쎄, 이 사건의 중대성이야 세세히 설명할 필요도 없다. 글쎄, 아무리 조작이 범람하고 가짜뉴스가 휩쓰는 세상이라지만 명색 원내 40석을 가진 공당이 경쟁 후보를 죽이기 위해 가짜 파일을 만들어 국민을 속인는 건 용납될 수 없는 일이 아닌가. 그 당이 입만 열면 구태 정치를 공격하고 ‘새 정치’를 외쳤던 당이어서 충격이 더 크다. 이래선 국민의당 존립 차원을 넘어서 민주정의 핵심인 정당 정치의 신뢰성에까지 타격이 아닐 수 없다. 그러니 명확하게 진상이 규명되고 철저하게 책임을 물어야 할 일이다.

2.

가짜 뉴스를 영어로 ‘페이크 뉴스(fake news)’라고 한다. 어원은 확실하지는 않지만 ‘fake’란 단어는 1775년 이래 등장한 단어라고 한다. ‘쓸어내다, 청소하다’는 뜻을 가진 독일어 ‘fegen’에서 유래한 것이라고도 하고, 더 거슬러 올라가면 ‘만들다’란 뜻을 가진 라틴어 ‘facere’가 그 뿌리라고도 한다. 스포츠에서 속이는 동작을 뜻하는 ‘feint’도 사촌 단어다. 어원이야 어쨌든 ‘fake’가 들어간 단어치고 좋은 뜻은 별로 없다. fakement(협잡), fakery(속임수, 가짜), fakey(협잡하는), faker(협잡꾼, 사기꾼), 그리고 fake fur(인조 모피) 등등. 하기야 재즈의 즉흥 연주를 ‘fake’라고 부른다지만.

동양에서 ‘fake’에 대응하는 말은 ‘사이비(似而非)’이겠다. 진짜와 비슷하지만 진짜가 아니란 뜻. 출전은 ‘맹자(孟子)’의 ‘진심장하(盡心章下)편’이다. 스승 맹자와 제자인 만장(萬章)의 문답에 나온다. 이 문답에서 맹자는 공자의 말씀을 인용해 사이비의 뜻을 푼다.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나는 겉으로는 비슷하나 실제로는 그렇지 않은 것을 미워한다(惡似而非者). 강아지풀을 미워하는 것은 그것이 곡식의 싹을 혼란시킬까 두렵기 때문이고, 망령됨을 미워하는 것은 그것이 정의를 혼란시킬까 두렵기 때문이고, 말 많은 것을 미워하는 것은 그것이 믿음을 혼란시킬까 두렵기 때문이며, 정(鄭)나라의 음란한 음악을 미워하는 이유는 아악을 더럽힐까 두렵기 때문이며, 보라색을 미워하는 것은 그것이 붉은 색을 혼란시킬까 두려워서이고, 향원을 미워하는 것은 그들이 덕을 혼란시킬까 두렵기 때문’이라고 하셨다.”

글쎄, 공자께서 정나라의 음악을 사이비라고 미워했다니 공자님 당대에도 요즘으로 치면 fake, 머리를 치렁하게 기른 재즈 버스커들이 노나라의 거리에서 음란한 정나라의 재즈(?)를 즉흥 연주해 젊은이들의 혼을 빼놓았는지, 그래서 근엄한 공자님이 기겁했는지는 모르겠다. 어쨌거나 공자께선 ‘문질빈빈(文質彬彬)’을 강조한다. 무늬(文)와 바탕(質)이 부합해야 빛이 난다(彬)는 거다. 무늬는 외관, 껍데기, 디자인 따위이겠고 바탕은 근본, 내면, 콘텐츠이겠다. 허접한 콘텐츠를 화려한 디자인으로 얼버무리는 게 바로 사이비가 아니겠나.

3.

꼭 들어맞지는 않지만 철학 용어 중에 페이크와 비슷한 개념으로 ‘시뮬라크르(simulacre)’란 게 있다. 시늉, 흉내, 모의란 뜻을 가진 프랑스어다. 플라톤은 본질로서의 이데아에 대치되는 것을 시뮬라크르, 즉 가짜 복사물이라고 해서 부정적으로 보았던 터다. 플라톤에 따르면, 우리는 원래 모범적 진리인 이데아와 더불어 살고 있었다. 그런데 이 세상으로 오는 동안 망각의 강 레테를 건너면서 이데아에 대한 인식을 상실했다는 거다. 그래서 이승에 있는 모든 불완전한 존재들이 살아가는 목적은 다시 저 모범적인 고향, 이데아를 어떤 식으로든 되찾는 것이란 거다.

그런데 그 시뮬라르크를 현대 문명의 한 특질로 본 사람이 프랑스의 철학자 보드리야르였다. 현대 문명에선 원본이 따로, 그것을 복제한 짝퉁이 따로 있는 게 아니란 거다. 모든 텍스트에서 일종의 상호 복제가 활발히 행해지고 있는 게 현대 문명이란 거다. 이를테면, 앤디 워홀의 코카콜라병 그림이나 마릴린 몬로의 복제화 같은 것. 한 화폭 속에서 수없이 복제된 콜라병과 먼로의 초상화 중에 과연 무엇이 진짜이고, 무엇이 가짜인가. 워홀의 세계에선 원본과 복제가 사실은 의미 없는 것이다. 그렇게 보면 요즘 같은 디지털 세상에선 원본과 가짜가 사실 의미가 없어진지 오래다. 원본 동영상과 내가 그것을 복제한 동영상의 차이는 무언가? 복제된 동영상을 다시 재복제한 것은? 그것들이 인터넷상에서 돌아다닐 때 과연 원본을 어떻게 찾아낼 수 있단 말일까. 아니, 원본 자체가 있기나 한 것일까.

플라톤이 지금 세상에 환생하면 펄쩍 뛸 노릇이겠으나 디지털 세상은 서로가 서로를 끊임없이 복제하는 세상에서 모범적인 원본 이데아는 이미 사라지고 없다. 상호 복제의 끝없는 순환이 있을 뿐이다. 그렇게 보면 우리의 지식은 또 다른 지식의 복제이며, 우리의 삶은 또 다른 삶의 모방에 불과한 것이 아닌가? 보드리야르는 이렇게 말한다. “영토는 더 이상 지도에 선행하거나, 지도가 소멸된 이후까지 존속하지 않는다. 이제는 지도가 영토에 선행하고 심지어 영토를 만들어 낸다.”

그렇다면, 국민의당은 21세기 정치판의 앤디 워홀일까. 혹은 보드리야르일까. 그래서 상대방의 비리를 스스로 복제하고 창조해낸 것일까.

4.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은 그가 가장 불우했을 때의 저작이다. 피렌체의 서기장이었던 그는 1512년 정치적 사건에 휘말려 파직돼 피렌체 외곽으로 추방당한다. 그리고 1513년 반(反)메디치 음모에 가담했다는 혐의를 받아 체포되기까지 한다. 한번만 받으면 누구라도 자백하게 만든다는 ‘날개꺾기’(strappado) 고문을 6번에 걸쳐 받았다고 한다.

그래서 그럴까. 그래서 그는 모든 약한 것은 악한 것이라는 결론에 이른다. 냉혹하고 비정하며 권모술수를 아끼지 않은 당대의 책략가 체르사 보르지아를 모델로 삼은 <군주론>에서 마키아벨리는 지배자라면 여우의 교활함과 사자의 용맹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한다. <군주론>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스스로의 권력을 보존코자 하는 군주는 비록 선하지 않은 방법이라 할지라도 필요하다면 쓸 수 있는 마음의 준비를 갖추어야 하는 것이다."

"통치자가 최고의 목표를 이루고자 한다면 도덕이 항상 합리적이지 않다는 점을 깨달을 것이다. 군주가 국가를 지키려 한다면 때로는 어쩔 수 없이 진실과 자비, 인간애와 종교에 반하여 행동할 필요가 있다."

"일상 생활에서 속임수를 쓰거나 폭력을 휘두르는 것은 나쁜 일이다. 그러나 군주는 국민의 평화와 행복을 위해서는 이런 일도 서슴지 않아야 한다."

대통령 선거에 나섰을 때 안철수 전 후보는 혹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을 읽었을까. ‘최고의 목표를 이루려면 도덕이 항상 합리적이 않다는 점’을 그는 뒤늦게 깨달았을까. 일상 생활에서 속임수를 쓰는 것은 나쁜 일이지만, 군주(혹은 군주가 되려는 자)는 이런 일도 서슴지 않아야 한다는 것을 배웠을까.

5.

<베스트 오퍼>란 영화가 있다. <시네마 천국>을 연출한 이탈리아의 거장 쥬세페 토르나토레 감독이 2013년 만든 영화다. 최고 가격으로 미술품을 낙찰시키는 세기의 경매사이자 예술품의 가치를 알아보는 완벽한 감정사가 주인공으로 나온다. 결벽증 환자인 그는 연애도 한 번 안 해보고 집에 들어와 벽을 가득 메운 여자들의 초상화를 보며 심신의 안정을 찾는 사람이다. 그런데 63세의 그는 광장공포증으로 고성에서 은둔하는 한 여성을 만나 사랑에 빠진다. 결국 그녀와 함께 살게 되지만 어느 날 출장 갔다가 돌아와 보니 그 동안 모아놓았던 초상화가 다 사라져 버렸다는 줄거리다. 결국 위조된 사랑의 이야기. 진품과 모조품을 구별하는 일로 세기적 명성을 얻은 감정사가 사랑에선 가짜를 구별하지 못했다는 뭐 그런 이야기다. 그런데 영화 중에 인상 깊은 대사가 하나 있다.

"위조품엔 항상 진품의 면모가 감춰져 있다."

글쎄, 페이크에 대한 통렬한 통찰이다. 그렇다. 위조품엔 항상 진품의 면모가 숨어 있기에 사람들이 속지 않는가. 가짜 뉴스도 일면의 그럴 듯함을 담아내니 사람들이 혹한다. 그래서 덩달아 분노하고 돌팔매를 던진다. 그래서 ‘짝퉁’ 아니겠나. 하지만 타인을 속이고, 타인의 감정을 착취한다는 점에서 페이크 뉴스는 윤리적으로 가장 비겁한 행위의 하나다.

자기네도 30대 후반의 한 여성 평당원에게 속았다는 국민의당 사람들의 주장을 얼마나 신뢰해야 할지는 알 수 없다. 지도부도, 안철수 씨도 조작 음모를 몰랐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다 해서 그들이 져야 할 정치적 책임마저 사라지지는 않는다. 타인의 약점을 선거전에 폭로해 써먹겠다고 한 발상 자체가 오늘의 비극을 잉태했는지도 모른다.

마키아벨리가 <군주론>의 모델로 삼은 보르자는 냉혹한 인간이었다. 화해의 모임을 갖는다는 핑계로 반란자들을 한자리에 모이게 한 뒤 몰살시켰고, 가장 아끼는 부하에게 누명을 씌워 죽여서는 광장에 전시해 시민의 동요를 가라앉히기도 했다.

안철수 씨가 자신을 평소에 따랐다는, 대학의 제자였던 아랫사람에게만 누명을 씌워 ‘꼬리 자르기’를 하고 있지 않느냐는 일각의 의심이 행여라도 사실이 아니기를 나는 바란다. 그들이 문재인 대통령을 향해 내뱉었던 독설, ‘숨는 놈이 범인’이란 말을 기억하기를 바란다.

<베스트 오퍼>엔 이런 대사도 나온다. 글쎄 21세기, ‘디지털 천국’을 사는 우리 모두가 이런 위조된 감정, 시뮬라시옹의 세계에 빠져 있다고 생각하면 좀 쓸쓸해진다. 아니 두려워진다.

"인간의 감정은 예술 작품 같은 거야. 위조될 수 있는 거지. 원본과 비슷해 보이지만 위작일 수도 있네. 모든 걸 속일 수 있다는 말일세. 기쁨, 고통, 미움, 병, 회복, 사랑까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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