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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안 다닌다고 문제 청소년인가요?" 21세 기업가의 당찬 포부 / 강주화 기자학교 대신 홈스쿨링하고 목공회사 창업한 박하진 씨..."a~z 모든 알파벳 들어간 회사 만들 터"

얼핏 보아서는 여느 대학생과 마찬가지다. 꽁지 머리에 풋풋한 얼굴. 대학 캠퍼스 강의실에서 책을 보거나, 운동장에서 축구를 하거나, 아니면 대학촌 퍼브집에서 맥주 한잔하면서 친구들이랑 낄낄거리는 모습이 딱 어울릴 청춘이다. 하지만 21세 박하진 씨는 대학에 다니지 않는다. 종업원 3명을 둔 목공기업 ‘더 코이’를 운영하는 어엿한 사장이다. 그는 같은 또래의 젊은이들이 대학생의 낭만을 구가하는 동안 거래처를 이곳저곳 바쁘게 뛰어다니고 있다.

인터뷰를 하고 있는 박하진 씨(사진: 취재기자 강주화)

'더 코이’는 생긴 지 2년 남짓 된 소규모의 신생 회사다. 부산 금정구의 30평 남짓 지하 작업실. 그가 팀원 세 명과 함께 사업의 꿈을 키워가고 있는 일터다. 박 사장은 회사의 내부와 외부의 일을 도맡아 한다. 그래서 '숨 쉴 틈 조차 없는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그는 몇차례 접촉 끝에 간신히 짬을 내어 회사 인근 한 카페에서 인터뷰에 응했다.

스무 한 살의 어린 나이에 그는 어떻게 사업을 결심했을까.

박하진 씨의 어린 시절은 남달랐다. 일곱 살, 초등학교에 들어갈 나이가 됐지만 그는 학교에 입학하지 않았다. 학교에서 그리 배울 게 없다는 생각을 할 만큼 조숙했다. 부모도 박씨의 고집에 “그래, 너 좋을대로 하거라”라며 허락했다. 아홉 살이 되자, 박 씨는 주위에 학교 가는 아이들이 문득 신기하게 보였다. 그래서 부모의 허락을 다시 얻어 학교를 다니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박 씨는 “겨울방학이 다가올 때쯤 아침에 일어나기가 너무 싫었다. 그래서 이제 학교를 안 다니겠다고 부모님께 얘기했고 그 이후부터 학교를 쭉 안 갔다”고 말했다.

박 씨는 “우리 부모님은 참으로 독특하시다”면서 “사실 ‘학교를 안 다니는 게 어떻겠니‘라고 먼저 말씀하신 것도 부모님이었다”고 밝혔다. 아들의 개성과 취향을 적극 존중해주셨다고 한다.

학교를 다니지 않는 대신에 박 씨는 홈스쿨링을 하면서 본인이 하고 싶은 것을 찾기 시작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열다섯 살에 공방에서 목공을 배우기 시작했다. 그는 “처음부터 사업을 위해 목공을 시작한 건 아니다. 그냥 ‘이걸 배워 놓으면 쓸모 있지 않을까’라고 시작한 것”이라고 말했다.

회사 작업실에서 목공예품을 만들고 있는 박하진 씨(사진: 취재기자 강주화)

박하진 씨는 열여섯 살 때 고등학교 검정고시에 합격했다. 부산의 웬만한 대학교에 입학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는 가족들과 상의한 후 대학 진학을 포기하기로 결정했다. 박 씨는 “나도 그렇고 내 가족 모두가 생각했던 게 ‘과연 공부로 성공할 수 있을까’였다. (공부에 대한) 자신이 없었던 점이 원인이라면 원인이지만 공부보다 현실을 추구하는게 나한테는 어울릴 것 같았다”고 말했다. 그는 “그 후 ‘하고 싶은 것을 빨리 찾자’는 마음을 가지게 됐다”고 회상했다.

박하진 씨는 줄곧 학교를 다니지 않는 청소년에 대한 사회의 차가운 시선을 느끼며 자라왔다. “대부분 사람들은 학교를 다니지 않는 청소년이라고 하면 비행 청소년, 가정 폭력을 당한 아이, 문제아를 떠올린다. 그래서 학교 밖 청소년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을 교정하는 일이 급선무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박 씨는 말한다.

열여덟 살에 박 씨는 ‘코이(COY)라’는 동아리에 들어간다. 코이는 학교를 다니지 않는 청소년에 대한 인식을 개선하는 활동을 하는 사회 단체다. 동아리 코이의 활동 멤버는 학교 밖 청소년이고 이들은 정기적으로 청중들과 함께하는 집단토의를 연다. 집단 토의에서는 토크 콘서트, 개인 PT 발표 등을 한다. 박하진 씨는 이 활동을 계기로 학교 밖 청소년에 대한 인식을 바꾸고 힘쓰는 데 관심을 더 가지게 된다.

작년 11월에 동아리 코이가 개최한 학교 밖 청소년 토크 콘서트(사진: 페이스북 ‘학교 밖 청소년 포럼’ 페이지 캡처)

이후, 박하진 씨는 학교 밖 청소년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을 해결하기 위해 사회적 기업이라는 형식의 틀을 이용하기로 결심했다. 박 씨는 “동아리 코이에서 마음 맞는 친구들과 함께 사회적 기업 형태의 더 코이를 만들게 됐다. 내가 친구들에게 만들자고 제안했기 때문에 내가 더코이의 대표자가 됐다”고 밝혔다.

‘사회적 기업’은 노동부 주관으로 시행되고 있다. 이는 비영리조직과 영리기업의 중간 형태로, 사회적 목적을 추구하면서 영업 활동을 하는 기업이다. 국가로부터 인증된 사회적 기업은 인건비 및 사업주 부담 4대 사회보험료 지원 등 많은 혜택이 제공된다.

즉, 더코이는 학교 밖 청소년의 자립이란 사회적 목적을 추구하면서 목공예품을 판매하는 기업이다. 더 코이는 주로 만년필, 우든펜(나무 볼펜), 액세서리 등을 만든다. 직원은 학교 밖 청소년으로 구성된다. 직원들은 박하진 씨에게 기본적인 목공을 배우고 전문 목공 교육 업체를 통해 깊숙이 배운 후, 목공예품을 만들고 그 제품을 판매하는 자격을 갖춘다.

더 코이의 지하 작업실(사진: 취재기자 강주화)

박하진 씨는 작년 3월 더코이를 설립했다. 관할 세무서에 법인 등록도 마쳤다. 당시 더코이는 회사 운영을 위한 자금이 부족했다. 두 달 후, 박 씨는 회사 자금을 위해 크라우드 펀딩이란 플랫폼을 이용했다. 크라우드 펀딩이란 자금을 필요로 하는 수요자가 온라인 플랫폼 등을 통해 불특정 다수 대중에게 자금을 모으는 것. 더 코이의 목표는 한 달 동안 수작업으로 만든 목재 펜을 300만 원치 파는 것이었고,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박하진 씨는 “성공할 거라고 기대도 안 했다. 그래서 목표 금액을 다 채웠을 때 믿을 수 없었다”며 “우리 제품을 좋아해 주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다고 느꼈다”며 당시를 회상했다.

작년 5월 크라우드 펀딩에 성공한 더 코이(사진: ‘오마이컴퍼니’홈페이지 캡처)

8개월 뒤 더 코이는 국가로부터 예비 사회적 기업으로 지정받았다. 예비 사회적 기업이란 사회적 기업으로 육성되기 위한 전 단계. 박 씨는 “예비 사회적 기업으로 지정되고 3년 후에 매출, 사회 서비스 제공 등을 평가받고 사회적 기업이 될지 안 될지 나뉜다”며 “더 코이는 최종적으로 사회적 기업을 꿈꾼다”고 밝혔다.

박하진 씨는 아직 군대를 안 갔다. 그는 “일단 방위 산업체를 생각 중이다. 사업가 경우에 군대를 일찍 가는 게 유리하다고 하는데, 지금 가면 이도 저도 아니라서 미룰 만큼 미룰 것이다”고 말했다. 군대에 간 다음 회사 일에 대해 “대표자가 없다고 해서 회사가 안 굴러가면 좋은 회사가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꾸준하게 매출이 일어날 수 있게 고정 루트를 만들어 놓을 생각"이라고 말했다.

더 코이에서 수작업으로 만든 우든펜(사진: 취재기자 강주화)

박하진 씨의 최종 목표는 여러 가지 회사를 만드는 것이다. 그는 “더코이는 T로 시작한다. a부터 z까지 모든 알파벳이 다 들어있는 회사들을 만드는 게 꿈이다”라며 당찬 포부를 드러냈다.  

취재기자 강주화  reporter1@civic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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