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동(茶童)에서 다인(茶人)으로 40년 차와의 동행...다정(茶情) 박기봉 선생의 차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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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동(茶童)에서 다인(茶人)으로 40년 차와의 동행...다정(茶情) 박기봉 선생의 차 이야기
  • 취재기자 허시언
  • 승인 2020.11.28 05: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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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기봉 원장, “바쁜 현대인에게는 차 마시는 휴식 필요하다”
학생 시절 공부하러 간 절에서 차 만나고, 중국에서 몸으로 차 공부
부산 대학가에서 차 강습소 운영하며 바른 차문화 보급 위한 꿈 다듬는다

차 향기를 쫓아 들어온 곳

사시사철 북적이는 부산의 대표적 대학가인 경성대 부경대 번화가에는 많은 사람들이 모였다 흩어진다. 그들의 삶엔 분주함은 있어도 여유가 없다. 하지만 그곳에도 잠시 멈춰서 숨을 고를 수 있는 쉼터가 있다. 생소하지만 향긋한 향이 은은하게 풍겨오는 곳은 숨어있는 듯 대학가 뒷골목에 자리잡고 있어서 찾기가 쉽지 않다. 차의 향긋함에 홀리듯 이끌려 좇아가면 작은 골목길에 위치한 ‘다다원(茶茶元)’의 글자가 작게 보인다. 다다원은 격조 있는 찻집 그 이상이다.

다다원은 경성대부경대 대학가 골목길에 숨어 있는 듯 위치해 있다(지도: 네이버 지도).
다다원은 경성대부경대 대학가 골목길에 숨어 있는 듯 위치해 있다(지도: 네이버 지도).

차를 닮은 성품과 인품의 다정(茶情) 박기봉

다다원 원장 다정 박기봉(54) 씨는 어렸을 적부터 쭉 다정(茶情)이란 호를 쓰고 있다. 돌아가신 친한 형님께서 지어주신 호를 듣기도 좋고 부르기도 좋다는 이유로 지금까지 쓰고 있는 것. 특별한 의미는 없다며 박 원장은 웃고 넘겼지만, 차를 닮은 그의 성품과 인품에 꼭 맞는 호라서 형님께서 그를 잘 파악하고 그런 호를 지어 주었다고 그는 생각하고 있다.

‘차의 거장’ 다정 박기봉 씨가 시빅뉴스와의 인터뷰 도중 카메라 앞에서 포즈를 취해 주었다(사진: 취재기자 허시언).
‘차의 거장’ 다정 박기봉 씨가 시빅뉴스와의 인터뷰 도중 카메라 앞에서 포즈를 취해 주었다(사진: 취재기자 허시언).

‘다다원(茶茶元)’, 새로운 차 문화를 지향하다

박 원장이 운영하고 있는 다다원은 차를 마시고 다루는 곳이라 그 이름은 보통 차(茶)를 의미한다고 생각하기 마련이지만 사실은 새로움을 지향하는 미술 용어인 ‘다다이즘’에서 따온 이름이다. 박 원장은 “새로운 차 문화를 지향하겠다는 의미에서 고심해서 지었다”고 말했다.

다다원은 일반인이 차를 마실 수 있는 찻집 역할도 하지만, 주로 하는 일은 차를 가르치고 배우는 공간이다. 다다원은 나이와 직업에 관계 없이 다양한 사람들이 방문해 차를 배운다. 차를 배우고 싶은 학생, 차 학과가 있는 대학의 교수, 차를 우려서 파는 바리스타, 차 공부를 하고 싶은 주부 등 여러 사람이 찾아와 박 원장에게 차를 배운다. 부산여자대학교는 다도관이 있어 전체 학생들을 대상으로 차를 가르치고 있는데, 그곳에서 차를 가르치는 교수가 배우러 오기도 한다.

다다원의 다실. 이곳에서 박기봉 원장은 다도를 연마하며 학생들을 가르친다(사진: 취재기자 허시언).
다다원의 다실. 이곳에서 박기봉 원장은 다도를 연마하며 학생들을 가르친다(사진: 취재기자 허시언).
다실에서 학생들에게 시범을 보이며 다도를 가르치는 박기봉 원장(사진: 취재기자 허시언)
다실에서 학생들에게 시범을 보이며 다도를 가르치는 박기봉 원장(사진: 취재기자 허시언)
다다원의 강의실은 차의 역사, 고전, 현재 등의 차 문화사를 강의하고, 제다와 품평에 대해 가르칠 수 있는 설비와 좌석이 마련되어 있다(사진: 취재기자 허시언).
다다원의 강의실은 차의 역사, 고전, 현재 등의 차 문화사를 강의하고, 제다와 품평에 대해 가르칠 수 있는 설비와 좌석이 마련되어 있다(사진: 취재기자 허시언).

박 원장은 다다원에서 제다(製茶)와 품평(品評), 차에 대한 문화사 강의, 차를 우리는 행위인 행다(行茶)를 가르치는 일을 하고 있다. 제다와 품평은 차를 녹차, 황차, 청차, 백차, 홍차, 흑차로 6대 분류를 하고, 차가 잘 만들어졌는지를 판단하고 등급을 감별하는 것을 통칭한다. 차를 잘 우리는 것만을 공부하는 것이 아닌, 차 문화사를 아는 것도 중요하다는 게 평소 박 원장의 지론이다. 그는 차의 역사, 고전, 현재를 통칭하는 차 문화사를 강의한다. 또, 차를 우리는 행위인 행다도 가르친다. 크게 두 종류인 행다는 잎차의 행다를 다루는 전다법(煎茶法), 가루차의 행다를 다루는 점다법(點茶法)으로 나뉜다.

빽빽하게 꽂혀있는 책들. 모두 차에 관한 책이다. 빼곡한 책장의 책에서 박원장의 차에 대한 연륜과 깊이, 그리고 열정과 의지가 엿보인다(사진: 취재기자 허시언).
빽빽하게 꽂혀있는 책들. 모두 차에 관한 책이다. 빼곡한 책장의 책에서 박원장의 차에 대한 연륜과 깊이, 그리고 열정과 의지가 엿보인다(사진: 취재기자 허시언).
다다원에는 찻잎을 모아놓은 공간도 있다. 다양하고 생소한 찻잎들이 쌓여 있는데, 이들은 모두 박 원장의 새로운 차에 대한 탐구와 연마의 대상이 된다(사진: 취재기자 허시언).
다다원에는 찻잎을 모아놓은 공간도 있다. 다양하고 생소한 찻잎들이 쌓여 있는데, 이들은 모두 박 원장의 새로운 차에 대한 탐구와 연마의 대상이 된다(사진: 취재기자 허시언).

차를 향한 남다른 열정이 만들어낸 ‘가바차’

이렇게 차를 전문적으로 가르치고 공부하고 품평하는 그는 우리나라 차 문화 발전에 큰 이바지를 하기도 했다. 그중 가장 대표적인 것이 ‘가바차’를 만든 일이다. 가바는 감마아미노부틸산의 약자로, 찻잎을 따고 나서 산소를 차단하여 일정 시간 놓아두면 찻잎의 아미노산이 감마아미노부틸산으로 변형되는데, 이것으로 차를 만드는 것이 가바차다. 가바차의 효능으로는 신경 안정작용이 꼽힌다. 박 원장은 “중국과 비교했을 때 우리의 제다 환경과 다양성이 뒤처지는 것은 사실이지만, 기술만큼은 뒤처지고 싶지 않았던 욕구가 지금의 가바차를 있게 했다”며 만족스럽게 웃었다.

박 원장은 차를 우릴 때만큼은 신중하고 진지한 모습으로 변한다(사진: 취재기자 허시언).
박 원장은 차를 우릴 때만큼은 신중하고 진지한 모습으로 변한다(사진: 취재기자 허시언).

다동(茶童)이 다인(茶人)이 되기까지

이렇게 차를 사랑하고 차 발전을 위해 힘쓰는 박 원장은 16세 때 차에 대한 불씨가 타오르기 시작했다. 박 원장이 16세 중학생이던 80년대 초에는 일부 학구적인 학생들 사이에서는 방학 동안 절에 가서 수도하듯 공부하고 오는 경향이 있었다. 고시 준비생들도 절간을 찾는 경우도 많았다. 그는 공부를 굉장히 잘했던 형을 따라 통도사 서운암에 들어가게 된 것이다. 하지만 아직 중학생이었던 그는 절에서 공부하는 다른 사람들처럼 하루 종일 공부를 하지 않아도 됐다. 그는 남는 시간에 스님을 따라다니며 차를 배우기 시작했고, 자연스럽게 다동이 됐다. 그게 좋은 기억으로 남아서, 그는 중학교 3학년 때부터 고등학교 3학년까지 방학마다 절에 들어가 다동 생활을 했다. 박 원장은 “스님 옆에서 차를 배우는 게 너무 좋았다. 신비스럽고 대단해 보였다”고 말했다.

통도사 서운암에 기거하며 다동 생활을 하던 어느 날, 16세의 어린 박 원장을 다인으로 만든 결정적 계기가 있었다. 부산의 동래 향교에서 스님을 찾아뵈려고 손님이 왔다. 하필 그날 스님이 계시지 않아 홀로 손님을 맞이하게 된 그는 스님 옆에서 보고 배운 대로 손님을 대접해야했다. 어설프고 서투른 솜씨로 손님들을 앉혀놓고 차를 대접하자, 손님들이 깜짝 놀랐다. 어른의 눈에는 아직 어리기만 한 그가 손님을 대접하는 것을 보고 어른들이 대견하게 본 것. 어린 그의 마음속에 그때부터 차에 대한 뿌듯함이 뿌리를 내리게 된 것이다. 이 뿌리는 굳건하게 자리 잡아 그가 다인으로 내디딘 첫 발걸음이 됐다. 박 원장은 “그때는 차인, 다인이라는 생각이 없었지만 엄청 뿌듯했다. 그게 마음속에 꽂혔다”고 말하며 추억에 젖었다. 칭찬은 고래를 춤추게 한다는 말이 있듯, 칭찬은 어린 다동을 다인으로 만들었다.

중국 유학길에 오르다

박 원장이 본격적으로 차 공부를 시작한 것은 벌써 20년도 훌쩍 넘은 과거가 됐다. 1998년 31세이던 그는 16세에 차를 시작한 이후 차로 유명한 경남 하동의 화개골을 다니며 부지런히 차 만드는 것을 익히고 있었다. 그러던 중 우연히 중국 사람들이 부산을 방문해 차를 만드는 것을 보고 깜짝 놀라고 말았다. 그는 홍차를 만드는 것을 지켜보며 그 기술에 한 번, 만들어진 홍차 맛을 보고 기절할 정도로 맛있어서 두 번 놀랐다. 그는 황급히 중국 사람들이 차를 만드는 것을 본 그대로를 따라 만들었다. 다양한 방법으로 많은 테스트를 거쳤지만, 그때 맛본 홍차 맛과는 조금도 비슷해지지 않았다. 일정한 양, 온도, 시간을 계산하며 나름 과학적인 방법으로 만들어 봤지만 번번이 실패할 뿐이었다. 그래서 그는 바로 다음 해인 1999년 32세에 차의 원조 격인 중국의 깊은 차 역사와 뛰어난 기술을 배우기 위해 중국으로 차 유학을 떠났다. 아무리 따라 해도 따라갈 수 없었던 그 맛을 그는 꼭 뛰어넘어야만 했다. 박 원장은 “그때 홍차 테스트를 해봤던 것을 아직도 갖고 있다. 그때 테스트한 차들은 나의 차에 대한 열정과 같은 것”이라고 말했다.

차에 대한 열망만을 갖고 아파트를 팔아 경비를 마련한 박 원장은 비행기를 타고 무작정 중국으로 떠났다가 열흘 만에 다시 한국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중국 상해에서 보이차가 유명한 맹해까지 가는 데 5일이나 걸리는 것을 보고 그대로 다시 한국에 돌아온 것. 사실상 호기롭게 떠났던 중국을 상해와 맹해를 왕복만 하고 다시 한국으로 들어온 것이다. 그의 생각보다 중국은 너무 넓었다. 서둘러 한국에 다시 돌아온 그는 짐을 대폭 줄이는 일에 몰두했다. 넓고 다닐 곳은 많은 중국에서 짐이 많은 것은 사람을 금방 지치게 하기 때문이다. 계획 없이 떠났던 처음과는 다르게 책을 보며 다녀할 곳을 체크하고, 그는 한국으로 다시 돌아온 지 보름 만에 중국으로 떠났다. 당시 중국에서 일하던 형에게 이야기해 현지 통역도 구했다. 그렇게 다시 중국에 들어간 그는 5년 동안 6개월 정도만 한국에 들어왔을 만큼 차 공부에 몰두했다.

중국 맹해 파달산에 있는 1600년 된 차나무 아래에서 찍은 30대 박 원장의 사진(사진: 박기봉 씨 제공).
중국 맹해 파달산에 있는 1600년 된 차나무 아래에서 찍은 30대 박 원장의 사진(사진: 박기봉 씨 제공).

아는 사람도, 정보도 없던 박 원장은 제일 처음 무작정 항저우에 있는 절간농업대학교의 문을 두드렸다. 그곳에서는 그가 원했던 차를 만드는 제다가 아닌, 차를 우리는 행다만 중점적으로 가르치는 곳이라 잠시 머물다 떠날 수밖에 없었다. 그는 두 번째로 운남성의 운남농업대학교의 문도 두드렸다. 그곳은 보이차만 중점적으로 가르치고 나머지는 아무것도 배운 바가 없어서 이곳에서도 곧 발걸음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해서는 배울 것이 없겠다는 생각이 든 박 원장은 학교가 아닌 중국의 차 밭으로 눈길을 돌렸다. 그는 우리나라 전체 면적의 약 50배에 달하는 중국 차 산지를 찾아다니기 시작했다. 녹차, 황차, 청차, 백차, 홍차, 흑차 등 차의 6대 분류 안에 들어오는 차밭에는 전부 찾아갔다. 개인이 홀로 다니니, 차밭 견학도 잘 시켜주지 않았다. 처음에는 다들 가라고 쫓아냈다. 그는 쫓겨나면 한발 물러서서 멀리서 눈치를 보며 지켜보다가 일손이 필요해 보이면 가서 도와주고를 몇 번 반복하며 자연스럽게 그들과 어울리게 됐다. 차 농부들과 밥 먹고 자고 일하며 5년을 보냈다. 연구 자금조차 없이 홀로 모든 것을 다 해야 한다는 압박감과 부담감을 이기고 그는 차 공부를 해냈다. 고생의 연속이었지만 난관을 딛고 일어선 것이다.

30대의 박 원장이 중국에서 오룡차를 만들고 있다. 중국 생활이 몸에 밴 탓인지 어느덧 그는 외국인이 아닌 현지인 같아 보인다(사진: 박기봉 씨 제공).
30대의 박 원장이 중국에서 오룡차를 만들고 있다. 중국 생활이 몸에 밴 탓인지 어느덧 그는 외국인이 아닌 현지인 같아 보인다(사진: 박기봉 씨 제공).
30대의 박 원장이 보이차를 중국의 어느 차밭에서 햇볕에 건조하고 있다(사진: 박기봉 씨 제공).
30대의 박 원장이 보이차를 중국의 어느 차밭에서 햇볕에 건조하고 있다(사진: 박기봉 씨 제공).

박 원장이 갖고 있는 차를 향한 열정은 항상 꺾이지 않았다. ‘태평후괴’라는 차를 배우러 후난성에서 출발해서 안위성 차밭으로 가는 5일 동안 계속해서 차를 어떻게 만들지만 생각한 적도 있었다. 박 원장은 할 수 있는 모든 상상을 다 했다. 그렇게 안위성 차밭에 도착해 태평후괴를 만드는 것을 본 순간 태평후괴 제다법을 즉석에서 모두 파악하게 됐다. 머릿속으로 했던 모든 상상을 현실에서 직접 보는 순간 머릿속으로 박혀들어오듯 각인돼버린 것이다. 박 원장은 “머릿속으로 모든 상상을 다 해봤더니 보자마자 알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박 원장은 중국에서 공부했던 5년 동안 있었던 일 중 가장 뿌듯한 경험으로 한 지역 중국 사람들의 제다 기술을 다른 지역의 중국 사람들에게 전달하는 역할을 해준 것을 꼽았다. 중국인들은 개인주의 성향이 강해 자기 지역을 벗어나 다른 지역과 교류하는 일이 거의 없다고 한다. 그래서 중국 사람들은 지역과 지역 사이의 교류가 거의 없다. 이러한 중국인들 사이에서 박 원장이 여러 지역 중국 사람들의 중간 다리 역할을 하며 중국 지역 간 다른 제다 기술을 전달했다. 강소성 난경우화차를 만드는 친구에게 복건성에서 생산되는 청차 만드는 기술을 응용시켜 주기도 했다. 박 원장은 “남의 나라에 가서 그 나라 지역 간 다른 기술을 전달해 준 것이라 매우 뿌듯했다”고 말하며 미소를 지었다.

“품격이 차를 만든다.”

박 원장이 공부했던 중국은 차가 대중적이다. 차를 기능적으로 사용하여 하루에 몇 번이고 우려 마신다. 박 원장은 차가 기능적으로만 활용되는 것도 좋지만 차의 유익성, 기호성, 그리고 품격을 강조했다. 차는 몸에 좋아야 하고(유익성), 맛있어야 하고(기호성), 품격 있어야 한다는 것(품격성). 차는 유익성만을 강조하면 떫어지고, 기호성만 강조하면 기능이 떨어지고, 품격이 없으면 다도가 아닌 무용이 된다는 것. 그는 차 문화는 품격이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 원장은 “품격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다. 말 한마디, 동작 하나를 조금만 인식하고 바꾸면 바로 품격이 된다”고 말했다.

차를 만드는 데 사용되는 도구인 다구 사진. 왼쪽 밑은 자사호, 오른쪽 밑은 다해, 위쪽은 찻잔 두 개다(사진: 취재기자 허시언).
차를 만드는 데 사용되는 도구인 다구 사진. 왼쪽 밑은 자사호, 오른쪽 밑은 다해, 위쪽은 찻잔 두 개다(사진: 취재기자 허시언).
자사호에서 찻잎을 우린 뒤 다해(숙우) 위에 얹은 거름망을 통해 차를 우려내는 모습(사진: 취재기자 허시언).
자사호에서 찻잎을 우린 뒤 다해(숙우) 위에 얹은 거름망을 통해 차를 우려내는 모습(사진: 취재기자 허시언).

극복해 나가야 할 절망

차에 대한 애정의 정도가 남다른 박 원장은 그만큼 좌절도 많이 겪었다. 그가 제일 절망한 것은 차를 다리는 ‘행다’가 차의 모든 것처럼 생각하는 사회 분위기다. 차에는 차 문화사, 차의 고전, 제다와 품평, 다도와 같은 다양한 장르가 있는데 사람들은 흔히 차를 우리는 행위인 행다만을 차 문화의 전부라고 생각한다는 것. 그는 일반인이 하는 행다, 즉 ‘다도’는 차 문화사와 같은 깊은 공부를 뺀 차를 우리는 행위 그 자체에만 치우쳐 있다고 비판한다. 박 원장은 “우리 사회가 가지고 있는 ‘좁은 다도’에 치우친 차에 대한 고정관념을 넘어서야 하는 것이 차 문화가 풀어나가야 할 숙제고 가장 힘든 부분”이라고 말하며 안타까움을 감추지 못했다.

시대에 발맞춰 가다

박 원장은 앞으로도 가던 길을 쭉 갈 것이라고 다짐했다. 코로나19로 인해 다다원에 손님이 없어 어렵지만 딱 어려워진 만큼 시간적 여유가 많이 생겼다. 그는 생겨난 여유 시간을 활용해 인스타, 유튜브 등의 SNS를 공부했다. 차 문화 인식 개선을 위해 SNS를 이용해서 차 문화를 홍보하고 그에 따른 다양한 작업을 구상하고 있다는 것. 그는 SNS에 차 정보를 찾아보면 제대로 된 정보가 거의 나오지 않는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하지만 다도를 모르는 일반인에게는 그것이 정확한 정보인지 떠돌아다니는 낭설인지 알기 어려운 것은 당연하다. 박 원장은 “차에 대한 잘못된 지식이나 상식을 바로잡고 근거를 제시하면서 다도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깨보겠다”고 다짐했다.

쉬어가다

박 원장은 차와는 거리가 먼 젊은 세대에게 쉼을 강조했다. 바쁜 젊은이들일수록 하나에 오롯이 집중하는 쉼이 필요하다는 것. 그는 “청년들에게는 생소한 활동인 다도의 동작, 도구, 향기, 소리 등을 보고, 듣고, 경험하면서 오롯이 집중하는 쉼을 가지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 현대인들은 쉼이 좀 필요하다. 차를 마시며 쉬는 것은 어렵지 않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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