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원호 박사의 그리운 대한민국] 양수리 황순원 소나기 마을 문학관에서 어린 시절을 추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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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원호 박사의 그리운 대한민국] 양수리 황순원 소나기 마을 문학관에서 어린 시절을 추억하다
  • 장원호
  • 승인 2020.07.11 1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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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순원의 소나기 마을에서 순수문학의 서정을 느끼다
소설 '소나기'와 유사한 어린 시절 기억을 되살리며 추억에 잠기다

오래 전에 읽은 바라라 브래드포드(Barbara Bradford)의 <파리에서 3주간>에 감명 받아서 2014년 한국여행은 꼭 3주간을 머무는 일정을 잡았다. 직장을 옮기는 큰 아들 가족과 함께 제주도 여행이 가장 큰 목적이 있었다.

그러나 제주도는 10월 26일부터 29일까지로 예약되어 있어서 그 전에는 서울에서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황순원 문학관 입구에서 포즈를 취한 필자 부부(사진: 장원호 박사 제공)
황순원 소나기 마을 입구에서 포즈를 취한 필자 부부(사진: 장원호 박사 제공)

마침 셋째 동생 원식이 내외가 서울 근교의 여러 곳을 구경시켜 주겠다고 해서, 우리는 서울의 물줄기인 경기도 양평군 양수리 근처에 있는 순수문학의 대가 황순원의 소나기 마을로 나섰다. 어렴풋이 기억하는 소설 <소나기> 내용과 비슷한 기억을 나는 70년 전 겪었다. 오늘은 그 기억을 되살려보고 싶은 간절한 마음으로 황순원 소나기 마을로 떠났다.

황순원 문학관 입구(사진: 징원호 박사 제공)
황순원 소나기 마을 입구(사진: 징원호 박사 제공)

<소나기> 이야기는 대략 다음과 같다. 어느 시골 마을의 초등학생 석이는 요양하러 내려온 마을 원로 윤초시의 증손녀 연이를 개울가에서 만난다. 연이가 자신에게 관심을 보이는 것이 기쁘지만, 석이는 쑥스러운 마음에 마주칠 때마다 무뚝뚝하게 외면하곤 한다.

문학관 마당에는 소설 속 주인공들이 소나기를 피해서 머물렀다는 볏단 모형이 있다(사진: 장원호 박사 제공).
황순원 마을 마당에는 소설 속 주인공들이 소나기를 피해서 머물렀다는 볏단 오두막 모형이 있다(사진: 장원호 박사 제공).

그러나 며칠째 학교를 나오지 않던 연이가 학교에 오자 석이는 용기를 내 말을 걸고 함께 놀러간다. 단풍 놀이를 하던 둘은 돌아오는 길에 소나기를 만나고, 오두막에서 모닥불을 피우며 소나기가 그치기를 기다린다. 비를 많이 맞아 며칠 앓고 났던 연이는 개울가에서 다시 석이를 만나 읍내로 이사 간다고 말한다.

그날 밤 석이는 이웃 덕쇠 영감의 호두를 따 개울가에서 연이를 기다리지만 연이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잠결에 아버지에게서 연이가 죽었다는 소식을 들은 석이는 숨죽여 흐느껴 운다. 황순원의 단편소설 <소나기>는 현재 중학교 국어 교과서에 수록되어 있으며, 소년의 순수한 사랑을 부각시킨 내용의 뮤지컬로 제작되기도 했다.

문학관 마당에서는 소설 속 소나기를 연상케하는 분수가 솟아 오른다(사진: 장원호 박사 제공)
황순원 마을 마당에서는 소설 속 소나기를 연상케하는 분수가 솟아 오른다(사진: 장원호 박사 제공)

1945년 초등학교 2학년 중반에 해방을 맞은 나에게는 이런 일이 있었다. 해방 전에는 초등학교도 선발 과정을 거쳐서 학교에 입학시켰는데, 해방이 되자 마자, 당국은 해방 전 입학 못한 어린이들을 모두 초등학교에 입학시켰다. 우리 반에는 갑자기 나이가 2-3년이나 많은 형누나벌되는 소년 소녀가 들어오고, 반 편성도 갑자기 남녀 공학이 된 것이다. 여학생들과 한 교실에서 공부하는 것이 처음에는 무척 어색했지만, 교실을 반반으로 나누어 남자 쪽과 여자 쪽을 구분해서 앉게 했다. 

우리 반에는 남씨 댁의 큰 딸이 있었는데, 그 댁과 우리 집은 부모들이 친구 사이여서 한두 번 가족끼리 함께 만난 적이 있었다. 교외로 소풍을 가는 어느날, 남 양이 내 책상에 사과와 삶은 달걀을 몰래 넣는 것을 본 나이 많은 학생이 크게 소문을 내어 우리 둘을 난처하게 만들었다. 매일 아침 등교하면 누군가가 흑판에 소녀 소년 그림을 그려놓고 우리 둘의 이름을 적어 놓았다. 다음 해에 반이 바뀌기까지 우리 둘은 서로 눈도 못 마주치고 피해 다녔다.

황순원 문학관 내부에는 선생님의 서재가 재현되어 있다(사진: 장원호 박사 제공).
황순원 마을 내부에는 선생님의 서재가 재현되어 있다(사진: 장원호 박사 제공).

그 후에는 나는 청주로 유학을 떠났고 그때부터 지금까지 그녀 소식을 모르고 산다. 이 귀하고 아름다운 기억은 황순원의 <소나기> 속의 석이와 연이의 이야기처럼 아름답고 애처로운 나의 이야기로 남아있다.

소설 <소나기>의 배경을 재현한 '황순원 문학촌 소나기 마을'은 양평군 서종면 수능리에 소나기 마을의 배경 무대와 지상 3층 규모의 황순원 문학관을 조성했다. 황순원 문학관에는 황순원 선생의 유품과 작품을 전시하는 3개 전시실이 있고, 소나기 광장에는 노즐을 통해 인공적으로 소나기를 만드는 시설이 있다. 또, 징검다리, 섶다리 개울, 수숫단 오솔길 등 소설 <소나기>의 배경을 재현한 체험장이 있다.

황순원의 다른 소설을 주제로 한 목넘이 고개(<목넘이 마을의 개>), 학의 숲(<학>), 해와 달의 숲(<일월>), 별빛 마당(<별>)이 조성돼 있고, 소나기 광장과 사랑의 무대 등 부대시설도 설치돼 있다. 황순원은 1915년 3월 26일 평안남도 대동군 재경면 빙장리에서 태어났다. 그의 부친은 3.1운동 때 평양 숭덕학교 교사로 재직 중에 태극기와 독립선언서를 평양 시내에 배포한 일로 옥살이를 했다.

1921년 만 6세 때 가족 전체가 평양으로 이사하고, 만 8세 때 숭덕소학교에 입학한다. 황순원은 유복한 환경에서 예체능 교육까지 따로 받으며 자라났다. 1929년에는 정주에 있는 오산 중학교에 입학한다. 그곳에서 교장 남강 이승훈 선생을 만나게 된다. 그리고 1930년부터 동요와 시를 발표하여 등단한다. 8.15 광복 이후 황순원은 평양으로 돌아 가지만 북한이 공산화되면서 지주계급으로 몰리자 신변에 위협을 느끼고 이듬해 월남했다.

월남 후 서울고등학교 국어 교사로 재직한 황순원은 지속적으로 단편 소설을 발표했고, 1953년에는 장편 작가로서 그를 인정받게 한 장편 소설 <카인의 후예>를 발표한다. 1957년에는 경희대학교 국문과 조교수가 되면서 생활이 안정되고 김광섭, 주요섭, 조병화 등 동료 문인들과 함께 더 많은 작품을 발표하기 시작했다.

그는 1985년 발표한 산문집 <말과 삶과 자유>를 발표할 때까지 왕성한 창작열을 불태우며 많은 작품을 발표했다. 그리고 2000년 타계할 때까지 소설은 더 이상 쓰지 않았으나 간간이 시작품을 발표하며 말년을 보냈다. 아들 황동규는 시인이자 영문학자로 활동하고 있다.

소나기 마을을 나와서 시내의 식당가에 들려 옛날 보리밥 점심을 들었다. 아주 좋은 점심 식사였다. 보리밥은 봄철 춘궁기에 가난한 사람들의 메뉴였는데, 이제는 건강식품으로 흰 쌀밥보다 귀하고 좋은 밥이라고 한다. 보리밥에는 부자들이 먹지 않던 이름 없는 채소로서 갓, 씀바귀, 열무, 상추, 취나물을 넣고, 고추장을 넣어서 비비는 것이 옛날식이다. 좀 맛을 내려고 참기름을 한 숟가락 넣으면 천하일미다.

문학관 인근에 있는 보리밥 전문 음식점(사진: 장원호 박사 제공)
문학관 인근에 있는 보리밥 전문 음식점(사진: 장원호 박사 제공)

노인들에게 무서운 과체중, 당뇨, 고혈압을 줄이려면 탄수화물이 많은 쌀밥보다는 보리밥이 월등히 좋다는 설명은 수도 없이 읽고 들었다.

푸짐한 점심을 들고, 소나기 마을에서 멀지 않은 양수리(두물 머리 나루터)로 가서 강변에 만들어 놓은 옛날의 모습과 식물원을 보았다.

한국에서 본격적인 지방자치를 시작한 지 10년이 넘으면서 좋고 나쁜 여러 가지 사항이 벌어지고 있지만, 가는 곳마다 옛날 모습을 복원하여 관광지로 개발하고 많은 사람들이 분비는 것은 참으로 좋은 현상이라고 생각한다. 1천만이 넘는 서울의 풍부한 물줄기를 부럽게 바라보면서 지금 내가 사는 캘리포니아는 물이 모자라 야단인데 서울에서는 물 걱정은 없다니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서울의 상수 수원지인 양수리가 관광지가 되면서 물을 보호하는 시설들이 오염되지 않도록 이곳을 찾는 사람들이 좀 더 조심했으면 좋겠다고 혼자 걱정을 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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