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기철 칼럼] 비행기 1등 2등 3등석에 관한 잡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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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기철 칼럼] 비행기 1등 2등 3등석에 관한 잡념
  • 칼럼니스트 박기철
  • 승인 2023.06.18 0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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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등석 First Class
1등석 First Class

로마의 레오나르도다빈치공항은 테베르강 남쪽 하구의 어촌인 피우미치노(Fiumicino)에 있기에 약어로 FCO라고 한다. 인천공항은 약어로 ICN이다. FCO 출국 → ICN 입국의 비행기 표를 끊었다. 발권 시간이 이상하게 한참 걸렸다. 결국 이코노미석으로 예약했는데 티켓팅 직원이 비즈니스석인 프레시티지석으로 끊겼단다. 나는 땡큐라고 간단하게 답례했다. 아무런 추가 금액없이 3등석이 2등석으로 되었으니 감사하지 않을 수 없다. 발권된 티켓을 내게 주는 잘 생긴 이태리 남자는 그냥 씩 웃었다. 나중에 알고보니 엄청난 행운이었다. 감사에 감사를 드려야 했었다.

내가 앉고 누웠던 2등석 Business=Prestige
내가 앉고 누웠던 2등석 Business=Prestige

비행기를 탔다. 난생 처음, 머리털 나고 처음 타는 비즈니스석이다. 표값이 이코노미석의 2~3배에 달한다고 들었다. 내 평생 비즈니스석을 탈 일은 없을 것이라고 했는데 드디어 탄 것이다. 타고나니 세상에 호강이 이런 호강이 없다. 호강은 한자가 없는 우리말이다. 호와롭고 사치스럽다는 호사(豪奢)에서 온 말이 아닐까 싶다. 한자로 내 나름대로 만들어 쓰자면 호화롭고 편안한 호강(豪康)이 적합할 듯싶다. 영어로 번역하면 더 실감난다. live in luxury. 정말로 럭셔리했다. 3등석 이코노미에서 허리를 펴지도 못하고 90도 가까이 꼿꼿하게 앉는 좌석(座席)에서 12시간 동안 비행기를 타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180도로 완전히 펴져서 누워 잘 수 있는 와석(臥席)은 너무도 편했다. 앞뒤 좌석과 완전히 별개인 독립공간(module space)이었다. 육지의 방에서는 허리를 펴고 자는 게 누구나 하고 사는 평범하고 일반적인 것이지만 하늘에 뜨는 비행기에서 그리 자는 건 아무나 할 수 없는 호강이다. 돈을 2~3배 더 내야 누릴 수 있는 호강이다. 나는 물론 내 주위에 그리 돈이 넉넉한 부자는 별로 없다. 하지만 돈을 더 내지도 않고 호강을 누리니 이 무슨 횡재인가? 나오는 음식도 그야말로 럭셔리했다. 이코노미석에서는 먹을 게 도시락 같은 것에 한 번에 담아 주는데 프레시티지석에서는 전채에서부터 후식까지 8개 코스의 요리가 접시에 담겨 나왔다. 최고급 브랜디인 코냑도 주었다. 출출할 때 라면도 달라고 하면 냄비에 끓여 접시에 담아 주었다. 하도 신기해서 싱글벙글 거리며 이런 좌석 타는 건 처음이라고 여승무원(stewardess)에게 말했더니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충분히 즐기세요!” 정말로 충분히 즐기며 편안하게 자며 올 수 있었다. 굳이 영화를 보며 시간을 억지로 죽이며 때울 일도 없었다.

아주 편하게 자고 난 후 아침에 화장실을 가려고 이코노미 3등석을 통해 가려니 앉아서 자는 사람들이 안되어 보였다. 인간에게 수면욕은 식욕 성욕과 함께 3대 기본 생리욕구 중에 하나다. 허리 쫙 펴고 누워야 편안한 수면이 가능하다. 앉아서 자면 자도 자는 게 아니다. 그리 자고 일어나면 기분도 안좋고 몸이 찌뿌둥하다. 3등석 뒤에 까칠한 사람이 타면 뒤로 의자를 제끼기도 불편하다. 그는 자기영역을 침범당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하지만 앞좌석 뒷좌석 모두 꼿꼿한 의자를 뒤로 제끼면 서로 편할 텐데 안타깝다. 그래서 나는 이코노미석에 타면 일단 앞 좌석 사람한테 편하게 뒤로 확 제끼라고 말한다. 그리고 뒷 좌석 사람한테도 서로 편하게 뒤로 제끼며 가자고 제안한다. 그러면 서로 약간이나마 조금은 편하게 갈 수 있다.

아무튼 1등석(first class)은 어떤지 가보았다. 거긴 내가 누렸던 2등석보다 훨씬 더 럭셔리했다. 2등석은 뒤로 완전히 의자가 펴지며 의자 밑에서 다리를 받쳐주는 보조 발판이 나오며 옆좌석과의 거리가 가깝다. 하지만 1등석은 좌석을 펴면 발판이 따로 나오는 게 아니라 앞에 놓인 의자와 합쳐져 완벽한 침대가 되며 옆좌석과 완전히 독립된 공간이었다. 코스 요리도 두 세 개 정도 더 추가된단다. 정말로 하늘을 나는 비행기에서 최상급 호강(uppermost luxury)를 누릴 수 있는 공간이 말그대로 훠스트 클래스였다. 가격은 이코노미의 5배 이상이라 들었다. 아직 내가 아는 사람들 중에 이것을 타보았다는 사람이 없는 것같다.

3등석 Economy
3등석 Economy

비행기에서 심심하던 차에 나는 영양가도 없는 쓸데없는 짓을 해보았다. 1등석 2등석 3등석 좌석수를 일일이 세어 본 것이다. 1등석은 종2열에 횡4석이다. 2줄×좌우 4석=1등석 전체 8석. 2등석은 종8열에 횡7석이다. 8줄×좌우 7석=2등석 전체 56석. 3등석은 종25열에 횡9석이다. 25줄×좌우 9석=225석. 그런데 어떤 두 줄은 7석이고 한 줄은 6석이라 7석이 빠지기에 3등석 전체는 218석이다. 〔1등석 8석+2등석 56석+3등석 218석=282석〕의 비행기다. 중간 크기 비행기인 것같다. 여기서 나는 이런 생각을 했다. 나는 3등석만 타다가 2등석을 타면서 호강을 누렸다. 1등석을 타면 내가 누렸던 호강보다 더 한 호강 체감(體感)을 느낄 수 있을까? 경제학에 한계효용 체감의 법칙이 있다. 정도가 늘수록 효용은 줄어든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전체적 효용을 크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1 2 3등석 공간에 좀더 차별을 줄이며 공평한 쪽으로 분배하면 어떨까? 경제학이 한정된 자원의 효율적 배분이라면 그리 해야 경제적일 것이다. 그리 하려면 1등석에 너무 많이 주어진 공간을 대폭 줄이며 좌석수를 많이 늘린다. 가격은 3등석의 5배에서 3배 정도로 내린다. 2등석도 공간을 조금만 줄여 좌석수를 조금 늘린다. 가격은 3등석의 약 2.5배에서 2배 정도로 내린다. 3등석은 공간을 크게 늘리되 좌석수를 조금 적게 줄인다. 가격은 그냥 지금대로 한다. 이러한 작정(酌定)으로 1등석을 2줄×4석=8석을 6줄×6석=36석으로, 2등석을 8줄×7석=56석을 10줄×7석=70석으로, 3등석을 25줄×9석≒218석을 18줄×9석=162석으로 한다. 내가 만일 항공기 공간 디자이너라면 그렇게 하고 싶다. 이렇게 하면 〔1등석 36석+2등석 70석+3등석 162석=268석〕이 된다. 현행 286석보다 18석이 줄어든 268석이지만 승객들 전반적 효용은 늘어날 것이다. 물론 돈이 아주 많아서 5배 비싸더라도 훠스트 클래스의 최상급 럭셔리를 좀 줄여야 할 극소수 승객에게는 불만이 있겠지만 대다수 승객은 만족할 것이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요점은 1등석과 2등석 공간을 서로 조금 줄이고 3등석 공간을 늘려 3등석 승객이 좀 더 편히 잘 수 있도록 앞 뒤 공간을 좀더 늘리는 것이다. 이러한 좌석변화가 항공사 최고 경영진의 최종 결재를 얻을 수 있을까? 주판알 튕기며 더 섬세한 시뮬레이션을 해야 할 것이다. 이 때 약간의 손해는 감수할 수 있다. 다만 그런 손해를 통해서라도 대다수 승객들이 편하게 여행할 수 있다고 판단한다면 그러한 결정을 흔쾌히 내릴 수 있다. 항공사 현실을 아무 것도 모르고 그냥 제멋대로 한 철부지 허튼 계산일 수 있다. 하지만 그리 해야 하는 마땅한 이유인 노와이(Know-Why)를 알며 전반적 경영철학이 있다면 사고 방향이 그리 되어 적절한 방법이 마련될 수 있다. 그러면 오히려 더 편안한 항공사로 입소문이 나서 영업이 더 잘 될 수 있을지 모른다. 아무리 돈많은 부자가 귀하게 대접받는 자본주의 사회라지만 부의 차이가 가장 실감나는 비행기에서는 더 많은 사람들이 몸 편하게 가면 좋겠다. 3등석 이코노미석에서 밤 새워 꼿꼿하게 앉아 가는 건 정말로 참으로 고역이기 때문에 하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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