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사람이야기
'노래하고 밥 푸는' 가수 박상운 씨, 통기타로 세상과 소통하다5년째 무료급식 봉사하며 음원 수익 기부, 부산 광안리서 버스킹도..."좋은 사람과 노래하니 행복"/손은주 기자

이른 아침, 박상운(51, 부산시 해운대구) 씨는 부산시 금정구에 있는 ‘동진 경로당’을 찾았다. 경로당 입구에서부터 밥 짓는 냄새가 폴폴 난다. 안으로 들어가자, 양파며 호박이며 칼질 소리가 경로당 전체를 울린다. 그는 사회복지 단체인 ‘사단법인 행복나눔 아라’가 주관하는 무료급식 봉사에 참여하기 위해 나왔다. “안녕하세요~ 같이 합시다!” 먼저 나와 있는 7명의 자원봉사자들과 인사하고는 익숙한 듯 앞치마를 둘러맨다. 그는 밥하고 노래하고 봉사하는 가수다.

통기타 가수 박상운 씨(사진: 취재기자 손은주).

부엌의 열기가 점점 달아오르자, 어르신들이 하나둘씩 모여든다. 북적거리는 경로당에서 그는 어르신들 맞이하랴, 밥 푸랴, 정신없이 분주하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흰 쌀밥과 맛깔나게 볶아진 호박채 볶음. 그리고 달콤한 냄새를 골목까지 풍기는 불고기와 어묵국이 오늘의 메뉴다. 그는 환한 미소로 어묵국을 한 그릇씩 퍼냈다. 70~80인 분량의 솥을 국물 한 방울 없이 다 비워냈을 때, 그의 미소는 더 짙어졌다. 그는 “혼자서는 절대 할 수 없는 일”이라며 “마음 맞는 사람이 모여 할 수 있는 일”이라고 미소를 지었다.

박 씨가 이곳에 발을 디딘 지도 5년차. 처음 그가 이 경로식당과 인연을 맺은 건 그의 재능기부 때문이었다. 경로 식당에서 어르신들에게 부드러운 목소리로 노래를 불러드린 게 '행복나눔 아라'와 깊은 인연을 만들었다. 노래를 부르며 얻은 음원 수익 일부를 기부해왔는데, 일회성으로 끝나지 않고 지속적으로 해왔다. 그래서 그는 현재 '행복나눔 아라'의 이사직도 맡고 있다. 그는 “사실 작은 일을 한 것 뿐인데, 행복나눔 아라 회장님이 크게 부풀려 칭찬을 해주신다”면서 “회장님을 거짓말쟁이로 안 만들려면 더 열심히 해야겠다고 생각한다”며 호탕하게 웃었다.

무료 급식 배식을 하고 있는 박상운 씨와 사회복지단체 행복나눔 아라 대표(사진: 취재기자 손은주).

그의 본업은 가수다. 정확히 말하면 통기타 가수. 부산에서 나고 자란 그는 어딜 가든 기타를 한 몸처럼 들고 다녔다. 원래 그의 꿈이 가수였던 건 아니었다. 그는 중학교 때 축구에 소질을 보여서, 고등학교 때부터 축구선수를 지망했다. 하지만 교회 체육대회에서 다치는 바람에 좌골 신경통 앓게 됐다. 그는 “그 당시 안 다녀본 병원이 없었다. 결국 나중에는 오래 누워 있게 됐다”고 했다. 그런 어느 날 그는 2만 5000원짜리 기타를 하나 선물 받았다. 몸이 불편한 아들에게 주는 어머니의 선물. 이 기타가 지금의 박 씨를 만들었다.

기타를 선물 받은 후 그는 노래에 재미를 붙였다. 그는 “어머니의 권유로 성악 공부를 시작했지만, 운동을 하던 사람이라 그런지 갑작스레 많아진 공부 양이 벅차게 느껴졌다”며 “결국 성악 공부는 오래가지 못했다”고 말했다. 이후 그는 화학과에 진학했고, 군대도 화학병 보직을 배정받았다. 그런 와중에도 그는 손에서 기타를 놓치는 법이 없었다. 대학 생활 중 그는 우연히 통기타 동아리에 들게 됐는데, 이는 기타를 치는 그에게 큰 동기 부여가 됐다. 공부라는 압박감 없이 편하게 노래를 시도하니 잘하게 된 것. 그는 “내가 잘하고 좋아하는 일을 할 수 있다는 게 큰 축복처럼 다가왔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대학 졸업 후 그의 기타 인생이 순탄치만은 않았다. 그는 “좋아하는 일에 돈이라는 가치를 따지니까 힘들더라. 공연 페이가 너무 적으니까, 먹고살기 쉽지 않았다”며 당시의 어려움을 회상했다. 그는 통기타 가수의 가장 큰 덕목은 성실이라고 말한다. 그는 “하루에 라이브카페 같은 업소를 7-8군데를 돌아다니며 노래한 적도 있었다”고 그때의 일을 떠올렸다. 대학부터 알바로 시작했던 이 일이 이제 업이 된 셈이다. 그는 “힘든 시절이 있었지만, 뭐든 열심히만 하면 어렵지 않다. 노래할 때만큼은 즐겁다”고 했다.

다대포 해변공원 푸른 광장에서 노래하고 있는 박상운 씨(사진: 취재기자 손은주).

그는 사람 사는 세상에서 사람이 좋아 노래한다. ‘해변가 버스킹’ 문화의 개척자가 바로 박상운 씨다. 그는 “작곡가인 김인효 형님이 광안리의 아름다운 모습을 보고 음악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며 “나도 그 생각에 동의했기에 재능기부에 나섰다”고 했다. 이들의 재능기부로 2008년부터 수영구청은 무려 7년 동안 매주 주말 광안리에서 무료 거리 음악회가 열었다. 그 덕에 그는 수영구청장 표창을 받았다. 부산시장 표창도 받았다. 지역사회에서 봉사, 기부를 오래 해온 그의 공로를 세상이 알아준 셈이다. 그는 “상 받을 땐 긴가민가했는데, 상 받고 나서 돌아보니 내가 고아원, 요양원 등 돌아다닌 곳이 많더라”며 멋쩍은 웃음을 보냈다.

그의 인생 전부였던 통기타는 95년에는 인생에서 단 한 번뿐인 인연을 만들어 줬다. 라이브 카페의 손님으로 자주 오던 여성과 연애를 하게 되고 결혼에 골인했던 것. 통기타 덕분에 그는 지금의 아내를 만날 수 있었던 셈이다. 지금 그는 두 딸의 아버지다. 그는 “오랫동안 계속된 무명가수 생활에도 기타를 손에서 놓지 않았다”고 했다. 그런 그의 노력을 알아주기라고 한 것일까, 주변에서 그를 찾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졌다. 그는 “내가 계속 기타를 칠 수 있도록 나를 계속해서 불러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 이것이 바로 마음의 나눔이었고, 봉사의 시작이었다”고 말했다.

박상운 씨는 부산시장상 표창과 수영구청장 표창을 받았다(사진: 취재기자 손은주).

그는 86년에 노래를 시작해 2000년대에 첫 음반 <아무래도>를 냈다. <아무래도>는 지역 케이블 TV 성인 가요 프로그램을 통해 조금씩 알려졌다. 그 이후 2007년부터는 리메이크 곡을 여러 장 냈다. 그는 “리메이크 곡 중에서도 박재상의 <천년의 바람>은 나의 애창곡”이라고 소개했다. 인터뷰 도중 그는 해바라기의 <사랑의 선물>이라는 노래의 한 소절을 멋지게 뽑기도 했다. 이렇게 리메이크 곡 음반을 많이 내며 노래하는 게 좋다고 그는 말한다. 그는 “대중들이 신나는 것만 찾는 데에 큰 괴리감을 느꼈다. 내가 원하는 건 통기타로 연주하는 잔잔한 정과 사랑”이라며 “그냥 좋은 음악 간간히 발표하면서 지내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10년 째 수영구 민락동 수변공원 근처에 있는 ‘박상운 라이브 파크’를 운영하고 있다. 일명 ‘라이브 카페’라고도 불리는 이곳에는 7080 노래를 좋아하는 50대 전후 주부들과 남자 팬들이 많이 방문한다. “기타 치는 재능기부를 통해 나눔을 하고, 이는 행복으로 진전된다”는 그의 가치관에 따라, 그는 곧 노래 교실도 열 계획이다. 

“노래하고 봉사하면서 느낀 건 내 주변에 좋은 사람이 참 많은 게 나의 자랑이다. 노래도, 봉사도 같이 해주니까 기분 좋은 일이 됐다”는 그는 “같이 합시다!” 하고 외쳤다.

취재기자 손은주  reporter1@civicnews.com

<저작권자 © CIVICnews / 시빅뉴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