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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객과 소통하는 춤꾼 김남진, 동작에 이야기를 입힌다 / 박신 기자"경험과 기억을 통해 하나의 동작 완성...부산의 문화예술 변화 위해 힘 보태겠다"

춤으로 이야기하는 남자가 있다. 그의 춤은 단순히 몸을 움직이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동작 하나하나에 이야기를 담는다. 때로는 자신의 이야기를, 때로는 딱딱한 사회 현상을 자신의 춤에 녹여낸다. 안무가 김남진의 이야기다.

오염돼 가는 지구의 모습을 통해 환경의 중요성에 대한 이야기를 다룬 ‘미친 백조의 호수’의 한 장면(사진: 김남진 제공)

김남진이 처음부터 춤을 춰야겠다고 생각한 것은 아니다. 그는 사실 연기를 꿈꾸던 연기 지망생이었다. 연기에는 중학교 때부터 관심이 있었다. 당시 중학생이던 김남진은 송승환의 <별>이라는 공연을 보고 연기자의 꿈을 키워갔다. 이후 그는 연기자의 꿈을 가지고 부산경상대 방송연예과에 입학했다. 순탄할 줄만 알았던 연기 생활은 그리 쉽지 않았다. 그는 당시를 회상하며 “그때는 부산 사투리가 장점이 아니었다”며 “사투리가 오히려 배우가 되는 길을 가로막는 장애물처럼 느껴졌다”고 말했다.

그는 연기를 앞으로 계속할 것인지 고민하던 중 자신이 연기 이외에 잘하는 것을 찾아보자고 결심했다. 그는 평소 몸이 유연한 편이라 대학 시절 무용에도 관심이 있었다. 그렇게 그는 춤을 추기 시작했다. 그러다 무용이라는 것에 매료되었고, 20대 중반의 나이에 경성대 무용학과에 다시 입학했다.

아버지를 주제로 한 중년 남성의 이야기를 다룬 김남진의 자전적 작품 <씻김>의 한 장면(사진: 김남진 제공).

그는 “무용이라는 것은 언어로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신체로 표현하는 예술이라 생각한다"며 "당시 저는 그런 점에 매료되어서 연예과 졸업 후 경성대 무용학과에 시험을 쳐서 들어오게 됐다”고 말했다.

김남진은 무용학과에 입학하자 제 몸에 맞는 옷을 입은 듯 펄펄 날았다. 2학년 때부터 나가는 콩쿠르마다 1등을 휩쓸다시피 했고 대통령상도 받았다. 그의 춤은 거침이 없었다. 그가 대학을 다닐 때는 신입생들이 그를 보고 입학할 정도였다.

그가 무용학과에 재학할 당시는 지금에 비해 환경이 열악했지만 그때를 그리워했다.

“옛날에는 연습실 내부가 너무 추워서 맨손으로 바를 잡을 수가 없었어요. 그래서 장갑을 끼고 연습하기도 했죠. 물론 지금은 시설이 더 좋아졌지만 그때가 여전히 그리워요.”

그는 대학 졸업 후 바로 유럽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한국인으로는 처음 프랑스 렌느 국립현대무용단에 입단했다. 그리고 4년 뒤 당시 유럽에서도 최고라 평가받는 벨기에 세드라베 현대무용단 단원으로 한국인 최초로 입단하게 된다.

“유럽의 무대는 규모가 한국하고는 비교가 안 될 만큼 크고 무용하는 방식도 달라요. 우선 무용이 연극과 다른 점은 무용은 대본이 없는 상태에서 새로운 것을 만들어가는 과정이에요. 그래서 한 작품이 완성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리죠. 보통 5개월 정도에 한 작품을 만들어요. 그리고 그 작품으로 전 세계 투어를 해요. 그렇게 세계 투어를 하고 오면 3년이라는 시간이 훌쩍 지나가지요.”

그가 한국에서 춤출 때는 ‘춤이 뭐지?’라는 의문이 늘 꼬리를 물었다. 그러나 유럽 생활을 하면서 “이게 춤이구나” 하는 깨달음을 얻었다고 한다. 그가 유럽 생활을 통해 배운 것은 단순히 새로운 춤이 아니었다. “내가 하는 이 동작을 하게 된 근원이 무엇인지 알게 해주는 과정이었어요. 유럽에선 단순히 기존에 있던 동작을 반복하는 것이 아니라 내 경험과 기억을 통해 하나의 동작을 창작해 내죠. 그러다 보니 지금 내가 추는 춤이 이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는 나만의 춤이라는 걸 깨달았어요.”

김남진은 2006년 한국으로 돌아왔다. 그는 그간 보고 듣고 느낀 것을 한국에서 제대로 펼쳐봐야겠다고 결심했다. 그렇게 만든 것이 ‘댄스씨어터 창’이다. 댄스씨어터 창은 무대 위에서 춤과 연극의 결합을 의미한다. 나아가 그동안 한국 현대무용이 추구해 오던 추상적 이미지에서 벗어나 좀 더 직접적이고 사실적인 무대로 관객과 소통하는 데 중점을 뒀다.

인간의 공격성과 강자의 지배, 세상의 폭력과 약자의 피해, 강자와 약자의 약육강식 세상을 비판적으로 이야기한 <Passivity>의 한 장면(사진: 김남진 제공).

하지만 한국의 현실은 그렇게 녹록지 않았다. 모든 과정이 세분되어 있던 유럽과 달리 한국에서는 기획부터 홍보까지 그가 도맡아서 했다. 그는 “한국의 예술 분야가 얼마나 열악한지 알게 됐어요. 심지어 밥값까지 다 알아서 해야 했으니까 정말 힘들었죠. 그렇게 계속하다 보니 내가 계속 한국에서 이걸 계속해야 하나 하는 생각마저 들었어요. 근데 세상은 계속해서 변할 거고 또 변하게 해야 하는데, 지금이 그때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지금은 묵묵히 제가 하고 싶은 일에 최선을 다하려고 노력하고 있어요”라고 힘주어 말했다.

그가 공연 기획을 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바로 관객과의 소통이다. 그는 소통을 강조하면서 지금 한국 현대무용의 단점을 지적했다. 그는 “무용 공연을 보면 그들만의 잔치가 많아요. 일반 관객은 거의 없고 지인들이 대부분이죠. 그런 무대에서는 공연의 재미나 감동을 찾아보기 힘들어요. 그래서 일반 관객이 외면하는 거예요. 앞으로 안무자들이 이런 것들을 깨닫고 관객과 소통하는 공연을 만들었으면 좋겠어요”라며 안타까워했다.

댄스씨어터 창은 10년 넘게 다양한 공연을 했다. 그중 가장 뜻깊었던 공연은 무엇일까? 고심 끝에 그가 꼽은 공연은 2014년에 했던 <봄의 제전>이다. <봄의 제전>은 당시 전 국민에게 큰 슬픔과 충격을 주었던 ‘세월호’를 주제로 했던 공연이다. 그는 “봄의 제전을 하면서 실제로 무대 위 사각 박스에 물을 채워서 공연했다"며 "세월호가 너무 큰 충격이었고 작품을 만들면서도 많이 힘들었다”고 털어놨다.

반면, 공연이 무산될 위기에 처한 적도 있었다. 올해 3월에 공연했던 <길, 걷다>는 부산시에서 예산 지원을 받지 못해 공연을 취소해야 할 위기를 맞았다. 그런 상황을 김남진은 무용수들에게 담담하게 전했다. 그의 얘기를 들은 무용수들은 자신의 출연료를 받지 않고서라도 공연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무용수들의 그런 모습에 감동하여 자신의 사비로 이번 공연을 준비했다. 그는 “무용수들이 자기 출연료를 안 받아도 괜찮다고 하는 모습을 보고 오히려 내가 감동했다"며 "그래서 내 살점을 들어내더라도 공연을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결국 손해도 많이 봤다”고 말했다.

그는 지금 부산의 예술 문화를 바꾸는 꿈을 꾸고 있다. 특히 흔들리고 있는 부산 무용계를 바로 잡으려는 욕심을 감추지 않고 있다. 머문 자리에 안주하지 않고 늘 앞으로 나아가려는 그의 모습에서 진정한 춤꾼의 진면목을 엿볼 수 있었다. 앞으로 그의 행보가 더욱 기대되는 이유다.

부산 경성대 무용학과를 졸업한 김남진은 한국인 최초로 프랑스 렌느 국립현대무용단(1995년~1998년)과 벨기에 세드라베 현대 무용단(1999년~2003년)에서 단원으로 활동했다. 2006년 귀국 후에는 ‘댄스씨어터 창’을 만들어 지금까지 30회가 넘는 공연을 이어오고 있다. 지난해에는 한국춤평론가회가 수여하는 '2016 춤평론가상'에서 자신이 안무·출연한 <씻김-PLAY>로 연기상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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