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대왕님, 캘리그라피로 한글 사랑의 꿈 펼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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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대왕님, 캘리그라피로 한글 사랑의 꿈 펼칠게요”
  • 취재기자 김유경
  • 승인 2020.11.26 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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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사랑에 빠진 대학생 차솔비 씨... "한글 관련 직업 갖고 싶어"
취미로 시작한 한글 캘리그라피로 TV에도 출연.. ‘우리말 가꿈이’ 활동도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이 세상 그 어떤 아름다운 꽃들도/다 흔들리면서 피었나니(중략)/다 젖으며 젖으며 피었나니/바람과 비에 젖으며 꽃잎 따뜻하게 피웠나니/젖지 않고 가는 삶이 어디 있으랴”

이는 도종환의 <흔들리며 피는 꽃>이란 시다. 한 소녀가 중학교 시절 우리말로 된 시 네 편을 외워오는 국어 수행평가를 위해 이 시를 읽었다. 순수 한글로만 이뤄진 이 시 구절을 외우다가 소녀는 문득 ‘한글이 이렇게 아름다울 수가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소녀는 곧 한글의 아름다움에 매료됐다. 그 후 줄곳 그녀는 한글과 인연을 맺어 오다가 대학 전공도 한국어문학과를 택했다. 현재 인하대학교 한국어문학과에 재학 중인 그녀는 이름도 예쁜 순 한글 이름을 가진 차솔비(21, 울산시 남구) 씨다.

차솔비 씨가 인하대학교 한국어문학과 점퍼를 입고 마스크를 쓴 채 인터뷰에 응하고 있다(사진: 취재기자 김유경).
차솔비 씨가 인하대학교 한국어문학과 점퍼를 입고 마스크를 쓴 채 인터뷰에 응하고 있다(사진: 취재기자 김유경).

한글 이름, 우리말에 빠지게 하다

차 씨의 못 말리는 한글 사랑은 본인의 이름에서부터 시작된다. 아버지가 직접 지은 이름 ‘솔비’에는 두 가지 풀이가 있다. 소나무처럼 푸르고, 비처럼 시원하고 맑게 자라라는 의미와, 제주도에만 있는 솔비나무처럼 특별하게 자라길 바라는 마음이 담긴 것. 차 씨는 사람들에게 이름의 뜻과 어감이 좋다는 얘기를 들을 때마다 자신이 지은 이름은 아니지만, 괜히 뿌듯하다. 차 씨는 “이름 덕분에 항상 한글에 대한 좋은 감정이 있었다. 그게 평생 함께할 꿈으로 이끌었다. 예쁜 이름을 지어준 아버지께 항상 감사하다”고 말했다.

중2병이 가져다준 특별한 재능, 캘리그라피

차 씨는 어릴 적부터 글씨를 예쁘게 쓰는 것에 관심이 많았다. 차 씨가 캘리그라피를 처음 접한 건 2014년이었는데, 일종의 중2병을 겪으며 감성이 한참 예민하던 시기였다. ‘캘리그라피’는 그림 그리듯이 문자를 예쁘게 꾸미면서 적는 것인데, 차 씨는 우연히 예쁜 글씨로 글귀를 적은 배경화면을 공유하는 블로그를 발견했고, 거기서 안도현 시인의 <너에게 묻는다>를 캘리그라피로 적은 걸 봤다. 그때, 처음으로 글귀보다 글씨에 더 눈길이 갔고, 이전에 잠시 POP 글씨(물건 등의 홍보용으로 예쁘게 꾸며 적는 글씨)를 배웠던 기억을 살려서 자신도 이렇게 한번 예쁜 글씨를 써보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차 씨는 “당시 나는 공부 학원을 안 다녀서 친구들이 학원에 가 있는 동안 할 게 필요했다. 또, 이때는 작가가 되고 싶어서 내가 적은 글씨로 책을 발간하고 싶다는 로망도 있었다”고 말했다.

차 씨가 직접 쓴 캘리그라피 작품. 차 씨는 평소 좋아하는 작품인 시인 이상의 (이런 시)를 자신만의 스타일을 살려 캘리그라피로 적었다(사진: 차솔비 씨 제공).
차 씨가 직접 쓴 캘리그라피 작품. 차 씨는 평소 좋아하는 이상의 시 '이런 시'를 자신만의 스타일을 살려 캘리그라피로 적었다(사진: 차솔비 씨 제공).

중학생 때 시작한 캘리그라피 취미는 고등학생이 돼서도 이어졌다. 마음에 드는 글귀나 편지를 캘리그라피로 적어 친구들이나 선생님들께 선물하는 건 차 씨가 고등학교 생활 중에 느낀 재미 중 하나였다.

그런데 차 씨는 캘리그라피를 취미로 하면서 이게 자신에게 무슨 도움이 될지 고민했던 적도 있었다. 그때, 차 씨는 개인적으로 참여한 ‘18세 선거권 하향 울산 청소년 캠페인’ 봉사활동을 통해 캘리그라피를 취미로라도 계속할 이유를 찾았다. 캘리그라피를 써주는 부스 봉사활동이었는데, 당시 날씨가 엄청 추웠고, 더군다나 부스를 운영하는 다섯 시간 정도를 앉아있어야 해서 봉사활동 신청한 걸 후회하고 있을 때였다. 캘리그라피 글씨를 받아 갔던 한 어른이 부스에 다시 찾아와 글씨 써줘서 고맙다며 따뜻한 음료를 그녀에게 건넸다. 차 씨는 “음료를 받으며 내 글씨로 누군가에게 기쁨을 줄 수 있다는 게 너무 뿌듯했다”고 말했다.

차 씨가 가수 아이유의 노래 (Blueming) 가사 중 한 부분을 캘리그라피로 적은 작품. 그녀의 캘리그라피는 아마추어의 수준을 넘는 듯하게 멋지고 완벽하다(사진: 차솔비 씨 제공).
차 씨가 가수 아이유의 노래 'Blueming' 가사 중 한 부분을 캘리그라피로 적은 작품. 그녀의 캘리그라피는 아마추어의 수준을 넘는 듯하다(사진: 차솔비 씨 제공).
차 씨가 평소 위로받는 노래인 가수 제이레빗의 (힘든가요)의 가사 일부를 캘리그라피로 적은 작품(사진: 차솔비 씨 제공).
차 씨가 평소 위로받는 노래인 가수 제이레빗의 '힘든가요'의 가사 일부를 캘리그라피로 적은 작품(사진: 차솔비 씨 제공).

우연으로 시작한 캘리그라피는 차 씨의 인생에 두고두고 기억으로 남는 순간을 선물했다. 바로 2016년 고등학교 1학년 때, 그녀는 KBS1 ‘도전! 골든벨’에 한글 관련 지식은 물론 캘리그라피 솜씨 때문에 출연자로 선발됐던 것. 차 씨는 839회 ‘제2회 2016 한글날 특집 – 도전! 한글 골든벨’에 출연해 캘리그라피 솜씨를 뽐냈다. 차 씨의 ‘도전! 골든벨’ 출연은 차 씨가 활동 중이던 교내 동아리 담당 선생님의 권유로 이뤄졌다. 우연히 교무실에 간 차 씨에게 선생님이 ‘도전! 골든벨’ 신청서를 건넸고, 1차 한글 관련 상식 시험에서 울산 3등으로 뽑혀 대구로 2차 면접을 보러 갔다. 그때 담당 작가가 차 씨가 신청서에 취미로 캘리그라피를 쓴다고 적은 걸 봤고, 면접장에서 캘리그라피를 선보였다. 이후 면접까지 합격해 녹화 때 캘리그라피를 하는 퍼포먼스를 해줄 것을 제안받아 실제 녹화 현장에서 한글날을 축하하는 글을 캘리그라피로 적었다.

차 씨가 KBS1 ‘제2회 2016 한글날 특집 – 도전! 한글 골든벨’에서 캘리그라피로 ‘570돌 / 한글날 축하합니다’를 적어 열광적인 환호를 받았다. 사진은 그때 차 씨가 캘리그라피를 쓰는 장면이다(사진: 차솔비 씨 제공).
차 씨가 KBS1 ‘제2회 2016 한글날 특집 – 도전! 한글 골든벨’에서 캘리그라피로 ‘570돌 / 한글날 축하합니다’를 적어 열광적인 환호를 받았다. 사진은 그때 차 씨가 캘리그라피를 쓰는 장면이다(사진: 차솔비 씨 제공).

이렇게 차 씨는 얼떨결에 한글날 특집 TV프로에 나갔지만, 그곳에서 다양한 출연자들을 만났다. 그녀는 “골든벨을 통해 만난 언니는 내가 위로가 필요할 때마다 예쁜 마음과 말을 가득 안겨주는 소중한 나의 인생 멘토가 됐다. 이때 만났던 사람들과 아직도 연락하고 지내는 게 제일 신기하다”고 말했다.

차 씨가 KBS1 ‘제2회 2016 한글날 특집 – 도전! 한글 골든벨’에 출연해 당시 진행자였던 오승원 아나운서와 인터뷰하고 있다(사진: KBS 1TV 화면 캡처).
차 씨가 KBS1 ‘제2회 2016 한글날 특집 – 도전! 한글 골든벨’에 출연해 당시 진행자였던 오승원 아나운서와 인터뷰하고 있다(사진: KBS 1TV 화면 캡처).

차 씨의 골든벨 출연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그렇게 한글날 특집 녹화가 끝나고 몇 달 후, 담당 작가에게 다시 연락이 왔다. 한 달 뒤에 골든벨 왕중왕전 녹화가 있을 예정인데, 한글날 특집 때 했던 퍼포먼스 반응이 좋아서 다시 출연해줬으면 좋겠다는 것. 그렇게 차 씨는 848회 ‘2016 왕중왕전 특집 2부’에 한 번 더 출연해 ‘2017 / 새해에도 우린 답을 찾을 겁니다 / 늘 그랬듯이’라고 2017년 덕담을 캘리그라피로 적었다. 차 씨는 “당시 나는 그저 우물 안 개구리라 아직 갈 길이 멀다고 생각했는데, 왕중왕전 출연으로 주변에서 칭찬과 응원을 많이 보내줘서 캘리그라피를 계속 연습할 또 다른 동기부여가 됐다”고 말했다.

차 씨가 KBS1 ‘2016 왕중왕전 특집 2부’에서 한 번 더 캘리그라피로 2017년 덕담을 적는 일을 해냈다(사진: 차솔비 씨 제공).
차 씨가 KBS1 ‘2016 왕중왕전 특집 2부’에서 한 번 더 캘리그라피로 2017년 덕담을 적는 일을 해냈다(사진: 차솔비 씨 제공).

꿈에 한 걸음 더, 우리말 사랑 동아리

차 씨의 골든벨 출연을 도왔던 건 그녀의 한글 지식도 한 몫했다. 그녀는 고등학교 교내동아리 ‘우리말 사랑 동아리’의 회원이었다. 1학년 때부터 들어가 활동했던 ‘우리말 사랑 동아리’는 학생들에게 우리말을 조금 더 쉽고 재미있게 알려주고자 만들어진 울산 화봉고등학교의 교내동아리로, 현재는 ‘우리말 가꿈이 푸른’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우리말 사랑 동아리는 교내 화장실 칸마다 ‘오늘의 한글 맞춤법’을 제작해 붙여두는 등의 활동을 했으며, 이외에도 학교 급식 식단표에 표기가 잘못된 것을 찾아 정리한 <섞박지인가 석박지인가> 보고서를 만들기도 했다.

차 씨가 고등학교 우리말 사랑 동아리원들과 만든 ‘섞박지인가 석박지인가’ 보고서의 서론과 급식표에 잘못 표기된 것을 고친 내용을 정리한 보고서 일부(사진: 차솔비 씨 제공).
차 씨가 고등학교 우리말 사랑 동아리원들과 만든 ‘섞박지인가 석박지인가’ 보고서의 서론과 급식표에 잘못 표기된 것을 고친 내용을 정리한 보고서 일부(사진: 차솔비 씨 제공).

우리말 사랑 동아리는 한글을 알리는 것뿐만 아니라 학생들에게 소소한 재미를 주기도 했다. 차 씨가 고등학교 1학년 시험 기간 때 ‘오늘 당신에게 가장 필요한 것을 가져가세요’라는 전단지를 만들었다. 이 전단지에는 전화번호를 뜯어가기 좋게 만든 것처럼 하단에 용기, 시간, 간식 등을 적어 학생들에게 재미와 위로를 선물했다. 몇 가지 항목 중 간식 종이를 뜯어서 가져온 사람에게는 실제로 간식을 주기도 했다.

차 씨가 고등학교 1학년 때 우리말 사랑 동아리에서 ‘오늘 당신에게 가장 필요한 것을 가져가세요’ 전단지를 붙여 학생들에게 즐거운 이벤트를 선사했다. 사진은 그때 붙여 놓은 전단지(사진: 차솔비 씨 제공).
차 씨가 고등학교 1학년 때 우리말 사랑 동아리에서 ‘오늘 당신에게 가장 필요한 것을 가져가세요’ 전단지를 붙여 학생들에게 즐거운 이벤트를 선사했다. 사진은 그때 붙여 놓은 전단지(사진: 차솔비 씨 제공).

우리말 사랑 동아리가 한 활동은 학생들은 물론이고 선생님들 사이에서도 다음에 소개할 맞춤법은 무엇일지 궁금증을 가지게 할 만큼 반응이 좋았다. 차 씨는 “동아리를 하는 내내 학생들도 그렇지만 선생님들이 붙여둔 것 잘 봤다며 좋아해 주셨던 게 특히 보람이 있었다”고 말했다.

고등학교는 동아리라면 대학교는 대외활동, 우리말 가꿈이

차 씨의 한글 사랑은 고등학생 때는 동아리 활동였다면 대학생이 돼서는 대외활동으로 바뀌었다. 바로 미래세대를 보호하고 아름다운 우리말글을 가꾸기 위한 사회공헌 활동인 ‘우리말 가꿈이’ 17기, 18기로 활동한 것. 우리말 가꿈이는 고등학교 때 우리말 사랑 동아리의 연장선이다. 우리말 사랑 동아리가 한글문화연대(아름다운 우리말과 한글을 알리기 위해 설립된 시민단체) 소속이었는데, 우리말 가꿈이도 마찬가지로 한글문화연대 소속이기 때문이다. 차 씨는 우리말 가꿈이로서 모둠원들과 필요 없는 외국어를 우리말로 바꾸기, 우리나라 주전부리에 쓰인 우리말을 정리한 카드뉴스 만들기, 포대기처럼 외국에서 그대로 쓰는 우리말을 알리기 등 여러 활동을 했다. 차 씨는 “했던 활동 중에 방언이 사용된 책이나 노래 가사를 찾아 카드뉴스를 제작한 게 가장 재밌었다”고 말했다.

차 씨가 우리말 가꿈이로 활동하면서 만든 ‘매체에 담겨있는 방언 – 노래, 책, 드라마, 영화 편’ 카드뉴스의 표지와 내용 일부다(그림: 차솔비 씨 제공).차 씨가 우리말 가꿈이로 활동하면서 만든 ‘매체에 담겨있는 방언 – 노래, 책, 드라마, 영화 편’ 카드뉴스의 표지와 내용 일부다(그림: 차솔비 씨 제공).
차 씨가 우리말 가꿈이로 활동하면서 만든 ‘매체에 담겨있는 방언 – 노래, 책, 드라마, 영화 편’ 카드뉴스의 표지와 내용 일부다(그림: 차솔비 씨 제공).

계획이 바뀌어도 한글을 사랑하는 마음은 늘 함께

차 씨는 현재 휴학 중이며, 이번 학기는 눈에 띄는 대외활동도 하지 않고 있다. 다만 페이스북 등을 통해 국립국어원 누리소통망(SNS)에 올라오는 정보 글을 공유하고, 친구들에게 국어와 관련된 정보를 알려주고 있다. 그녀에게 휴학 전인 2019년은 바쁨의 연속이었다. 수업 외에도 동아리와 대외활동 등 한 해를 쉴 틈 없이 보냈다. 그렇게 학기를 마무리하고 본가에 오니 몸은 지쳐있었고, 미래에 대해 정리하며 쉴 시간이 필요했다. 차 씨는 “휴학을 하는 것에 고민은 많았지만, 지금 휴학하지 않으면 남은 대학 생활에 대한 방향을 잡기 쉽지 않을 것 같아 과감히 휴학을 선택했다”고 말했다.

내년 복학을 준비하고 있는 차 씨는 앞으로의 계획을 하나씩 세우고 있다. 그녀는 대학원에 진학해서 방언학 중에서도 지역방언, 즉 우리나라 사투리를 더 공부할 계획이다. 대학 학술답사 수업에서 경남 방언에 대한 발표를 준비하게 되면서 방언학을 배우고 싶어진 것. 차 씨는 “사투리는 어느 한 지역의 화자들만이 공유하는 언어체계인데, 거기에 내가 공부하는 사람으로 발을 담근다는 게 참 매력적이라고 느껴졌다”고 말했다. 그녀는 가능하다면 공부 후에 한글 학회 혹은 국립국어원으로 취직하고 싶어한다. 차 씨는 “만약 두 계획이 모두 이루어지지 않더라도 나는 평생 국어를 사랑하고, 한글을 널리 알리기 위해 캘리그라피는 계속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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