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용범 칼럼] 한국 언론의 저널리즘은 실패했다; 정확성․공정성 상실에 부패 탐닉(耽溺)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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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용범 칼럼] 한국 언론의 저널리즘은 실패했다; 정확성․공정성 상실에 부패 탐닉(耽溺)까지
  • CIVIC뉴스 칼럼니스트 차용범
  • 승인 2023.01.30 07: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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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언론의 저널리즘은 실패했다. 언론이 정확성․공정성을 잃고 정파성을 즐기며 국민의 신뢰를 상실하고 있다. 언론인이 직업적 도덕성을 잃고 부패에 탐닉(耽溺)하며 공중의 기대를 배신하고 있다. 명색이 언론매체를 자임하며 진실을 흐리고 사회분열을 부추기는 시대다. 국민이 정치권-언론계를 가장 부패한 집단으로 꼽는 시대다. 언론이 저널리즘의 핵심과 언론윤리의 경계를 잃고 속절없이 침몰한다? 그 위기의 끝은 과연 어디인가?

그 저널리즘의 본질적 위기는 저널리즘의 기본, 곧 정확성·공정성 대신 정파성에 기운 편향보도다. 생각해 보라, 보도 내용이 진실·공정하지 못하다면 누가 그 보도를 신뢰하겠나? 한국 언론이 속으로 저널리즘의 기본을 잃고 겉으로 당당한 것은 언론윤리 의식의 부재 때문이다. 언론의 존재이유를 잃고도 부끄러운 줄 모르는 것이다. 맡아야 할 몫을 잃고 낯까지 두꺼운 언론, 누가 그런 언론을 신뢰하겠나?

그 위기의 뿌리는 강고하다. 언론은 존립을 다툴 위기 앞에서 성찰하고 자정(自淨)할 줄 모른다. 공영방송 KBS․MBC가 정확성·공정성 추구에 실패한 보도·제작에서, 반성하고 사과하며 제대로 책임을 지고 있는가? 이즘 ‘대장동 개발 특혜 의혹’의 김만배에 얽힌 ‘언론계 돈 로비 의혹’으로 온 언론계가 쑥대밭 같다. 그 위기 앞에서 언론계는 제대로 반성하며 자정을 꾀하고 있나? 위기 앞에서 깨우칠 줄 모르는 버릇, 우리 언론의 그 비극적 한계는 또 어디까지인가.

'언론계 돈 로비 파동'의 김만배 씨가 대장동 개발 사업 로비·특혜 의혹 관련 속행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사진; 더팩트).
'언론계 돈 로비 파동'의 김만배 씨가 대장동 개발 사업 로비 의혹 관련 속행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사진; 더팩트).

메마른 땅에도 꽃은 피는가? 언론의 윤리의식 부재 속‘ 한 줄기 희망이라면, 이번 ’언론계 돈 로비 의혹’ 사태에서 ‘한겨레’가 보여주는 진지한 반성과 자정의 몸부림이다. ‘한겨레’의 자사 기자 연루사건 중간보고서, 그 문맥은 냉정하다. 미국 뉴욕타임스(NYT)가 ‘제이슨 블레어 사건’ 때 채택한 ‘NYT 시걸위원회 보고서’를 연상케 할, 한국 저널리즘의 귀한 이정표다. 그 ‘지사(志士)적 언론‘이 걷고 있는 반성과 대응에서, 언론계가 깨우칠 바는 뭔가?


1. 기자는 자유인․전문인이라고들 한다. 직업 생리상 지위·권력으로부터의 자유, 기사 선택의 자유를 갖는 만큼 ‘자유인’이요, 직무 성격상 공적 과업을 중시하고 특유의 직업윤리가 필요한 만큼 ‘전문인’이라는 것이다. 정녕 언론직은 의사나 법조인 같은 전문직인가? 그렇다. 전문직의 표준화 교육이나 자격증 제도는 없더라도, 공공 봉사를 강조하고 엄격한 윤리를 선언한 만큼 전문직의 속성을 두루 구비하고 있다는 것이다.

“기자는 전문직인 만큼, 진정한 의미의 전문인(true professional)이 되도록 노력해야 한다”-세계 최초 저널리즘스쿨 미주리주립대 월터 윌리엄스 학장의 경구다. 언론인은 사회적 요구․기대에 부응할 전문적 역량을 갖추어야 하고, 윤리적으로 정당한 행위인지를 회의할 도덕적 반성력을 지녀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언론인의 신조’를 제정하며 경고했다. “공공의 언론은 공공의 신뢰 그 자체이며 공공에 대한 봉사보다 가벼운 대상에의 봉사는 이러한 신뢰에 대한 배신”이라고-.

한국 기자사회도 ‘윤리적 언론’을 추구한다. 한국기협 등은 2년 전, 모든 보도·논평 종사자가 실천해야 할 핵심원칙, 그 ‘언론윤리헌장’을 제정했다. 헌장은 언론인의 목표·과제 9개 원칙을 명시했다. ①진실 추구 ②투명한 보도와 책임 있는 설명 ④공정 보도 ⑥갈등 해결 및 신뢰 제고의 공론장 제공 ⑧품위 있는 행동과 이해상충 경계 등이다.

언론윤리헌장은 보도·논평 종사자가 실천해야 할 핵심원칙을 9개 항으로 정리, 선언했다(그림: 한국기자협회 홈피).
언론윤리헌장은 보도·논평 종사자가 실천해야 할 핵심원칙을 9개 항으로 정리, 선언했다(그림: 한국기자협회 홈피).

본문 9개 항의 주어(主語)는 ‘윤리적 언론’이다. (진실 추구)‘윤리적 언론’은 진실을 보도한다. 진실 추구는 언론의 존재 이유다, (공정 보도)특정 집단·세력·견해에 치우치지 않고 공평무사한 자세로 보도한다, (갈등 해결)진영논리에 빠져 특정세력을 편들거나 반대세력을 과도하게 공격하지 않으며. (품위 있는 언론)높은 도덕성을 유지하며 이해상충을 경계한다, 같은 문맥이다

나는 당시, 남은 우려를 담은 비평 글을 썼다. 한국 언론의 신뢰도 ‘세계 최하위’ 상황 속, 언론의 가벼운 현실 인식과 기자들의 소홀한 자성 의지를 걱정한 것이다. 스스로 언론이 추구해야 할 원칙을 배신해 온 자해적 결과 앞에, 기자들은 정녕 이 윤리헌장 만으로 언론의 존재이유를 되찾을 수 있을까?. 추락하는 언론의 신뢰 회복을 위해 기존 ‘언론윤리강령’에 덧붙여 시도한 자구(自求) 노력, 그 시도 역시 썩 미덥지 않았던 것이다.

[저널리즘 세계·한국언론 이슈-27]한국언론의 존재이유와 정확·공정성 찾기, 새 ‘윤리헌장’으로 충분할까?

http://www.civic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30822


2. 그 우려는 역시, 기우(杞憂)는 아니었다. 이즘 ‘언론계 돈 로비 의혹’의 충격과 엄중함은 예사롭지 않다. 희대의 ‘악질 브로커’ 김만배의 언론계 로비에 보수-진보를 가릴 것 없이, 전통 언론의 보도·논평 간부가 줄줄이 얽혀 있다. 그와 골프장에서 어울리며 100만 원 이상의 현금․상품권을 받은 현직 기자도 수십 명, 무더기로 검찰 수사를 받고 있다는 보도다. 정치인 부패-법조인 부패와 함께, 언론인 부패의 청산을 요구하는 소리가 터져 나올 정도다.

한낱 ‘법조 브로커’에게 온 언론계가 농락당한 상황, 그 언론계의 도덕성 붕괴는 심각하다. 이번 사태에는 한겨레·한국․중앙 같은 유수 언론의 중견들이 두루 얽혀, 1인 최고 9억 원대의 분별없는 ‘금전거래’를 했다지 않나. 한겨레의 보도총괄 간부는 기자사회의 촌지(寸志) 수수 관행을 공론화, 부도덕한 기자사회에 경종을 울린 ’특종기자‘다. 그 기자의 일탈, 나아가 부패한 뭇 언론인의 존재는 그 ’특혜 의혹‘ 보도에 어떤 영향을 미쳤나?

굳이 ’김만배 로비 사태‘를 들 필요도 없다. 한국 언론이 선언한 언론윤리는 ’언론의 자유‘를 강변할 때 동원할 도구적 명분이었을까? 언론은 ’언론의 품위‘ 대신 개인적 이권과 부패를 추구하고, ’진실보도‘ 대신, 정파적 진영논리를 쫓고 있다. 정확성·공정성을 바탕으로 권력과 사회를 감시․비판해야 할 언론이 진영논리와 부패에 탐닉하며 사회적 위기를 가중시킨다? 저널리즘을 잃은 언론, 누가 신뢰하겠나?

MBC의 ‘대통령 비속어 사용 논란’을 보라. MBC는 그 보도의 정확성 논란에 직면하고도 보도의 사실 검증과정을 설명하지 않고 있다. 방송강령에서 그 정확성 설명 책임을 새삼 선언하고도, ‘오보(誤報)’에의 항의를 그저 ‘언론 탄압’으로 강변한다. KBS·MBC가 ‘조국 사태’ 이래 빚어온 정확성·공정성의 실패 사례만도 한둘이겠나. 공영방송이 저널리즘에 실패하고 반성과 자정도 외면한다? 숱한 보도·제작 사고를 빚고, 사장은 책임 대신 연임(連任)에 도전한다?. 이런 공영방송은 또 무슨 소용이랴.

TBS ‘뉴스공장’이 남긴 6년의 명암은 어떤가? 유튜브 ‘더탐사’와 언론 출신 김의겸이 협업한 ‘청담동 술자리 의혹’의 악영향은 또 어떤가? 김어준은 사실 아닌 것을 사실처럼 주장하는 선동 위에 독자적 권력을 구축한 음모론자다(강상현․진중권). ‘더탐사’ 역시 근거 없는 의혹을 제기, ‘가짜뉴스’로 판명받고도 ‘언론의 자유’를 강변하며 일탈을 거듭하고 있다. 이런 언론은 과연 진정한 ‘언론’인가?.

[저널리즘 세계-한국언론 이슈 ⑫]기자의 타락, 언론윤리의 실종, 저널리즘의 붕괴

http://www.civic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29379


3. 한국 언론의 구조적 침몰, 그 원인은 분명하다. 무엇보다 언론윤리를 익히지 못했거나 그 철학에 약한 상태에서 언론직을 수행하고 있다. 그러지 않고서야, 권력과 사회를 비판․감시해야 할 언론인이 예사로 공중의 신뢰에 어긋나는 부패에 탐닉할 수 있겠나? 무엇보다 진실 추구에서 존재이유를 찾아야 할 언론인이 일상처럼 진영논리에 기댄 편파성에 침몰할 수 있겠나?

한국 언론의 위기는 급박하다. 언론환경의 격변에 따른 산업적 위기를 넘어, 언론지형의 급변에 따른 언론소비 형태의 변화까지, 그 위기는 구조적이다. 그 절체절명의 위기 속에서, 언론․언론인이 저널리즘의 기본을 배반하며 언론의 존립바탕을 스스로 허물고 있다. 기자들이, 진실·공정을 추구하지 않고 부패에 빠져들며 공중의 시선을 외면하고 있다 그런 언론, 이제 어디로 갈 것인가?

이번 ‘언론계 돈 로비 의혹’에 대응하는 예를 보라. ‘중앙’은 독자에게 사과하며 그 논설위원의 사표를 수리했다. ‘한국’은 독자에게 사과하며 그 뉴스룸 간부를 해고했다. 언론사는 그 언론인의 행위를 ‘직업윤리의 심각한 훼손’(중앙), ‘신문의 신뢰성·공정성 크게 훼손’(한국)으로 평가했다. 그러나, 그 언론인의 부패행위는 개인의 일탈행위에 불과한가? 그 부패구조가 보도에 미친 영향을 정녕 없는가? 중앙·한국의 진상조사·후속조치 없는 사과가 사과답지 않음은 왜인가?

그나마 ‘한겨레’의 대응은 확연하게 다르다. 대표와 편집국장이 사퇴키로 하는 한편, 진상조사위를 꾸려 부패 행위의 발생과정과 보도에의 영향을 조사하고 있다. “한겨레의 뼈아픈 반성과 성찰이 한국 언론 전체의 ‘이해충돌’에 대한 민감도를 높이고 언론인의 도덕·청렴·공정 의무를 새삼 확인하는 계기이기를 바란다”-진상조사위원장의 기대다. 신문은 조사 중간경과를 본지 2면 전면(광고 제외) 기사로 게재했다.

‘언론계 돈 로비 의혹’ 관련, '한겨레'의 중간경과 보고문(위)과 ‘중앙-’한국‘의 사과 사고(각 지면 이미지).

조사위는 사건의 진상과 함께, 자정 구조의 문제점을 파악하고 있다. 그 궁극적 목표는 ‘신뢰 회복’이다. *한겨레 간부의 금전거래 및 이해충돌, *2022년 3월 사내인사 인지, *한겨레 대응 및 향후 계획…. 조사위는 한겨레가 한겨레다운 윤리의식과 공정성을 갖고 있는지, 이번 사태에 따른 내부문제는 무엇인지를 엄정하게 따지고 있다. 그 보고 내용과 공표 방식에서, NYT의 ‘시걸위원회 보고서’를 떠올린다. 한겨레의 분발, 그저 감사하다.


4. 세계적 권위지도 보도 과정에서 진실성-정확성을 제대로 추구하지 못한 결과 ‘사과’를 하곤 했다. 워싱턴 포스트(WP)의 ‘지미의 세계’(Jimmy's World)는 그 단적인 사례다. 퓰리처상 수상 이후 ‘완전한 조작’으로 드러난, 미국언론 사상 가장 치욕적인 사건에서 WP는 위기를 이겨내고 독자의 신뢰를 회복했다. 스스로 ‘조작기사’를 찾아내고, 그 사실을 1면 머리기사로 알리며 진정성 있게 사과했다. 그 사과의 결과는 참 좋았다.

‘세계 최고의 신문’ NYT 역시 조작 내지 표절 기사로 역사에 길이 남을 재난을 치렀다. ‘제이슨 블레어 사건’이다. 젊은 기자 블레어는 기사를 조작·날조하는 행로를 걸으며 승승장구하다, 끝내 NYT의 신뢰도에 엄청난 해악을 끼쳤다. NYT 역시 이 재난을 진정성 있는 검증과 사과로 대처했다. 신문의 1면과 4개 면에 장문의 사과문과 조사 결과를 실었다. 조사특위를 구성, 사태발생 배경과 조직운영의 문제점, 향후 대책을 담은 보고서를 만들었다. ‘왜 우리의 저널리즘은 실패했나’, 그 보고서 제목이다.

NYT는 ‘제이슨 블레어 사건’ 같은 신뢰 상실 위기를 진정성 있는 검증과 사과로 극복, 예전 이상의 명성을 구축했다(사진; 'NYT의 상징' 사옥 전면 모습, 구글 이미지).
NYT는 ‘제이슨 블레어 사건’ 같은 신뢰 상실 위기를 진정성 있는 검증과 사과로 극복, 예전 이상의 명성을 구축했다(사진; 'NYT의 상징' 사옥 전면 모습, 구글 이미지).

“NYT의 가장 큰 힘은 권위와 명성이다”-NYT 윤리규정집(‘윤리적 저널리즘을 위한 뉴욕타임스 가이드라인’) 속 문장이다. NYT의 윤리는 ‘무결성(integrity)’이라는 단어를 통해, 모든 구성원이 모든 면에서 ‘결함 제로’를 추구하도록 철저하게 통제한다. 한국 언론 역시 훌륭한 윤리헌장, 윤리강령, 보도준칙을 갖고 있다. 문제는 실천이다. 언론 구성원부터 언론윤리의 엄정함에 무심할 때, 어떤 실천이 뒤따를 수 있겠나.

언론학자 강준만은 연전, 저널리즘의 품격을 얘기하며 언론의 신뢰회복을 위한 분발을 새삼 강조했다. 언론은 종래의 ‘권력 모델’ 대신 겸손·신뢰·실력을 갖춘 '봉사 모델'로 전환해야 하리라는 것, 종교적 신념 같은 정파성으로 무장한 사람들의 신뢰를 얻기 위해선 그만한 (언론윤리적)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한국 언론은 언제쯤, 처절한 반성과 성찰 위에 자정의 계기를 찾을 수 있을 것인가.


한국 언론의 위기, 돌파구는 있다. 언론윤리에 철저하며 ‘최고의 저널리즘’을 추구해야 한다. 문제는 그 언론윤리부터 어떻게 이해하며 체화할 것인가이다. 기자사회는 자주, 보도과정의 윤리적 쟁점을 의식하며 문제해결 능력을 높여가야 한다. 그런 과정에서, 진영논리에 함몰한 상당수 기자, 부패에 둔감한 일부 기자들을 ‘윤리적 언론’의 경계 안으로 끌어가야 한다. 그간 언론윤리 실천의 빛나는 역사를, 혹은 최근 한겨레의 분발을 기억하며 저널리즘의 본질을 되찾는 계기를 찾아가야 한다.

언론, 정신 똑바로 차리고, 자중자애(自重自愛)해야 한다. 한국 사회를 추동해온 한국 언론의 면면한 역사를 기억해야 한다. 언론인의 일탈을 막을 입법을 거론 중인 상황에서, 정말 저널리즘과 언론윤리의 경계 밖으로 침몰할 것인가, 뼈를 깎고 살을 에는 노력으로 국민의 신뢰를 회복할 것인가? 정녕 언론의 존재이유를 되찾으며 민주주의의 유지에 기여할 것인가, 불공정과 부패에 탐닉하며 민주주의의 뿌리를 흔들 것인가? 한국 언론-언론인의 선택은 과연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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