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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센 이재용 석방 후폭풍...삼성은 획기적 사회공헌 조치로 국민 정서를 달래라/ 논설주간 강성보
논설주간 강성보

지난 1월 약 한 달 간 미국 조지아주 어틀랜타에 있는 딸네집에 머물다가 귀국길에 LA에 들렀다. 캘리포니아 일대에 살고 있는 고교 동창들의 열화같은 성화 때문이었다. 동기회 홈페이지를 통해 미국 여행 계획을 알렸더니 몇몇 친구가 “죽기 전에 얼굴을 한 번은 봐야 할 것 아니냐”면서 2박 3일 호텔 예약까지 대신해주며 초청했던 것이다.

시간 여유가 있다면서 픽업을 자청한 한 친구가 LA 공항에 마중나왔다. 태평양을 사이에 두고 둘다 바쁘게 살아온 탓에 40여 년 만의 해후였다. 그의 얼굴에 세월이 할퀴고 간 자욱이 역력했다. 미리 SNS 사진으로 현재 모습을 서로 확인해놓지 않았다면 못 알아볼 뻔했다. 우리는 다소 호들갑스럽게 미국식 인사로 반가움과 감격의 인사를 나눈 뒤 그의 승용차에 올라탔다.

저녁 회식 때까지 서너 시간 여유가 있다면서 그가 데리고 간 곳은 LA 교외에 있는 ‘게티 센터’였다. 20세기초 미국 최고의 부호였던 폴 게티의 이름을 딴 미술관 콤플렉스였다. 그가 사회에 기부한 막대한 재산을 사용해 5개 동의 미술관을 짓고 그가 생전에 수집한 수천 점의 세계적인 켈렉션을 이곳에 전시해 대중들에게 개방하고 있다는 것이다.

주차 빌딩에 차를 주차시킨 뒤, 우리는 십수 명의 관람객들과 함께 트램(궤도 열차)을 탔다. 자동으로 운행하는 트램 전동차가 아담한 언덕을 감아 돌며 약 10여 분 달리자, 눈 앞에 매우 아름다운 건물들이 나타났다. 아니 건물이라기보다는 각 미술관 자체가 예술품인 것 같았다. 세계적인 건축 디자이너 리처드 마이어가 미술관을 포함한 게티 센터 전체를 디자인했고 주변 일대 정원은 미술가 로버트 어윈이 꾸몄다는 것이다. 또 각 갤러리는 이탈리아의 설치 미술가 로돌포 마차도와 호르헤 시루베티의 디자인이라고 했다. 건물들 외벽은 유럽에서 수입해온 고급 석회암으로 치장되어 있었는데, 로마의 콜로세움, 트레비 분수, 바티칸 성당의 외벽과 같은 석재라고 한다.

폴 게티 뮤지엄(사진: 구글 무료 이미지)

특히 이 게티 미술관이 자랑하는 것은 조망이었다. 각 건물 외부 테라스에서는 넓게 펼쳐진 LA 시가지 전체를 내려다볼수 있었다. 저 멀리는 태평양 바다가 보였다. 한겨울이었지만 비교적 따뜻한 날씨 덕분인지 많은 관람객들이 테라스에 나와 사진을 찍고 있었다. 또 건물들 주변은 잔디밭과 정원이 깔끔하게 조성되어 있었는데, 봄이되면 가족 단위 관람객들이 넓은 정원에서 화사한 햇볕을 즐긴다고 동행한 친구가 설명했다.

전시된 미술품들의 수준도 일류급이었다. 그리스, 로마, 에트루리아의 고대 조각 작품들과 근현대 유럽 작가들의 회화 작품들이 각 갤러리에 보기좋게 전시되어 있었다. 렘브란트, 세잔, 모네 등의 유명한 그림들도 눈에 띄였다. 특히 사진으로만 봤던 르노와르의 1870년작 <산책로>와 빈센트 반 고흐의 1889년작 <아이리스>을 이곳 게티 미술관에서 직접 만나게 될 줄은 미처 몰랐다.

르느와르의 <산책로>(사진: 구글 무료 이미지)

3시간여 게티 미술관 순회 감상은 필자에게 큰 기쁨을 안겨줬다. 특히 감동적이었던 것은 미술관내 각 갤러리 입장이 모두 무료였다는 사실이다. 우리가 지불한 것은 주차비 7달러밖에 없었다. 이곳에 종사하는 수많은 큐레이터, 안내원, 시설관리원 등의 인건비와 운영비, 관람객들에게 무료로 제공되는 안내 팸플릿 등 제반 소요 경비가 모두 폴 게티가 ‘게티 재단’에 남겨 놓은 66억여 달러의 기금에서 충당되고 있다고 한다.

미술관에서 빠져 나와 LA 코리아타운 내 회식 장소로 가는 도중 친구에게 “당대에 부를 축적한 사람들이 사회에 거의 전 재산을 기증하는 미국식 자본주의가 부럽다. 한국의 재벌들은 자식들에게 한푼이라도 더 물려주기 위해 탈세 등 반사회적 행위를 밥먹듯 하는 천민 자본주의에 물들어 있는데...”라고 소감을 말했다. 그랬더니 “폴 게티는 생전에 악덕 기업가로 유명한 사람이었다”면서 “그러나 재산의 대부분을 자식이 아니라 사회에 기증함으로써 악명을 씻고 위대한 사업가라는 이미지를 남겼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사실 각종 부정적 평판에도 불구하고 미국 자본주의가 세계적인 모델로 추앙을 받는 것은 기업인들의 활발한 기부 문화 때문이다. 미국의 기업인들은 당대에 부를 축적하는데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지만 평생 모은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생전에도 빈곤과 질병 퇴치, 장학사업 등에 선뜻 거액을 기부하며 죽어서는 유언을 통해 최소한의 부만 자녀에게 상속하고 거의 전 재산을 사회에 쾌척한다.

대부분의 사회사업은 각 기업인 자신의 이름을 딴 재단을 통해서 하는데 2016년 기준 미국 자선 재단의 자산은 2700억 달러(315조 8000억 원)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대한민국 한해 예 산과 거의 맞먹는 규모다.

가장 큰 재단은 부동의 세계 1위 부호 빌 게이츠와 그의 아내 멀린다 게이츠가 2000년 설립한 ‘빌&멀린다 재단’이다. 자산 규모가 400억 달러에 달한다. 빌 멀린다 재단은 지난 한 해 31억여 달러를 사회사업에 지출했다. 현재 빌 게이츠의 자산은 829억 달러인데 빌과 멀린다가 살아있는 동안 이 자산 역시 모두 순차적으로 재단에 돌릴 계획이라고 한다.

빌 게이츠 부부(사진: 구글 무료 이미지)

두 번째 자산이 많은 재단은 자동차 왕 헨리 포드와 그의 아들 에셀 포드가 1936년 당시 5억 달러의 기금으로 설립한 ‘포드 재단’이다. 80여 년 동안 자산이 불어나 지금은 121억 달러에 달한다고 한다. 포드 재단은 현재 뉴욕에 본사를 두고 ‘인간 삶의 질 향상’을 목표로 한다. 재단이 소유하고 있던 포드 모터스 지분은 40여 년 전 모두 처분돼 자동차 시장에 대한 영향력은 거의 없다. 재단은 교육, 인권, 민주주의, 예술, 제3세계 발전 등을 주제로 사회 기부를 이어가고 있다.

세 번째 재단이 폴 게티 재단으로 현재는 자산 규모가 늘어 105억 달러에 달한다. 폴 게티는 지구상 최초의 수퍼 리치라는 이름을 얻고 있다. 중동 석유를 개발해 거금을 모았다. 1930년대 대공황은 그에게 부를 축적하는 절호의 기회였다. 당시 10억 달러 이상의 재산을 기록해 세계 첫 억만장자(billionaire) 반열에 올랐다. 평생 허름한 집에서 살며 손님용 공중전화를 설치했고, 1973년 이탈리아에서 납치당한 손자의 몸값 지불을 거절할 정도로 지독한 구두쇠였지만 남들을 위한 자선사업엔 전 재산을 쾌척했다.

이 밖에도 베이비 로션 ‘존슨 앤 존슨’ 창업자 로버트 우드 존슨이 설립한 존슨재단, HP 공동 창업자 윌리엄 휴렛 부부가 세운 휴렛 재단, 아침식사 시리얼 ‘켈로그’의 창업자 윌리엄 켈로그가 세운 켈로그 재단 등이 50억 달러 이상의 자산 규모를 가진 사회사업 재단으로 이름을 얻고 있다. 또 요즘 IT 업계의 거두로 부상한 ‘아마존’ 그룹의 제프 베조스, ‘페이스북’의 마크 저크버그 등도 수백 억 달러에 달하는 재산을 사회에 기부할 것을 공언하고 있다.

“왜 미국의 기업인들은 이처럼 사회 기부 문화에 익숙한가”라는 질문에 게티 미술관으로 필자를 안내했던 친구는 “청교도 정신을 이어받은 명예 우선주의가 작동되고 있지 않은가 생각된다”고 답했다. 사업에 일으켜 돈을 크게 버는 것은 자신의 성공을 사회에 각인시키고 이름을 후세에 남기기 위한 것이라는 사고가 근간에 깔려 있다고 한다. 악착같이 돈을 벌지만 그 돈 자체가 목표는 아니라는 것이다. 미국 기업인들은 자신이 번 돈을 쾌척해 자신의 이름을 딴 재단을 설립하는 것을 최고의 명예로 여기고 있다는 것이다.

문득 과거 전두환이 퇴임에 대비해 만들었다는 일해재단, 또 최순실 박근혜 국정농단 사태의 발화점이 된 미르재단, K스포츠 재단, 또 이명박 전 대통령의 청계재단이 떠올랐다. 사회 공헌을 위한 것이 아니라 권력자들이 노후를 즐기기 위해 불법과 반칙으로 만드는 게 한국의 재단들이라는 사실이 씁쓸하게 다가왔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게 면죄부를 준 항소심 판결의 여진이 거세다. 법조계 안팎에서 “말도 안되는 쓰레기 판결”이라는 비난이 쏟아지고 있고 네티즌들은 항소심 주심을 맡은 서울고법 형사 13부 정형식 판사에 대한 해임 조치를 청원하고 있다. 수사를 맡은 특검은 판결문이 “술은 마셨지만 음주운전은 아니다”라는 것과 같은 논리적 모순 투성이라며 반발하고 대법원 상고를 공언하고 있어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이번 판결이 부정한 청탁의 존재를 부정하고, 안종범 수첩 증거 능력을 불인정했으며, 꼼수를 벌여 뇌물 액수를 낮추는 등 국민 상식과는 거리가 멀다는 평가가 우세하다. 하지만 여기서 그 판결의 법리적 타당성을 따져볼 생각은 없다. 한명숙 전 총리에 대한 2심 재판에서 1심의 무죄를 뒤엎고 1년 실형을 선고한 바 있는 정형식 판사의 정치적 성향을 문제삼을 마음도 없다. 또 극우 보수 정치인들과의 인척 관계에 있는 정 판사의 인적 네트워크에 관해 언급할 필요성도 느끼지 못한다. 다만 상식을 거스르는 역주행 판결의 후폭풍으로, “유전무죄, 무전유죄의 이 판결을 보고 이제 어느 누가 법을 지키려고 할 것인가”라는 비판이 따갑게 다가온다.

일각에서는 상고심에서 다시 뒤집힐 것으로 전망한다. 하지만 대법원이 이미 집행유예로 석방된 이재용 부회장 등을 다시 구속 수감토록 판단하기는 부담이 적지 않을 것으로 판단된다. 또 한국 최대 기업 삼성의 실질적 경영인을 감옥에 보냄으로써 발생할 경제적 파장을 염두에 두지 않으면 안된다. 대법원 판사들은 이 나라의 운명을 이끄는 최고 지도층인 만큼 법리상의 판단과 별개로 정치적, 사회적 상황도 고려에 넣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 또 적지 않은 국민들 역시 이 부회장의 재수감 모습에 불편함을 느낄 게 확실하다.

이 지점에서 문제의 본질에서는 비껴 있지만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을 얻을 수 있는 아이디어를 제안하고 싶다. 즉 미국의 성공한 기업가들처럼 이 부회장 등 삼성그룹의 오너들이 과감한 사회 기부를 확약하는 것이다. 부친으로부터 상속했거나 상속 예정인 전 재산을 쾌척해 재단을 만드는 것은 그 중 한 방법이다. 물론 경영권을 지키기 위해 자신이 활동하는 동안 재단 운영권을 유지하는 조치는 필요할 것이다. 이에 관한 적절한 방법을 찾고 그 법률적 근거를 마련하는 것은 주변에 포진한 초일류 변호인단에게 맡기면 금방 해결될 듯 싶다.

이 부회장은 석방된 뒤 구치소에서 나오면서 “지난 1년 동안 수감되어 있으면서 많이 배웠다”면서 “앞으로 더욱 세심하게 살피고 잘 하겠다”고 다짐했다. 솔직하고 통렬한 반성의 마음을 표출한 것으로 보인다. 그룹 일각에서는 벌써 삼성이 사회 기여 사업을 더욱 활성화할 것이라는 얘기가 흘러나오고 있다. 문제는 모든 국민이 수긍할 수 있는 획기적이고 과감한 방안을 제시하라는 것이다. 전 재산 사회 환원 조치가 미미하거나 또는 꼼수로 비쳐져서는 더욱 사태를 악화시킬 뿐이다.

우선 삼성의 진정한 사회 기부 사업의 시작을 보여주는 첫발로서 경기도 용인 호암미술관의 전면 개방 조치를 제안하고 싶다. 온 국민에게 무료로 국보급 미술 작품들을 감상하게 하고 인근 일대를 시민들의 휴식처로 개방한다면 미국인들이 폴 게티에게 그랬던 것처럼 삼성에 대한 한국인들의 인식도 크게 개선될 게 분명하다.

삼성이 자진해서 부의 사회 환원에 적극 나서고 다른 재벌기업들도 여기에 호응한다면 이번 기업 이재용 항소심 판결은 한국 기업 문화의 획기적 터닝포인트로 전화위복할 수도 있을 것이다.     

논설주간 강성보  reporter1@civic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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