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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세 5~6월, 한 달간 유럽을 누비다보니 한뼘 더 성숙해진 것 같았다 / 김하은
  • 부산시 북구 김하은
  • 승인 2018.05.25 0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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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 <해리포터>를 좋아했던 나는 막연히 영국에 대한 동경이 있었다. <해리포터> 촬영지, 테마파크, 작가가 집필한 서점들... 언젠가 어른이 되면 가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영국을 알아보다보니 주변 국가들 또한 어떤 곳인지 궁금해졌다. 우리와 다른 문화들이 신기했고 알고싶었다. 막연히 꿈꿨던 영국여행은 유럽여행으로 꿈이 커졌고, 내가 직접 번 돈으로 혼자 가야겠다는 계획이 생겼다.

작년 겨울, 유럽여행을 위해 휴학을 신청했다. 지금이 아니면 온전히 나 혼자 유럽여행을 할 기회를 놓칠 것 같았다. 알바로 일하고 있던 레스토랑에서 4개월을 직원으로 일하면서 돈을 모았다. 드디어 여행경비가 모였다. 5월 18일부터 6월 21일까지, 35일간 여행을 하기로 했다. 캐리어를 사고 숙소를 알아보고 어디를 볼 것인지 뭘 먹을 건지 결정했다. 패키지로 해외여행을 몇 번 가 봤지만 내 스스로 무언가 마음먹고 여행의 모든 걸 정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로마 인, 런던 아웃으로 22년 내 인생 최고의 여행이 시작되고 있었다. 엄마 아빠의 배웅을 받으며 김해 공항으로 가서 체크인을 했다. 떨리고 설레는 마음을 안고 비행기를 탄 11시간 동안 그렇게 잠이 많은 내가 졸지도 않고 뜬 눈으로 착륙을 기다렸다.

여행하는 35일 동안 처음 2주는 혼자, 남은 3주는 친구와 둘이 여행했는데, 혼자 다니다가 같이 다니려니 생각이 다를 때가 많아서 많이 싸웠다. 다행히 비행기를 따로 타고 오는 일은 없이 무사히 같이 한국으로 돌아왔다. 이제와 생각해보면 '조금만 서로 양보했으면 됐을 일인데' 하는 생각도 있었지만, 지금은 웃으면서 '우리 그때 싸웠잖아'라고 유쾌하게 말할 수 있다. 혼자 하는 여행이 더 편하고 좋다고 생각했지만 같은 추억을 공유하고 감상에 젖어 던지는 얘기를 받아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지루한 일상 틈틈이 큰 위로가 된다.

첫 날 아침 설레고 들뜬 마음으로 로마의 숙소를 나섰을 때 아침의 맑은 공기의 느낌을 온 몸으로 느꼈고 오래도록 기억하고 싶었다. 하늘은 맑았고, 햇볕은 뜨거웠다. 유럽의 하늘은 비가 살짝 와서 촉촉했던 프라하를 빼 놓고는 항상 맑은 빛의 청량한 하늘색을 보여주었다. 매일 비가 오는 날씨라 항상 흐리다는 런던에서조차 내내 뜨거운 햇빛을 받았다. 파리에서 에펠탑을 마주하던 날의 하늘은 어릴 적 동화 속에서 봤던 그림 같은 하늘이었다. 친구랑 연신 ‘막 찍어도 그림이다’라고 말하며 카메라 셔터를 눌렀다. 스위스 숙소에서 만났던 동행들이 말하기를 서울에서는 미세먼지 때문에 뿌연 하늘만 보다가 그림 같은 하늘을 봐서 좋다고 했다. 나는 여행을 가기 전에 레스토랑 안에서 일만 하느라 하늘을 많이 못 봐서인지 그 때는 공감을 못 했다. 요즘 비가 온 다음 날에도 미세먼지 때문에 흐린 하늘을 볼 때면 로마의, 스위스의, 파리의 그림 같은 하늘이 생각난다.

스위스 인터라켄에서의 패러글라이딩. 20만 원 가까이 돈을 지불했지만 돈이 아깝지 않았던 경험이었다(사진: 김하은 씨 제공).

내가 갔던 13개의 도시들 중에서 관광지로 추천하고 싶은 곳은 베네치아였다. 처음에 큰 기대를 하고 간 곳은 아니었다. 피렌체에서 베네치아로 갈 때 기차를 타고 들어갔는데,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 나오는 기차처럼 물위를 달리는 느낌이었다. 수상버스와 택시를 타고 섬들 사이로 이동하는 것도 새로웠고, 좁은 골목골목을 다니며 아기자기한 상점들을 구경하고 길을 찾는 재미도 있었다. 숙소는 호스텔 도미토리 2층이었는데, 3층에 조그맣게 조식 먹는 곳이 있었고, 바로 옆에 옥상이 있었다. 아침에 떠지지도 않는 눈을 비비면서 빵과 주스를 먹고 옥상으로 갔을 때, 시원한 바닷바람과 비치색의 바다가 나를 반겼다. 잠이 많아서 아침마다 일어나는 걸 힘들어 하는 나지만, 이 곳에서 산다면 매일 아침 일어나 바다를 보면서 기지개를 켤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베네치아의 골목사이의 다리에서 내려다본 곤돌라들(사진: 김하은 씨 제공).

한 달간 유럽여행을 하면서 우리나라랑 다른 점을 느낀 건 이곳 사람들은 다른 사람의 시선을 신경쓸 필요 없이 산다는 것이었다. 공원에 가면 돗자리도 없이 드러누워 낮잠을 자는 사람들을 볼 수 있었고, 런던 사람들이 맥주집 밖에 서서 맥주를 즐기는 모습도 문화적 충격이었다. 세느 강변 옆에서는 춤을 추는 사람들이 있었고, 그 분위기를 즐기며 와인과 맥주를 먹는 사람들이 있었다. 친구들과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들과 여유를 즐기는 모습을 많이 볼 수 있었다. 그 여유로움이 나를 행복하고 또 나른하게 만들었다. 노천 카페에서 커피를 마실 때, 골목사이를 돌아다니다가 광장에서 잠시 사람들을 구경할 때...여유로움에 취했던 그 날의, 그 곳의 분위기가 너무 좋았다.

유럽은 옛날 돌바닥 그대로인 곳이 많아서 느낌이 좋고 예쁘다고 생각했는데, 역시 로망과 현실은 달랐다. 짐을 꽉꽉 눌러 담은 무거운 28인치 캐리어를 끌고 가다보니 팔이 너무 아파서 버리고 싶은 마음이 들 때가 많았다. 계단을 오르면서 낑낑거릴 때마다 친절한 아저씨들이 "도와줄까?"라며 캐리어를 들어줬다. 쪼그만 동양여자애가 자기만한 캐리어를 들고 다녀서 힘들어 보였는지 나는 도와주는 사람들에게서 사소한 배려심을 느낄 수 있었다.

유럽여행의 계기가 된 런던에 갔을 때는 한 달간의 여행 마지막 도시라 많이 지쳐있었다. 며칠만 있으면 집에 가는 데도 밥이 너무 먹고 싶어서 한식당을 세 번이나 찾았다. 신기했던 건 월요일 낮인데도 한식당에 영국인 손님들이 가득 차 있었고, 불고기와 김치찌개가 베스트 메뉴였다. 비싼 가격대에 양도 많은 편이 아니었지만 머나먼 외국에서 먹어서 그런지 나는 한국음식을 더욱 반갑게 느껴져 밥 한톨 남기지 않고 싹싹 비웠다. 이곳 영국에서 영국사람들에게 한식이 인기가 많은 걸 보니 괜히 뿌듯함과 자부심까지 느껴졌다.

런던 한식당 ‘김치’에서 먹은 제육볶음과 불고기. 우리나라와 다르게 밥을 사이드 메뉴처럼 추가로 주문해야했지만 머나먼 곳에서 먹어서 더욱 맛있게 느껴졌다(사진: 김하은 씨 제공).

<해리포터> 촬영지랑 해리포터가 쓰여진 서점 등 가보고 싶은 곳이 굉장히 많았는데 런던이 아닌 먼 곳에 떨어져있어서 <해리포터> 스튜디오에 가는 것으로 그쳤다. 나랑 내 친구는 책 전권이 집에 있고 영화 시리즈 모두 섭렵했을 정도로 해리포터 팬이다. 기차를 타고 가야하는 곳이기도 했고 해리포터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오래 본다고 해서 하루를 다 투자하기로 했다. 우리에겐 천국 같은 곳이었다. 영화에서 나왔던 장소, 소품들이 그대로 재현되어 있었고 빗자루를 타고 망토를 입고 사진을 찍을 수 있는 곳도 있었다. 따로 돈을 지불해야했지만 우리는 지나치지 못 하고 사진을 찍어 남겼다. 세트장을 스케치한 그림들과 소품을 만드는 과정을 보여주는 코스도 있었는데, 너무 섬세해서 그저 영화만을 위한 사소한 것이 아닌 정성과 시간을 들인 예술작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해리포터가 마시던 버터맥주도 마셔보고, 우리는 5시간이나 그 곳을 관람하고 지팡이까지 사고 나서야 아쉬운 발걸음을 옮겼다. 시간과 돈이 더 있었다면 아마 2시간은 더 보고 지팡이뿐만 아니라 망토도 사지 않았을까...

왼쪽부터 해리포터 스튜디오 입장권, 스튜디오 외관, 해리포터가 마시던 버터맥주다. 버터맥주는 맥주에 연유같이 달달한 것을 위에 올린 것이다(사진: 김하은 씨 제공).

런던은 내가 살고 싶은 도시다. 영국의 특징인 빨간 전화부스와 빨간 버스들도 매력적이었고 유럽의 다른 도시에 비해서 깨끗했다. 런던은 비 올 때조차 분위기 있다던데 비에 젖은 런던을 보지 못해 조금 아쉬웠다. 도시의 분위기가 우리나라랑 비슷한 듯 하지만 런던 특유의 건물모양들과 분위기가 <해리포터>에서 보던 것과 너무 똑같아서 건물을 구경하는 재미도 있었다. 영어 공부를 열심히 해서 유학을 와야지 하는 다짐을 하게 되는 곳이었다.

발걸음을 옮기는 곳마다 자연스럽게 동행하게 된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났다. 로마에서 같은 곳을 사진 찍다 알게 되어 피렌체에서 같이 스테이크를 먹고 야경을 같이 보았던 언니가 있었다. 스위스에서도, 체코에서도 길을 가다가 다시 우연히 만나게 되어서 너무 신기했다. 파리에서는 같은 숙소에 묵고 있는 언니들, 오빠와 함께 디즈니랜드에 가서 불꽃놀이를 보기도 했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것은 여행의 또 다른 즐거움이다. 내 생활반경인 학교부터 집까지에서 만날 수 없는 다양한 나이 대와 다양한 직업, 다양한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과 얘기를 해보면 나에겐 전부였던 세상이 얼마나 좁았던 곳인지 느낀다. 세상은 넓고, 나와 다른 사람들은 셀 수 없이 많고 우리가 경험할 수 있는 것은 무궁무진하다.

22세 5월의 봄에 떠났던 나의 여행은 길고도 짧았다. 한 달이지만 몇 장의 A4용지에 담을 수 없을 만큼 많은 것을 보고, 느꼈다. 내 기억속의 한 장면 한 장면을 다 담자면 책으로 쓸 수도 있을 것이다. 언제가 될지 모를 다음 여행을 위해 나는 다시 돈을 모으고 있다. 다음여행 뒤의 나는 아마 더 많은 것을 경험한 만큼 성숙해져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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