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용범 칼럼] ‘판새’와 ‘법꾸라지’, 시대를 희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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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용범 칼럼] ‘판새’와 ‘법꾸라지’, 시대를 희롱하다
  • CIVIC뉴스 칼럼니스트 차용범
  • 승인 2023.03.06 07:01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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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심 따른 판결? 사회와의 소통 실패, ‘판새’ 전락
법 규정 악용하며 ‘공인’ 책임 외면, ‘법꾸라지’로…

혼돈의 시대다. 세기적 전환기 한국 사회의 퇴행화 현상은 날로 심각하다. 부끄럽고 꼴사나운 현대사의 회한을 곱씹으며, 우리 사회의 건강성을 되돌아볼 때다. 이즘 잇따르는 ‘황당한 판결’ 또는 ‘재판의 실패’에서 ‘판새’의 의미를 실감한다. ‘아들 퇴직금 50억, 곽상도 무죄’, ‘위안부 후원금 횡령, 윤미향 벌금형’, ‘김학의 불법 출국금지 관여자 무죄’, 법관의 양심을 내세우며 법과 사회와의 소통을 외면한 ‘판새’들의 흑역사(黑歷史)다.

‘판새’, 그 조어(造語)의 세계에 ‘법꾸라지’도 빼놓을 수 없다. 최근 일부 정치인의 언행에서 그 조어의 어원과 용례의 부정적 영향을 실감한다. 야당 대표의 의례적인 ‘황제 출석’과 ‘정치적 탄압 코스프레’, 대표적 공인(公人)의 책임과 품격에 걸맞지 않다. 불체포특권의 폐기를 다짐하곤 한사코 그 특권에 집착한 결과에서, 정치적 명분과 국민의 신뢰를 함께 잃는 ‘법꾸라지’의 행색을 본다.

이 시대의 ‘판새’와 ‘법꾸라지’를 질책할 땐, 대법원장 김명수의 책임 역시 따져가야 한다. 그가 법의 명목 위에 정치에 탐닉한 행적 역시, 사법부의 한 흑역사이리. ‘황당한 판결’-‘지체된 정의’의 배경과 의도를 더듬게 하는 사법부의 초라한 전통, 그건 ‘김명수 비리 백서’와 함께 이 시대 법치의 타락사로 길이 남을 터이다.

‘천망회회(天網恢恢), 소이부실(疏而不失)’, ‘하늘의 그물은 성글어도 빠뜨리지 않는다"는 노자(老子)의 도덕경 구절이다. 이제 법관은 권위만으로 살아있는 사회적 기준을 유지할 수 없다. 법, 나아가 법관은 완전하지 않다는 전제 아래 국민의 동의를 통한 ‘법의 지배’를 꾀해야 한다. 국민 앞에 발가벗어야 할 정치인 역시 공인의 품격에 맞게, 언행에서 천금 같은 무게를 잃지 않아야 한다. 제아무리 ’판새‘가 꿈틀거리고 ’법꾸라지‘가 날뛰어도 하늘 아래 진실을 가릴 순 없다.


1. ‘판새’, 판사(判事)를 비하하는 비속어(‘판사새X’)다. 기자가 사실확인 없는 선동으로 ‘기레기(기자+쓰레기)’ 같은 오명을 얻었듯, 판사 역시 법의 본뜻을 외면하고 궤변으로 법을 왜곡하다 경멸당하는 표현이다. 김태규 국민권익위 부위원장은 판사 시절, 이 비속어에 대해 “판사의 과책(科責)이 기자 못잖다”고 한탄했다. 정확한 법리, 보편적 상식, 헌법적 질서와 동떨어진 판결이 잇따르며, 사법부에의 국민 불신이 드높다는 것이다.

최근 ‘대장동 50억 뇌물수수 곽상도’에 대한 무죄 선고로 국민의 공분이 높다. 누군가의 자식에게 어떤 거액을 줘도 가족이 따로 살면 무죄다? 이게 공정인가?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 피해자 후원금 횡령 등 윤미향’에 대한 벌금형 선고 역시 뒷말이 무성하다. 위안부 피해자 후원금을 제 돈처럼 쓰고 치매 피해자가 받은 상금을 기부금으로 받아 챙겨도 무죄다? 이게 정의인가?

‘김학의 전 법무차관 불법 출국금지 관여’ 혐의자에 대한 무죄 선고 역시 황당하다. 어떤 범법자를 단죄하더라도 적법 절차를 지켜야 한다는 대원칙, 그 원칙을 수호해야 할 판사가 정반대의 판결을 한다? “목적이 정당하면 어떤 불법도 무죄”, 이처럼 법치와 인권을 외면한 판결이 어디 있나? ‘판새’의 양심과 역량이 이 수준이라면, 차라리 AI형 챗봇에 재판을 맡기는 게 낫지 않겠나?

최근 잇따른 ‘황당한 판결’로 국민의 공분이 높다. 곽상도(사진 위)와 윤미향(아래) 관련 판결은 법리와 싱식을 외면한 사례로 손가락질받고 있다(사진: 더팩트).
최근 잇따른 ‘황당한 판결’로 국민의 공분이 높다. 곽상도(사진 위)와 윤미향(아래) 관련 판결은 법리와 싱식을 외면한 사례로 손가락질받고 있다(사진: 더팩트).

2. 사법부의 권위는 일찌감치 무너졌다. 김명수 사법부가 적폐 청산을 명목으로 정치적 편향성에 탐닉한 것은 드러난 대로다. 김명수의 부적절한 처신으로 사법부의 명예가 망가진 것은 알려진 대로다. 최근 일부 법관의 ‘황당한 판결’ 역시 그런 면에서 숨은 의도를 의심받고 있다. 사법부가 정치권력을 견제하긴커녕 정치권력에 편승, 정치적 사건에 부당한 판결로 보답하는 생태계를 구축했다는 악평이 나올 정도다(최원목).

‘사법부 왜 이러나!’, 현 사법부에의 국민 불신이 높은 데는 대법원장의 책임이 크다. 사법부에서 “좋은 재판은 실패했다”는 혹평이 잇따를 정도다. 그 사법행정권 남용과 숱한 재판 지연 사례를 보라. 조국(曺國) 재판의 1심 판결에 3년 2개월, 윤미향의 1심 판결에 2년 5개월이 걸렸다. 2018년 지방선거 때 불거진 ‘청와대 울산시장 선거 개입 의혹’ 재판은 아직 1심 진행 중이다. 이러고도 법원이 ‘정의와 법치의 보루’를 자임할 수 있겠나?

이즘 사법부에의 국민 불신이 높은 데는 김명수 대법원장의 책임이 적지 않다. 그 의 시대, ‘사법부는 죽었다’는 혹평도 잇따른다(사진; 더팩트).
이즘 사법부에의 국민 불신이 높은 데는 김명수 대법원장의 책임이 적지 않다. 그 의 시대, ‘사법부는 죽었다’는 혹평도 잇따른다(사진; 더팩트).

‘판새’가 있다면 ‘검새’도 있다. 최근 ‘판새’들의 ‘황당한 판결’에는 공소 사실을 제대로 입증하지 못한 ‘검새’의 책임도 적지 않다. 대장동 비리의 곽상도, 위안부 할머니의 윤미향, 김학의 불법출금의 이광철 등을 수사한 그 시절 그 ‘검새’들이 얼마나 부실한 수사를 했는지, 그건 직무유기 수준이라 할 만하다. 그러니, ‘판새’와 ‘검새’가 도매금으로, 돌팔매질을 당하기도 예사다. ‘판새’와 ‘검새’의 추락, 그건 자업자득이다.


3. ‘법꾸라지’, ‘법률+미꾸라지’의 혼성어다. 법 조문의 맹점을 활용, ‘법의 지배’를 피해 가는 법률 기술자다. 그 어원과 용례를 보면, ‘교활하게 빠져 도망가는 사람이나 상황’을 묘사할 때 쓴다. 법꾸라지는 ‘황제 소환’과 ‘치매 코스프레’에 능하다. 그런 면에서, 야당 대표 이재명이 ‘법꾸라지’로 힐난 받는 것은 어색하지 않다. 검찰 소환에 응하는 대신 5줄짜리 답변서 보내기, 검찰 출석시간과 조사방법 스스로 정하기, 신문 땐 진술거부권 행사하기…, 헌법이 기대하는 ‘법 앞의 평등’을 무시하는 처사다.

그는 검찰의 위례·대장동 특혜 개발 의혹 등 구속영장 청구를 반박하며, “법치의 탈을 쓴 사법 사냥의 일상화”, “지배만 난무하는 야만의 시대” 같은 정치적 수사를 동원했다. 국민은 안다, 그가 좌충우돌식 격조 잃은 말투를 쏟아내며, ‘판사 앞’을 두려워하는 이유를. 민심은 그에게 따져 묻는다. 그렇게 떳떳하다면 불체포특권을 내려놓고 영장실질심사를 받으면 되는 것 아닌가고.

이재명 대표는 자신에 대한 영장 청구의 부당함을 강변하곤 불체포특권의 뒤에 숨다, 정치적 명분을 잃고 민심 싸움에서 패배했다(사진; 국회 체포동의안 투표결과 발표 후, 더팩트).
이재명 대표는 자신에 대한 영장 청구의 부당함을 강변하곤 불체포특권의 뒤에 숨다, 정치적 명분을 잃고 민심 싸움에서 패배했다(사진; 국회 체포동의안 투표결과 발표 후, 더팩트).

오죽하면 그 당의 원로며 신예까지 나서서, 그의 췌사(贅辭)를 비판하며 고언을 내쏟겠나. 상임고문 권노갑은 그에게 “떳떳하고 당당하게 임할 것”, “당 대표로서 선당후사 정신을 발휘할 것”을 기대했다. 당 원로 유인태 역시, 그의 정치 역정을 “좀 꾀죄죄해 보인다”고 평하며 "영장실질심사 한 번 받으라"고 일갈했다. 그가 당당하게 정치를 계속할 뜻이라면 특권에의 의존 대신 사법절차에 응하는 길을 갔어야 했다.

그는 ‘법꾸라지’의 길을 찾다 침몰의 길을 걷고 있다. 스스로 다짐한 약속을 어김으로써 정치적 명분에서 졌다. 스스로 강변한 부당한 영장에의 법원 판단을 외면, 기세 다툼에서 졌다. 국회 체포동의안 투표 결과 ‘반대’보다 ‘찬성’표가 많다? 민심에서 진 데 이어 ‘정치적 탄핵’을 받은 모양새다. 그는 정녕 조국의 뒤를 잇는 내로남불의 화신으로 전락할 것인가. 누구인들 오직 ‘나만 옳다’는 오만·독선으로 국민 곁에 다가갈 순 없을 터이니.


한국 사회는 국가기관에 대한 국민의 권위수용이 매우 약한 상태다. 국민의 관심이 높은 재판일수록 충분한 쟁점 제기와 적극적 논의를 통하여 현실적으로 수용할 수 있는 법리를 가려내고 적용해 가야 한다. 법관의 전문적 직업의식과 사회의 자율성은 판결의 정당화 내지 설득력 있는 근거 부여를 요구하기 때문이다. 설득력을 가진 판결, 판결에 동의하는 사회, 그 법의 지배를 실천하는 사회, 누가 앞장서 열 것인가?

‘판새’와 ‘검새’의 분발과 함께, ‘법꾸라지’ 역시 ‘법의 지배’, 그 헌법의 이념 아래 겸허해야 한다. 그 누구이든 법의 심판 앞에서는 겸허하게 응하고, 법관 역시 ‘법의 지배’에 양심껏 헌신함으로써 국민의 신뢰를 쌓아가야 한다. ‘그 누구도 법 위에 군림할 수 없다’, 그건 국가의 역할과 정치의 본질을 꿰뚫는 우리의 확고한 믿음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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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cmaca 2023-03-07 00:15:00
필자는 정치논리보다, 법이론과 판례, 3권분립의 정신을 더 존중합니다.성립의 진정여부와 독수독과의 법이론이 반드시 적용되어야 할것입니다. * 두 번째 영장심사 마친 곽상도 "녹취록 증거능력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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