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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시 참사의 본질은 정부의 늑장 대응..."법으로 화학물질 유해성 막아야"KIST 유럽 환경안정성사업단장 김상헌 박사, "국민도 화학물질 의존도 줄일 때" / 정혜리 기자

영국에 본사를 둔 옥시라는 회사가 2001년부터 가습기 청결용 살균제를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팔았다. 2011년 병원에 입원해 있던 임산부 5명이 급성 폐질환으로 사망했으며, 그 원인이 옥시의 가습기 살균제로 드러났다. 정부의 공식 조사 결과, 103명이 옥시 제품 관련 사망자였다. 옥시는 '죽음을 파는 상인'이었다.

김상헌 KIST 유럽연구소 환경안정성사업단장은 유럽의 화학물질 규제에 맞게 한국 기업들이 제품을 유럽 각국에 수출하는 일을 지원하고 있다(사진: 영상기자 최준성)

화학물질을 잘 파악하고 잘 다루지 못하면 인류에게 재앙이 온다. 옥시 사태는 빙산의 일각일 뿐 우리 생활 주변에서 일어나는 화학물질의 보이지 않는 테러는 공포 그 자체다. 유럽의 심장, 독일에서 유해 화학물질을 연구하면서 유럽으로 제품을 수출하려는 한국 기업들에게 유럽의 화학물질 규제법 기준에 맞게 제품을 생산하도록 조언하고 수출을 승인받게 도와주는 사람이 있다. 한국 과학기술연구원(KIST) 유럽연구소 환경안정성사업단장 김상헌 박사가 바로 그 주인공.

6월 말, 모교인 경성대를 찾은 김 박사를 본지가 만났다. 먼저 옥시 사태의 본질이 뭐냐는 질문부터 던졌다. 그의 대답은 충격적이었다. 옥시는 유럽의 화학물질 규제법에 의해 문제의 화학물질이 들어간 가습기 살균제를 유럽에서는 팔 수 없었다고 한다. 그러나 한국에는 문제의 화학물질에 대한 규제법이 없었기 때문에 그 화학물질이 들어간 가습기 살균제를 옥시는 ‘합법적’으로 팔 수 있었다는 것. 김 박사는 “옥시는 한국에는 그 물질의 규제법이 없다는 것을 이용해서 그 물질이 해롭다는 것을 알면서도 한국에서 그 물질을 판 거다. 즉, 옥시에게 도덕적 책임은 당연히 있지만, 판매 행위 자체가 불법은 아니었다는 게 기가 막힌 일이었다”고 말했다.

김상헌 KIST 유럽연구소 환경안정성사업단장은 옥시 사태의 본질은 물론 옥시의 부도덕성이 직접적인 원인이지만 한국이 관련 화학물질의 사용을 사전에 막을 수 있는 규제법을 일찍 준비 못한 것도 문제라고 지적했다(사진: 영상기자 최준성).

결국 정부가 유럽 기준보다 화학물질을 규제하는 법을 일찍 갖추지 못한 게 원인 중 하나였다는 게 김상헌 박사의 주장이다. 유럽은 소위 REACH(Registration, Evaluation, Authorization and Restriction of Chemicals: 화학물질의 등록, 평가, 허가에 관한 법)와 살충제, 살균제, 소독제, 방부제 등의 살생물제를 규제하는 BPR(Biocidal Products Regulation: 살생물 관리법)이 일찌감치 제정돼서 유럽에서는 유해 화학물질의 사용을 금지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2015년에 ‘화학물질 등록과 평가에 관한 법’이 제정돼 비로소 유해 화학물질을 관리하고 규제하기 시작했다. 김 박사는 “우리나라가 전 세계적으로는 늦은 편은 아니나 유럽 같은 선진국에 비해서는 늦은 편"이라고 말했다.

그가 책임자로 있는 KIST의 유럽연구소 환경안정성사업단은 바로 유럽의 화학물질 사용과 규제를 연구하고 특히 유럽으로 제품을 수출하려는 한국 기업들이 유럽의 REACH 기준에 통과될 수 있도록 기술적 실무를 지원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김 박사는 “우리나라 기업들이 화학물질 규제에 관한 글로벌 스탠다드에 맞게 수출하는 일을 돕는 역할에 보람을 느낀다”고 전했다.

이제 우리나라도 화학물질을 규제하는 법이 제정되었지만, 그래도 문제가 해소된 것은 아니라고 한다. 화학물질은 1981년을 기준으로 그 전에 사용되어온 ‘기존 물질’과, 그후 새롭게 개발되거나 사용되기 시작한 ‘신규 물질’로 나뉜다. 그 중에서 문제가 되는 것이 기존 물질이란다. 신규 물질은 각종 연구에 의해 유해성이 파악되고 관리될 수 있지만, 그 전의 기존 물질들은 그 유해성이 파악되지 않아서 큰일이라는 게 김 박사의 우려. 김 박사는 “기존 물질이 무려 3만 개가 넘는다. 이들을 하나하나 연구하고 분석해서 유해성을 가리는 일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김 박사는 삼성 반도체 직원의 백혈병 사태도 화학물질 규제법이 안 갖춰져 있을 때 합법적으로 유해 물질이 사용된 것이 문제라는 것이다. 김 박사는 “화학물질은 사전 봉쇄, 원전 봉쇄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부산에서 태어나 동래고를 거쳐 1989년 경성대 환경공학과에 입학했다. 석사과정을 마친 김상헌 박사에게 당시 지도 교수였던 정장표 교수가 국가 기술고시를 볼 것을 권했다고 한다. 우등생인 김 박사에게 좀 더 큰 목표를 제시하자는 게 지도 교수의 의도. 그런데 마침 기술고시와 시험 과목이 동일한 독일 국비 유학생 시험이 있었고, 죽 공부해온 것과 같은 과목이라면 차라리 독일 유학을 선택하는 게 좋지 않겠느냐고 지도 교수가 재차 권하는 바람에 독일 유학 시험에 도전해 당당히 합격했다. 김 박사는 “내게 큰 꿈을 심어 준 지도 교수님과 다른 은사님들께 항상 고맙게 생각하고 있다. 그래서 ‘조금’ 열심히 공부했다”고 겸손하게 말했다.

김상헌 KIST 유럽연구소 환경안전성사업단장은 우리 국민들이 화학물질 남용을 억제하는 생활 습관을 갖는 게 중요하다고 권고했다(사진: 영상기자 최준성).

1997년 독일로 가서 베를린 공대에서 박사 학위를 받고 2001년부터 KIST 유럽연구소에 들어갔다가 오늘의 환경안전성사업단장에 오르게 되었다. 독일 출국 전 한국에서 결혼한 부인과 두 딸과 함께 21년째 독일에서 살고 있는 김상헌 박사는 자연히 한국 젊은이들과 독일 젊은이들을 자주 비교하게 된다. 김 박사는 독일은 고등학교 때 놀고 대학 때 공부하는 데 한국 젊은이들은 고등학교 때 공부하고 대학 때 논다며 “글로벌 경쟁 시대에 우리 대학생들이 더 공부 열심히 하는 게 필요하다”고 말했다. 연구자이면서 교수이기도 한 그는 독일로 유학 오는 한국 학생들 중 스펙이 좋은 사람은 제자로 선발하기를 오히려 기피한다. 그 이유는 자기 스펙만 믿고 연구에 게으른 경우를 많이 봐 왔기 때문이라고.

잠시 한국을 방문한 김상헌 박사가 다음 날 출국해야 한다기에, 인터뷰는 서둘러 마쳐야 했다. 김 박사는 한국 사람들의 화학물질 남용을 걱정했다. 최근 우리나라에는 아토피 피부병이나 초등학교 운동장의 석면 등 화학물질의 피해를 걱정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케미컬포비아로 불릴 정도로 화학물질을 멀리하는 사람들도 일부 있지만, 김 박사는 대다수 우리나라 사람들은 화학물질을 역시 과용하는 편이라고 지적했다. 김 박사는 “가습기 살균제도 손으로 청소하기 싫으니까 간편하게 약품으로 청소하려는 습관 때문에 나온 거다. 우리 국민은 화학물질 의존 성향을 줄여야 한다. 그리고 국민은 다 알기 어려우니까 국가가 화학물질로부터 국민을 지키는 게 우선”이라고 조언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기나긴 타국 생활이 모국 동포의 안전과 건강을 생각하는 애국심으로 ‘화학적’으로 승화되어 그의 마음에 자리 잡고 있는 듯했다.

취재기자 정혜리  reporter1@civic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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