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각장애인에 지식의 길라잡이 '더 리더'서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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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각장애인에 지식의 길라잡이 '더 리더'서비스
  • 취재기자 서소희
  • 승인 2016.04.24 20:4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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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복지관 책 읽어주기 음성서비스 인기..."봉사자 더 늘었으면"

영화 <더 리더>에서 여주인공 케이트 윈슬렛은 우연히 만난 남자 주인공에게 날마다 책을 읽어 달라고 부탁한다. 그 남자 주인공은 왜 윈슬렛이 자기에게 책을 읽어 달라고 하는지를 잘 모른다. 다만 그는 남이 소리 내어 읽어 주는 책 읽는 소리를 여주인공이 좋아 한다고 생각했을 뿐이다. 영화 속 여주인공은 사실 문맹이었다. 시각장애인들은 문맹은 아니지만 본인 스스로가 책을 읽을 수 없다. 그들에게는 누군가 책을 읽어주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 이 세상에는 시각장애인들에게 책을 읽어 주는 ‘더 리더’가 있다. 그 리더들은 시각장애인에게 세상을 알게 해주는 천사들이다. 그 천사들이 있는 곳은 시각장애인들에게 음성서비스를 해주는 복지관이다.

부산시 구포동 부산 시각장애인 복지관에는 다양한 연령대의 봉사자들이 몰려든다. 이들은 복지관 2층으로 올라가 ‘음성정보팀’ 문을 두드린다. 이곳에서 10개월 동안 봉사하고 있는 정지애(22, 부산시 동래구) 씨는 매주 금요일 이곳을 방문한다. 그는 “전공이 사회복지학이라 봉사활동을 많이 다니고 있는데, 매번 비슷한 봉사활동을 하다 보니 색다른 봉사활동을 하고 싶어졌다. 이 복지관 2층으로 가면 보통 생각하는 봉사활동과는 좀 다른 종류의 봉사활동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 부산시 구포3동에 위치한 부산 시각장애인 복지관. 이곳에서 많은 음성 낭독 봉사자들이 시각장애인들을 위해 봉사하고 있다(사진: 취재기자 서소희).
▲ 부산 시각장애인 복지관 2층에 위치한 음성정보팀. 이곳에서 봉사자들은 시각장애인들을 위해 도서, 신문 등을 녹음한다(사진: 취재기자 서소희).

부산 시각장애인 복지관은 1992년 12월 맹인복지회관이라는 이름으로 개관했다가 2009년에 부산광역시 시각장애인 복지관으로 명칭을 변경했다. 음성정보서비스(ARS) 사업은 복지관이 개관한 4년 뒤인 1996년 6월에 시작했다. 음성정보서비스란 음성자동응답시스템을 이용해 제공하는 서비스로 시각장애인들이 휴대전화로 ARS 청취전용 번호(051-338-5200)에 접속하면 24시간 언제든지 자신이 원하는 신문, 도서, 잡지 등을 손쉽게 들을 수 있게 하는 서비스다. 시각장애인들은 ARS 청취 전용 번호를 누르고, 통상 ARS 서비스가 그런 것처럼 음성 안내에 따라서 듣고자 하는 분야의 번호 다이얼을 눌러 원하는 기사나 잡지 내용을 들을 수 있다. 예를 들어 일간지를 듣고 싶다면 1번, 주간지나 월간지를 듣고 싶다면 2번, 장애인 관련 정보를 알려면 3번을 누르면 된다. 이는 시각장애인의 정보격차를 해소시켜주고 정보에 대한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시작한 사업으로 별도의 정보 이용료 없이 통화료만 부과된다.

현재도 점자책이 시각장애인들의 지식 습득의 주요 수단이지만, 점자책은 만드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고 제작 과정이 복잡하다. 최근에는 도서나 신문을 녹음하면 점자책을 만드는 것보다는 비교적 시간도 절약되고 비용도 싸지기 때문에 많은 시각장애인들이 음성 서비스되는 책을 원하고 있다.

부산 시각장애인 복지관의 음성정보팀에서 봉사하는 봉사자들은 두 종류로 나뉜다. 그들은 모니터 봉사자와 녹음 봉사자들로 나뉘는데, 녹음 봉사자는 시각장애인을 위해 신문, 도서, 잡지 등을 녹음하는 봉사 활동을 하며, 모니터 봉사자는 녹음 봉사자들이 녹음한 녹음 본을 듣고, 원본과 다른 부분을 찾아 내는 등의 일을 한다. 테스트 없이 간단한 교육 후 바로 봉사가 가능한 모니터 봉사와는 달리, 낭독 봉사자는 소정의 테스트를 걸쳐 선발된다. 녹음 봉사자는 표준어를 구사할 수 있어야 하며, 녹음에 적합한 목소리를 가진 사람이어야 한다. 청각에 예민한 시각장애인들이 듣는 목소리이다 보니 낭독 봉사자들은 다른 봉사활동과 달리 테스트를 받는 것. 낭독 봉사자들이 작은 녹음방에서 ‘Cool Edit'라는 컴퓨터 프로그램을 통해 책을 읽어 녹음하면, 음성정보팀에서 녹음 파일의 볼륨을 조정하고 파일을 ARS 전용 컴퓨터로 입력해 ARS 서비스 목록에 업로드한다.

낭독 봉사자와 녹음 봉사자를 선발하는 음성정보팀 김수현 씨는 1년에 4번 정도 봉사자 면접을 진행한다. 그는 “낭독 봉사를 희망하는 분들이 오면 뉴스나 신문 사설을 나눠드리고 낭독하게 한다. 남들이 듣기에 거북한 목소리거나 사투리가 심한 분들은 낭독 봉사를 하기 어렵다. 하지만 면접을 보러 오는 대부분의 봉사자들이 무리 없이 선발되고 있다”고 말했다.

낭독 봉사자들은 시각장애인이 신청한 도서 목록을 보고 책을 배당받아 녹음한다. 또 일반 신문이나 장애인 신문 등을 녹음하기도 한다. 요새는 신문을 읽어 달라고 요청하는 시작장애인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게 담당자의 귀띔. 현재 부산 시각장애인 복지관에는 연평균 70여 명의 봉사자들이 녹음을 진행하고 있다. 이들은 매주 한 두 번 복지관에 방문해 1시간 정도 녹음을 진행한다.

이곳에서 낭독 봉사를 해오고 있는 김채은(22, 부산 금정구 구서동) 씨는 일주일에 한 번 복지관을 방문한다. 그는 처음 봉사를 시작할 때와는 마음가짐이 많이 바뀌었다. 김 씨는 “처음 면접 볼 때는 떨어질 것 같다고 생각했다. 경쟁률도 치열하고 남들보다 내가 사투리가 심한 것 같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무사히 뽑혀 봉사활동을 할수록 스스로 실력이 늘고 있다는 것도 느끼고 있고, 무엇보다 내가 녹음한 것을 많은 시각장애인들이 들을 수 있다는 사실이 참 뿌듯하다”고 말했다.

부산 시각장애인 복지관 음성정보팀 팀장 오영인(52, 부산 북구 구포동) 씨는 도서, 신문 녹음과 제작을 총괄하고 있다. 그는 시각장애인에 대한 인식이 긍정적인 방향으로 바뀌는데 녹음봉사가 한 몫을 한다고 말한다. 그는 “낭독 봉사자들이 완성한 도서는 시각장애인에게 전달돼 그들이 세상으로 나아갈 수 있게 하는 지식의 양분이 된다. 그 양분으로 시각장애인들은 학교도 졸업하고, 취업에 성공하기도 한다. 봉사자들의 따뜻한 마음이 있었기에 이 서비스가 잘 유지되어 온 것 같다”고 말했다.

▲ 낭독 봉사자들이 녹음실에서 컴퓨터 앞에 앉아 시각장애인이 신청한 도서를 녹음하고 있다(사진: 취재기자 서소희).

부산 시각장애인 복지관과 비슷하게 낭독 봉사를 진행하는 곳은 전국적으로 여러 곳이 있다. 부산 사상점자도서관은 시각장애인을 위해 녹음, CD도서를 제작해 전국의 30여만 명의 시각장애인에게 무료로 대출하고 있다. 또 한국 시각장애인 복지관과 국립중앙도서관, 한국점자도서관에서도 낭독봉사를 진행하고 있다. 하지만 사상점자도서관은 신문이나 주간지와 같이 도서 외의 것은 녹음하지 않고 있고, 한국시각장애인복지관과 국립중앙도서관, 한국점자도서관에서도 도서 이외의 읽을거리 서비스는 제공되지 않는다. 그래서 신문이나 잡지를 녹음해서 서비스를 제공하는 곳은 전국에서 부산 시각장애인 복지관이 유일하다.

복지관 시설을 이용하고 있는 시각장애인 장모(42, 부산시 덕천동) 씨는 음성정보서비스 애용자다. 그는 “내가 원하는 책을 봉사자들이 녹음해주니 너무 좋다. 또 책뿐만 아니라 우리 지역의 소식을 휴대폰만 있으면 들을 수 있어서 편리하다”고 말했다.

또 시각장애인 김영수(40, 부산시 덕천동) 씨도 자신이 원하는 뉴스를 선별해서 들을 수 있다는 점을 음성지원서비스의 가장 큰 장점으로 꼽았다. 그는 “나는 오전에 올라오는 스포츠 신문을 중점적으로 듣는다. 프로야구가 시작하는 시점에는 경기일정과 청취할 수 있는 라디오 채널 안내가 상세하게 나와서 좋다. 그리고 야구기사 번호를 누르면 쉽게 들을 수 있어서 간편하기도 하다”고 말했다.

음성정보팀 김수현 씨는 봉사자들에게 감사하기도 하고 죄송스런 마음이 들기도 한다고 말했다. 그는 “봉사자들이 학업이나 생업까지 병행하면서 봉사활동을 해주시는데 이게 쉬운 일이 아니잖아요. 또 저희 복지관은 차비 지원 같은 물질적인 지원이 없어 거주지가 먼 분들께는 죄송스럽기도 해요”라고 말했다.

많은 봉사자들이 봉사활동을 해주고 있지만 그래도 인력이 부족한 게 현실이다. 간혹 시각장애인들은 ARS서비스가 아니라 자기 개인이 필요한 책을 녹음해달라고 부탁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김수현 씨는 개별적으로 의뢰가 들어온 도서도 가급적이면 낭독 봉사자들에게 부탁해서 녹음 파일로 전달해 드린다. 김 씨는 “특히 개별적 부탁 받은 책으로 녹음 파일을 만들어 주면 시각장애인들이 너무 좋아하시고 그걸로 공부해서 학위도 따는 것을 보면 뿌듯해요. 많은 봉사자들이 수고하고 있지만 인력이 부족해서 항상 봉사자의 도움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어요”라고 말했다.

낭독봉사를 희망하는 사람은 1, 4, 7, 10월에 지원할 수 있다. 이 때 복지관에 방문해 테스트를 받고 합격하면 1시간의 교육 후 봉사활동을 할 수 있다. 이곳에서 녹음되는 신문과 주간지 등은 ARS로 제공되기 때문에 지역에 국한되지 않고 휴대폰만 있으면 누구나 이용이 가능하다. 장애인이 아닌 사람도 ARS 청취 전용 번호 051-338-5200를 누르면 들을 있다. 그 소리를 직접 듣고 시각 장애인들의 ‘리더’가 되는 것은 참된 봉사일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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