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리하나 희망찾기 복지회’ 이병규 회장의 '작지만 큰' 봉사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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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리하나 희망찾기 복지회’ 이병규 회장의 '작지만 큰' 봉사 이야기
  • 취재기자 신유리
  • 승인 2021.03.18 14: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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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의 꿈과 자신의 길을 위해 시작한 ‘희망찾기 봉사단’
지난해 제21회 ‘부산문화대상’ 봉사부문 수상...그의 진심 전해져
"앞으로도 봉사 계속 이어나갈 것... 후원자 나타나 도움 주었으면"

인도 콜카타에 가난한 사람들의 어머니 테레사 수녀가 있었다면, 부산 사하구에는 가난한 사람들의 아버지 이병규 두리하나 희망찾기 복지회장이 있다.

두리하나희망찾기복지회 회장 이병규 씨는 2001년부터 현재까지 소외계층을 위한 여러 봉사 사업을 정부의 지원 없이 추진하고 있다(사진: 이병규 씨 제공).
두리하나희망찾기복지회 이병규 회장은 2001년부터 현재까지 소외계층을 위한 봉사활동을 정부 지원 없이 추진하고 있다(사진: 이병규 회장 제공).

‘두리하나 희망찾기 복지회’ 이병규 회장은 2001년부터 어려운 사람들을 돕기 위해 봉사단을 구성해 정부의 지원 없이 봉사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이 회장의 봉사활동을 이해하려면 그의 젊은 시절로 돌아가 봐야 한다. 그는 젊었을 때부터 정의감이 남달랐다고 한다. 어려운 상황에 처한 사람들을 보면 참지 않고 달려들어 싸움이 나더라도 끝까지 도움을 줬다는 것. 1962년 부산에서 태어난 이병규 씨는 1984년 입대를 했고 군에서 휴가를 나왔을 때 버스 안에서 담배를 피우는 방위병들 때문에 옆에 있던 승객들이 눈치만 보며 기침하던 상황을 목격했다. 그는 잠시의 망설임 없이 방위병들을 향해 담배를 꺼달라고 큰소리로 외쳤고, 방위병들은 "어린 놈이 겁도 없이 소리 지른다"며 이 회장에게 손찌검을 했다. 그 과정에서 싸움이 일어나 몸에 작은 상처를 입었지만, 그는 담배 연기에 불편해하던 승객을 도운 것이 옳은 일이라 생각하며 후회하지 않았다. 그는 “약자들이 불리하고 어려운 상황에 처한 걸 눈뜨고 바라볼 수가 없었다”며 “그런 상황에서는 항상 나서서 약자들을 도왔다”고 말했다.

하지만 약자를 괴롭히는 강자들을 폭력으로 맞서 정당화할 수는 없었다. 그렇게 되면 결국 자신도 같이 폭력을 휘두른 사람이 되어 주변에 안 좋은 시선을 받게 되기 때문이다. 그의 어머니도 그가 약자를 돕는 것은 좋아하셨지만 동시에 주변에서 나쁜 시선을 받지는 않을까 걱정했다고 한다.

이병규 씨는 남을 돕는 것을 좋아하셨던 어머니의 영향을 많이 받아 복지회를 설립하게됐다(사진: 이병규 씨 제공).
이병규 회장은 남을 돕는 것을 좋아하셨던 어머니의 영향을 많이 받아 복지회를 설립하게 됐다고 한다(사진: 이병규 회장 제공).

이병규 회장이 남을 잘 돕고 정의로운 삶을 지향한 것은 어머니의 영향이 컸다. 그의 어머니는 낚시 제조업을 하던 아버지 회사의 집 없는 노동자들을 먹여주고 재워주면서 살갑게 챙겨주었다. 어머니는 평소에도 고아원, 양로원을 차려서 부모 없는 아이들이나 가족 없는 노인분들을 돕는 게 평생 꿈이라고 말할 정도로 봉사에 관심을 보였다.

이 회장은 어머니의 꿈도 이뤄드리면서 더 정당한 방법으로 약자들을 돕기 위해 뜻이 같은 친구와 함께 봉사단을 꾸렸다. 봉사를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위해 그는 아버지에게 물려받은 낚시 사업을 동생에게 맡기고, 2001년 부산 사하구 다대포로 이사하여 ‘두리하나 희망찾기 봉사단’이라는 이름으로 봉사 활동을 시작했다.

봉사단을 처음 시작했을 당시에는 직접 행동보다는 물질적인 지원이 중심이었다. 그가 첫 번째로 한 일은 부산 사하구 다대청년회에 700만 원 정도의 기금을 조성해 준 것이었다.  2006년 그가 34세에 아버지에게 물려받은 사업을 하면서 모은 돈을 투입해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기부하며 봉사를 시작한 것. 꾸준한 기부가 이어지자 몇몇 장애 단체에서도 소식을 듣고 달려와 장애인에게 필요한 물품을 달라며 도움을 청하기도 했다.

두리하나 희망찾기 봉사단의 활동반경이 점점 넓어지자, 소문을 듣고 찾아온 봉사자들도 하나 둘씩 생겨났다. 이 회장의 지인을 포함해서 소문을 듣고 찾아온 봉사자들, 다른 복지회에 있다가 사하구로 이사를 오게 되면서 들어온 봉사자들까지 점점 모였고, 이 회장은 봉사자들과 함께 주로 장애인, 노인, 다문화가정, 탈북민 등 부산의 소외계층에 속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도움을 주었다.

봉사단에서는 주로 위기가정 탈출 지원, 탈북자 사회적응센터 운영, 경로잔치, 무료급식, 장애인 재활작업장 등의 활동을 진행했다.

이 회장은 조금 더 본격적으로 봉사를 하겠다는 생각으로 두리하나 희망찾기 봉사단을 발전시켜 2010년 비영리법인 ‘두리하나 희망찾기 복지회’를 설립했다. 두리하나란 ‘둘이서 하나가 된다’는 뜻으로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하나가 되어 장애를 극복하고자 하는 취지다.

두리하나희망찾기복지회에서는 복지사각지대에 있는 분들을 위해 '돌봄사업'을 추진하고 있다(사진: 두리하나희망찾기복지회 홈페이지 캡처).
두리하나 희망찾기 복지회에서는 복지 사각 지대에 있는 분들을 위해 '돌봄사업'을 추진하고 있다(사진: 두리하나 희망찾기 복지회 홈페이지 캡처).

그 뜻에 맞게 복지회에서는 다양한 사업이 진행되고 있다. ‘활동 보조사업’을 통해 힘들고 지쳐있는 장애인들의 불편 해소를 위해 활동 보조자를 직접 연결시켜 장애인들을 관리하고 있다. 또 복지의 사각지대에 있는 사람들에게도 손을 내밀어 다양한 방법으로 혜택을 드리는 ‘돌봄 사업’도 진행 중이다.

두리하나희망찾기복지회에서는 매일 장애인, 노약자분들을 위해 무료급식을 제공하고있다(사진: 취재기자 신유리).
두리하나 희망찾기 복지회에서는 매일 장애인, 노약자분들을 위해 무료급식을 제공하고있다(사진: 취재기자 신유리).
두리하나희망찾기복지회에서는 매주 정보화교실, 그림공방 등도 운영하고있다(사진: 취재기자 신유리).
두리하나희망찾기복지회에서는 매주 정보화교실, 그림공방 등도 운영하고있다(사진: 취재기자 신유리).

뿐만 아니라 매일 무료급식을 운영하고 있으며 일주일에 한 번씩 탁구 교실, 정보화 교실, 당구 교실, 그림 공방, 반찬 봉사를 하고 있다. 또 한 달에 한 번씩 위문공연과 생일잔치, 분기별로는 작은 음악회를 열고 있다. 그리고 매년 낚시캠프와 힐링캠프를 통해 수혜회원들에게 기쁨을 주고 있다.

두리하나 희망찾기 복지회는 정부의 지원을 일절 받지 않고 운영하고 있다. 그 이유는 정부에서 지원을 받게 되면 정부 규정에 따라서 특정 소외계층만 도울 수 있기 때문이다. 이 회장은 장애인, 노인, 다문화 등 다양하고 넓은 범위의 소외계층들을 돕기 위해 정부 지원금을 신청하지 않고 오로지 자신의 사비와 약간의 후원금으로 복지회를 유지하고 있다. 그는 “하나의 소외계층에 포커스를 맞추게 되면 다른 분들은 내가 도울 수가 없게 된다”며 “정부의 지원을 받기보다는 그냥 내 돈으로 다양한 사람들을 돕고 싶다”고 말했다.

이병규 씨가 지난해 제 21회 부산문화대상 봉사부문에서 수상을했다(사진: 이병규 씨 제공).
이병규 회장은 지난해 제21회 부산문화대상 봉사부문에서 수상을 했다(사진: 이병규 회장 제공).

투철한 봉사 정신과 열정 어린 활동들의 대가로, 그는 지난해 제21회 ‘부산문화대상’ 봉사부문에서 수상까지 했다. 이제 부산에서 인정받는 복지회가 된 것이다.

그는 봉사를 시작하면서 인생의 전환점을 맞았다. 그의 도움 덕분에 삶의 의미를 다시 찾아가는 사람들을 보면 뿌듯하고 더 열심히 봉사하며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는 것. 그는 “오히려 그분들에게 고맙다. 목을 매달았던 분들도 내 덕에 제2의 인생을 살게 됐다는 말을 들으면 그보다 더 뿌듯할 수가 없다”고 전했다.

봉사를 다니면서 정신적으로나 신체적으로 버티기 힘든 적은 없었냐는 질문에 그는 “거동이 불편하신 분들, 뇌성마비가 오신 분들이 나를 가끔 집으로 초대해 밥을 대접할 때가 있다. 그분들이 내 앞에 앉아서 음식을 입에 제대로 넣지도 못하는 걸 보면 가슴이 찢어질 듯 아프지만, 그분들과 함께 있는 시간은 그저 행복하다”며 “그렇게라도 나와 같이 밥을 먹으려 한다는 사실에 그저 기쁠 뿐”이라고 말했다.

이병규 회장은 앞으로도 계속해서 복지회를 통해 어려운 사람들을 도울 예정이다. 그는 “우리 아들도 나를 따라 복지를 공부하고 있는 것을 보면 보람을 느낀다. 가정에도 충실하고 건강하면서 봉사까지 놓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 그는 어머니가 원하셨던 양로원과 고아원은 재정상 현실화할 수는 없지만 그와 비슷하게 '두리하나 희망쉼터'를 만들어 독거노인분과 소년의 집 출신 학생들의 사회적응을 도울 예정이다. 추가로 소년의 집 출신 학생들의 일자리 창출을 위해 두리하나 희망찾기 복지회에서 자체적으로 '나무젓가락'을 수거, 세척하여 다향한 제품을 생산하는 친환경사업장을 만들 것이라 전했다.

그는 사랑과 효(孝)를 특히 강조했다. 그는 “어른들로부터는 배울 수 있는 것들은 무한하다”며 “지금의 내가 있을 수 있었던 건 부모님의 사랑과 가족에 대한 나의 사랑”이라고 전했다. 또 “사랑이 없었다면 다른 사람을 돕겠다는 마음도, 봉사를 시작해야겠다는 마음도 생기지 않았을 것”이라 덧붙였다. 그는 현재 부인과 두 아들과 함께 화목한 가정의 덕목을 잘 꾸리고 있다.

한편 그는 복지회 설립 과정에서 만난 나쁜 사기꾼들에 의해 가지고 있던 건물을 잃는 등 재정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정부의 지원금도 받지 않고 복지회를 운영하는 상황에서 그가 당한 사기는 뼈아픈 심적, 물적 고통을 안겼다. 지금도 약 150명의 장애인, 노인, 새터민들을 정성으로 보살피고 있다는 그는 "함께 도움을 줄 후원자들이 있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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