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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려난 이재용, 부끄러운 삼성의 ‘흑역사’를 청산하라강동수의 자투리시사인문(31) 이재용 부회장 석방이 삼성의 자정 신호탄 돼야 할 까닭 / 편집국장 강동수

1.

편집국장 강동수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2심에서 집행유예를 선고받고 석방됐다. 지난해 2월 17일 구속된 지 353일 만이다. 서울고법 형사13부(부장판사 정현식)는 엊그제 이 부회장에게 징역 5년을 선고한 1심을 깨고 징역 2년 6개월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했다. 1심에서 유죄로 인정된 뇌물공여 혐의 등이 항소심에선 무죄로 뒤집혔다.

이 부회장의 형량이 줄어든 데에는 항소심 재판부가 1심과 달리 최순실의 딸 정유라가 사용한 말과 한국동계스포츠영재센터 지원금 등을 뇌물로 인정하지 않은 것이 크게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재판부는 또 경영권 승계를 위해 이 부회장이 박 전 대통령에게 묵시적 청탁을 했다는 1심 판단도 뒤집었다. 제3자 뇌물죄가 적용된 동계스포츠영재센터 지원금 16억 2800만 원과 미르·K스포츠 재단 출연금 204억 원도 무죄가 선고됐다. 삼성선자가 또 독일로 돈을 보내면서 최순실 측과 용역 계약을 체결한 것처럼 속인 혐의(재산국외도피) 역시 무죄로 바뀌었다.

이재용 부회장이 2심에서 집행유예를 받은 것을 두고 일부 언론과 시민단체들은 전통적(?)인 ‘재벌 3·5 법칙’이 적용된 것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3·5 법칙’이란 재벌 총수들이 각종 비리 의혹으로 구속 기소되거나 하급심에서 유죄가 인정돼 실형을 살다가 상급심에선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 정찰제 형벌을 선고받아 풀려나는 경우를 일컫는 말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과 '비선실세' 최순실 씨에게 뇌물을 제공한 혐의로 1심에서 징역 5년을 선고받아 구속 중이었던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5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항소심에서 징역 2년 6개월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받은 뒤 서울구치소에서 나오고 있다(사진: 더 팩트 이덕인 기자, 더 팩트 제공).

2014년 배임 혐의 등으로 불구속 기소된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도 파기 환송심에서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으로 풀려났다. 2009년 삼성 특검 당시 탈세 혐의 등으로 기소된 이건희 전 삼성그룹 회장은 1심부터 ‘3·5 법칙’이 적용됐고 박용오·박용성 전 두산그룹 회장 형제는 2005년 불구속 기소 뒤 1심서 나란히 징역 3년에 집유 5년을 선고받은 바 있다. 이번엔 징역 2년 6개월에 집행유예 4년이 나왔으니 법원이 좀 더 후하게 대접했다고나 할까.

이 부회장의 2심 판결을 두고 엇갈린 평가가 쏟아져 나오고 있다. 재계나 보수언론은 “거 봐라”는 식으로 이 부회장에 대한 특검의 기소가 애초부터 무리했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2심 재판부의 판결은 부정한 청탁이나 정경유착은 없었다는 뜻이라며 정치권력 앞에서 ‘약자’일 수밖에 없는 기업의 수난이 이번 사건의 본질이었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특히 박영수 특검이 뇌물공여, 횡령등 억지 혐의를 씌운 정치 기소였다고 비난하고 있다.

반면 이번 판결을 놓고 전형적인 ‘재벌 봐주기’란 비판도 시민단체나 진보언론 쪽에서 쏟아져 나오고 있다. 재판부가 최고 정치권력과 최대 재벌의 부적절한 거래를 두고 “전형적 정경유착을 찾아볼 수 없다”, “사회 공헌 활동 비용의 일환으로 집행” 등의 표현을 써가며 재벌기업과 정치권력의 야합에 적극적으로 면죄부를 내줬다는 것. 그들은 재판부가 박근혜 전 대통령과 최순실에게는 권력 남용 책임을 적극적으로 물으면서도 최고 경제 권력인 삼성을 단순히 ‘피해자’로만 규정하는 모순을 범했다고 비판하고 있다. 

특히 1심과 사실관계 자체는 크게 달라진 게 없는데도 이 부회장에겐 “범죄 의도가 없었다”거나 “박 전 대통령 쪽 겁박에 응한 행위”로 애써 혐의를 덮어줬다는 것. 사법 정의의 시계추를 2016년 국정농단 이전으로 되돌린 판결이라는 비판도 나왔다. 글쎄, 사법부의 판단이어서 청와대가 개입할 여지가 없는데도 불구하고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엔 해당 판사를 파면하라는 국민 청원이 하루만에 5만 명을 돌파한 걸 보면 국민들의 불만도 적지 않은 모양이다.

대법원의 상고심이 남았으니 이재용 부회장의 혐의에 대한 최종 결론이 아직 끝난 건 아니다. 그러나 대법원 판결은 사실 심리가 아닌 법률심을 위주로 하는 만큼 사실상 장이 파했다고 보는 견해가 우세한 것도 사실. 이재용 부회장에 대한 이번 재판이 박근혜 전 대통령과 최순실의 국정농단 재판에 어느 만큼의 영향을 미칠지도 또 다른 관심사이겠다.

2심 재판부가 박근혜·최순실에 대한 삼성의 뇌물 공여가 자발적이라기보다는 강박에 의한 것에 가깝다는 취지의 판결을 내렸지만 어쨌든 부정한 돈이 오간 건 사실이다. 재판부의 판단과는 별개로 그 과정엔 ‘이재용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라는 고리가 얽혀 있었던 것 역시 부인하기 어렵다. 이번 재판부의 판단을 근거로 재계 등에선 “부정한 정경유착이 없었다”며 대기업을 정치권력 압박에 의한 희생양이라고 주장하지만 그 주장에 흔쾌히 동의하는 국민이 얼마나 될는지는 의문이다. 과연 이번 사안을 두고 ‘정경유착’이 아니라고 딱 잡아뗄 만큼 떳떳할까.

 

2.

삼성은 자타가 공인하는 한국 대표 기업 집단이다. ‘글로벌 기업’이란 말이 결코 과장이 아닐 만큼 삼성이 국내외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막중하다.

‘삼성공화국’이란 말조차도 이젠 진부한 표현이랄 밖에. 2017년 삼성전자는 매출액 239조 5800억 원과 영업이익 53조 6500억 원, 당기순이익 42조 1800억 원이란 실적을 올리면서 '창립 80년' 역사에서 최고의 성장을 기록했다. 특히 반도체 부문은 수십 년 동안 세계 1위로 군림해 온 미국의 인텔을 큰 폭으로 따돌리고 명실상부한 글로벌 1위 자리에 올라서는 기염을 토했다. 삼성그룹 전체 매출 실적은 아직 정확하게 나오진 않았지만, 재작년 이미 400조 원을 돌파했다는 게 중론이고 보면 지난해엔 그보다 훨씬 상회할 것이다. 다시 말해 삼성은 우리나라 전체 GDP의 1/4에 육박하는 재화를 생산하는 초 공룡기업집단인 거다. 그러니 삼성은 한국에서 단순한 기업집단 이상이라고 말하는 건 전혀 과장이 아니다.

삼성그룹의 모태기업은 1938년 3월 세워진 삼성상회(三星商會)다. 삼성그룹의 창업주이자 초대 회장인 이병철이 3만 원의 자본금으로 대구에서 처음 사업을 시작했다.

그리고 1953년 8월 CJ그룹의 모태인 제일제당이, 1954년 9월 제일모직이 각각 세워졌다. 이듬해인 1958년 2월에는 안국화재를 인수해 보험업에 뛰어들었고, 1963년엔 동화백화점을 인수해 신세계백화점으로 이름을 바꿨다. 1965년 9월 중앙일보를 창간하고, 10월에는 새한제지를 인수해 1968년 8월 전주제지로 상호를 변경했다. 1967년 세계 최대의 단일비료 생산시설인 한국비료를 설립했다. 1969년 1월 삼성전자의 전신인 삼성전자공업이, 12월에는 삼성SANYO전기를 설립했으며, 1973년 12월 삼성코닝, 1974년 7월 삼성석유화학, 8월 삼성중공업이 잇달아 설립됐다. 같은 해 12월 한국반도체를 인수해 반도체 사업에 뛰어들었다. 한국반도체는 1978년 3월 삼성반도체로 이름을 바꾸었다.

왼쪽 건물이 신세계백화점이 된 미쓰코시 백화점(사진: 구글 무료 이미지)

이병철 회장의 3남인 이건희씨가 1987년 11월 2대 삼성그룹 회장으로 취임한 후 삼성의 사세는 더욱 뻗어났다. 1996년 8월 삼성상용차(주)를 설립했고, 2006년 10월 삼성전자가 세계 최초로 1000만 화소 카메라폰을 출시했다. 2007년 8월 삼성전자가 TV 사상 최고 점유율로 세계 1위에 올랐다. 2010년 1월 삼성물산이 아랍에미리트(UAE)의 두바이에 세계 최고 높이인 지상 828m짜리 '버즈 칼리파'를 완공했다. 2013년 1월엔 삼성 스마트폰 '갤럭시S' 시리즈가 글로벌 누적판매에서 1억 대 판매를 돌파했다. 2016년 6월 말 기준으로 삼성그룹은 국내에 59개의 계열회사를 두고 있다.

글쎄, 백과사전에 나온 삼성그룹의 약사를 읊자니 숨이 찰 지경이다. 다시 말해 삼성의 역사는 한국 경제사 그 자체다. 삼성이 이처럼 한국 사회에서 절대적인 영향력을 가진 만큼 그룹을 지배하는 총수 일가의 영향력 역시 막강하다. 글쎄, 일찍이 노무현 전 대통령이 “권력은 이미 시장에 넘어갔다”고 한탄했던 대로 삼성 총수의 권력은 어떤 측면에선 대통령의 정치권력을 능가한다 해도 큰 망발은 아닐 터이다. 하지만, 이처럼 절대적인 경제 권력을 쥔 삼성이지만 수십 년을 따라다니는 ‘정경 유착’의 그림자 역시 짙고 어두운 것도 사실이다.

80년 삼성의 역사가 빚어낸 오욕은 한두 가지가 아니지만, 대표적인 것을 들라면 1966년 터진 ‘한비 사카린 밀수 사건’ 2007년 ‘비자금 조성 사건’, 그리고 2016년의 ‘박근혜 정권에 대한 뇌물 공여 사건’ 등 일 것이다. ‘한비 밀수 사건’은 초대 회장인 이병철이, ‘비자금 조성 사건’은 그 아들인 2대 회장 이건희가, 그리고 ‘박근혜 뇌물 사건’은 손자인 이재용이 연루됐으니, 따지고 보면 3대에 걸친 ‘기업 비리’의 그늘이 한국 사회에 드리워져 있는 셈이다.

 

3.

1961년 5월 16일 박정희가 ‘5·16 쿠데타’로 정권을 장악했을 때, 이병철은 낌새를 채고 일본으로 도피해 있었다. 박정희는 당시 11명의 기업인을 ‘기업형 부정축재자’로 붙잡아 두고 있었는데 이병철은 그 ‘수괴’였던 셈. 이병철은 군사정부의 종용을 받아 그해 6월 26일 귀국했다. 공항에서 곧바로 연행된 그는 박정희와 만나 대타협(?)을 한다. 박정희로선 쿠데타의 정당성을 경제성장에 둘 수밖에 없었고 그런 만큼 기업인의 협조가 절실했던 것. 사실 기업인을 잡아넣은 것도 일종의 ‘군기잡기’였달까. 어쨌든 그렇게 해서 군사 정부에서 살아남은 이병철은 박정희의 요구에 따라 사업 확장에 총력을 기울인다. 그 대표적인 것이 ‘한국비료 설립.'

당시 세계 최대 규모인 33만t의 공장을 지을 작정이었던 이병철은 일본으로 건너가 미쓰이 물산과 협상을 벌여 비료공장 플랜트 설비와 자금 4300만 달러를 차관 형식으로 도입하기로 합의했다. 이병철은 1964년 8월 한국비료공업주식회사를 세우고 사장이 되었다. 그 이듬해인 12월 한국비료 울산공장이 건설에 들어갔다.

그런데 한국비료 공장이 80%쯤 건설되고 있던 1966년 9월 16일 이른바 ‘한비 밀수사건’이 터졌다. 삼성이 몰래 들여와 한비공장 창고에 보관 중이던 OSTA라는 약품이 시중에 유출돼 판매됐다는 사실이 한 신문의 특종 보도로 까발려졌던 것. 질소비료 공정에 쓰이는 물질인 OSTA는 당시 설탕 대용으로 쓰이던 사카린의 원료로도 활용됐다. 재벌이 산업화를 한다는 핑계로 소비재를 밀수했다 해서 여론이 크게 악화됐다.

당시 국회의원 김두한은 대정부 질문 도중 “삼성의 사카린 밀수사건을 두둔하는 장관들은 나의 피고들이다. 사카린을 피고인들에게 선사한다”는 말과 함께 국무총리를 비롯한 장관들에게 인분을 뿌렸다. 바로 이게 바로 국회오물투척사건. 당시 <사상계>사장이었던 장준하가 대구에서 열린 ‘재벌기업 삼성밀수 규탄대회’에서 “박정희야말로 밀수 왕초”라고 발언했다가 구속되기도 했다.

이병철의 장남 이맹희의 후일 증언에 따르면, 일본 미쓰이 물산에서 제공한 4300만 달러의 차관이 사건의 빌미가 됐다는데 미쓰이는 자기네에게 빌린 차관으로 자사의 기계를 사주는 데 대한 대가로 리베이트 100만 달러를 내놓았다는 것. 박정희는 이병철에게 그걸 100만 달러어치의 물건으로 들여와 처분해서 3분의 1은 정치자금, 3분의 1은 부족한 건설자금, 3분의 1은 한국비료 운영 자금으로 쓰도록 지시했다는 거다. 그래서 사카린 원료의 밀수가 이뤄졌다는 것. 그 증언이 사실이라면 장준하의 “사카린 밀수 왕초는 박정희”란 발언이 꼭 틀린 것도 아닌 셈이다.

한국비료 사카린 밀수 사건 재수사가 불가피하다는 검찰 발표를 다룬 1966년 9월 17일 자 경향신문 기사(사진: 경향신문 라이브러리).

이병철은 급기야 한국비료를 국가에 헌납하고 은퇴를 선언했다. 그때 나이 56세였다. 이병철의 은퇴는 후일 유야무야 됐고, 한국비료는 1994년 정부의 한국비료 민영화 방침에 따라 공개입찰을 실시한 끝에 다시 삼성에게로 돌아갔다. 어쨌거나, 한국 최고의 기업이 밀수 사건을 일으켜 여론의 지탄을 받았고 다 지어놓은 공장을 나라에 빼앗겼으니 이병철로서는 엄청난 타격이었고 박정희에 대해 절치부심할 일이었을 터다.

한편, 2007년 삼성그룹의 옛 구조조정본부 법무팀장 출신인 김용철 변호사의 양심고백으로 터진 삼성그룹 비자금 사건은 이건희 2대 회장에게 닥친 최대의 위기였다. 김용철은 자신이 확보하고 있던 ‘회장 지시사항’ 문건 등 삼성의 비자금 관련 자료를 2007년 10월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에 제공했고, 사제단이 이 사실을 언론에 폭로했던 것. 당시 문건 내용은 ▲임원 명의 차명계좌를 통한 비자금 조성, ▲2002년 대선 자금이 이건희 회장 개인 돈이 아니라 회사 비자금이라는 의혹, ▲삼성에버랜드 전환사채(CB) 편법 배정과 관련한 증인조작, ▲ 로비 관련 문건 등등이었다. 김용철은 자신도 회사의 지시로 검찰 선후배나 동기들에게 뇌물성 현금 봉투를 전달했다는 양심고백을 하기도 했다.

파장은 엄청났다. 전국민적 비판 여론이 들끓자 ‘삼성 비자금 특검’이 구성됐다. 특검은 삼성이 숨겨놓은 돈 4조 5000억 원을 찾아내긴 했지만 이 돈을 삼성그룹 회장 이건희의 차명재산이라며 삼성에 되돌려 주고, 이건희를 배임과 조세포탈 혐의로 불구속 기소하는 데 그쳤다. 이건희 회장은 2009년 대법원에서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 벌금 1100억 원을 선고받았다. 엄청난 비난을 받기는 했지만 집행유예로 때우면서, 결과적으로는 오랫동안 따라다니던 불법 경영권 세습 꼬리표를 ‘말끔히’ 털어낸 셈이 됐다. 넉 달 뒤 대통령 이명박은 이건희 1인에 대해 특별 사면했고.

그리고 2016년 이재용 부회장의 ‘박근혜·최순실에 대한 뇌물 공여’ 사건이 터진 것. 이 사건은 아직 재판이 진행 중이고, 최근의 일이라 국민들의 뇌리에 남아 있을 것이어서 자세한 설명은 생략하겠다. 다만, 초일류 기업이란 삼성이 설사 대통령의 요구와 압박이 있었다손 치더라도 미르와 K스포츠 재단 등에 총 433억 원을 제공했다는 건 비판받아 마땅하다. 대통령이 개인적으로 수십 년 사귄 사인인 최순실이란 여성의 딸을 위해 말을 사주고 훈련비 명목으로 뒷돈을 갖다바친 것은 명색 글로벌 기업의 체모에도 맞지 않는다. 게다가 2심에선 뒤집어졌다지만 경영권 승계를 위해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 과정에서 대주주인 국민건강보험을 움직여 찬성 의결에 참여하도록 ‘묵시적 청탁’했다는 의혹이 아직 제대로 해명된 것도 아니다.

 

4.

글로벌 기업 삼성은 누가 뭐라든 ‘대한민국의 얼굴’이다. 한국이 어디 붙었는지 모르는 외국인들도 ‘삼성’이란 기업 브랜드는 알고 있다지 않은가. 삼성이 한국 경제 성장의 견인차 역할을 한 것도 인정할 수밖에 없다. 삼성 같은 초일류 기업이 있었기에 세계 시장에서 한국의 지분이 인정받는 측면도 분명히 있을 거다. 하지만 삼성이 한국 사회에 드리운 부정적인 그림자가 또 그만큼 큰 것도 사실이다.

삼성이 오늘의 면모를 갖춘 것은 삼성 혼자 잘나서 그런 것만은 결코 아니다. 60~70년대 개발독재 시대에 박정희 정권이 고속 성장 드라이브를 걸면서 삼성, 현대 등 재벌그룹에 부족한 국가 재원을 얼마나 몰아주었던가. 삼성을 포함한 재벌 기업들은 정권의 전폭적 지원, 국민의 눈물과 땀을 먹고 자란 기업이다. 그들은 특혜 시비 속에서 고속성장을 해 온 주제에 또 얼마나 많은 비리와 부패 사건에 휘말렸던가. 삼성, 현대, SK, 롯데, 한화……. 재벌 그룹 총수들 중에서 횡령, 배임 등 비리와 정경유착에 걸려 감옥살이를 하지 않은 사람이 얼마나 되나. 그럼에도 그들은 ‘국가 경제에 기여해야 한다’는 이유 아닌 이유로 잠깐 옥살이하는 시늉을 하다 죄다 석방되고, 사면 특혜를 받았다. 삼성 이재용 부회장의 이번 석방에 국민들이 불신의 눈초리를 던지는 것도 바로 그런 오랜 경험칙 때문이 아니었던가.

다른 재벌 기업도 마찬가지지만 삼성은 이제 정신 좀 차려야 한다. 명색이 대한민국 대표 기업집단이 아닌가. 걸핏하면 경영권 편법 승계, 불법 로비, 대통령에 대한 뇌물 공여 시비에 휘말려 총수가 국민적 비난의 대상이 되고, 재판정에 불려 나가고, 구속되는 ‘흑역사’가 부끄럽지 않은가. 경영권 승계를 하려면 제대로 세금 내고, 제대로 절차를 밟으라. 국부의 1/4을 창출한다는 기업군이 왜 그렇게 당당하지 못하고 부정한 뒷구멍을 찾으려 드는가.

정치권력도 마찬가지. 이젠 제발 재벌기업들의 돈을 쌈짓돈처럼 빼앗아 쓰려는 휴혹에서 벗어나야 한다. 역대 대통령들이 다 그랬지 않았던가. 부산의 국제그룹이 공중분해된 것은, 전두환이 정치자금이란 이름의 뇌물을 갖다 바치는데 떨떠름해 했던 양정모 회장을 손봄으로써 다른 기업들에게 겁을 주려던 것이었다는 건 이미 알려진 사실이다. 4000억 비자금을 기업에서 뜯어내 보관했다가 덜미가 잡힌 노태우는 물론, 후임 대통령들도 기업의 정치자금에서 자유로운 이들은 없었다.

재벌 회장이면서도 정당을 창설해 스스로 대통령에 출마해 ‘금권정치의 두목’이란 오명을 쓴 현대의 정주영이 이렇게 고백했다던가. “대통령들이 하도 돈 갖다 바치라고 닦달을 해서 시달리다 못해 직접 정치에 나섰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 재벌 돈을 얻어 쓰면 그 반대급부를 재벌에 줘야 한다. 그래서 정치가 썩고 세상이 썩는 거다. 이젠 청와대가 썩은 하수도의 원천이란 비판에서 벗어날 때도 됐다.

다시 이재용 부회장에게 한 마디. 풀려난 그는 엊그제 구치소 문밖에서 이렇게 말했다. “1년 동안 저를 돌아볼 수 있는 정말 소중한 시간이 됐습니다. 앞으로 더 세심하게 살피고 열심히 하겠습니다.” 지난 1년 동안 뭘 돌아봤는지, 앞으로 뭘 세심하게 살피겠다는 건지 모르지만, 제발 다시는 이런 꼴로 구치소에나 들락거려서 국민들에게 실망을 끼쳐선 안 될 일이다. 정말로 자신을 돌아봤다면 앞으로 삼성이 한국 사회에 진정으로 기여할 참된 방법이 무엇인지도 깨달았을 것이다. 국민들이 지켜보고 있다.    

편집국장 강동수  reporter1@civic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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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더러버라 2018-02-06 20:33:06

    사람이 사람을 죽이면 살인 짐승이 짐승을죽이면 죄는없다 짐승이 짐승을 죽였구나 짐승들이 판치는 미래가 다가오고 있다 도망가자 우주로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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