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기철 칼럼] 아름다움 속에 숨은 권력과 노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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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기철 칼럼] 아름다움 속에 숨은 권력과 노동
  • 칼럼니스트 박기철
  • 승인 2023.03.20 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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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외국여행을 할 때 사전에 여행지에 대한 공부를 하지 않고 떠난다. 아는 만큼 보인다지만 아는 만큼 매이기 때문이다. 특히 여행안내 책자 등을 보며 따라 다니면 그 안에 있는 뻔한 여행정보들에 얽매인다. 그냥 바람따라 발 닿는대로 다니고 싶은 대로 자유롭게 다니는 게 좋다. 필요한 여행정보들은 현지에서 현지인에게 물어서 알면 된다. 그런 속편한 생각으로 이태리 공부를 안하고 왔으니 내가 카세르타라는 지명을 알 리 없다. 난생 처음 듣는 카세르타는 나폴리에서 로마 방향으로 가는 기차길 옆에 있었다. 알고보니 유명한 궁전이 있었다. 카세르타 왕궁이다. 이태리의 숨은 명소라고 한다. 프랑스에 있는 베르사유 궁전보다 크단다. 도대체 얼마나 크길래? 호기심이 생겼다. 정말로 가서 보니 엄청나게 큰 궁전이 기차역 바로 옆에 있었다. 베르사유 궁전의 방이 700여개라면 카세르타 궁전의 방은 1200여개란다. Mr. 베르사유가 Mr. 카세르타 집에 놀러 와서 기가 팍 죽었다는 우스개 소리도 있다. 유럽에서 가장 큰 궁전이라고 하는데 단일 건축물로 따지면 세상에서 가장 큰 궁전이 아닐까 싶다.

궁전 건축물만 거대한 것이 아니었다. 정원도 엄청났다. 카세르타 궁전정원도 베르사유 궁전정원처럼 단조로운 일직선 산책길이다. 우리나라 조선시대 궁궐정원이었던 비원祕苑 Secret Garden처럼 포근한 곡선형이 아니라 뚜렷한 직선형 직원直苑 Direct Garden이다. 너무나 노골적으로 솔직하게 다이렉트해서 아기자기함이나 신비감이 없는 듯했다. 일직선형 산책길을 아름답게 지었다고 하지만 미감이라기보다는 뭔가 모든 것을 움켜쥐겠다는 권력자의 욕망이 느껴지는 듯했다. 궁전 문 바로 앞에서 산책길 저 끝을 보니 뭔가 희미하게 탑이 있는 것같았다. 저게 무슨 탑일까 싶어서 걸어 갔다. 마차도 있고 미니버스도 있지만 걷고 싶었다. 단조로운 일직선형 산책길이라도 산책길은 걸어야 제맛이다 많은 인공 연못과 많은 조각상들 옆으로 난 산책길의 길이가 생각보다 길었다. 결국 끝에 도착해서 보니 탑이 아니라 폭포였다. 나는 적지 아니 놀랬다. 위용있는 탑이 아니라 물흐르는 폭포를 산책길 끝에 놓은 점에서는 미감이 느껴졌다. 하지만 이마저도 물까지 지배하려는 집요한 권력욕이 빗은 아름다운 장식품이었을지도 모른다

부르봉왕가에 속했던 나폴리국왕 카를로스 3세Carlos Ⅲ de Borbón 1717~1788는 이렇게 거대한 궁전과 길다란 정원을 짓도록 지시했다. 제1의 건축 지침은 무조건 베르사유보다 커야 한다는 것이었다. 1752년부터 짓기 시작했단다. 그는 1748년에 폼페이 유적 발굴을 지시한 왕이기도 했다. 그는 절대권력자 태양왕 루이14세의 명령으로 지었다는 프랑스의 베르사유 궁전보다 훨씬 더 큰 궁전을 짓겠다는 야심을 가졌을 것이다. 사전에 적힌 대로 야심은 순하게 길이 들지 않고 걸핏하면 해치려는 마음, 무엇을 이루어 보려고 마음속으로 품고 있는 욕망, 야비野卑한 마음이다. 야망野望 역시 소박한 희망인 소망素望과 달리 야비한 희망일 것이다. 카세르타 궁전은 권력자가 가진 야심과 야망의 결과물이었다. 아름답게 보이는 거대한 건축물들은 아름답지 않기 쉬운 권력의 힘으로 지어지는 것이다. 거대한 권력이 있어야만 돈과 물자, 그리고 수많은 노동력을 동원시킬 수 있다. 거대한 권력이 없었다면 거대한 건축물은 지어질 수 없을 것이다.

직선 왕복 6.4km - 길고도 먼 카세르타 왕궁 정원 산책길
직선 왕복 6.4km - 길고도 먼 카세르타 왕궁 정원 산책길.

이태리는 물론 유럽 각 나라 각 도시의 구도심이 아름다운 이유는 크고 아름다운 고풍스러운 석조 건축물들이 즐비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건축물들을 짓기 위해 동원된 이름모를 수많은 노동자들의 피와 땀과 눈물을 읽지 않으면 안될 줄로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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