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창희칼럼] '트로트 신동' 정동원에게 '길'이 필요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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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창희칼럼] '트로트 신동' 정동원에게 '길'이 필요했을까
  • 박창희 논설주간
  • 승인 2020.06.29 11:40
  • 댓글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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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하동군, '트로트 국민손자' 정동원 길 열어 관광마케팅
'과연 정동원을 위한 길일까?'... 오히려 무한도전의 길 열어줄 때

‘트로트 신동’ 정동원이 부르는 배호의 <누가 울어>는 페이소스를 자아내고 마음을 흔든다. 정동원은 단순히 배호 흉내만 내지 않는다. 배호의 강한 호소력과 우수에 젖은 감성을 구성지게 뽑아낸다. 배호가 누군가. 1960년대 전성기를 누린 당대의 가객, 로맨티스트다. 그의 묵직한 저음은 영혼을 울린다. 그러나 스물 아홉의 꽃다운 나이에 요절, 가요계의 전설이 된 가수다.

이 배호를 올해 열네 살의 정동원이 야무지게 불러재낀다. 노래를 들은 한 출연자는 “괴물이 나타났네… 무슨 애가 저리 구슬프냐”고 묻기도 했다. 정동원의 <누가 울어>는 유투브 조회수 135만 회를 훌쩍 넘겼다.

정동원은 이후 TV조선의 '미스터 트롯 형제들'과 지상파, 종편 등에 겹치기로 출연하며 한껏 존재감을 드러냈다. 배호는 물론 남진, 나훈아의 노래들을 마치 자기 노래인 양 부른다. 노래뿐만 아니라 색소폰까지 연주하고, 트롯 형님들 틈에서 특유의 입담도 과시한다. 여러모로 ‘끼’가 다분하다고 할까.

정동원은 2007년 경남 하동에서 태어났다. 자전 스토리에 의하면, 세 살 때 부모님이 이혼했다. 어머니는 떠났고 아버지는 돈 벌러 부산으로 갔다. 동원이는 할아버지 밑에서 자랐다. 처음엔 기가 죽었으나 할아버지와 생활하며 트로트를 부르고 색소폰과 드럼을 배우면서 점차 밝아졌다. 할아버지는 동원이의 끼를 발견하고 연습실을 만들어 주는 등 뒷바라지를 아끼지 않았다.

2018년 할아버지의 손을 잡고 KBS 전국노래자랑에 나간 정동원은 우수상을 차지했다. 2019년엔 ‘영재발굴단’에 소개돼 콘서트를 하고 ‘TV 인간극장’에도 출연했다. 이 즈음, 할아버지가 폐암으로 쓰러졌다. 올 1월 방송된 ‘미스터 트롯’에서 정동원은 <누가 울어>를 부르며 울었다. 사회자가 ‘왜 우느냐’고 묻자, “이 노래가 하늘에 계신 할아버지께 닿았으면 좋겠어요”라며 할아버지에 대한 애틋한 정을 숨기지 않았다.

지난 5월 24일 경남 하동군에서 열린 트로트 신동 '정동원 길' 선포식(사진 제공: 하동군).
지난 5월 24일 경남 하동군에서 열린 트로트 신동 '정동원 길' 선포식(사진: 하동군 제공).

‘정동원 스토리’는 분명 대견하고 짠하고 흥미로운 데가 있다. 불우한 가정 환경을 딛고 ‘트로트 국민 손자’로 떠올랐기에 더 많은 박수를 받을 자격도 있다. 정동원이 방송 섭외 1순위로 뜨고, 광고에까지 등장하자 고향인 하동이 들썩거렸다. 여기까지는 스타 탄생의 과정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그런데, 한 달 전 하동군에서 만든 ‘정동원의 길’은 너무 나갔다는 생각이 든다.

경남 하동에 ‘정동원 길(jeongdongwon-gil)’이 생긴 것은 지난 5월 24일. 하동군은 진교면 백련리 안심마을 정동원의 본가를 중심으로 메타세쿼이어 길을 따라 옛 남해고속도로 백련마을 회전교차로∼금남면 하삼천 회전교차로 7.2km 구간을 ‘정동원 길’로 명명, 선포식을 가졌다. 하동군은 명예도로명 부여 절차에 따라 오는 2025년까지 5년간 사용하고, 필요에 따라 연장할 것이라고 했다.

‘정동원 길’이 지역 홍보와 관광객 유치엔 도움이 될지 모르지만, 과연 정동원을 위한 것인지는 생각해볼 문제다. 정동원의 스타십을 인정한다 하더라도, 길 이름까지 붙인 건 지나치지 않느냐는 것이다. 정동원의 스토리텔링은 그가 TV에서 나이에 걸맞게 활동하고 박수받고 끼를 발산하는 것이면 족하다. 전도양양한 중1 소년에게 '길이 되라' 한 것은 기성세대의 지나친 주문이요 과도한 의미 부여다.

‘○○○의 길’ 식으로 길이나 역에 이름을 붙인 사례가 종종 있긴 하다. 나혜석의 길(서울), 이중섭의 길, 우장춘로, 과정로(부산), 김유정역(춘천), 김삿갓면(영월) 등이 그러한데, 통상 역사성과 지역성이 버무려져 있다. 아무나 '길' 될 수 없음은 말할 필요도 없다.

한국 가요계로 얘기를 좁혀도 '트로트의 길'은 가물가물하다. 남진, 나훈아, 현철, 설운도, 태진아, 김연자, 주현미, 장윤정… 이들을 놔두고 트로트 신동이랍시고 14세의 정동원에게 길을 부여한 것은 행정의 오버센스다.

정동원은 한창 커고 있는 소년이다. 육체적, 인성적, 음악적으로도 그렇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정동원의 오늘이 아니라, 그가 창출해낼 내일이다. 한 신동을 북돋워주고 키워주는 것과 그를 마케팅 도구로 활용해 관광자원화하는 것은 차원이 다른 얘기다.

과유불급(過猶不及), 뭐든 지나치면 모자람만 못하다. 과도한 트로트 열풍 속에 어떤 과도한 쏠림은 없는지, 조급한 대중주의가 대중문화의 본질을 훼손하고 있지는 않은지 되돌아볼 때다. 잠시 폭발적인 사랑을 얻었지만 한순간에 사라진 인물과 프로그램이 얼마나 많았던가.

소년 정동원의 맹활약에는 진심으로 박수를 쳐주고 싶다. 하지만 길은 다른 얘기다. 지금이라도 정동원이 인위의 길에서 빠져나와 자유로움의 길, 무한도전의 길로 나아갈 수 있게 도와 주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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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 2020-07-01 08:54:30
쓰고싶으면 국회의원들 비리많으니 그쪽으로 쓰세요

msk1476@gmail.com 2020-07-01 06:54:34
13세에 도전해서 14세에 일반 형들과 나란히 대결하면서
5위에 올랐습니다 코로나로 힘든 나날을 미스터트롯을 보면서 이겨냈습니다 시청률이 얘기해 줍니다 박지성길은 되고 아이돌의 숲은 되고 정동원길은 안됩니까 ?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트롯을 사랑하고 열심히 하는 정동원을 응원은 못할 망정
이런 글을 올리는 이유가 궁금합니다

사과행기 2020-06-30 16:15:30
‘정동원 길’ 이 필요한지 아닌지는 본인 일기장에나 쓰세요
부러운가 보네
나이먹고 어린 아이한테 할 말인지
나이 먹었다고 다 어른이 아니지요
‘길’ 이 아니라 더한걸 해줘도 모자란데
어이가 없다

다랭이 2020-06-30 14:02:35
요즘같이 개천에서 용이 나오기 힘든 세상에 온갖 어려움을 이겨내고 커보려고 애쓰는 어린 용을 굳이 도로 개천으로 끌어내리고 싶은가 봅니다. 좀 마음이 넓은 어른들이 세상에 많았으면 좋겠습니다.

여니 2020-06-30 12:20:19
글도 더럽게 못쓰네 읽다 토나옴
그럼 본인이 좋아하는 사람은 길 필요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