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기철 칼럼] 로마의 아름다움과 다카의 아름다움
상태바
[박기철 칼럼] 로마의 아름다움과 다카의 아름다움
  • 칼럼니스트 박기철
  • 승인 2023.05.02 09:4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방글라데시 출신 젊은 친구의 자부심에 감동
행복감과 미감은 마음 속에 있다는 것 일깨워

서양문화의 중심은 밑에서 위로 오르며 흘렀다. 남쪽의 뿌리는 4500여년 전에 최고통치자 Pharaoh 무덤인 피라미드를 만들 정도로 강력한 왕국문명을 이룬 나일강 주변의 이집트다. 3000여년 전에 그 중심은 북쪽의 고대 그리스 도시국가로 옮겨졌다. 2000여년 전에 또 방향을 북쪽으로 돌려 로마시를 수도로 하는 로마제국이 이루어졌다. 로마제국은 중세에 콘스탄티노플(現 Istanbul)을 수도로 하는 동로마로 나누어지긴 했어도 서양문명의 중심은 엄연히 서로마에 속하는 로마시에 있었다.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는 말이 있었을 정도다. 하지만 중세가 저물고 르네상스 붐이 일고 종교혁명이 이루어진 후 동방세계로 연결하는 뱃길이 열린 후 세계의 중심은 포르투갈과 스페인을 거쳐 북쪽으로 옮겨졌다. 독일이 이루려던 제국의 이름도 프라하를 수도로 하는 신성(神聖)로마제국(962~1806)이었으니 엄청난 로마를 따라 하는 것이었다. 신성로마제국은 신성하지도 않았고 로마도 아니었고 제국도 아니었다. 프랑스가 잠깐 번쩍했고 이후 네덜란드와 영국이 17세기 초에 동인도 회사를 차리며 유럽의 지배권은 더 북쪽으로 넘어갔다.

결국 19세기 빅토리아 여왕 때에 북쪽에 위치한 영국은 세상의 중심이 되어 해가 지지 않는 나라가 되었다. 지금도 세계의 기준 시간은 영국의 그리니치 천문대이며 동경(東經)과 서경(西經)을 구분하는 기준선도 그 곳이다. 동남아 서남아 동북아를 구분짓는 기준점도 그 곳이다. 하지만 가장 오랫동안 유럽을 지배했던 국가는 로마였다. 아무리 짧게 잡아도 500여년, 좀 길게 잡으면 1000여년, 더 길게 잡으면 1500여년이다.

그러한 로마제국의 중심 수도였던 로마시가 찬란하고 화려한 문명을 이루며 지금 그 문명의 흔적들인 유적과 유물을 가장 많이 간직하고 있는 까닭이다. 유럽 여러나라들의 모습은 결국 로마의 모방이라고 하는 주장이 과언이 아닌 이유다. 그만큼 로마는 고풍스러운 유럽문화의 원형이자 표본이다. 그러니 로마 시내 어딜 가도 관광객이 넘친다. 생태주의를 표방하는 정당인 오성운동(Movimento 5 Stelle) 소속의 비르지니아(Virginia Raggi, 1978~)가 로마시의 고질적인 쓰레기 문제해결 등을 공약으로 내세워 2016년에 시장으로 당선되었던 만큼 로마도 쓰레기 문제가 심각했다. 하지만 로마는 전반적으로 아름다웠다. 아름다울 수밖에 없었다. 천년 넘게 서양문명의 중심이었으니 아름답지 않을 수 없다. 물론 그 아름다움 속에 내재된 엄청난 권력과 고달픈 노동이 있어도 그 때문에, 그리고 그 덕분에 이룬 아름다움을 거부하기 힘들다.

방글라데시 다카에서 온 청년
방글라데시 다카에서 온 청년.

그러한 아름다움을 견학하고 난 후 숙소로 돌아와 숙소를 관리하는 친구와 짧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방글라데시의 수도인 다카에서 왔다고 한다. 나는 물었다. How is Dacca? 이 짧은 영어에 그 역시 짧은 영어로 대답했다. Dacca, beautiful! 이 방글라데시 친구는 찬란하고 화려한 로마에서 살면서 전혀 주눅들지 않고 자신의 고향인 다카가 아름답다고 내게 자랑스럽게 말하였다. 이 말을 듣고 처음에는 그냥 예사롭게 생각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이 말은 과연 명언(名言)이었다. 다카의 외형적 모습이 과연 로마 만큼 아룸다울까? 인구 1억 8천만명 중에서 1/10 정도인 1500만명이 다카에 산단다. 다카는 인구밀도도 높고 생활여건이 최악이고 교통상황도 혼잡혼란한 무질서의 도시라고 들었다.

다카를 가보진 못했어도 어떤 도시일런지는 짐작이 간다. 익히 알려진대로 방글라데시는 경제적으로 빈곤해도 국민들의 행복지수는 세계 1위란다. 정말 그럴까 의아해도 능히 그럴 수 있을 것같다. 결국 행복감과 마찬가지로 미감이란 외형적인 찬란함이나 화려함보다 우리 마음 속에 있다는 진리를 다카에서 온 친구는 "다카 뷰티풀"이라고 자신있게 말하면서 나를 일깨워 주었다. 멋진 친구다. 덕분에 다카를 꼭 가고 싶어졌다. 내면에 있을지 모를 다카의 미감이 과연 무언지 끄집어 내기 위해. 물론 실망할지도 모르겠다.

로마시장이 자랑하는 아름다운 로마(왼쪽)와 혼란하며 혼잡스러운 무질서한 다카(오른쪽)
로마시장이 자랑하는 아름다운 로마(왼쪽)와 혼란하며 혼잡스러운 무질서한 다카(오른쪽).

과연 로마와 다카 중에 어디가 더 아름다울까? 로마 뷰티풀은 누구나 보더라도 뻔한 게 여겨지나 “다카 뷰티풀”은 아무나 가질 수 없는 다른 관점이다. 그래서 로마가 겉으로는 아름다우면서도 야릇하게도 다카에게 끌린다. 이 역시 삐딱한 마음이려니 생각한다.


관련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